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97화
"하느님 개새끼야. 내가 아무리 널 욕하고 살아도 그렇지, 하필 섬에 도는 돌림병에 폐렴을 쑤셔 박는……. 콜록!"
더욱 거세지는 기침.
호흡이 거칠어질수록 마나의 운용도 버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주로 사용하는 마나 운용의 루틴으로 삼은 건 호흡.
폐와 관련된 질환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이라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신성력으로 회복할 순 있겠지만……. 저 녀석에게 그런 걸 기대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자기합리화나 눈속임…….
신앙에 그런 건 통용되지 않는다.
빛이란 오직 진심을 가지는 자에게만 내려지며, 그건 어느 방면에서건 정의라고 부를 일이니까.
죄인을 치료하는 건 성직자들에겐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
설령 그것이 비합리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조리와 후회마저, 그들은 천당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없던 셈으로 쳐버린다.
그게 신앙이 없는 이들에겐 역겨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인생의 마지막에 한해선 신앙을 가질 이유를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래, 막상 죽을 때가 되니 이해가 되긴 하네.'
이제껏 많이 봐온 것이다.
제국군 뿐 아니라 종교를 혐오하던 연합국의 사람들도…….
막상 죽을 때가 되면 믿지도 않은 신을 탓하거나, 그에게 목숨을 구걸하곤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에게 신성력이 내려지는 일은 없었다.
마주해본 적도 없고,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한 자가 아닌가.
그런 허상의 존재를 믿고자 상식과 지식을 부정하고, 그 숭배하는 마음을 삶의 무엇보다 우선시여기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죽기 직전에 그런 마음이 바로 만들어지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
그것을 알기에, 셰인은 제 최후를 앞두었음에도 신에게 생을 갈구하는 일 따윈 벌이지 않았다.
떠올리는 게 있다면 신보다도 더 확실한 존재.
'그러니까 그때까지. 제 빈자리를 부탁드릴게요.'
마주해 보았을 뿐 아니라,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던 사람…….
그녀에 대한 기억이, 죽음을 앞둔 이 순간 더욱 선명히 떠올랐다.
"그래요, 스승…… 당신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죠."
전생과 현생.
그 모든 삶엔 예외 없이 그녀의 가르침이 존재하고 있었다.
신앙은 물론 지식보다도, 그녀가 해왔던 말과 가르침을 그 어느 때에나 맹신해왔다.
그 가르침이 없었다면 두 번째 생은 어찌 되었을까?
적어도 이 빌어먹을 제국에 의학을 전파한단 이상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세실리아 라인하르트라는 가엾은 소녀를 살리지도, 전장에서 죽어갈 무수한 이들에게 구급법을 전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자부심으로 다가왔거늘, 막상 죽을 때가 되었다고 그 업적을 부정해야 하는가?
이제껏 거닐었던 길이 험난하다 하여 그것을 거닌 것을 후회하고, 그녀가 내어준 저주를 떨쳐내고자 발버둥을 쳐야 하는가?
'……그런 건 불가능해.'
셰인은 알고 있다.
이제껏 고수해온 일을 지향케 만든 마음가짐을, 그저 괴롭다는 이유로 편하게 내려놓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렇게 확신을……. 더욱 나아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마지막에 떠올렸던 것 역시, 다름 아닌 제 삶을 이끌어왔던 그녀의 가르침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설령 여기서 살아나간다 해도, 내가 당신을 뛰어넘는 날은 오지 않을 거야.'
의학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시대.
객관적인 지표랄 게 없으니, 그 누구도 자신을 평가하거나 인정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성장해도 그녀를 따라잡았다는 걸 알 순 없다.
그 저주에선 영원히 해방될 수 없다.
그녀의 그림자는 계속 자신의 앞에 존재할 것이고, 자신은 그 그림자가 만드는…….
제 앞에 아른거리는 그 이상을 끝없이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래, 더 이상 내가 당신을 따라잡을 순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런 비참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내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계속 뒤쫓을 수 있는 거겠지. 내가 아는 최고의 의사를.'
역사에조차 기록되지 않은 자를 뒤쫓으리라.
그건 현 시대의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는 짓이며, 오직 혼자만이 고수하는 길이니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 시대의 무엇도, 그 길을 나아가는 데에 방해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존재치 않는 것을 추구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
무척이나 고독하지만,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이상을 잃지 않는 게 가능한 행위.
이제껏 그가 추구해온 모든 것은 그로부터 기반된 것이었다.
힘도, 지식도, 그리고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것 역시.
'그런 비효율적인 일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는데……. 이제 곧 죽을 게 뭐 대수야?'
그리고 그 의지는 카일 페터슨이 셰인 골드리안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이 순간 최후를 앞두었음에도 체념 없이 사지로 나아가는 건, 그 흔들림 없는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신조 하나. 의무병은……. 절대로 전장에서 죽어선 안 된다."
