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95화 (95/255)

의무병의 환생 95화

"오, 왜 그러시죠?"

"조, 죄송합니다. 그……. 조금 비슷한 걸 들은 적이 있어서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콜록……."

긴장하는 하워드에게 셰인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실상 둘 모두 뜻을 보면 아주 틀리다곤 할 수 없다.

일라이는 실제로 보육원장이고, 전염병은 대처법을 모르면 천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재해니까.

"그러니까 즉, 전염병이 퍼진 후 모두가 죽어가는 와중에……. 사령술을 다루는 존재가 이곳에 돌연히 나타났다 이 말인가요?"

"……."

"…하워드 씨?"

"아, 네. 네. 마, 맞습니다."

하워드가 뒤늦게 대답하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모두가 그녀와 싸우기도 했지만 겨, 결국엔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습니다. 도리어 함께 싸웠던 이들이 언데드가 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어가고…. 그, 그렇게 저 혼자만이……."

횡설수설 이어지는 말.

신성력을 통해 겨우 병에서 벗어난 듯 했지만, 반대로 끝까지 살아남았기에 동료들이 모두 죽어가는 걸 보게 되었단 것이다.

심지어 그 동료들이 언데드로 일으켜 세워지기까지…….

미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하지만 마녀라니, 그런 게 정말로 존재한다고?'

마녀는 구시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지에 공포심을 느끼며 탄생시킨 존재였다.

질병이나 가뭄, 혹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폭동 등등…….

그리고 그런 단어를 들먹이는 경우는 대개 '혼란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즉, 지금은 그런 재해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녀석이 이 섬에 존재한다고 보면 되겠지.'

자그마치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주둔구역이 전멸한 사태.

전염병이 겹치긴 했지만, 언데드를 일으켜 세웠을 정도라면 그 주모자의 저력은 얕잡아 볼 수준은 못 될 것이다.

'그래도 처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

그 자의 위치에 대해 물어보려던 그 순간.

-덜커덩.

질문이 끝나기도 전, 의자에 앉혀졌던 하워드의 몸이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셰인이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달려갔다.

"괜찮으신……."

"시, 신이시어."

타이르고자 뻗은 손을 외면한 하워드.

곧 그가 제 양 손을 맞잡고, 땅에 무릎을 꿇은 뒤 머리를 수그렸다.

"저기……."

"저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저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나아가는 길에 빛을 주시길……. 그들의 영혼을 천당으로 인도해 주시길……."

벌벌 떨며 외우는 기도문.

이전까지 대화를 나눈 게 용하다 생각될 정도로, 그 기도에서부터 그의 심약한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느꼈다.

'……전쟁 당시 제국의 사제놈들이 딱 이랬지.'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서나 보았던 모습이 지금 제 앞에 펼쳐졌단 건, 이 섬에 고립된 환경이 그만큼 가혹했단 뜻이 될 것이다.

신앙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진작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 빛이 왔어."

그리고 그런 사람이기에.

이 남자가 자신을 '기회'라 여기는 모습을 차마 나무라지 못하였다.

"극복할 수 있어. 신은 우릴 져버리지 않았으니까. 이, 이제 곧 구조대도 여기에 올 거잖아?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돼. 조금만…. 조금만 더……."

이윽고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

그를 보던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괜찮겠지.'

해결한다면 빠르게 처리하고 싶지만, 당장 셰인도 여러모로 지친 상태였다.

밤을 센 것도 모자라 4시간에 걸쳐 헤엄을 치지 않았던가?

이후를 대비해서라도 조금은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피곤해서 그런데, 조금 잠을 자도 되겠습니까?"

"네, 네. 무, 물론이죠. 그…… 방은 많습니다. 원하는 대로 쓰시지요."

"아뇨, 베르디랑 같은 방에서 자겠습니다."

굳이 잠을 잔다면 아는 사람과 함께 있는 편이 좋고, 유사시에도 대처하기 쉬울 테니까.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은 후, 셰인은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는 베르디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평온한 얼굴.

의식을 잃었으니 섬에 대한 상황은 전혀 모르겠지만, 차라리 이 편이 낫다 생각되었다.

