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03화 (103/255)

의무병의 환생 103화

기적…….

의사에겐 결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단어였다.

그들은 엄연히 학자이자 생명의 존망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자.

설령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 한들, 그 이유가 순전히 능력의 부족이거나 시간이 없어서……. 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란 이유들을 명확히 따져야만 한다.

그런 그들이 이따금씩 벌어지는 일의 원인을 알지 못해, 고작 '기적'이라는 단어 하나로 일축시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래, 과거의 카일은 그 단어를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을 싫어했다.

그 감상은 두 번째 생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상태.

하지만 그런 그 조차, 한 소녀의 흉부에 그어진 상처를 본 순간 그 신조를 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때는 그냥……. 무서웠으니까요. 모든 게 다 끝나길 기다리며 손을 맞잡고 기도를 드렸어요.'

'그러더니 몸이 따스해지는 것이 느껴졌죠. 눈을 감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턴 비명도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죠.'

만약 그때 들려주었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때의 그건 주님의 보은이었을까요?'

그 당시 소녀가 그 참극에 동참하지 않은 채 기도만을 드렸고, 진정으로 신성력을 각성했다는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면…….

이제껏 그 소녀가 믿어온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을 테니까.

'인간이 1달간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먹지 않으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불가능하지만, 이 세계엔 신앙을 빚어 만든 기적의 힘이 존재한다.

신성력.

그 힘을 이용하면 양분 결핍에 의한 붕괴 정도는 늦출 수 있다.

그렇게나마 목숨만을 연명한 자들이 있다는 건, 200년 전 제국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셰인이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고작 10세의 아이가 신성력을 각성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불가능하지 않다.

레온이나 안젤라 등……. 어린 나이에 블레이즈 영지에서 신성력을 각성한 이들이 존재한다.

그런 가혹한 땅에서의 활동이 신성력의 개화를 앞당겼다면 더 어린 나이에, 더 가혹한 환경에서 신앙을 개화시켰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존재한다.

그리고 지금부터의 추측은 그걸 전제로 한 것이다.

베르디와 함께 마지막까지 생존한 소년이, 당시 제 동생이 개화시킨 빛을 어떻게 여겼는지에 대해서.

'제 동생을 지키고자 그곳에 있던 아이들을 학살한 소년은, 왜 자신의 동생에게만은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인가?'

가족이지 않은가.

부모를 여의고, 그들을 대신해 여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마음을 그 참극 속에서까지 유지했다면, 제 앞에서 신앙을 각성한 소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 올곧은 마음을 가진 소년이 제 앞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생에게, 제 심장을 꺼내어 이식하는 게 가능할까?'

베르디는 그 이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단순히 충격을 받아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제 오빠를 향해 겨눴어야 할 그 칼로, 자신의 숨을 끊으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저 공포에 의해서가 아닌, 그것이야말로 제 오빠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라 여겼기에…….

그것이 정녕 베르디가 잃어버린 기억이라면, 이제까지의 전제를 모두 뒤집어버릴 수 있다.

'그 암실에서 빛을 개화시킨 동생을 봄으로써, 그 소년 역시 신앙을 개화시켰다고 한다면.'

비로소 각성한 빛을 이용해, 심장이 멈춘 동생에게 제 심장을 이식시켰다고 한다면…….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베르디가 가진 심부전 증세는 규격이 맞지 않은 심장에 의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호전된 건 셰인의 약이 효과를 보았다기 보단, 베르디가 성장함에 따라 이식된 심장의 사이즈가 몸에 알맞게 변했기 때문에.

하지만 의학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추측이 사실이 되기 위해선, 너무나도 많은 전제가 뒤따라야만 한다는 걸.

'제 심장을 뽑은 후에도, 신성력의 자가회복력만으로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가.'

'갈비뼈와 장기에 손상을 주지 않고, 오직 멈춰버린 심장만을 뽑아내어 자신의 것으로 갈아 끼우는 게 14살의 소년에게 가능한 일일까?'

'심장이 뽑힌 상태에서 신성력만으로 얼마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뽑힌 상태에서 심장의 박동이 멈췄을 수도 있다. 그 심장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신성력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제세동술 같은 걸 쓸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으로 심장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이식수술을 한 대상에겐 신성력이 적용되는가? 적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되는가.'

'14살의 남자아이가 10살의 여자아이에게 심장을 이식했다. 유전자가 같다 해도 그 기능이 제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래,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하나하나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다.

