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93화
"……콜록."
4시간.
그 시간에 걸친 헤엄 끝에 가까스로 해안가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생존에 대한 안도가 일순간 탈력이 되어 덮쳐왔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쉬어선 안 된다.
-퍼엉!!
마나의 기폭과 함께 복부에 가해지는 압박.
폐가 수축됨과 동시에, 그의 입에서 물이 왈칵 뿜어져 나왔다.
"우웨엑!"
괴롭다. 오장육부가 뒤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기껏 육지에 도착했는데, 폐에 고인 물 때문에 익사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베르디. 정신 차려."
몸을 추스른 셰인이 베르디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도 숨은 붙어 있지만 의식은 잃은 상태.
더군다나 몸도 굉장히 차갑다.
'……저체온증.'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 이상으로 피해야 할 증세다.
체온이란 1도 정도만 극심한 피로감에 판단력 저하가 덮치고, 3도 정도만 떨어져도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며 환각증세가 동반된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건 30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
'일단, 몸을 데워야 해.'
셰인이 황급히 베르디의 몸을 업은 후, 근처에 보이는 바위동굴로 들어섰다.
그렇게 몸을 숨기기 무섭게 드려오는 '카르륵'대는 소리.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언데드들은 역시 이 섬에서 온 거였나?'
다행히 주변에 떠도는 언데드들은 이 동굴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발자국을 본다면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도.
'당연하겠지. 저놈들에겐 발자국을 추적할 만한 지능이 없으니까.'
시체 주제에 사고를 하는 게 우스운 일이겠지만, 그러면서도 생명체마냥 본능이라 부를 만한 행동패턴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은 아이헨발트에서도 흥미롭게 여겼던 것.
카일 역시 한때 스승을 통해 관련된 논문을 접해본 바가 있었다.
'언데드들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지는, 공교롭게도 아이헨발트에선 밝혀내지 못했어요. 어느 날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혹은 사령술사라 불리는 이들이 다루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깨어났다 정도뿐……. 그나마 알아낼 수 있는 건, 그들의 뇌가 아주 미약하게 살아있다는 것이죠.'
'뇌가 살아있다고요?'
'정확히는……. 유일하게 뇌의 온도만이 살아있는 인간과 비슷했어요.'
몸을 움직여야 하는 모든 기관들이 썩어 있음에도 뇌만큼은 살아있고, 어째서인지 살아있는 인간에게 강한 식욕을 느낀다.
온 몸이 썩어 양분의 공급 자체가 무의미한 몸임에도.
'어쩌면 그들이 인간을 쫓는 이유는, 자신의 뇌와 비슷한 온기를 가진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쫓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열추적? 시체들한테 그런 게 가능해요?'
'애초에 뇌의 상태 역시 온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요. 그런데도 그들은 망가진 눈이나 후각기관에 상관없이 생명을 찾아다니죠. 그것도 다른 짐승들은 멀리하며 오직 인간만…….'
대부분의 짐승은 사람과는 다른 체온을 지니고 있으니까.
다른 신체기관도 전부 마비된 만큼 체온에 민감히 반응하고, 그것이 언데드들로 하여금 열추적 능력을 각성시켰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바다에 오래 머무른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몸이 차게 식음으로써 정상체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하지만 언데드들의 눈을 피하자고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순 없었다.
체온이 낮아졌다는 건 그 자체로 생명이 줄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꺼, 허억……."
추위에 시달리던 중, 옆에 눕혀든 베르디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직 의식은 잃은 상태.
어디까지나 호흡곤란에 의한 반사적인 행동이다.
"이런 망할!"
셰인이 심각성을 눈치 채고, 다급히 베르디의 손목에 맥을 가져갔다.
불규칙적인 심장박동. 그러면서도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고 있다.
저체온증에 의한 심부전 증상이다.
'본래부터 심장이 약했던 아이야. 몇 시간이나 바다에 있었는데, 체온이 빼앗기고도 멀쩡할 리가 없어…!'
바로 제세동술을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단 몸에 물기가 남아있어 전류를 흘려보내면 태워질 수도 있다.
뭣보다 셰인도 아직 호흡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
셰인이 마나 운용의 루틴으로 삼는 것이 호흡임을 생각하면, 숨이 차오르는 건 곧 마나운용에도 오류가 생기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응급처치나 수술처럼 정밀함이 요구되는 때에 섣불리 사용할 순 없단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둘 순 없어…!'
심정지 상태는 4분만 지나도 뇌의 손상이 가속화된다.
일 분 일 초가 시급한 상황.
