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02화
'어린 수녀여.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바쳐서라도 저주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그녀는 자신과 같은 자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다.
생존에 대한 갈망이 아닌 다른 기억으로.
의지를 개화시킨 언데드를 만들어, 자신의 동료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라고.
'그럼……. 이 기억을 반복해서 떠올리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는 걸까?'
그녀 역시 자신이 죽기 직전의 그 상황을 반복해 떠올렸을까?
돌림병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그 혼란을 잠재우고자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전락해버리는 기억을?
'……분명 괴로웠겠지.'
지금의 자신처럼.
하지만 더 괴로운 건 그 숙원이 영영 해소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그들을 다 죽여 버린다 할지언정,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았을 테니까.
그들이 경계하는 이단을 추구하는 자들이 벌인 일이.
바로 자신이 겪었던 이 암실에서의 참극과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변화를 지향하지 않는다고, 이런 일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건 아니야.'
실제로 이 현장을 둘러보는 심문관들이 그랬다.
죄를 범한 아이들의 유해를 향한 동정, 그리고 가해자들을 향한 증오…….
그 속에는 분명, 피해자들을 향한 공포와 혐오라 불릴 감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이렇게나 잔혹해질 수 있는 것인가.'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한들 저지른 건 본인들.
개인의 사정을 고려할 것이 의무가 되지 않는 세계에선, 결과적으론 그들 또한 '악'으로 정의될 존재일 것이다.
그런 악이 꿈틀되는 현장에서, 소녀는 오직 혼자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빛을 품을 수 없는 거야.'
살을 빚어 만든 빵으로 생을 연명하는 가족을 보았다.
언젠가 순수한 빛을 거머쥐었어야 할 아이들이, 타의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악의를 낳는 현장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인 소녀는, 살아있는 매 순간 자신이 그들처럼 되리란 생각을 떨쳐낼 순 없었다.
이미 더럽혀진 것은 얼마든지 더러워질 수 있겠지만, 그것을 다시 깨끗이 되돌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 이 기억을 잊으려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런 일이 있기 전엔 순수했던 아이들이었어.'
각각 구슬 색이 다른 로자리오.
어느 순간 목에 걸려있던 그것을 움켜쥔 베르디가, 이윽고 제 앞에 있는 시체를 마주하였다.
서로가 각기 다른 장신구를 걸치고 있는 아이들을.
비참히 죽어가고, 죽여갈 수밖에 없던 그들의 유해를.
'내가 잊어버리면……. 이 아이들도 순수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얼굴이 하얀 천에 감싸여진 시체.
가슴 부분이 흉하게 벌어지고, 안쪽으로 휑한 흔적이 엿보이고 있다.
그 시체가 누구인지를 베르디는 알고 있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친구들과 가족을 잃은 이 현장을 외면하는 건 인간으로썬 결코 해선 안 될 일이니까.
'미안해요, 모두…….'
이게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한때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마저 내버릴 순 없었으니.
'저는 역시, 이럴 수밖에 없나 봐요.'
서서히 몸을 침범해오는 불결한 힘.
그로부터 비롯된 운명을 맞닥트리고자, 베르디가 제 앞에 덮인 천을 차차 걷어내었다.
안에 있는 것은 베르디에게 있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얼굴.
가장 동경하고, 한편으론 빛이라고 여겼던 존재.
"아……."
그 얼굴을 확인한 입에서 탄성이 흐르고.
그 뒤를 이어 베르디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셰인?"
* * *
-뚝, 뚝.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핏방울이.
점성을 띤 끈적이는 액체가, 그가 나아가는 길을 따라 하염없이 바닥을 적셔가고 있었다.
그것을 차차 눈으로 따라가던 베르디가, 이윽고 제 몸을 끌어안은 두 팔을 보며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아, 깨어났, 어?"
셰인 골드리안.
