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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99화 (99/255)

의무병의 환생 99화

"네, 결국 불로불사의 연구는 시작되었고, 그들은 끝내 그 연구를 성공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디까지나 반쪽자리 성공이었지만……. 뭐가 됐건 성과가 나왔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분리된 머리를 정성스럽게 들어 올리는 촉수.

페니가 그것을 제 머리께에 가져가며 턱을 딱딱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인형놀이라도 하듯, 자신의 말에 맞춰 장난스럽게.

"그렇게 오랜 숙원 끝에 성공한 그들은 노력에 대한 보답을 원했습니다. 반쪽에 불과한 성공이라 해도, 그 성공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죠. 그리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성직자들은 한 가지 고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영혼과 정신은 일체화되어 있는 개념일까?'

"영혼이 심장에 존재한다면 정신은 머리에 깃든다……. 그렇다면 과연 영혼이 떠나 움직임을 멈춰버린 심장이 아닌,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는 정신의 부속에만 신성력을 주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머리에만 신성력을 주입한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신성력은 실체를 복원하는 것이고, 정신이란 형체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이…….

하지만 애초에 언데드 자체가 현 시대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걸 이해하기 위해선 비상식적인 개념이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 제 앞에 있다.

-이, 불경한 녀서억…….

머리만이 남은 시체에서.

어느덧 페니가 아닌 다른 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과 폐조차도 없는 머리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마치 그 자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듯…….

-불경한, 존재야, 그, 사람만은, 건드리면…….

콰득!

터져나가는 머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핏줄기 속에서, 페니가 깔깔 웃으며 피가 묻어난 촉수로 가면을 훑어갔다.

"그래요. 지금처럼……. 정신을 도맡는 뇌를 되살리는 것만으로, 그 자는 살아있을 때에 했던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죠."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 사이에 선 페니가 피가 묻어난 촉수를 꿈틀거렸다.

"물론 이 정도로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살아생전에 했던 말을 반복할 뿐……. 말을 걸더라도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자를 과연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한 사람을 죽였다.

아니, 이미 진작 죽은 몸을 먹어치워 유린하고, 그 남은 흔적마저 불완전하게 되살려 조롱하는 것 뿐.

그런 장난스러운 태도가 주변에 흩어진 유혈과 괴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것밖에 안 되는 결과물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다는 게 무엇인지를 고찰해 갔죠."

-쩌적.

살덩이가 그녀의 발에 밟히며 터져나간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 섬에서 삶만을 영위하는 것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이 정녕 지도자에 어울리는 존재가 해야 하는 일인가!?"

그 자극이 열정으로 바뀌듯 목소리가 더욱 커져갔다.

"아니, 절대로 아닙니다! 살아있다는 건 존재를 남긴다는 것! 나 자신이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그걸 많은 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이 몸이 백골이 진토 되듯 으스러진다 한들, 죽은 자의 기억을 영원히 남길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이 세상에 남아 계속 살아간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문서가 아닌 사람을 매개로.

기록을 만들어 이 세계에 남긴다. 그들이 추구하는 '불로불사'의 계획이란 그러한 방향으로 귀결된 것이다.

정확히는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던 연구로.

"……결국엔 구차한 변명일 뿐이죠."

크큭.

가면 밑으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억을 남기는 것만으로 불로불사를 인정받을 수 있다면, 역사서가 보관된 도서관은 조상들의 정담회장이 되겠죠. 그걸 성공으로 규정시킨 것도 그저 지쳐서일 뿐입니다."

신앙을 의심받는 것도, 자신을 따르는 지도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도 지쳤으니, 그런 식으로라도 자신들의 행동에 의미가 있어씀을 주장한 것뿐이다.

그래, 언데드란 그러한 단계에서 끝을 맺어 탄생한…….

신의 기적을 추구하는 자들의 그릇된 이상과, 그를 추구하는 노력이 한계에 닥쳐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거라도 지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작 그 연구를 진행한 이들에겐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간과한 점이라니……."