마나를 쓸 수 없다면 맨손으로라도 심폐소생을 해야 한다.
'일단 젖은 옷은 위험해.'
액체는 공기보다도 열전도율이 5배나 높다.
젖은 옷을 계속 입는다면 없던 체온도 지속적으로 뺏길 터.
살리는 게 우선이다.
그 일념으로 셰인이 옷을 걷어내고, 가슴에 손을 올려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어?"
일순간.
베르디에게 처치를 이어가려던 셰인의 거동이 멈춰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옷섬이 벌어지며 나타난 것은, 의사된 자에겐 결코 간과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뭐야, 이거……."
셰인이 베르디의 흉부에 손을 대는 것을 머뭇거렸다.
그것을 보며 떠오른 것은 베르디가 가지고 있는 증상.
분명 셰인이 검진했던 베르디의 질환은 '선천적 심장 기형에 의한 부정맥, 그로 인한 돌발적인 심정지 증세 발발'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직접적으로 상태를 점검하여 내린 결론이 아니었다.
그저 그 후 증세가 발발하지 않아 심장기형이 성장 중에 바로잡혔다 여겼을 뿐.
'하지만, 이건…….'
이윽고 셰인의 손이 베르디의 흉부에 맞닿았다.
'이런 상태인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거지?'
애초에 이런 상태라면 심정지고 기형이고 간에, 진작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카, 흑."
아니,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지금도 사경을 헤매는 상황.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건 처치를 한 후에도 늦지 않다.
'흉부 압박 30회, 분당 100회 이상의 속도로.'
정말로 거짓 없이, 갈비뼈가 부서질 기세로 눌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멈춰진 심장에 자극을 줄 수 없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 몸에 피가 돌지 않고, 그 피가 운반하는 산소가 머리에 닿지 않으면 죽게 된다.
"으, 하아……."
의식을 잃은 채로 힘겨이 몰아쉬는 숨.
셰인이 그런 베르디의 머리를 들어올리고, 코를 막은 후 입을 맞췄다.
그대로 숨을 불어넣어 폐의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제발……."
그 행동에 깃든 건 오직 하나.
이 소녀를 살리기 위한 일념뿐이다.
"제발 죽지 마. 제발……."
설령 세상에 절망하고,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자라 할지언정,
셰인에게 있어서 베르디는 그저 한 명의 환자에 불과했다.
이 아이를 살리는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 * *
-타닥, 타닥.
처치가 끝이 나 한숨을 돌린 뒤, 셰인은 동굴 밖에서 주워온 나뭇가지에 불을 지피며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잠에 든 베르디와 제 몸에 잎사귀를 덮은 채……. 당장 몸을 데울 수 있는 수단은 고작 그게 전부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에서 들려오는 '크르륵'대는 소리도 사그라졌단 것일까?
'……그러고 보면 언데드들은 아침엔 활동을 안 하던가.'
온기에 민감한 성질을 지닌 만큼, 강렬한 열기를 뿜는 광원이 있다면 그곳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밤에만 활동하는 식으로 진화했을지도 모르지.
시체 주제에 진화라는 게 우습지만 아무튼…….
'정말 이곳이 주둔구역이라면……. 여기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도 죄다 언데드가 되어버렸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유령선도…….
어쩌면 이곳에 앞서 원정을 준비했거나, 혹은 그 이전에 이 부근을 떠돌아다녔던 배일지도 모른다.
그런 배가 점거된 후 모종의 힘에 의해 주변을 수호하게 되었다면?
'사령술에 대해선……. 공교롭게도 아는 게 없군.'
한때 연합국에서도 사령술사들을 대동할까 고민했었지만, 하필 적 세력이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인 신성력에 특화된 제국이었다.
당연히 바로 사장될 수밖에 없는 안건.
때문에 언데드에 대해 아는 건 기껏 해봐야 겉핥기로 훑어본 스승의 논문 정도다.
아는 게 그 정도이니, 이 섬에 대해 파악한 것도 무언가 사람들을 말살하고 역병을 퍼트렸다는 것만 겨우 파악될 뿐.
'흑사병…….'
그래, 언데드와 별개로 흑사병에 대해선 아는 게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 병은 셰인에게 있어선 결코 잊을 수 없는 병이었으니까.
그것을 자각하며 손을 꽉 틀어쥐는 것도 잠시.
"오, 빠……."
희미한 속삭임.
베르디의 잠꼬대였다.
아직 의식을 차릴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그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다.
