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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94화 (94/255)

의무병의 환생 94화

"당신,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바, 발자국을 보고 왔습니다."

경계심을 담아 물으니 바로 답이 돌아왔다.

그래, 언데드가 아니라면 발자국 정도는 분간할 수 있겠지.

그 다음으로 무언가 물어보려던 때 남자가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일순간 절개술을 내세우려 했지만…….

"……아."

그 전에 먼저 남자가 들어오고, 셰인과 베르디를 발견하자마자 탄성을 흘렸다.

그 반응은 적대적인 것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의를 누그러트린 셰인이 상대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아, 아아……."

사제복을 입은 남자.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 정도이며, 얼굴에는 초췌함이 감돌고 있다.

혈색이 돌지 않았다면 언데드라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

"신이시어, 신이시어……."

그런 추한 몰골의 남자가 셰인을 앞둔 채 무릎 굽혀 앉고는, 자신을 앞둔 채 열렬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드디어, 드디어 왔습니다. 저희를 구원해 줄 자가 드디어 온 겁니다. 아아, 감사합니다. 주님, 당신을 믿은 저에게 보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러는지는 대강 짐작이 갔다.

몇 년 간 연락이 끊어진 주둔구역 내에, 언데드가 들끓는 현장 속에서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거니까.

그 자의 정신이 어떻게 일그러질지는 뻔한 일.

종교라도 없었다면 진작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어도 당장 적의는 없다는 건가.'

이내 배후에 감춘 절개술을 해제하며 물었다.

"블레이즈 영지군 소속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배에서 떨어져 나왔습니다. 폭풍우를 가로질러서, 겨우 저와 이 아이 둘 만이 섬에 도착했죠."

"배가, 이 부근에……?"

"네, 당장은 이곳에 올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그래도, 여기에 구출의 시도가 있다는 뜻이겠죠?"

화색이 도는 남자의 얼굴.

곧 그가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신, 신은 역시……. 우릴 버리지 않은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어……."

이마가 찢어질 기세로 땅에 고개를 조아리는 남자.

셰인은 그런 사제의 태도를 이상하다 여기진 않았다.

'버젓이 은인이 앞에 있는데도 구원의 기회를 신에게서 찾는다……. 교쟁이들의 종특이지.'

교단 사람들과 어울린 지 벌써 4년째.

이제 와서 신성만능주의로 뭐라 하는 게 우스울 것이다.

"그, 일행분이 많이 지치신 것 같네요."

이윽고 남자의 시선이 잠들어 있는 베르디에게로 향해지다, 모닥불 위에서 말려진 수녀복을 돌아보았다.

그녀 역시 교단 사람임을 깨달은 것.

그래도 혹시 모르니 베르디를 제 몸으로 감추며 대답했다.

"……혹시 신성력으로 치료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신성력이라니, 당신도 사제라면 다루지 못하는……."

이상히 여기던 남자의 말문이 끊어졌다.

그 후 몇 초가 지난 뒤.

"아, 하하, 조, 죄송합니다. 아직 어린 수행원이시군요. 제가 무리한 얘기를 했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실제로 셰인은 수행원도 아니니까.

다만 이전의 공백에서의 시선이 신경이 쓰인다.

'눈썰미가 이상해졌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반응이었다.

그게 만약 자신이 교단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된 거라면…….

'…일단 수행원인 척하는 게 좋겠어.'

신앙을 통해 정신을 부여잡았다 한들, 그렇다고 혼란이 전혀 없는 건 아닐 테니까.

"이, 일단 치료는 거점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앞장서지요."

"아, 네. 그럼……."

이후 잠들어 있는 베르디에게 다시 옷을 입히고, 그 몸을 업은 후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모래사장을 건너고, 숲을 거닌 뒤 언덕을 오르고…….

그 끝에 도착한 곳에서 마주한 건 이끼가 낀 벽돌이 쌓여 만들어진 건축물.

"도,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벽외 주둔지로 삼은 '이스타 섬'에 세워진 유적도시입니다."

유적도시.

그 말에 걸맞게도 사방에 오래된 건축물들이 가득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곳곳에 방치되어 있는 군용물품과 생필품. 몇몇 부분은 통행이나 방어의 수월함을 위해 깎아내기도 하였다.

'고고학자들이 보면 뺨을 후려치겠군.'

물론 역사연구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

군사적이나 시간적인 관점에서, 유적지를 가공해 터를 잡는다는 건 탁월하다 여겨지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유적지 곳곳에 있는 조각상들이 신경 쓰인다.

