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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01화 (101/255)

의무병의 환생 101화

양손을 맞대고, 눈을 감고,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그것이 소녀가 하는 기도의 전부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마.'

비명소리도.

코끝에 맡아지는 비린내도.

제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외면하며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방법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새겼다.

구색에 불과한 행동을 진심으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야만 자신의 감각을 더럽히는 모든 것을 지울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

'왜…….'

그래, 이후에 이어지는 고찰은 그걸 위한 거였다.

'왜 어른들은 기도를 드려야 하는 거야?'

기껏 해봐야 10살의 아이.

그 의문의 답을 찾을 만한 가치관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잃고, 제 오빠를 따라 수도원에 몸을 맡기며 몇 년 간 신세를 진 것이 고작일 뿐.

그런 소녀가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이제껏 마주해온 것들을 되새겨보는 것뿐이었다.

'어째서?'

처음 떠올린 것은 규율이었다.

그 규율 아래에선 정해진 복장을 입고, 정해진 일과를 수행하며, 개인의 시간을 할애해가며 요구하는 규격에 스스로를 맞춰야만 한다.

그것을 어길 시 벌을 받으며 행동에 절제를 가하고, 그렇게 차차 스스로가 집단에 속한 부속이란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자유의지를 잃어간다.

신앙을 가지는 데엔, 교단이 신도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전제되고 있었다.

'어째서?'

그들은 수행원들에게 외부와의 세계를 단절할 것을 명한다.

적어도 빛을 품게 되는 날까지 교단의 가르침을 우선시 여기고, 때로는 그에 불필요한 말이나 문서 등을 제거하고자 한다.

그런 식으로 정보를 통제해간다.

교단은 행동에 이어, 신도가 배워가는 정보마저 통제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왜?'

그들은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나눈다.

교단에서 말하는 교리란 정의이고, 사회의 안전을 위해 그 정의는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은 악이며 몰살해야 할 적. 즉 이단으로 몰아야 할 존재이니.

그렇게 어수룩하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두 개의 진영으로 극명히 나눈다.

행동과 정보를 통제한 후, 그들은 사고마저 제어하기에 이른다.

'왜 그렇게까지…….'

그들은 집단에 들어온 자들의 죄의식과 공포를 자극한다.

이제까지 해온 모든 것이 옳고 당연한 것임을.

그것을 져버리고 집단을 벗어나리라 선언했을 때, 그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하고 언제든 악으로 전향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의 포고로 그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교단은 신도들의 감정마저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가며, 그들은 신을 믿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유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엔 빛이라는 지표가 있으니까.

그 빛을 거머쥠으로써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할 수 있고, 그 빛을 관망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마음에 동경을 품을 수 있다.

행동, 정보, 사고, 감정…….

그 모든 것을 통제하는 세뇌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감수하는 것만으로 모든 고통으로 해방 받을 수 있고, 더욱 나아가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망각할 수 있다면…….

설령 그 앞이 불구덩이 속이라도 들어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다.

'정말로?'

하지만 과정은 이해해도, 그 결과가 옳고 그른지를 파악하는 건 개인의 문제다.

그리고 소녀에겐 경험이 없다. 아직 옳음과 그릇됨을 제대로 판별할 수 없으니…….

그런 소녀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어른들의 뒤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어른들은 열심히 믿고 있어.'

아주 상냥한 어른들이.

그런 분들이 오랜 시간 앉아 기도를 드리는 것은 정말 굉장하다 생각한다.

그들이 풍기는 빛 역시 예쁘고 따스하다 생각한다.

'그런 분들에게 빛을 내려주시는 신은 어떤 사람일까?'

이내 소녀는 신앙에 대한 고찰을 포기했다.

그리고 신 그 자체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상상했다.

먼저 떠오른 건 가장 강하고 자비 깊은 어른……. 부자보다, 귀족보다도, 황제보다도 더 높은 존재.

그런 자가 있다면 모두가 그에게 의존하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삼가고자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엇이건 해결할 수 있는 존재가 나를 지켜봐주고 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건 나를 봐주실 것이다. 당장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따뜻해.'

결국에는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만에 하나라도 그것이 상상에서 끝나지 않는다면.

인지하지 못할 뿐. 그런 존재가 언제라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라면……. 그건 그 자체로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 아닐까?

'엄마.'

소녀는 차차 제 몸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어미의 품에 안기며 잠에 들었을 때처럼.

'아빠…….'

그것만으로 무너질 것 같은 몸이 지탱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분의 품에 안기고, 그 몸과 정신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그 평온함을 느끼게 되리라.

그래, 신이란…….