"죽은 자의 기억을 되살릴 때에, 그 자가 가진 가장 강렬한 기억들은 대부분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이죠."

이내 침묵이 자리한 현장에서, 페니가 베르디와의 거리를 차차 좁혀갔다.

"…베르디 씨. 당신에게 하나 질문을 하죠."

그녀의 이름을 똑바로 부르고.

자신의 눈높이를 맞추면서.

"사람은 죽을 때에 무엇을 생각할 거라 생각합니까?"

상상력을 요구하는 물음이다.

그 누구도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순간에,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의 사람의 심정을 묻진 못할 테니까.

그러니 베르디는 자신의 이상을 얘기했다.

"…죽고 싶어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페니는 그 이상을 즉각 부정하며 거리를 좁혔다.

가면 밑으로 보이는 눈동자들이 하나둘씩 크게 벌어져갔다.

"생존에 대한 갈망은 모든 생물의 원초적인 본능입니다. 수명이 다한 노인도, 전장에 선 군인도, 괴물을 마주한 인간도 마찬가지……. 체념이란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해버리는 것이지, 여유가 있다면 그 누구도 죽고 싶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게 되겠죠."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교단에서 섬기는 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이 다름 아닌 그들이 섬기는 신이라 여기니.

그렇기에 인간은, 그 본능을 거스르는 방법으로 신앙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간혹……. 신앙에 의존하지 않은 이들 중에도, 죽기 직전에 생존 외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지요."

"…생존, 외라니."

"대개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혹은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나 복수심 등등……."

이루지 못한 것이 있음에도 죽음을 앞둔 상황.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인간은, 어쩌면 이후에 자신의 삶이 이어지리라는 '만약의 미래'를 상정에 두며 감정을 불태운다.

그런 강렬한 감정은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망각케 만든다.

"어린 수녀여.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이윽고 페니의 몸에서 빠져나온 촉수들이 베르디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힘을 주입하며 묻는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바쳐서라도 저주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강렬한 미련으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불로의 존재.'

그것이 이 괴물이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껏 잡아먹어온 사람들에게 요구하던 것이었다.

이제까지 들려준 장황한 이야기 역시 그걸 확인하기 위함.

인지를 초월한 괴물이 잔혹한 진실을 설명하는 중에도, 생존에 대한 갈망과 절망을 극복하는 자를 선별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이야말로 진정, 그 모든 것을 내치면서까지 삶을 연장해야 할 이유가 있는 자일 테니까.

"부모의 원수, 사회에 대한 분노,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스승에 대한 원망……. 뭐든 좋습니다. 뭐든 간에 저에게 당신의 강렬한 감정을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기억을 매개로 삼아, 당신을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줄 테니!!"

촉수가 더욱이 베르디의 몸을 옭아매고, 그 힘이 거세질수록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프고 괴롭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몸 안 구석구석에 침투해오는 기운이 불결하게 느껴진다.

베르디가 눈을 질끈 감으며 힘겨이 외쳤다.

"……그런 거 없어요."

세상을 원망할 자격 따윈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원망한다면 죄를 범한 자신이다.

그러니 죽고 싶다고.

그 대답이 돌아오기 무섭게 몸을 죄이는 촉수의 힘이 더욱 강해진다.

"그건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닙니다."

페니는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다.

죽이지만 않을 뿐이다.

죽인다면, 그녀는 그저 가장 강렬한 기억만을 반복할 뿐인 어중이떠중이가 될 테니까.

자신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있음을, 그걸 이 자리에서 증명해야만 자신과 같은 이상을 추구하는 동료가 될 수 있다.

"베르디 씨.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그러니까 그들과 달리 이 지루한 설명도 잠자코 들어준 거잖아요!?"

인간이길 포기하면서까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페니는 그에 동참해줄 의사가 있었다.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에게 동조해주기만 한다면.

"그러니까 말해. 당신이 가진 미련을 얘기하라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에도 소녀는 말한다.