자신의 삶을 이끌어온 신조를.
"신조 둘. 의무병은……. 제 목숨을 지키는 선에서, 아군을 살리는 데에 전념한다."
두 번째 삶에 와서도 짊어지길 희망한 저주를.
"신조 셋. 의무병은……. 자신과 아군을 살리는 선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그 저주를 맹세로 승화시켜, 그걸 이루고자 누구보다도 강해지기 위해서.
그 의지는 결코 죽음에 대한 공포로도 꺼지지 않으리라.
그 의지가 실린 손가락이 이윽고 제 관자놀이로 향해졌다.
혈도 개방-7써클.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다 여겨지는 이들의 경지를 넘어서는 인외의 경지.
전생에도 도달하지 못한 그 경지가, 지금 이 순간 셰인의 몸을 빌어 해방되었다.
그리고…….
* * *
-쿠궁.
지하 깊은 곳까지 전해져오는 희미한 진동.
그 소리에 흐릿했던 정신이 차차 깨어지기 시작했다.
'여긴…….'
지끈거리는 머리.
그 속을 헤집으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바다에서 떨어졌을 때.
그리고 자신을 구하러 온 동경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으즈즉, 쩌적.
그 기억이 이어지는 소리와 함께 사그라졌다.
익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낯설다고도 할 수 없었다.
분명 들어본 적 있는 것이다.
'고기를 씹는 소리다.'
이윽고 베르디의 시선이 어느 한 곳으로 움직였다.
어두운 건물 안…….
어쩌면 동굴이나 지하일지도 모르는 장소의 중심에 배치된 제단.
그것을 앞둔 누군가가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빛이 드는 곳의 밑으로 보이는 것은……. 다섯 갈래로 나뉜 살덩어리.
"……아."
그것이 누군가의 손임을 알아차린 순간.
그 자의 고개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베르디에게로 돌아갔다.
"……으."
신음소리가 가면의 밑에서부터, 새의 부리처럼 곡선을 그리는 주둥아리에서부터 튀어나왔다.
검은 색으로 물들어진 전신 후드는 넝마나 다름없는 상태.
찢어진 부분들은 마치 깃털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으어어……?"
그런 존재가 고개만을 뒤로 꺾은 채 베르디를 마주하고 있었다.
가면 밑으로 꿈틀거리는 자그마한 촉수들.
마치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입에 물린 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름끼치는 광경이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그녀가 말했다.
"아! 정신이 드셨습니까?"
그래, 여성이었다.
가면 밑으로 내뱉어진 건 들뜬 여성의 목소리.
그런 자가 비틀어진 고개에 맞추듯 몸을 돌리자 몸 곳곳에서 들려오는 우드득거리는 소리.
그것도 관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움직임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통 하나 호소하지 않은 채 베르디와 태연히 마주하였다.
"이야~ 참 걱정했다니까요~? 이곳에 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계속 잠을 자고 계시고……. 설마 그들이 시체를 내어준 게 아닐까 싶어서 징벌하러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하! 하! 하!"
반 정도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의식을 잃었다는 부분을 제외하고.
그들이라는 건 누구인지, 징벌이라는 건 뭔지…….
그런 내막을 알지 못하는 현재에, 베르디가 상대에게 느끼는 건 방정맞음뿐이었다.
어두운 건물 내의 제단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괴리가 짙은 분위기를.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
베르디가 메마른 목을 추스르며 물었다.
"셰인은……."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자의 이름을.
"셰인은, 어디 계시나요?"
"셰인?"
여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아니, 으쓱인 건 어깨일까?
검은 넝마를 몇 겹이고 겹쳤기에 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적어도 정상적인 몸은 아니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데리고 온 자는 당신 한 명 뿐이었어요. 혹시 그 자의 이름이 셰인인가요?"
"……아마 아닐 거예요."
자신을 구하고자 바다에 뛰어들었던 사람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제 곁을 벗어났을 리가 없다.
도리어 의식을 잃은 중에 그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기에, 제 신변이 눈앞에 있는 위험한 여자에게 양도된 것이리라.
"아니라면 뭐 신경 쓸 필요 없겠죠.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걱정을 느끼는 가운데 여인이 제 가면을 고쳐 썼다.
"아! 그러고 보면 처음 보는 사람끼리는 통성명을 하는 게 예의였죠? 식사 도중이었지만 어차피 당신이 깨어날 때를 기다리며 했던 거니, 굳이 질질 끌 필요는 없겠죠."
성큼성큼 다가오는 여인.