자신과 같은 악인조차도, 그런 기억을 가지고도 세상을 위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
그러한 길을 비춰주었던 은사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다.
검은 반점과 피로 버무려진 얼굴을 한 채.
"다행, 이네……. 별 문제,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웃는 얼굴이.
이윽고 한계에 치달은 몸과 함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셰인……."
그에게 안겨 있던 베르디 역시 땅을 굴렀다.
몸 곳곳이 아파왔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가 쓰러지지 않았는가.
자신이 동경하던 빛이, 자신을 구하다가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정신 차려요 셰인! 셰인!!"
"……쿨럭."
다행히 의식을 잃지 않았지만, 그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피마저도 검게 오염되며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있다.
병에 의해 몸에 흐르는 피마저 오염된 것이다.
"처치를……."
베르디가 제 옷을 찢었다.
그것으로 셰인의 상처부위를 묶어주기 위해.
"처치를…. 해드릴게요. 잠깐, 정도는……."
아니, 출혈을 막는다고 해서 어떻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든 처치하고, 성직자들에게 데리고 간다면……."
흑사병에 의한 폐렴, 패혈증…….
그마저도 벌써 증세가 심각히 진행된 상태인 만큼, 응급처치로는 수명을 몇 초 채 연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가."
뭣보다 시간이 없다.
상대는 전쟁시대에도 본 적이 없던 터무니없는 괴물.
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묵시록의 4기사가 재림했다 봐도 무방한 재해의 덩어리였으니까.
"가라니……."
"도망가라고……. 했어."
수천 번은 죽어도 될 정도의 부상을 입혔음에도, 그 녀석을 죽였다는 확신을 가지질 못했다.
약점을 뚫지 못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움직이는 것이 언데드란 존재.
부상을 회복하고 나면 다시금 자신들을 뒤쫓으려 할 것이다.
"그 자식, 아마 아침이 되면, 활동하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이틀, 정도 지나면……. 아마 그 점을 눈치 채고, 배도 이 섬에 정박할 테니까……."
적어도 아침이 될 때까지 버틴다면…….
배에서 합류해온 성직자의 도움을 빌어, 베르디의 몸을 침식시키는 병마와 힘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
그 말을 내뱉었음에도 베르디는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저 의미가 없다 여겨지는 처치를 관두고, 말없이 셰인의 옆을 지키고만 있을 뿐.
"또……."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저보고 혼자 떠나라는 거예요?"
몇 번이고 그래왔으니까.
그런 게 싫어 금기를 범하고, 교단을 등질 각오마저 했던 것인데.
"말했잖아요. 전……. 구할 가치가 없다고……."
그렇기에 그를 곁에서 떨쳐내려 했던 것이었다.
이런 미래가, 현실이 되어선 안 된다고 여겼으니…….
"당신은, 저와 다르잖아요.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서……. 이런 곳에서,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인데 왜……."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그 이야기를, 제 입을 통해 직접 전해주며 경멸하길 바랬던 것인데.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는 여전히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꺼트리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원망을 토로할 법도 함에도, 그 끝은 늘 그렇듯 스스로의 책임으로 맺어졌다.
사지에 들어서길 희망한 것이 자신의 의지임을 강조한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거야. 감당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구해온……."
"감당하지 못했잖아!!!"
그 의지를 이해하지 못한 베르디가 비탄을 내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제 앞에서 동경하는 이들이 몇 번이고 죽어 가는데.
"이렇게……."
언제나 그런 때마다 자신이 곁에 있는데.
"엉망이 되어놓고 뭘 감당했다는 거야……."
그런 이들의 최후를 받아들이는 게 괴롭다는 이유로…….
그들을 향한 통곡 하나 흘리지 못하게 감정을 죽여 버리는 건, 인간으로써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지 않은가?
"대체…. 내가 뭐라고 당신들이 희생하는 거야! 내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하는데 왜!!"
