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96화
"이전에 말씀드렸었죠? 병마의 백기사가 이곳에 도래한 후, 사람들이 병에 의해 죽어가기 시작했다고……."
얘기를 시작한 그의 시선은 여전히 건물 밖으로 향해져 있었다.
"시작은 소수였지만, 결국 병은 급속도로 퍼져 이윽고 주둔지 내의 모든 이들을 물들였죠. 심지어 신자분들 중에도……. 그 병을 떨쳐내지 못하는 분들이 다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치료할 힘마저 고갈되었기에…….
아니,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신앙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봉사를 해도 환자와 사망자는 늘어가고, 그런 끝없는 굴레 속에서 절망은 신앙을 뒤덮을 정도로 커져갔을 테니까.
셰인이 조급함을 억누르며 물었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진 않은 겁니까?"
"사술에 의존하고자 하는 자도 있었지만 그들의 최후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뭐가 좋지 않다는 것일까.
사술을 부리다 자멸이라도 했나? 아니면…….
아니,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이야기에 시간을 할애할 순 없었다. 개의치 않고 경청하니 하워드의 얼굴이 측은함으로 물들어졌다.
"어쩌면 그 마녀도…. 그런 사술에 이끌려 나타난 것이겠죠."
마녀. 이 소동의 주동자이자, 어쩌면 베르디를 데려갔을지도 모르는 장본인.
그 자에 대한 이야기만은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
"그 마녀는 스스로를 '거스를 수 없는 공포의 존재'라 소개하였고, 병에 시달려 죽었던 동료들의 시체들을 일으켜 세우며 저희들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겨우 전염병을 버텨내고 있던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지금부터 매일 해가 저물 무렵, 너희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하여 나에게 제물로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이 섬에 있는 모두를 몰살시키겠다.'
-빠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 감정을 바로 표하지 못한 건, 눈앞에 있는 자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바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 역시 어쩔 수 없이 저질렀으니 약간의 '여지'를 주는 것뿐이다.
그 유예를 빌리듯 하워드가 마저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많은 이들이 반발을 했습니다만……. 그 분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들었던 이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처형당하였죠. 그리고 그들도 다음 날에 다시 언데드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신성력이 언데드들에게 치명적이라 한들, 그것도 역량이 되는 선의 이야기.
싸워서 이길 수도 없으니 결국 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다음 날이 찾아오기 전, 자신들과 함께 있는 이들 중 누구를 제물로 삼을지를.
"거기에 처음엔 신자들이 자진해서 가겠다고 했지만……. 모두가 뜯어 말렸습니다."
당연한 거다.
그들이 없으면 남아있는 사람들도 전염병으로 빠르게 죽어갈 테니까.
그렇게 선별대상이 된 건 신앙이 개화되지 않은 이들로 한정되었을 것이다.
하워드와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각성한 자들만이.
"그렇게 탈출도 하지 못한 채 매일 한 명씩 사라져가고, 마지막으로 곁에 있던 분마저 사라졌을 때에 당신과 그 아이가 왔던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대강 사정은 들었다.
이내 말문을 끊은 셰인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베르디를 마녀에게 보냈다고?"
"시간이 없었습니다. 셋 중에 한 명은 그곳에 가야 했으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당장이라도 상대의 머리통을 부수고, 이곳을 박찬 뒤 마녀라는 작자가 있는 곳으로 튀어가고 싶다.
그런 충동을 이성으로 억눌러 견뎌내었다.
거스를 수 없는 공포.
그렇게 불러도 손색이 없는 존재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지 않은가?
설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역시, 그 자에게 휘둘리는 걸 버티기 어려웠을 테니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납득과 이해는 별개로 봐야 할 문제.
"날……."
왜 하필 그 아이인가.
"나를 데려갈 수도 있었잖아. 그런데 왜……."
설마 깨어나자마자 그 아이가 자처를 한 것인가?