조금만 더 따져야 한다면 고려해야 할 문제도 차고도 넘칠 것이며, 그런 의문이 늘어날수록 실현 가능성은 점차 떨어지게 될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떨어진다 해도, 그 누구도 그 가능성을 0%라고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설령 모두가 말도 안 된다 여긴다 해도, 그런 일이 겹을 지어 무수한 성공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 무수한 성공을 모두 성사시켜, 이윽고 생존을 이루어내었을 가능성은 천문학적인 확률이라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한 의사는 그 희박한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토록 혐오하던 기적을 긍정하는 행위를.

오직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소녀를 위해서.

* * *

"무슨, 말씀이에요, 그건……."

하지만 결국엔 홀로 내린 결정.

그리고 논리를 져버린 납득은 타인을 향한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법이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기적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제 눈앞에 있는 자의 말이 인간으로써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줄곧 교단에 속해있던 소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은, 영혼을 담는 그릇인데…. 그 영혼이, 뽑혔는데……. 오빠가 어떻게…… 그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하물며 근거로써 제시한 것이 이식수술이라니.

의학적 지식이 전무해도, 신성력의 가능성을 숭배하는 몸이라 해도,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확신은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그곳에서 살아남고자 모두를 죽이고, 그렇게 얻은 식량으로 생을 연명하고, 자신을 죽이고자 한 오라비에게 칼을 박았다 생각하는 편이 편할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마저 방어기제로 지워 버렸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옳은 답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럼에도 셰인은 주장한다.

"그렇게, 믿고 싶어."

희박한 확률로 이루어진 하나의 기적을 인정하고자, 이제껏 배워온 지식들을 부정하기를 결정했다.

그건 신자의 입장에선 교리를 져버린 것과 다름없는 일.

천당을 갈망하는 이들이 천당을 거부하듯,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건 결코 의사된 자가 해선 안 될 일일 것이다.

"내가 보아온 네가,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고……."

하지만 의사도 결국엔 인간이지 않은가?

그 역시 기댈 곳이 없어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상을 이성과 이론만으로 판가름 지을 수 없는 인간이다.

그 나약함을 견디고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뒤쫓고, 그런 억지조차도 구제로써 여겨왔는데.

이제와서 그보다 더한 억지를 한 번 더 못 부릴 리가 없었다.

"베르디, 넌……. 그 안에서 신앙을 개화시켰던 거야…."

설령 그 억지가 천문학적인 확률의 성공을 인정하는 것이라도.

자신이 이제껏 보아왔던 이 소녀가, 결코 그런 짓을 저지를 리 없다는 믿음이란 근거를 맹신함으로써.

"그리고 네 오빠는……. 그때, 네가 각성한 빛을 보고……."

"말도 안 돼!!"

베르디는 그 필사적인 설득을 부정하였다.

그야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던가.

그들이 모두 죽어간 현장에서, 오직 혼자만이 살아남지 않았던가?

설령 자신이 그 현장을 보며 신성력을 각성했다 할지라도, 그런 빛 하나만으로 절망을 겪은 자가 신성력을 개화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주님께선……. 우릴 지켜주지 않아요. 그저 지켜보기만 하시는데……."

고작 빛 따위로.

그 유혈의 현장에서 그런 미소를 지을 리가 없다.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고작 그런 걸로……. 어떻게 빛을 거머쥔다는 거에요……?"

그런 잔혹한 죄악을 짊어지고도, 제 동생이 비춘 빛만을 보며 개심의 여지를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충분히, 가능해."

그런 소녀의 부정을 그는 단호히 부정하였다.

이번만큼은 억지가 아니다.

그가 겪어온 전장이란 그런 곳이었으니까.

아무리 선인이라도 처참함에 적응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죄를 범하는 장소.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어가는 이들의 앞에 비춰진 광명은, 언제 어느 때에나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는 하였다.

그건 그 안에 있는 소년 역시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죄가 만연한 현장에서도, 자신이 지켜온 혈육이 고결함을 유지하는 것을 목도하였다면.'

그 순간이 구원이 될 수 없으리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물론,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해봐야, 와 닿을 리가 없겠지만."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가능성일 뿐.

애초에 셰인은 그 암실을 직접 보지 못했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 현장을 다시 확인할 수도 없다.

그러니 베르디의 가슴에 나있는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정말로 그것이 제 오빠가 자신의 심장을 이식했기에 생긴 것이라고, 그걸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도……. 그렇게 믿고 싶어."

그럼에도 주장한다.

그 근거는 비록 하나뿐이고, 형체를 가지지도 않았지만…….

믿음이란 때로는, 그 어떤 물적 증거보다도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내가 보아왔던 너는…. 절대로, 자기가 궁지에 몰렸다고……. 누군가를 희생시킬, 아이가 아니니까……."

그저 사랑받는 것을 거부하고.