잠꼬대를 한다는 건 피로회복을 위한 수면기에 돌입했다는 뜻일 테니까.
"오빠, 오빠……."
그런 베르디가 누군가를 부르며 허공에 손을 휘적거렸다.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래인 제 가족을 애타게 부르며.
그 모습을 보던 셰인이 측은한 표정을 짓다, 이내 베르디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오, 빠?"
의문을 표하는 베르디.
그저 자신의 꿈과 신체의 감각이 일치하기에 보이는 반응일 뿐이다.
여기서 뭐라 말을 하건 베르디에게 전해질 리는 없으리라.
분명 그럴 테지만…….
"그래, 오빠야."
그런 식으로나마 위안을 주며,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괜찮아, 내가 곁에 있으니까…. 앞으로는 괜찮아질 거야."
베르디의 얼굴이 차차 평온한 색으로 물들어졌다.
마치 어미의 손가락을 잡은 아이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는 이 순간만은 아이가 되어, 자신의 곁에 있는 이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렇게나마 다시 곤히 잠드는 모습을……. 곁에 있는 자는 측은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베르디는, 정말로 그때 자기 오빠를…….'
암실에서 있었던 비극.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엔 혼란스러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작은 소녀가 정말 대단하단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그때 정신이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니까.'
숙련된 군인조차도 1주일 간 독방에 가두어지면 미쳐버리기 마련이거늘.
이 아이는 1주일도 아닌 한 달을 암실에서 버텼고, 그 때 있었던 기억들을 생생히 들려주기까지 하였다.
그런 정신력은 누구라도 경이마저 느껴질 일이겠지만……. 도리어 그런 경이감은, 이 소녀에게 느끼는 안쓰러움을 더욱 가증시킬 뿐이었다.
이 이야기의 결과가 혐오를 버리며 동정을 가지는 걸로 그친다면, 이 소녀의 삶은 결코 구원받지 못한 채 끝을 맺고 말 테니까.
'만약……. 스승님이라면 이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줬을까?'
피오 아스클레.
적군조차 이해하고자 했던 그녀라면, 이 아이에게도 올바른 답을 내려줄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그건 지금은…….
아니, 평생이 가더라도 구하지 못할 답일 것이다.
그녀에게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녀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지식의 단편을 떠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좋아. 뭔가 답이, 방법이…….'
그것을 위해 머리를 굴리던 중, 어느 순간 셰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가슴에 있던 그건…….'
맨 살이 드러났을 때 흉부 부분에 나있던 흔적.
그것은 베르디의 심부전 증상이 선천성이 아닌, 후천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음을 가르쳐주는 요소였다.
'신성력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후천적인 요인.'
관건은 그 흔적이 언제 생겼느냐가 될 테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론 자세히 파악할 순 없었다.
그저 흔적이 생긴 후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것도 꽤나 어린 시절에 새겨졌다, 정도만을 알 뿐.
'하지만 이전에 들었던 베르디의 이야기 중에 그 흔적에 관련된 건 없었어.'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남을 정도라면 분명 기억에도 남을 터인데.
그럼에도 미처 얘기하지 못한 건, 그 사건이 그때 들려준 이야기들과 별 연관이 없단 것이다.
혹은 연관이 있음에도 굳이 거론하지 않았거나. 의식을 잃어버려 자각이 없다거나…….
'그렇다면 그 시기는…….'
만약, 가슴에 있던 그 흔적이 새겨진 시기가 그 암실에 있었던 때였고.
그 흔적이 의식을 잃고 난 후 생겨났다면?
"……아니."
이윽고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가능성.
"아니, 그건 말도 안 되잖아."
그것을 떠올리기 무섭게 셰인이 부정을 토해내었다.
혹시나 만에 하나라는 생각에 궁리를 해보았지만,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건 만에 하나에도 불가능한 것이다.
"불가능해. 그런 암실에서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신성력도 못 다루는 아이들이지 않은가.
그런 곳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흔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 해도 그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말로 이뤄졌다면……?'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것이 결코 의사로썬 해도 안 될 일이라 해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그럴싸하게 짜맞추는 것으로, 이 아이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에.
-부스럭.
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
셰인이 생각을 멈추며 제 양 손에 마나를 끌어 모았다.
'언데드는 아니야.'
먹구름이 자욱하나 햇빛은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그리고 언데드는 낮에 활동할 수 없는 존재.
그걸 자각한 순간 상대가 사람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문제는 지금 목소리를 내는 자가 어떤 상태인지다.
언데드들이 들끓는 섬의 생존자는, 과연 외지인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