아니, 그렇다 해도 용서할 짓이 아니다.
신자인 그의 입장에서도, 그 가녀린 아이는 지켜야 할 존재일 테니까.
"그 아이, 치료하며 확인해 본 바 품에 총을 넣고 다니더군요."
그 믿음이 이어지는 말에 산산이 붕괴되었다.
-뚝.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
하워드는 그걸 자각하지 못한 듯 셰인을 말없이 마주하였다.
그 뒤에 이어져야 할 말이 뒤따라오지 않는다.
침묵이 길어지는 데에 답답함을 느낀 셰인이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뇨?"
의아함을 표하는 하워드.
"금기를 저지른 수행원은……."
거기까지.
-쿠당탕!
바로 달려든 셰인의 주먹이 하워드의 안면을 강타했다.
바닥에 고꾸라진 하워드가 코피를 쏟으며 힘겨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무, 무슨 짓을……."
"내가."
멱을 쥔 채 그 손을 들어올렸다.
바닥에서 차차 떨어지는 발.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벌벌 떠는 가운데, 그 몸을 들어올린 셰인의 얼굴이 더욱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희들에게 존중이라는 걸 해보려고 했어."
"대, 대체 무슨 말을…. 커헉!"
"이런 시대라도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곳이니까. 너희들의 그 근거 없고 무식한 믿음을 존중해보려고 했다고……."
구구절절 제 심정을 토로할 여유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의식을 놓으면, 그 순간 자신의 악력이 이 자의 목을 부러트릴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거기에 돌아온 대가가 이거냐?"
베르디 하트리스.
전염병으로 부모와 고향을 잃고, 반란군이 저지른 비극에 의해 자기애마저도 잃은 소녀.
신자들은 그녀가 빛을 각성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리라 여기고 있지만, 그런 그녀이기에 빛에 대한 동경은 더욱 강렬했었다.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따르는……. 그 잘난 신조차도 구제하지 못하는 아이야. 그렇게 휘둘리던 아이가, 겨우 찾아낸 답이 그런 건데……."
그렇기에 베르디는 아무도 모르는 새에, 이제껏 배운 모든 것을 내버리며 금기라 여겨지는 것을 남몰래 저지른 것이다.
빛을 품지 못하는 아이가 그나마 선택한 길이, 제 주변에 있는 이들마저 쫓아내고 그들의 뒤를 지켜보는 것이었거늘…….
"고작 그거 하나 이해를 못하고 그 아이를 이런 식으로 보내야 했냐고!!"
빛을 섬긴다는 작자들은.
그런 구렁텅이 속에서 개화시킨 선의마저 그릇되었다 여기며, 그 아이를 지켜봐온 자신의 존엄마저도 짓밟기에 이르렀다.
"내가 대체 얼마나 참아야 하는 거야. 내가 대체 얼마나 너희들을……!"
"네, 녀석……."
셰인의 말을 끊어내며 발악을 하는 하워드.
손목을 움켜쥔 그의 손등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
"신자가, 아니었구나."
"이 새끼가 이런 상황이 되어서 묻는 게 그런……!!"
"이 불경한 녀서억!!"
도리어 호통을 치는 하워드.
그의 두 눈에 어린 건 진심 어린 경멸이었다.
마치 어리석은 자를 꾸짖듯. 그런 설교를 늘어놓듯이.
"신앙도 없는 녀석이 어찌 사제를 사칭하는 것이냐! 그런 주제에 그 배교자를 옹호하다니! 네, 네놈에게 천벌이 내려질 지어다!! 그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운……."
쿠당탕!
던져진 하워드의 몸이 방에 있는 테이블을 부수며 굴렀다.
고통을 느낄 여유조차도 줄 생각이 없다.
다가선 셰인이 머리 옆에 발을 내리찍자, 하워드가 충격에 숨을 집어삼키면서도 셰인을 쏘아보았다.