그저 스스로 죽을 엄두가 나지 않기에, 자연스레 세상의 가혹함에 꺼져가길 바래왔다고.

그 이상을 읽은 페니가 낄낄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그저 당신에게 힘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지요. 제 힘을 받아들인다면 그 생각도 말끔히 사라질 테니."

"아무도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생각도 사라질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니, 괴로울 만한 기억들은 모두 제가 손수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보다 더욱 많은 힘이 소녀의 몸을 잠식해간다.

근본이 신성력임에도, 이제껏 동경해왔던 것과는 다른 불결한 힘이.

'이걸로……. 끝?'

그런 힘에 잠식되어가는 의식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럴수록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

자신이 살며 가장 많이 회고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그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암실에서 있었던 참극이.

마치 눈앞에 있던 자가 말하는 '미련'이란 것을 가증되듯.

"오오, 이 반응……. 바로 이겁니다. 당신이라면 역시 받아줄 거라 생각했어!"

그런 감정의 격동을 느낀 페니가 희열을 질렀다.

아주 조금이다.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이 소녀는 자신과 같은 이상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후 거닐게 될 길이 옳다는 걸 인정해주리라.

"자, 자! 좀 더! 조금이면 됩니다! 이 힘을 받아들이고 저의 복수를……. 그리고 이 기회를 마련해준 '그 분'의 이상을 실현시킬 기회를!"

그렇게 확신을 가지며 더욱 힘을 밀어붙이려던 때.

-쿠웅!

그들이 있는 곳에 지진이 덮쳐왔다.

아래가 아닌 위에서부터.

이 깊숙한 지하에 자리한 신전을, 거대한 무언가가 파고들어오는 것 마냥.

"무슨……."

-쿠구궁!

보다 거세져가는 진동.

힘의 주입이 이어지는 가운데 페니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 중요한 순간에, 누가 방해를……!"

-쿠궁, 쾅!!!

이윽고 진동은 붕괴로 바뀌고.

천장이 무너지며 무수한 파편과 함께 고깃덩어리들이 제단에 내려앉았다.

불길한 검은 빛들이 넘실거리는 현장.

피와 파편으로 점철된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다.

베르디는 그를 알고 있다.

'셰인 골드리안.'

분명 그런 이름을 가진 자다.

반면 페니는 그 존재를 알지 못한다.

"다, 당신들! 그렇게 겁을 주었는데 아직도 저에게 싸움을 걸 생각이 든 겁니까!? 제가 말했잖습니까! 저는 거스르는 게 용납되지 않는 공포의 존재라고……."

"아 그래."

벌벌 떠는 페니에게 셰인이 툭 말을 던졌다.

평온한 목소리였다.

온 몸이 피칠갑이 되고, 제 몸을 지탱하는 다리 중 한 쪽을 절고 있기까지 하면서.

"잘 찾아왔네. 거슬리는 뭐시기인가 하는 거 보니까."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페니를 주시하고 있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거늘, 그 눈엔 아직까지도 삶의 의지와 독기가 담겨져 있었다.

몸서리를 친 페니가 촉수를 휘적대었다.

"무, 뭡니까, 당신은……. 그 언데드들을 어떻게 뚫고 온 거죠? 그, 그러고 보면 당신, 그 원정대원들이 아닌……."

"시간 없으니까 용건만 간단히 말한다."

이윽고 피로 점철된 손가락이 페니에게.

그 뒤편에 있는 자에게로 겨누어졌다.

촉수에 휘감긴 채로 부정한 힘을 주입받는 소녀에게로.

"베르디를 내려놔."

"……베르?"

페니의 고개가 슬쩍 뒤로 향해졌다.

당황하여 촉수는 풀렸지만, 여전히 자신의 힘은 그녀의 몸에 침투되고 있다.

머지않아 시간이 지나면 제 힘이 그녀의 몸 안에 잠식되리라.

그를 주시하던 페니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몸에서 촉수를 뽑아내었다.

끝 부분이 예리하게 깎인 촉수를 침입자에게 겨누며.