어쩌면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낸, 그 생에 있어 두 번째 부모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토록 산 어른조차도 아이로 여기기에 모두가 그에게 의존하는 것이리라.

무수한 아이들을 품더라도 그 아량엔 끝이 없으니, 모두가 그의 곁을 따르길 갈망하는 것이리라.

'사제분들은, 이런 걸 동경하는 거였구나.'

혼란이 잦아들고, 이윽고 빛을 거머쥐었다 여긴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그 빛을 품은 채 마주한 세상이 어떤지를 알기 위해.

그렇게 수면 아래 잠재워진 정신을 현실로 이끌어온 순간.

-쩌접.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를 씹어 먹는 소리…….

그것을 자각하기 무섭게 몸이 떨리고, 두 눈이 자연스레 뜨여졌다.

그를 기점으로 진동하는 썩은 냄새.

어둠 속에서 밝혀진 두 눈엔 썩은 고깃덩이만이, 그 사이로는 벌레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러한 현장에서 들썩이는 건 오직 한 사람 뿐.

그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 둘 씩 손에 쥐고, 그것을 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괜찮아."

그러한 말만을 반복하며 중얼거리기만 할 뿐.

"괜찮아……. 너희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어."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이 암실에 있는 건 그를 제외하면 자신뿐이라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마주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먹을 뿐이었다.

곰팡이와 피로 버무려진 빵을 하나둘씩 주워들고.

"나 하나면 되는 거야. 여기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건……. 나 하나면 되는 거야."

죄를 범하고, 범하고자 했던 이들을 해치우며 얻은 모든 것을 제 입에 우겨넣는다.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 얻은 식량을 제 입으로…….

그것이 마치 사람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어째서?'

죄를 저질렀어야 할 이들을 먼저 죽이고, 그 죄를 혼자만이 짊어지고자 한다.

그 역시 숭고한 각오에서 비롯된 일인가?

'몰라, 그런 거…….'

이미 금기를 범한 자가 각오를 한다 하여 구제받을 수 있을까?

'이런 거……. 보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눈을 감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자신이 거머쥐었다 여긴 빛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기에.

소녀는 그 빛을 다시 거머쥐고자 다시 양 손을 모아 기도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러리라 믿었다.

"베……."

다시금 마음에 도사리는 공포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그 순간까지.

"베르디……."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고.

그와 함께 베르디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베델 하트리스.

자신의 유일한 가족.

하지만 입과 손은 추하게 더럽혀져 있다.

눈동자 역시 탁한 색을 띠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그런 짓을 저질렀을 터인데 왜 하필 자신만은.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살려두고 있는 것일까?

"베르디, 너……."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느릿하게 뻗어지는 손 역시, 언젠가 자신에게 맞닿을 것이 분명했다.

'다 착각이야.'

서서히 기어오르는 공포에, 빛을 품었다 여겼던 소녀의 마음은 부질없이 무너졌다.

다시 눈을 뜨더라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구제 따윈 없었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 모두가 죽었고, 그 중 한 사람만은 거악을 짊어지길 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곧 자신도.

-두근.

그 공포감에 가슴이 아려온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이윽고 시야가 흔들리며 합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파.'

그 공포감에 심장이 터질 듯 뛰며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 박동을 억누르고자 떨어트린 손으로 제 가슴을 움켜쥐었다.

메마른 손으로나마 가슴을 파고들 기세로.

하지만 심장은 멈추지 않고, 그 박동은 더욱이 커지며 소녀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베르, 디."

그런 자신의 귀에 계속해서 목소리가 맴돌았다.

제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소년의 얼굴.

어둡고 흐릿하여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주변에 시체들이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웃고 있었다.

"베르디, 베르디……."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광기가 제 이름과 맞물리며 공포로 번져갔다.

그 감정이 소녀의 손을 움직이게 하였다.

바닥에 떨어진 단검으로.

그 행위가 가슴을 찔러넣었을 때, 비로소 머리를 뒤흔드는 박동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 * *

"정신이, 드셨나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암실에선 결코 들을 리가 없는 목소리.

그것만으로 베르디는, 의식을 잃은 뒤의 자신이 그 암실에서 빠져나왔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정말로?'

말없이, 베르디가 제 앞에 있는 자를 응시하였다.

침대에 앉혀진 자신을 마주하는 건 푸른 단발을 지닌 여인.

"…안젤라, 주교님?"

주교 안젤라.

심문관으로써의 활약을 인정받아 근래 주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으며, 베르디가 속한 크리스탈 수도원을 운영하는 자이기도 하였다.

"다행이에요. 무사하셔서……."

그런 그녀가 자신을 보며 안도를 표하고 있지만, 그걸 어찌 위로라고 하 수 있을까?

