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92화 (92/255)

의무병의 환생 92화

"…쿨럭!"

적지 않은 시간의 잠수.

그 끝에 베르디를 품고 물 위로 빠져나온 셰인이, 근처의 부서진 판자로 몸을 올렸다.

하지만 몸을 붙일 곳을 찾았다고 안심할 순 없었다.

이곳에 들이닥치는 파도가 그칠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까.

'파도가 너무 거세다.'

단순히 폭풍 때문만은 아니다.

배의 뒤편에서부터 치솟는 물보라는, 마력엔진이 주변의 물을 방대히 밀어내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이 폭풍우를 가르며 한 사람을 업은 채로 배를 따라잡는 건 무리였다.

특히나 무투파인 그에게 있어, 물과 같은 유기체에서의 활동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놓아, 줘요."

그걸 인지한 건 베르디도 마찬가지.

물을 머금어 정신이 혼탁할 터임에도, 베르디는 힘겹게나마 이성의 끈을 잡으며 셰인을 만류하고 있었다.

"놓아줘요, 이대로 있으면 셰인도……."

"못 놔."

판자에서 떨어지려던 베르디를 억지로 잡아두었다.

같이 배를 쫓을 순 없어도 죽게 두진 않는다고…….

그것을 아는 베르디가 희미한 의식의 끈을 바로잡으며 오열을 토해냈다.

"셰인은, 저랑 다르잖아요."

많은 이들에게 보은을 입히고 존경을 받는 몸이 아닌가.

그런 자를 위험에 빠지게 하는 건, 그 자체로 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셰인은 저와 달리, 저 배에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데……."

더 이상 죄를 쌓고 싶지 않다.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해 희생하지 않길 바란다.

"왜, 저 하나 때문에……."

"내가."

그럼에도 셰인은 그 마음에 응해주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굉장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데."

"……셰인."

"나도 너랑 같은 인간이야."

애초에 들어줄 능력도 없다.

그는 베르디가 생각한 것처럼 빛도, 우상도, 동경의 대상조차도 될 수 없는 시대의 이단아에 불과한 녀석이니까.

"넌 내가 완벽한 초인이라도 되는가 생각하겠지만……. 나도 결국엔 너랑 같은 인간이라고. 교단이 섬기는 신처럼 모두를 사랑할 수도 없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도 구하기 벅찬 인간이란 말이야!"

2번째 삶이라는 게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가.

나이에 맞지 않은 재주와 지식을 가지고, 남들과는 전혀 다른 체계를 구축하고, 잊힌 지식을 다시 구현하는 게 고작이다.

그조차도 이 시대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거늘.

그런 무력함을 버텨내며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뿐이었다.

"그런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 이상은 바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있어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없더라도 구할 수 있는 자는 구해질 수 있다.

실제로 배 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천지였다.

시체들에게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내고, 차마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묵념을 하는 이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군인이라 부를 자들이 저 배엔 아직 많이 건재해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애는 아니야.'

모두가 외면하고, 스스로도 외면받길 희망한 소녀.

그런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건 언제나 그를 멀리서 지켜보고, 아직까지도 이 소녀를 환자로써 여기는 자신뿐이다.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구하지 말라는 둥, 그런 소리 하지 마. 제발 나한테……."

"셰인……."

"의사한테 환자를 버리라 하지 마!!!"

-콰아아!

더욱 거세게 휘몰아치는 파도.

그를 앞둔 셰인이 베르디의 입과 허리에 양 손을 가져갔다.

"……조금만 참아. 한나절 정도만 헤엄치면 될 테니까."

손에 산소 호흡술을 쓰고, 두 발에 마나를 끌어 모은 채 폭풍우를 가로질러 나아갈 준비를 취한다.

저 멀리에 보이는 희미한 그림자.

그들이 목적지로 여겼던, 주둔구역이 자리하는 섬이 있는 곳을 향해.

* * *

-콰아아아!

마력엔진의 출력을 받은 군함이 이윽고 안개를 벗어났다.

그 직후 하나둘씩 종적을 감추는 언데드들.

겨우 사태에서 벗어났지만, 승전이 아닌 도주에 남는 건 상처뿐이었다.

"부상자! 빨리 부상자들을!! 성직자들에게 데려가!"

"응급처치부터 해!!"