'저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마치 사람의 얼굴을 간소하게 만든 것 같은 거대한 석상.

형태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크기만 해도 10m 정도는 훌쩍 넘을 것 같다.

그런 석상들이 이 곳곳에 배치된 상태.

한편으론 장대함마저 느껴지는 그 석상으로부터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래, 분명 스승님께서 보여주셨던 역사서에서 봤었어.'

정확히는 200년 전…….

왜곡될 대로 왜곡된 현대의 역사서에서도 내용이 배제된, 구 제국의 역사서에서.

* * *

페스트(흑사병).

감염될 경우 패혈증에 의해 검은 염증이 전신에 돋아나며, 폐렴과 림프선의 염증 등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병이다.

급성의 경우 증상 발현 후 한나절 만에 사망할 정도.

그러한 병이 매우 빠른 전염 속도를 띠는데다, 치사성도 높아 신체의 면역체계가 활성화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즉, 일단 한 사람이 발발되면 그 지역엔 대량학살을 방불케 하는 현장이 펼쳐진다는 것.

셰인의 조국인 아이헨발트는 이 흑사병을 극복하는 단계에서 태어난 나라였다.

'정확히는……. 당시 사람들은 그 재앙에 대처하고자 각자의 방식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었지.'

제국처럼 신앙에 의존하거나, 혹은 블레이즈 영지처럼 외부와 단절된 벽을 쌓아 살아가거나…….

그리고 누군가는 대륙 자체를 아예 벗어나는 시도를 했었다.

언젠가 피오가 들려준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자였다.

'제국의 황족들은 신성한 피를 이어받았다 하여 교단에서 추앙받고 있지만, 정작 그 황족들 중엔 현재까지 수치스럽게 여기는 자가 한 명 있어요.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 대륙 밖으로 도망쳐 버린 황제였죠.'

'……대륙의 반을 지배하고도 그런 생각이 들다니. 흑사병이 무섭긴 하나 보네요.'

'치료제가 있는 지금도 때를 잘 못 잡으면 죽을 수 있는 병이에요. 그 당시엔 치료제라고 할 것도 없었고……. 몇몇 사람들은 반신격이라 불린 황제가 신의 노여움을 산 게 아닐까, 생각을 했겠죠.'

요컨대 운이 나쁘게 흑사병이 발발했고, 그를 수습할 방도가 떠오르질 않으니 도망쳐버렸단 것이다.

당시엔 억장이 무너질 것 같으니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황제가 은거가 아닌 도주를 택하다니.

'아마 황제가 되었다 해도 제대로 된 정치는 못 했겠지.'

그렇게 평가를 내린 셰인이, 늘 그렇듯 휴식 시간에 책을 읽는 피오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왜 뜬금없이 제국의 역사서를 보고 있는 거예요?'

'제국이 왜 교단을 중심으로 성장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예요.'

피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민간요법을 흥겹게 보거나, 자신만만하게 무기학에 관련된 책을 보여주었을 때와는 다르게…….

마치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자는, 계승권이 박탈된 후 성직자로 전향했던 황제의 동생이었거든요.'

'……허.'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당시를 기준으로 150년도 전의 이야기라지만, 그 작자가 교단에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전쟁 따윈 일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데 설마 그 망할 녀석이 정착한 곳을 제국의 후예들이 주둔지로 삼았을 줄이야.'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셰인 씨."

추측을 이어가던 중 누군가가 다가오며 말을 건네었다.

자신을 유적도시로 데려온 사제복의 남자.

그는 부엌으로 쓰는 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셰인을 대신해, 베르디를 치료하는 일을 도맡은 상태였다.

"상태는 어떤가요?"

"그건 제가 좌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힘은 오롯이 주님에게서 받은 것. 주님의 은총이 따른다면, 필시 그녀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겠지요."

"…아, 네."

셰인이 애매히 웃으며 관심을 돌렸다.

'그래, 이 섬엔 구급법이 도입되지 않았지.'

그 처치법을 모를 적의 성직자들은 애초에 '진단'이라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걸.

치료는 무조건 신성력으로.

분류보단 규모를 보는 성향이 강하니, 학적병명의 구분조차도 의미가 없다.

'그래도 선천적 증세가 아니면 효과는 확실하니 믿고 맡겨도 되겠지만.'

혹시나 싶어 확인해보니, 잠들어 있는 베르디의 안색이 한결 나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옷을 벗기거나 한 흔적도 없었다. 어차피 신성력을 쬐면 옷을 입건 벗었건 회복은 될 테니까.