"어머 어쩜~ 페브리즈 씨와 저의 사랑을 방해할 생각인가요? 그런 건 촉수물을 기대하는 분들에겐 실례인……."

-콰아앙!!!!

촉수가 쏘아지기도 전 울려 퍼진 폭음.

도약 직후 이어진 발차기가 페니를 강타하고, 그 몸을 찢어발겨 벽에 처박아 넣은 것이다.

"쿠, 에……에으……."

고작 한 방.

그것만으로 바닥과 벽 등, 사방에 썩은 피와 살점들이 퍼져나갔다.

끊어진 촉수들이 멋대로 펄떡거리는 가운데, 벽에 처박힌 몸을 꺼낸 페니가 제 몸을 힘겨이 일으켜 세웠다.

"으히, 하하하하!! 방금 그거 뭐예요!? 엄청 아팠는……."

-콰아앙!!!

또 다시 울려 퍼지는 폭음..

다시 페니와 거리를 좁힌 셰인이, 그녀의 가슴팍에 주먹을 때려 박으며 난 소리였다.

"웃겨?"

아니, 공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벽을 쓸며 처날아 가는 몸이 붕대에 휘감긴 채 당겨지고, 이윽고 셰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 페니의 눈에 비춰진 건 극도의 살의.

그리고 제 앞에서 질끈 틀어쥐어진 양 주먹이었다.

"어디 계속 웃어봐."

-콰가가강!!

두 주먹을 이용한 난타, 무자비한 물리력의 연쇄폭발.

그 여파가 가시기도 전, 육체의 중심부에는 불그스름한 절단면이 생성되었다.

전류로 벼려낸 절개술이 몸을 불태워 갈라낸 것.

그에 괴로워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어느 샌가 목을 휘감은 붕대가 그녀의 머리통을 몸체에서 뽑아내었다.

'대체, 무슨…….'

떨어져나가는 머리의, 그 눈을 통해 비춰진 건 오직 짙은 살의 뿐.

그 어디에도 자비심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저 존재가 이제껏 마주해본 적 없는 터무니없는 괴물이란 걸 실감했으니까.

"케헥!"

이윽고 머리를 잃은 육체는 축 늘어지고, 그와 동떨어진 얼굴을 감추던 가면만이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아니, 얼굴이 아닌 얼굴'들'이다.

사람의 머리 하나에 무수한 작은 얼굴들이 가득한…….

그 사이에서도 수면 위에 녹아내린 듯 끝없이 요동치며, 이목구비가 뒤엉켜져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형체를 유지하는 면상이 있다.

셰인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한때 제 스승이 보여주었던, 제국의 역사서에 나타났던 초상화와 같은 얼굴이.

"이, 하찮은, 필멸자가……!"

그 존재가 입 밖으로 외쳤다.

일그러진 목소리로, 권위를 지닌 자만이 표하는 오만함을 내비춘다.

"어찌 네놈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이 몸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는 것이냐!?"

그 고함에 반응하듯, 머리가 뜯겨져나간 육체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두르고 있는 넝마마저 찢어내며 나타난 건 무수한 팔.

그 사이로 비춰지는 얼굴들과, 안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솟구쳐 오르는 두족류의 다리들…….

작은 육체에 내장된 살덩이들이 꾸역꾸역 부풀어 오르고 있지만, 셰인은 그 처참한 광경에 길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괜찮아 베르디."

손을 뻗은 것은 자신이 구하고자 한 소녀.

셰인이 베르디를 끌어안고, 귓가에 타이르듯 속삭였다.

"잠깐 눈 감고 있으면,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까."

그 배후에 자리한 거대한 흉물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것을 눈에 새겼음에도, 차마 베르디는 그에게 물러나라 말을 할 수 없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흉물이 춤을 추고, 망령들의 비탄이 노래하듯 메아리친다.

혼돈이 심연에서부터 기어올라 세상을 집어삼키는 현장.

그것을 앞둔 소녀가, 이내 자신을 옭아매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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