베르디는 자신과 달리 이런 일을 겪어선 안 될 아이니까.

"괜찮을 거야 베르디."

셰인이 베르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근처의 의자를 가져와 그곳에 몸을 앉혔다.

이불 밖으로 내밀어진, 작고 힘없는 손을 잡은 채.

그렇게 늘 그렇듯, 전생에서의 기억을 수면제로 삼으며 잠에 들어갔다.

* * *

'카일. 제가 없는 동안 부대를 부탁드릴게요.'

제국과 연합국 간의 전쟁이 10년째에 접어들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서로가 입은 피해를 간과할 수 없던 각 세력은 휴전을 제의.

그리고 피오는 그 시기를 빌려 전장을 벗어나, 잠시 외부로의 출장을 나가게 되었다.

전염병…….

과거 흑사병이라 불렸던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정말 가시려는 거예요?'

'저는 의사고,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존재예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의사가 가는 건 당연한 거죠.'

'하지만 흑사병이라면…….'

'짜잔~ 이게 뭘까요?'

만류하려는 카일에게 피오가 무언가를 내세웠다.

항생제.

세균을 죽이거나 활동을 억눌러 세균성 질환을 막아내는 의약품이며, 아이헨발트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물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흔하다는 것은 곧 그 존재가 해당 분야의 깊숙한 곳에 침투해있다는 것.

피오는 언제나 항생제야말로, 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칭해 왔었다.

'이 항생제는 아이헨발트의 초대 국왕님께서 만드시고,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셨던 물건이죠. 사실상 이 항생제가 만들어졌기에 저희가 의료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기초의학 수업 때에 질리도록 들었으니까.

항생제란 그 정도로 의학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이것만 있으면 성경에서 말하는 묵시록의 4기사에서 병마의 기사도 은퇴시킬 수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아세요? 병마의 기사가 퇴직금도 못 먹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걔네도 봉급 받고 일해요?'

확실히 기사도 직업이니 돈이야 받겠지만, 뭐가 됐건 당시의 카일에겐 별로 와 닿지 않는 비유였다.

성경은 조국에서 가장 혐오하는 서적.

그 안의 내용을 응용한 농담은 다른 사람들에게 했다간 몰매를 맞아도 쌀 테니까.

그걸 태연히 내뱉는 모습이 아니꼽게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그런 노골적인 반응에도, 피오는 여전히 천진한 태도를 비춰왔다.

그 태도 또한 제자의 걱정을 타이르기 위한 수단임을, 그녀를 오래토록 지켜봐온 카일은 잘 알고 있었다.

'흑사병은 무서운 병이지만, 그래도 극복하지 못할 병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반드시 해결하고 올게요.'

그리고 카일은 그녀를 신뢰하고 있었다.

잠깐만 자신에게 뒷일을 맡길 뿐, 돌아오면 이제까지처럼 또 자신을 이끌어주겠다는 말을.

'그러니까 그때까지. 제 빈자리를 부탁드릴게요.'

정작 그 기약이 유언으로, 영원한 작별로 이어지리란 걸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그녀가 떠난 후 휴전은 종결되고, 카일은 다시 전장에 나서게 되었다.

당연히 피오의 장례식에 참여할 순 없었다.

그 사인이 '과로사'라는 것을 안 것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그 통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우습다'는 생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장 존경하던 사람이 적의 습격도 병도 아닌……. 고작 제 건강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어버렸다는데.

하지만 그렇기에 깨닫게 된 것도 하나 있었다.

'어쩌면 의술의 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그녀도, 결국 한 명의 사람에 불과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기까지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은 인간이라면 자신이 그녀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뜻이 될 테니까.

의료대국에서 가장 위대하다 일러진 의사의 뒤를 잇는다니.

그런 책임을 정녕 자신이 버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런 부담감에 휘둘리는 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휴전은 끝나고, 다시 전쟁이 시작된 상황.

그가 속한 진영은 그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뒤를 따르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당연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유능한 의사이고, 그런 그녀를 따르는 것은 의사로썬 언제나 옳은 길이 될 거라 믿었으니까.