'다행이네, 가슴에 있는 흔적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 흔적은 신성력으로 지울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니니까.

괜히 사제 쪽에서 '저주받은 녀석이다'라고 말하면 골치가 아파질 터.

그런 마찰이 일어나지 않은 데에 안도를 느꼈을 무렵, 사제가 부엌의 식재를 모아 테이블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겨우 찾아온 셰인에게 식사를 대접해주려는 것.

지친 몸을 의자에 앉힌 셰인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물어봤네요."

"아, 전……. 하워드 필립스라고 합니다."

유일교의 사제 하워드.

그것이 언데드가 들끓는 섬에서 만난 '유일한' 생존자였다.

유일하다 추측하는 이유는 하워드의 반응과 주변의 어수선함 때문.

생존자가 찾아왔음에도 찾아오는 자도 없고, 하워드 역시 누군가를 부르고자 자리를 벗어나지도 않고 있다.

'뭐, 그건 이후 대화에서 차차 물어봐야겠지.'

간소한 식사를 마친 후, 부엌의 테이블에 마주앉은 셰인이 하워드가 내어준 찻잔을 쥐며 물었다.

"혹시, 여기에 돌림병이 돌았습니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하워드의 몸이 흠칫 움츠러들었다.

"그건……."

"이곳에 오기 전에 유령선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곳에서 오던 좀비들에게 동료가 물렸더니, 피부가 금세 검게 물들어지더군요."

검게 물들어진 피부.

확실치는 않지만, 내부의 피가 썩으며 생기는 '패혈증'이다.

폐렴과 더불어 흑사병의 대표적인 증세 중 하나다.

"네, 네…. 맞아요. 이 섬에, 돌았던 것과 같은 병이죠."

'역시나.'

아마도 그건 350년 전, 이 섬에 도달한 제국민들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흑사병을 피해 도망쳤음에도 보급이나 외부 교류 등의 문제는 남아있으니…….

그 당시 유입된 전염병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전염되고, 어떤 계기로 인해 그때 남은 병균들이 다시 발발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네. 그래야죠."

마주앉은 하워드가 떨떠름히 대답하며 찻잔을 쥐었다.

잔을 쥔 손이 떨리고 있다.

재앙의 현장을 회고한다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돌연히 일어난 병에 의해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피부가 검게 물들어지고……. 사제분들이 회복을 시켜도 끊임없이 그 증상이 재발하였죠. 그 증세가 마치, 성서에서 말하는 '병마의 기사'가 재림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흑사병은 전염성은 물론 치사율도, 증세가 발발하는 속도 역시 다른 전염병과 비교를 거부하기에 이를 정도니까.

그런 위험한 병이지만, 반대로 증세가 뚜렷한 만큼 균 자체도 무척이나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즉 치료 역시 매우 단순하다는 것.

항생 성분이 있는 약물만 초기에 투입해주면 환자의 목숨을 부지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응은 지금 선에선 불가능해.'

애초에 셰인은 약제사도 아닐뿐더러, 대강 알고 있는 이론을 활용하더라도 항생제 제작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만든다 해도 구시대에 썼던 항생제보단 질이 떨어질 터.

그렇게 생각하면 실로 절망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니, 약한 소리 하지 마.'

그래도 해야 한다.

이 시대에 그걸 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니.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 사명감에 테이블 밑으로 늘어놓은 손을 틀어쥔 셰인이, 하워드에게 마저 질문을 건네었다.

한편으론 전염병 이상으로 더 중요한, 이 주둔구역이 전멸한 직접적인 이유.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이……. 어떤 이유로 나타난 건지 알고 계시나요?

간혹 언데드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저만한 숫자가 일어나는 경우는 전쟁터에서도 본 적이 없다.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

그 물음에 하워드가 대답했다.

"마, 마녀에 의한 것입니다."

창백한 얼굴로.

이 섬을 언데드로 점거하고, 더욱 나아가 섬 밖에 유령선을 띄워 원정대의 출입을 저지한 주동자를 거론한다.

"마녀?"

"네, 네. 돌연히 이 유적도시에 나타난 자입니다. 그리고 병에 의해 죽은 자들을 언데드로 일으켜 세우며, 스스로를 '거스를 수 없는 공포의 마녀'라고 소개했죠."

거스를 수 없는 공포의 마녀.

그 말을 들은 순간, 찻잔을 입에 댄 셰인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련님. 뜬금없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진지하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를, 한 번만 『버려진 자들의 어머니』라고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유는……. 저도 멋진 별명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푸흡!"

입에 머금고 있던 찻물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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