베르디의 손이, 검게 물들어진 셰인의 손을 움켜쥐었다.
혈관 내의 응고로 인해 신체의 말단부가 괴사되는 현상.
그 여파가 몸 곳곳에 퍼져 검은 반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 몸으로 그는 자신을 구하고자 홀로 이곳에 들어섰다.
"난……."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선 죽음을 앞두고 있다.
"당신들을 괴롭게 만들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대체 왜 그렇게까지……."
그 비참한 말로를 목도한 소녀는, 빛이라 여겼던 소녀의 최후를 목도한 소녀는 늘 그렇듯 자학을 쌓아 올려갔다.
그의 희생이 가져온 결과물은 그저 그것뿐이었다.
동경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중에도 기도 하나 드리지 못하는 자신이…….
이 비루한 삶을 연명하는 데에 의미가 있을 리 없었다.
"……맞아, 베르디."
그렇게 자학을 부르짖는 소녀에게, 소년은 마저 자신의 속내를 실토해갔다.
"넌, 마녀 같은 게……. 아니니까."
검게 물들어진 손으로나마 그 볼을 만져주고, 그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내가 보아온 넌……. 결코, 남을 불행하게 하고자, 태어난 아이가 아니야."
그렇게 소녀가 가진 자학을 부정하고자 속삭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소녀는 머지않아 무너질 게 분명하니.
"오히려…. 누구보다도, 행복할 자격이 있는……. 아이지……."
"그런 말을……."
"그러니까."
반박을 가하려던 베르디의 말이 셰인의 한 마디에 묻혔다.
"억지를 하나…. 부려도 될까?"
숨을 몰아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
폐렴에 의해 목소리에 각혈을 동반하고 있지만, 베르디는 그 처절함을 차마 제 손으로 억누를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으니……. 하다못해 자신의 감정이 전해지길 바라듯 볼을 매만지는 손을 움켜쥘 뿐.
그 떨림을 느낀 셰인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베르디, 네 가슴에 있는 흉터……. 신성력으로도, 지워지지 않았지?"
처음 거론된 건 심폐소생술을 했을 당시.
셰인은 베르디의 쇄골에서부터 명치까지에 크게 그어진 상처를 보게 되었다.
뼈를 도려내고, 내부의 심장이나 폐에까지 피해가 가해질 정도로 큰 상처가.
갈비뼈의 어긋난 배열이 눈에 보일 정도로 독특했기에 가진 확신이었다.
"처음엔 그런 상태를 모르고……. 네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줄 알아서, 그걸…….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한다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심정지 증세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며 심장의 기형이 회복되어서인지.
적어도 자신이 처방한 약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일시적으로 혈관을 벌려줄 뿐, 심장의 장애를 완치하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그래……. 넌…. 선천적, 기형 같은 게 아니었던 거야……."
그 상처를 보자마자 알았다.
그게 착각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 후천적 증상이란 것도.
그럼에도 신성력으로도 완벽한 치유를 할 수 없는 이유 역시도.
"그저, 네가 가진 심장이……. 네 몸에 맞지 않아서, 그런 것뿐……."
"무슨……."
의문조차도 일순간 삼켜졌다.
왜인지 모르게 무서웠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심장이, 맞질 않는다니……."
이후에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그걸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하지만 베르디는 그의 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말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유예를 빌려, 셰인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속삭였다.
"베르디, 네가, 그 암실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베르디가 들려준 이야기와.
베르디의 상태를 진단하며 내린 결론을.
"너의, 오빠가……."
그건 결코 의사로썬 해선 안 될 추측이었다.
의학적으론 있을 수 없는…….
소위 말하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네 가슴에……."
그럼에도 셰인은 말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추측으로나마 이 소녀가 위안을 가지길 바라기에.
"자기 심장을…. 이식해준, 덕에……."
'심장 이식 수술.'
그것이 그 암실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이 소녀가 다시 빛을 거머쥘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