그녀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그렇기에 카일은 매 순간, 언제 어느 때에나 그녀가 했던 말을 되새겨왔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제 빈자리를 부탁드릴게요.'

이제는 이뤄질 리 없는 기약을 줄곧 기다려왔다.

꿈을 꿀 때면 언제나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리며, 어떤 사건을 조우하건 그녀의 가르침이 떠오르고, 문제를 당면하면 그녀의 가르침으로부터 해결법을 찾으려고 하는 식으로…….

그런 건 그야말로 저주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의 삶에도 평생 뒤따를 저주.

그로부터 해방되는 법은 스스로가 카일 페터슨임을 버리거나, 혹은 그녀를 뛰어넘는 것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그건 무리다.

두 번째 생에 와서도, 그는 여전히 스스로가 카일 페터슨이길 희망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카일은 셰인 골드리안이 되어서도, 후자를 이루고자 매 순간 스스로에게 되물어왔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지금, 자신은 정녕 피오 아스클레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녀를 넘어설 가능성이 존재할까?

그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의학이 없는 이 시대에 대체 누가 그걸 증명해 줄 수 있을까?

* * *

-크르륵…….

희미하게 들려오는 괴이한 숨소리.

그에 정신이 차차 일깨워지는 것을 느낀 셰인이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망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 걸까?

아니, 잠이야 본래부터 못 자는 경우가 많았다.

영지에 있었을 때에도, 그리고 배에 있었을 때에도…….

그럼에도 지금 유독 두통이 심한 건 그만큼 피곤해서일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생각한 셰인이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 앞에 소녀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베르디?"

아니, 침대엔 아무도 없다.

보이는 건 이불을 걷어낸 흔적 뿐. 그러고 보면 주변이 꽤나 어두웠다.

아침에 잠을 잤거늘, 아무래도 벌써 밤 시간이 된 듯하였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깨어나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하워드 씨!"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은 찾아야 한다.

곧장 방을 벗어나기 무섭게, 현관 쪽 창문을 응시하고 있는 하워드의 모습이 보였다.

깨어났을 당시 들었던 '크륵'대는 소리는, 그가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서 들려온 것이었다.

"아, 일어나셨군요."

하워드가 인기척을 느끼며 셰인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초췌한 얼굴.

하지만 그 입가엔 한결 편해진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 괴리감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뭘 하고 계신 거죠?"

"잠시 밖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밖을?"

"네, 그러니까……. 저 밖을 배회중인 옛 동료들을 말이죠."

창밖을 기웃거리는 언데드들.

이미 해가 저물었으니 활동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상하다.

저들은 왜 창문으로 대놓고 보고 있음에도, 하워드나 자신을 습격하러 오지 않는 것일까?

"하워드 씨……."

그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도 잠시.

"왜 그러시죠?"

"……."

셰인은 답하지 않았다.

태연히 물어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잖아.'

하워드는 마녀라는 자가 이 섬에 나타난 후 언데드들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마녀는 하워드가 살아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언데드들이 자신들을 습격하지 않는다는 건,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마녀가 일부로 하워드를 살려두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

그것을 자각한 순간 셰인의 두 눈이 적의로 물들어졌다.

"베르디를 어디로 데리고 간 거야."

"……."

말없이 셰인을 응시하는 하워드.

셰인은 그 정적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침대에서 사라진 그 아이에게 수작을 부린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잠깐,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달려들기 직전 하워드가 입을 열었다.

제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그렇게 입가에 그리는 미소는, 아침에 보았을 때는 찾아볼 수 없던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며 가증스러움을 느끼는 와중에도. 제 앞에서 그따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다.

"들어 보시면 이해하게 될 겁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를."

"……."

아래로 늘어진 주먹이 틀어쥐어졌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바로 달려들 순 없었다.

베르디의 행방과 더불어, 이 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셰인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해 봐요."

모두 듣는다고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었다.

아니, 그 어떤 이유라도 그 아이의 신변을 위협했다면 용사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분노를 다스려가는 셰인이 하워드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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