"네, 네 노옴……. 네놈도 분명, 같은 제국인이라면……. 아무리 영지군 소속이라 해도 신앙에 대한 존중을……."
"그 잘난 신앙 때문에 동료를 먹었냐?"
뚝.
하워드의 말이 끊어졌다.
창백히 질린 얼굴이 다시 셰인에게로 향해졌다.
"무슨, 말을……."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셰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경멸이 섞인 추한 미소.
"네 말에 따르면 네가 이제까지 살아있는 이유가……. 전부 다 사람을 제물로 삼아서 그렇다는 건데."
하루에 한 사람만 바친다면 수명이 연장된다.
그것만 해내면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자유로워진다.
맥락만 놓고 보면 인신매매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네가 섬기는 신이라는 건 아무래도 그 마녀였나 보네. 동료를 제물로 바쳐서 얻은 수명으로 잘만 먹고 사는 거 보면……!"
"모, 욕하지 마라! 내 신앙은 오롯이 신을 위한……."
"그 잘난 신을 따르면서 한 짓거리가 식인종들이 하는 거랑 대체 다를 게 뭐냐고!!"
당장 이 자리에서 목을 비틀어 죽일 수도 있지만…….
그래선 안 된다. 아직 베르디의 위치를 묻지 못했으니까.
"말해. 베르디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정황상 그다지 오래되진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언데드들을 통해 수작을 부린다면 언데드들의 활동시간에 수작을 부렸을 테니.
아직 해가 진 지 얼마 안 된 만큼, 베르디가 무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푸하하하하!!"
그런 자신이 가소로운 것일까.
목을 잡힌 하워드가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래, 너도 제물이 되겠다 이거냐?"
희열이 담긴 목소리.
도저히 도덕적인 자가 지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지만, 셰인은 이런 미소를 전쟁 당시에 수 없이 보아왔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지하의 신전……. 그곳의 제단에 한 번 올라보거라. 그리 한다면 마녀가 너를 손수 먹어줄 테니까, 하하하하하!!'
교리에 반하는 자를 처형하는 건 공포와 배덕을 망각하는 효과적인 방법.
교단의 사람들은 그런식으로 자신들의 광기를 정당화시켜왔다.
눈앞에 있는 자는 그저 그들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을 뿐.
"좋구나 좋아……. 이걸로 하루가 더 연장되었으니……. 이후에 오게 될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이곳을 탈출할 수 있게 된 거야!"
마주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등을 돌렸다.
그렇게 건물로 나서기 무섭게 마주하게 된 수십의 언데드들.
-캬르륵.
아니, 그건 울음소리 뿐.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백을 넘고 있다.
아마 이 섬에 잠재워진 것들만 해도 천 단위는 넘겠지.
그런 숫자에 주눅이 들 법함에도, 정작 미쳐 버린 성직자를 마주한 것보다도 마음이 편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시체들에겐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을 테니까.
적어도 그들은 인간이 아니니, 뒤에 있는 녀석처럼 일그러진 신앙을 가질 리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근심이 사라지고도, 차마 한 가지 의문만은 제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질 못하였다.
'신이란 게 대체 무엇인가.'
전생에서부터 끝없이 되새겨온 의문.
그 답을 찾고자 발악하듯, 셰인의 손가락이 제 몸을 향해 겨누어졌다.
* * *
'왜 인간은 신을 믿는가.'
신성력이라는 힘이 존재하지만 결국에는 그 뿐이거늘.
그 힘 하나 때문에 그 외의 모든 걸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 것인가?
인간이라면 마땅히 여겨야 할, 그 기본적인 상식마저도 교리라는 단편적인 지식에 망각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 모르는 게 아니야. 알면서도 놓아버린 거지.'
그게 편하니까.
설령 교리라는 게 진짜 신이 가르쳐준 게 아닌, 그저 허상의 존재에게 믿음을 가지기 위한 '정석'에 불과하다 해도.