그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인 아이가 아닌가?

그런 일을 겪고도 세상을 향한 증오 한 마디 남기지 않고, 남을 위해 필요악마저 되기를 자처했던 소녀가…….

그런 아이가 과거에 빛을 거머쥐지 못했다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빛을 거머쥐었다면 그 빛 역시 분명 순수했으리라고.

그 가능성을 차마 내버리고 싶지 않다.

'말도, 안 돼…….'

그 신뢰를 향한 부정이 머릿속에 들끓었다.

'말도……. 안 돼요, 그런 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없어요.'

그 주장을 강요하는 건 그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죽는 그 순간까지 그들을 기억할 것을 각오한 자신을 조롱하는 거나 다름없다 여기기에.

'제가……. 그런 곳에 있던 제가, 빛을 거머쥘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럼에도 그 부정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다.

그 현장을 보았던 누구도, 지금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 이제까지 아무도……. 내 가슴의 상처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 끔찍한 참극에서 생긴 저주라 여기며 외면한 것인가.

아니면 주님이 내려준 축복의 상흔이라 여긴 것인가.

어느 쪽이건 그 누구도 그 상처가 신성력에 지워지지 않는지, 그 진상을 밝히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 대한 동정심으로 덮으며 잊어가려 했다.

"베르디, 넌……."

하지만 그는 의사였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자.

그러한 관점에서 확인한 사실을 배제하지 못하니, 그 누구도 거머쥐지 못한 가능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해본 적이 없었지."

그러면서도 신자들처럼 기적을 긍정하려 하고 있다.

두 가지의 시대를 겪고도, 그 모든 경험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대하지를 않으니.

기적의 가능성마저 인정한 지금이라면, 그 의견은 누구보다도 더 큰 객관성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을 겪었는데도, 넌……. 내가 봐와온 범죄자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어. 너를 괴롭게 만들었던 세상을……. 단 한 번도, 저주하지도 않았지……."

그런 그가 이 자리에서 주장하고 있다.

어쩌면 잘못되었을지도 모르는.

구시대의 감상을 끌고 오려는 자신과 달리, 이 아이야말로 진정 이 시대에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베르디. 넌."

그녀에겐 빛을 거머쥘 자격이 있었다.

"절대로, 마녀 같은 게 아니야."

그 암실에서의 비극을 겪고도, 빛에 대한 동경심을 꺼트리지 않은 이 소녀가.

"누구보다도 사랑받고."

그 모든 사정을 알게 된 셰인의 눈에.

이 소녀의 서글픔이 만연한 얼굴마저 너무나도 눈부시게 보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사랑해주기 위해, 태어난 아이야."

그러니 그 빛이 보다 이 세상을 밝혀주길 바란다.

그 고결한 의지를 마주한 소녀의 마음이 술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저 상상으로 채워 넣었을 뿐인 추측에.

"……정말로."

그런 비약에.

기적을 들먹이는 것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정, 말로, 제가…….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소녀는 줄곧 고수해왔던 신조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로…. 제가……."

만에 하나라도, 자신이 정녕 그 암실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진정 자신이 구제한 자의 흔적이 제 몸에 남아 있고, 그렇기에 자신이 이 자리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라면.

"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정녕 스스로를 위하고.

그 마음을 빌어, 누군가를 이끌어낼 빛을 거머쥐어도 되는지.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공교롭게도 셰인은 거기에 답을 내려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삶이 아닌가.

그 길을 거닐어야 하는 건 그녀가 가진 두 다리가 아닌가.

존재치 않은 고인의 흔적을 이정표로 삼은 게 자신이었듯.

이 소녀 역시, 제 말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스스로의 몫이 될 것이다.

"…살아."

그러니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다.

"살아서…. 답을 찾아. 넌, 그럴 자격이 있으, 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리라고.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남자의 눈이, 차차 감기기 시작했다.

다시는 뜨여지지 않을 듯이, 더 없이 무겁게.

"셰인……."

그렇게 홀로 남겨진 소녀가 이름을 불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셰인."

눈이 완전히 감기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

손에 어린 힘이 사그라지고, 이윽고 그 손마저 축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 손을 다시 붙잡지 못했다.

"당신은……. 이걸로 괜찮은 거예요?"

그저 하염없이 그를 내려다보며, 자신을 구원해준 자를 향한 원망을 토로할 뿐.

대지가 울리는 건 그 순간.

-쿠구궁!

땅이 울리고.

그 순간 달빛을 감추는 무언가가 창공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들이 빠져나온 유적지로부터 솟아오른, 가히 이 일대를 뒤집을 듯 솟구쳐 오르는 그림자.