다행히도 사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얘기치 못한 기습에 어쩔 수 없이 당한 자들도 있었지만, 이 배엔 언데드들에겐 치명적으로 여겨지는 성직자들이 여럿 탑승한 상태니까.

그 선두에 서서 싸웠던 레온이 방패를 내려놓으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코델리아 양.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뇨, 레온 부단장님이야말로. 절 지켜주신 덕에 처치를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코델리아의 마력포는 괴수를 상대로도 진가를 발휘하는 공격. 그건 언데드들 역시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물론 마나의 발현이 왼팔에만 한정되어 강체술로 전신을 보호할 순 없지만, 그것도 자신을 보호해줄 전위가 있다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

"이 또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겠죠."

"…서로 도움을 받은 게 많은 듯 하군요."

그 역시 셰인을 통해 다시 신앙을 개화시켰던 몸.

그를 통해 유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선실에서부터 누군가가 선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왔다.

레온이 아는 얼굴이었다.

"메어리, 괜찮……."

"두 사람."

힘겨운 속삭임.

초췌해진 메어리의 얼굴엔 오직 절망만이 감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바다에 빠졌어."

"두 사람이라니……."

의문을 표하기 무섭게, 그녀가 말하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를 자각했다.

이전까지 갑판에서 혈전을 벌이던 셰인.

그리고 그를 따르며 응급처치로 환자를 보살피던 베르디.

환자가 가득한 상황에 있어야 할 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선생님이……."

"잠깐, 코델리아 양!"

뒤늦게 그 점을 눈치 챈 코델리아가 선 내로 뛰쳐나갔다.

황급히 그를 뒤따르는 레온.

이후 도착한 선장실에서, 코델리아가 그곳에 서있는 선장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선장님! 당장 배를 돌려야 합니다! 선생님을 구출해야……."

간청하던 입이 일순간 다물어졌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청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자각했기에.

"아아, 자네인가?"

드레이크가 태연히 코델리아를 마주했다.

상당히 창백한 낯빛.

코델리아는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선장님, 팔이……."

"…자르지 않았다면 그대로 포위당했을 테지."

오른팔이 잘려있다.

지혈은 끝났지만 결손부위는 신성력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

그 부위가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상태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뭐,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되네.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무기를 쥘 일도 없고, 조타를 쥐는 거야 항해사에게 시키면 되니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지만, 총 책임자마저 그런 걸 강행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조급했던 마음에 냉정이 자리한 때, 드레이크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해졌다.

"그렇군, 그 친구가 빠져버린 건가."

검은 안개는 여전히 저 멀리에 펼쳐진 상태.

하지만 그 범위 밖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폭풍우가 어느 일대를 기준으로만 둘러진 것처럼.

"구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군. 저곳을 벗어나자마자 언데드들의 침공이 사라진 거니……."

이전의 습격에서 병력이 온존한 건 그들이 물러나서일 뿐, 결코 승리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마당에 사람 몇 명을 구하고자 저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럼, 선생님은……."

"셰인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절망을 흘리는 코델리아에게 레온이 말했다.

"그는……. 영지에 있는 4년 간 사령관님의 지시 하에 여러 전장을 오갔던 상태입니다. 바다에 빠진 정도의 위험은 분명 버텨내겠죠."

저 폭풍우가 치는 망망대해에 발 디딜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런 암울한 상황에도 레온은 셰인을 향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그건 드레이크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바였다.

그 역시 이곳에 온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를 은사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선장님."

"아, 항해사인가? 선원들의 상태는……."

마침 선장실에 들어온 항해사의 몸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에게 앞서 다가간 건 레온.

숨을 쌕쌕 몰아쉬는 항해사의 용태를 살피던 그의 눈살이 삽시간에 찌푸려졌다.

'언데드에게 당한 건가?'

안색은 창백하고 몸은 뜨겁다.

무엇보다도 가장 눈에 띠는 건 몸 곳곳에 나있는 검은 반점들.

하지만 그 외엔 별다른 외상이 보이질 않는다.

"…치료하겠습니다."

뭐가 됐건 치료가 우선이다.

곧 레온이 신성력을 쬐어주자 몸에 나있는 검은 반점들이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드레이크에게, 쓰러져 있던 항해사가 힘겨이 보고를 이어갔다.

"선내에…… 환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네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말인가?"

"처음엔 물렸던 사람들에게만 반응이 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피부도 검게 물들어지고 있어요."

언데드에게 접촉한 자들은 하나같이 몸에 검은 반점이 생겨났다.