무의식적으로 몸을 물리려 했지만, 몸이 밧줄에 묶여있었기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무의미한 발버둥을 하는 가운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이윽고 완전히 거리를 좁힌 여인이 가면 밑의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레이디. 실례지만 이 미천한 자에게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퀭한 눈동자.
그 형태는 인간보단 어류에 가까웠지만, 제 이름을 묻는 요청엔 정중함마저 느껴지고 있다.
긴장한 베르디가 몸을 움츠리며 힘겨이 말했다.
"베르디라고 해요. 베르디 하트리스."
"네네~ 베르디 말이죠. 베르디르, 베르디르, 벨, 베르베르 베르나르……."
이름을 번복해 말하며 차차 허리를 숙이는 여인.
그 머리가 이윽고 무릎에 맞닿았을 무렵, 굽혀지던 허리가 어느 순간 확 튀어 올랐다.
"좋아요, 기억했어요!"
-우지끈.
뼈가 비틀리는 소리.
하지만 여인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언동에 더욱 유쾌함을 실어넣을 뿐.
"하이디 베아트리스라니, 아주 좋은 이름이군요~!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이 누군지 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무래도 좋다는 듯 으스대며, 균형을 잡은 제 몸을 힘차게 펼칠 뿐.
"그럼 이 다음은 저의 소개겠죠?"
펄럭.
몸을 들썩이자 펼쳐지는 후드의 깃.
두껍게 깔린 넝마 밑으로 여인의 몸이 희미하게 엿보였다.
사람의 신체가 아니다.
뼈와 살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무언가…….
여인이 그러한 몸으로 유쾌히 외쳤다.
"처음 뵙겠습니다, 베르나르 씨! 제 이름은 페니 플레밍! 세간에 저를 소개할 때엔 스스로를『거스를 수 없는 공포의 마녀』라고 칭하고 있지요~!"
"……마녀?"
"『거스를 수 없는 공포의 마녀』입니다! 어때요, 멋진 이름이지 않습니까!?"
반짝반짝.
퀭했던 눈동자에서 왜인지 빛이 나는 것 같다.
그를 마주한 베르디가 멍한 표정을 짓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해요."
-우두둑.
250로 틀어지는 허리.
하지만 그보다도 더 충격을 받은 건 몸이 아닌 마음이었다.
"이, 이상하다니. 이상하다고요? 진짜로?"
"네."
"그럴 리가요! 멋지지 않나요? 나름 고심해서 지은 이름인데 말이죠! 그 뭐냐, 엄청 무시무시하고 막 공포스럽거나 하지는……."
"이상해요."
무시무시한 건 그저 단어의 의미뿐이지 않은가.
그런 솔직한 의견에, 스스로를 공포적인 존재라 소개한 여인이 고개를 수그렸다.
"……그렇군요."
실망감이 드러나는 태도.
"그럼 그냥 페니라고 불러주시죠. 저는 못 다한 식사나 마저 하겠습니다."
그것을 끝으로 페니가 베르디에게서 완전히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이전까지 앞두고 있던 제단에.
그 위에 얹어진 고깃덩어리를 향해.
그것을 앞둔 페니의 몸에서 무언가가 하나둘씩 새어나왔다.
팔인가?
아니, 촉수다.
이전 항해에서 조우했던 새끼 크라켄의 것과 같은 촉수.
그것이 고기와 뼈를 잘라내고, 그렇게 잘려진 덩어리는 로브 밑으로 하나둘씩 말려들어갔다.
-우드득, 콰즉
몸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 한편으론 신경질마저 느껴지는 거동이다.
"페니는…."
그 광경을 보던 베르디가 조용히 물었다.
"페니는, 사람을 먹는 건가요?"
뚝, 하고 거동을 멈추는 페니.
그 때에 제단에 늘어져 있던 살덩어리들 중 대부분이 사라져 있다.
남은 뼛조각들만이 넝마 밑에서 나온 촉수들에 의해 들려질 뿐.
페니가 그러한 상태로 고개만을 돌리며 대답했다.
"……감질이 나긴 하는데, 딱히 먹어야 살 수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먹어버리면 손해죠."
"손해라니……."
"그야 재료로 쓸 수 없어지니까요."
재료라니, 사람이 말인가?
"다만 이 자의 경우에는……. 뭐, 제 신경을 너무 거슬리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었죠."
키킥. 웃음을 터트린 페니가 뼈다귀를 내동댕이쳤다.
핏기마저 빠진 길쭉한 뼈.
그것이 바닥에 떨어지며 공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니 베루루 씨는 제 얘기를 제대로 들어줬으면 해요. 공교롭게도 저는 인내심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라, 이야기가 중도에 끊어지면 욱해서 손을 뻗어버리고 말거든요."
이어지는 건 경고였다.
자신을 방해하면 예정보다 빨리 손을 댈 수 있다는 협박.
베르디가 침을 삼키며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