가히 거스를 수 없는 공포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존재는, 머지않아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당도해올 것이 분명하였다.

"……신이어."

그럼에도 소녀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벌어진 입에서 내뱉어진 것 역시 공포가 아니었다.

"저는……."

기도였다.

무지러질 대로 무지러진 몸으로나마, 제 의지를 쥐어짜내며 내뱉어진 절박함.

"저는…… 추하고, 더러운 존재입니다."

그 시작을 이룬 것은 고해였다.

한때 빛을 거머쥐었음에도, 그 빛을 외면한 배교자임을 인정하는 고해.

"그 참극을 견디지 못하였기에……. 당신이 내어주었던 그 빛을 거부했습니다. 당신을 떠나보낸 저에게……."

그 사실을 알기까지에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당신이 다시 손을 뻗을 리 없다고 여기며, 저를 위해 죽어주는 이가 있다는 걸 알았음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을……. 끝내 향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이입니다."

그 시간 동안 구제를 거부하며, 희생된 사람들마저 없던 것으로 취급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하지만 그런 저라도 사랑해주실 수 있다면……."

신이라는 자가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가 모두를 평등히 여길 수밖에 없기에 생기는 것이라면.

"제가 그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 빛을 내려주지 못하시는 거라면……. 하다못해 가르쳐주세요."

정녕 이런 자신이라도 빛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면.

그 빛을 받아들이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당신이 보기엔, 정녕 용서받을 수 있다 생각하시나요?"

자신이 보아온 아이들이 타락했다 여기고 싶지 않았다.

열리지 않는 암실에서부터 절망을 보았어도.

순수하고 선했던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광경으로부터, 타락한 빛이야말로 진정 거악으로 성장하리란 것을 알았다 해도.

"제가 순수하다 여겼던 그 아이들이, 저의 오빠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또한 주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에, 무엇 하나 예외로 두지 않기에 생긴 부조리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러니, 가르쳐주세요."

만약.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진정 자신이 동경하는 빛을 품은 사제들처럼, 그들 또한 고결한 신자로 자라났을지.

"정녕, 그들 역시 당신을 섬길 자격이 있었는지……."

제 가족이 벌인 그 잔혹한 학살이.

그것을 일으키게 한 신념이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떤 식으로 이루어 졌을지에 대해.

정녕 그 마음만은 옳곧았기에, 마지막으로나마 빛을 내려준 것인지.

그렇게나마 남겨진 자신에게 위안을 주려고 한 것인지.

"억지라도, 좋아요.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이런 저의 곁에도 당신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세요."

그것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잃어버렸던 신앙이 다시 생겨나길 바란다.

"제발, 셰인을……."

제 앞에서 죽어가는 이를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러니 그 빛을 내려준 자가 답을 해주길 바라지만…….

"셰인을, 살려줘……."

결국에는 말 뿐인 기도가 아닌가.

설령 진심을 느낀다 해도, 거기에 답이 돌아올 리가 없다.

신이란 그저 관망할 뿐인 존재.

위안은 될 수 있을지언정 기적을 선사할 수는 없다.

기적이란 일어날 것 같지 않기에 기적이라 불리는 것이니.

설령 일어났다 해도 그건 이미 벌어진 일에 의미를 부여한 것일 뿐. 그 상징에 불과한 건 결코 갈망한다 하여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진정 그가 지켜보고 있다면 무언가 반응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만은 진실 되었다 믿고, 또 믿으며.

-괜찮아.

이윽고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기도를 취하고자 움켜쥐었던 양 손에 힘이 풀리고, 질끈 감았던 눈이 뜨여졌다.

탁 트인 시야에 보이는 건 누군가의 손.

아니, 그건 형체를 가진 그림자에 가까웠다.

그 존재로부터 느껴지는 힘은, 이전에 마주했던 괴물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신앙을 뒤틀어 만들어낸 힘.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

그 뒤틀린 존재의 몸에서는 빛이 흐르고 있었다.

'신성력.'

주님이 내려주시는 보은이, 광채가 자신의 배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뒤틀렸다곤 생각할 수 없는, 더 없는 순수함을 가지면서.

-괜찮아 베르디.

-우리가 있으니까.

이윽고 베르디의 시선이 뒤로 향해졌다.

광채에 휩싸인 무수한 그림자.

그 중심에 선 갑옷의 사내가 베르디를 향해 말했다.

-이젠,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돼.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오랜 악몽에 사무쳤던 소녀는 깨달았다.

"오……."

한 이단의 숭고함을 동경하고.

그 동경의 끝에서 배교를 선언한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오빠?"

기적을.

일으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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