소녀는 그 암실에서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 온전치 않다 한들, 그 기억을 현 상황과 대조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다들, 어디 있어요?"

"……베르디."

"괜찮아요."

탄성을 흘리는 안젤라에게 베르디가 말했다.

거기엔 아무런 감정도 내포되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거나, 서럽게 울거나, 혹은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느끼지도 않는다.

"괜찮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 소녀는 이미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더 이상 깨질 구석이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 * *

수도원에서부터 떨어진 암실.

그 현장을 조사하는 심문관들은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어느 한 곳에 모여 기도만을 드리고 있었다.

안젤라는 그러한 현장에 조용히 들어섰다.

이곳에 오길 희망한 소녀의 손을 맞잡은 채.

"주교님, 그 아이는……."

"괜찮을 겁니다."

단호히 대답한 안젤라가 베르디를 내려다보았다.

몇 번이고 강경하게 이곳에 오길 희망했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비수가 박힌 듯, 그런 아픔에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도.

주변에서 구원을 갈구하는 사제들과 달리, 소녀는 공허만이 감도는 눈빛으로 현장을 말없이 돌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괜찮아."

그런 소녀에게 안젤라는 말했다.

이 현장까지 오는 단계에서 소녀에게 몇 번이고 반복했던 말이었다.

"베르디 넌……."

가장 여리고 어린 소녀다.

제 오빠에게 의존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

"너는 주님께서 구제해주신 거야. 주님께서 직접 축복을 내려주셨으니까……."

그런 소녀가 동족상잔이 만연한 현장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그 자체로 기적이라고 칭할 일이었다.

분명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아. 아무도 널 해치지 않을 거야. 널 해치려는 자가 있다면 모두가 나서서 지켜줄 테니까……."

하지만 결국에는 말뿐인 축복.

서로가 입을 모아 한 약조에 불과한 이야기.

그런 만들어진 축복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 이 소녀는 가혹한 시련을 거쳐 진정한 빛을 거머쥘 필요가 있었다.

"주교님. 정말로, 저 아이를 정말로 블레이즈에 보낼 생각입니까?"

"……저 역시 구제받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몸입니다."

안젤라가 제 왼팔을 움켜쥐었다.

제 몸에서 꿈틀거리는 불경한 존재를 느끼듯.

그럼에도 그녀가 신앙을 가질 수 있던 건, 그 어긋난 존재에게도 숭고한 신념이 존재했기에.

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존재가 그 뜻을 인정해준 덕이었다.

"그런 제가 답을 찾은 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주여, 부디 저 아이에게 내려진 축복에 의미를 부여해주소서."

이윽고 신자들이 안젤라의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에 마찬가지로 합장을 하려던 안젤라가, 문득 사건의 현장을 나아가는 베르디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

나아가는 소녀에게 손을 뻗으려다, 이내 거두고 말았다.

그 손은 결코 저 소녀에게 닿지 않으리라 여겼으니. 이 현장에 있는 그 어떤 피해자들에게도 닿지 않을 테니…….

그 손은 끝내 바닥으로 늘어지고, 그 손끝의 톱은 손가죽을 파고들 기세로 힘이 실려 갔다.

'이것이 그들이 추구한 혁명의 대가인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이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그들은 정녕 진보로부터 무엇을 추구하려는 것인가.'

어느 반란자들은.

전쟁이야말로 인류의 문명이 진화하는 길이라 주장한다.

결코 전쟁 없이는 인류는 성장할 수 없으니, 분쟁이 없는 정체된 세계는 결코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향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전쟁은 결코 지도자와 군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과정이 길어질수록 참여자들은 규율을 버리고,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그렇게 모두가 미쳐가는 싸움에 피해를 보는 건, 언제나 전쟁의 밖에서 공포에 떨고 있던 민간인들이었다.

'그렇게 대중을 희생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미래엔……. 결코 대의를 논해선 안 되는 거야.'

그러한 혐오는 결심이 되어, 머지않아 이단에 대한 강한 증오로 이어질 것이다.

베르디는 이 순간 그런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10살의 소녀가 할 수 없는, 그런 예견을…….

'그래, 이건…….'

제 앞가림만으로도 벅찬 소녀가, 어찌 이런 참극의 중심에 서고도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지금 이 순간.

암실에 다시 섰을 때에 느낀 것이 낯설음도, 공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거쳐 온 일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이야.'

살아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는 미련.

혹은 저주라 불러도 될 그 기억이, 지금 이 순간 제 몸에 스민 힘에 의해 구현되고 있었다.

페니 플레밍.

그녀가 자신에게 주입한 힘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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