그 속도가 아주 빠르게.

그리고 그 뒤엔 구토나 발열, 착란 증상 등이 동반되어 배의 전력을 급감시키고 있었다.

그런 증상의 환자들이 여럿 늘어나는 상황.

뱃사람에게 마냥 낯선 것은 아니었다.

"…돌림병인가."

괴혈병과 마찬가지로 교단에선 저주라 말하는 종류의 재해.

물론 괴혈병이 저주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지금 보이는 증세는 마냥 저주가 아니라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애초에 언데드부터가 인지를 초월하는 존재거늘.

그런 괴이한 존재들이 가지고 온 역병을 의학이란 걸로 해결하는 게 가능한 걸까?

"일단 환자들을 격리시키고 성직자를 제외한 이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게. 그리고 만약을 대비하여 증상이 발현되지 않은 사람들도 손이 남는 성직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케어를……."

지시를 내리는 것도 잠시.

문득 드레이크의 시선이 코델리아에게로 향해졌다.

코델리아는 심각히 굳어진 얼굴로 레온과, 그가 치료하는 항해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런가?"

"저 증상.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본 적이 있다니?"

"네, 분명…. 제국과 이교도의 역사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거였죠."

코델리아는 여유가 있을 때면 역사서를 접해왔었다.

제국민들과의 거리를 좁히려면 그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 조언을 들었기에.

그런 지식을 빌려 거론한 건 대륙을 강타한 최대 최악의 사건이자, 제국이 '교국'으로의  도약을 이룬 계기를 마련한 사태였다.

"그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한 지역에 있던 이들의 몸 곳곳에 검은 반점이 일어나고, 그 직후 사람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영향은 머지않아 대륙 전체로 퍼지고, 그 사태로 인해 대륙에 있는 사람 중 3할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역사학자들조차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도 그보단 적으리라 말할 정도.

그리고 그건 제국에게 멸망했던 타국의…….

현 시대엔 야만족이라 불리는 이들의 역사에도 적용되는 바였다.

"그 당시를 살아갔던……. 현 제국에서 '야만족'이라고 칭하는 세력에 속했던 한 작가는 이렇게 저술했습니다."

[행운은 인간에게 다가오지 않고, 주변을 거닐더라도 이슬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그건 결코 부조리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신의 총애를 짊어진 것으로, 우리 스스로가 위대하다는 자만에 빠지는 것을 자제하며 살아가라는 계시를 신의 사자가 전도한 결과이니…….]

"……신의 사자가 인간을 벌하기 위해 보냈다는 건가."

"어디까지나 제국 외에 소속된 자들의 기록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본인의 몫이죠."

결국에는 가치관의 차이.

코델리아는 그런 차원의 문제라 정의했지만, 신자인 레온에게도 그 문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온 역시 코델리아가 거론한 이단의 서적의 내용과 비슷한 구절을 성경에서 들어본 바가 있었으니까.

[전쟁과 기근이 도래한 땅에 한 기사가 찾아왔다. 그는 검은 넝마를 두른 채, 검게 물들어진 병자들의 사이에 은밀히 숨는다.]

[그 몸은 살 한 점 없는 뼈로 이루어진 몸으로, 그렇기에 그는 시체무더기 속에 숨겨져 있어도 아무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자가 소리 없이 다가오며 지나치니, 순간 수백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그 머리가 쓰러지는 모습이 마치 보리알을 낫으로 가르는 것처럼 보였다.]

"병마의 백기사……."

세계를 멸망시킬 힘을 지닌 묵시록의 4기사. 그 중 병마를 담당하는 존재.

그 존재가 강림했을 때의 현상이 지금 이 배에 벌어지고 있다면?

"정말로 그것이 병마의 백기사의 소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시기를 다룬 역사서들은 어느 것을 막론하며, 그때의 사태를 공통적으로 '흑사병'이라고 칭하였죠."

죽음을 부르는 검은 재액.

학적병명이 없는 시대에도, 그 존재가 여러 문헌에 기록될 정도의 파장을 일으킨 대재앙.

"그런 병을 언데드들이 몰고 왔다면……."

그 설명을 들은 레온의 고개가 뒤로 비틀어졌다.

"그 언데드들이 지키고 있는 저 섬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창밖으로 보이는 폭풍과 검은 안개.

그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 그들이 목적지로 삼은 주둔구역이 자리한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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