그저 그걸 따르는 게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고 편하니, 그런 편한 길을 보편화시키는 걸 택한 것뿐이다.
그런 무식한 자들이 만든 풍조를 이해하고자 노력했거늘, 결국엔 그마저도 한계에 치닫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거다.
그 이해라는 행동조차도, 결국엔 제 스승의 그림자를 따르며 이루어진 것에 불과했으니.
'피오 아스클레.'
그런 이름을 가졌던 의사는, 그런 비합리적인 이들이라도 이해하고자 했었다.
당연히 모두가 그런 스승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럼에도 그 제자만은 그녀가 사라진 후에도 그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을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의사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이니까.
의사로썬 반푼이에 불과한 자신의 의지로 활동하는 것보단, 그녀를 뒤따르는 편이 더 올바른 결과가 나올 테니까.
'스승님, 저는…….'
하지만 그 길을 거니는 것이 너무나도 고되다 여겨진다.
언제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이 시대에 있어야 할 게 자신이 아닌 스승이었다 누누이 생각해왔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그녀라면 필시 이 시대를 이해하고, 올바른 답을 내리며 모두가 행복할지도 모르는 세계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저는……. 이 빌어먹을 시대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당신처럼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스스로 답을 찾아내지 못한 그는 이 순간에도 과거를 떠올리고, 과거를 갈구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심신이 망가져가는 것을 느낀다.
그런 넝마가 된 정신에 이끌리는 육체란 본능에 충실한 자들에겐 좋은 먹잇감일 뿐.
-카르륵, 카학!
사방에서 끝없이 몰려드는 언데드들.
셰인은 그런 언데드들을 맨손으로 도륙 내며 도시를 나아가길 반복했다.
건물에 있을 때엔 습격하지 않은 건 마녀가 그렇게 명령해서일까?
이렇게 밖으로 나올 때에만 습격을 해오라고?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오늘 그는 이 도시에 머무르는 마녀를 처치하고, 그 작자가 데리고 있는 베르디를 구할 생각이었으니.
"비켜 이 개새끼들아!!!"
-콰아앙!!
거센 몸짓에 폭발하는 마나.
폭발의 뒤를 이은 후폭풍에, 인간의 살을 탐닉하는 역귀들의 몸이 부질없이 꺾여갔다.
그 틈을 비집고 물어뜯고자 달려드는 자들도 있었다.
그 수가 늘어날수록 강체술조차 흐트러졌지만, 셰인은 그 고통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의 뼈와 살을 분리시켜 겼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소녀가 마녀란 자의 손에 잡혀있다.
그 소녀가 제 앞에 있는 자들과 똑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그 삶은 구제받지 못한 채 끝난다는…….
그런 결말만은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콰가강!!
또다시 이어진 난동에 몸 곳곳에서 피가 치솟았다.
육체가 5써클의 힘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결과.
하지만 제 풀에 꺾이며 생긴 고통에 안주할 시간 따윈 없었다.
지금의 소란을 듣고 더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몰려올 예정이니까.
'지금으로는 안 된다.'
그것을 자각한 셰인이 경지를 해방하고자 목에 손을 올렸다.
혈도 개방 6써클.
전성기의 전력을 해방시키려고 한 그 순간.
"…쿨럭."
격하게 차오르는 기침과 함께, 목에서 튀어나온 걸쭉한 무언가가 입 안을 적셔갔다.
그 순간 붕대에 감긴 손 끝에 보이는 검은 반점.
그것을 본 셰인의 얼굴이 왈칵 우그러졌다.
"……망할."
내부에서 발생하는 출혈이 응고되지 않아, 피부를 검게 물들여가는 것이다.
전신 파종성 응고에 의한 패혈증 현상. 이 섬에 만연한 흑사병의 증세 중 하나다.
그것이 언데드와 사투를 벌이는 제 몸을 빠르게 잠식시켜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