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04화 (104/255)

의무병의 환생 104화

"아,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몸 곳곳에 뚫린 입들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만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것만으로 천장과 벽에 가해지는 균열.

그 틈이 벌어지며 일어난 단층현상에 파편이 떨어지고, 비명이 터져 나오는 몸이 수 없이 짓눌려갔다.

'대체, 뭐야. 저 녀석은 대체……!!'

그 낙석에 몸이 짓뭉개진 중에도 재생은 끝없이 반복된다.

겨우 이성을 유지한 건 어느 정도 몸이 수복된 후.

'대체, 얼마나 죽은 거지? 100번……. 아니, 그 열 배는 될지도 몰라.'

인지를 초월한 몸을 잠시나마 재기불능의 상태까지 몰고 간 것이다.

상대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전투력을 지닌 소년병.

하지만 더 경이적인 건, 그만한 죽음을 겪고도 이렇게 의식을 유지하는 자신일 것이다.

"으흐, 하하하! 그, 그래, 난 이 정도로 죽지 않아."

이윽고 망가졌던 육체가 완전히 재생되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온 페니가 다시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썼다.

무수한 얼굴이 뒤틀리며 만들어진 추한 면상을 감추며.

"아무리 강해도 결국엔 일개 인간일 뿐이지. 몇 번을 죽여대도, 내가 가진 윤회력을 끊어낼 수 없다면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어……!"

'윤회력(輪回力).'

신성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유한 자를 끝없이 과거에 붙들어버리는 힘.

그 힘을 주입받은 존재는 오직 생존에 대한 갈망만을 반복해 되새기며, 그 어떤 공포와 고통에도 해방되는 몸과 정신을 손에 넣게 된다.

반대로 급소인 머리가 망가지면 윤회력의 고리 역시 끊어지게 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평범한 언데드의 이야기다.

그녀의 몸은 무수한 언데드의 육체를 옭아매어 이루어진 것.

그 모든 것을 일순간 불사를 정도의 화력을, 혹은 신성력으로 연결을 끊어내지 않는 한 그녀는 결코, 그녀는 결코 물리적인 공격만으로 죽지 않는다.

"이 힘이라면 가능해. 이 힘이라면 내 목적을 이룰 수……. 어?"

그 희열을 이어가던 중 잦아드는 실소.

재생에 힘을 너무나도 많이 소진해서일까.

균형이 흐트러진 몸이 휘청거리며 머릿속이 일순간 새하얗게 물들어졌다.

'어라?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공허해진 정신으로나마, 어떻게든 기억을 되새기는 페니.

"그래, 난……. 나는, 병을 치료하려고 했었, 지?"

어느 날 섬에 만연한 흑사병.

그 병을 치료하고자 연구를 거듭하고, 마침내 치료제를 만드는 데에 성공하였다.

분명 그랬을 터이거늘.

"그런데 뭐야, 이 몸은. 왜……?"

"이 멍청한 년!!"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니가 내려다보는 촉수의 끝자락에서부터 생겨난 입. 입술부터 이빨, 혓바닥까지 모두 선명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이 징그럽다 여길 법 함에도 페니는 거기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자의 말은 결코 거슬러선 안 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떠돌았으니까.

"대체 혼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내 너에게 기회를 줬거늘 이제 와서 정신을 놓아버리다니……. 내 너에게 하사한 힘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정녕 잊어버린 것이냐!?"

"무, 무엇을……."

"너를 불태워 죽인 그들을 잊어버린 거냐고 물었다."

한 마디.

그것만으로 흐릿했던 기억의 윤곽이 잡혀갔다.

"그들은 그들을 위했던 너를, 그저 잠시의 위안을 가지기 위한 제물로 삼았었다. 설마 그걸 잊어버린 것이냐?"

"…아, 아뇨. 이, 잊지 않았어요. 단 한 순간도, 잊으려 한 적이 없는……. 끄윽!"

무수한 촉수가 그녀의 머리를 휘어 감쌌다.

빨판처럼 돋아난 눈동자들이 일제히 그녀를 응시하고, 그 사이에 뚫린 입들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는 그때에 네가 가졌던 증오를 읽어내고 깨어난 것이다."

"네가 가진 그 미련이, 수백 년 간 잠재워져 있던 나를 일깨워낸 것이란 말이다!!"

"페니 플레밍……. 네 목적을 잊지 마라."

"넌 복수를 해야 해."

"그 복수심만이 네가 다시 되살아난 이유임을 명심해야 해."

몸을 잠식한 존재의 끊임 없는 속삭임.

거기에 망설임이 사라지고, 이윽고 몸의 떨림마저 잦아들었다.

"그, 그렇죠?"

그 의지에 반응하듯 사방에 흩어진 살덩이가 꿈틀거린다.

이윽고 그 하나하나가 페르몬에 이끌리는 벌레처럼 기어와, 그녀의 발치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요 당신의 말대로……. 제가 그들에게 느낄 게 원망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무언가 빠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좋지 않을 뿐이다.

당장 떠오르지 않을 기억이라면 보잘것없는 게 분명할 테니.

-쿠구궁!!

이윽고 발치에 쌓인 살점들이 부풀어 그녀의 몸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르디는 아닙니다."

처음엔 발판으로.

그것이 층을 이루다, 이윽고 탑처럼 솟구쳐 올라 무너진 유적지의 위까지 뻗어졌다.

"그녀는 달라요. 저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준 그녀는……. 뭣보다 그녀의 몸에 힘이 심겨졌을 때에 느꼈던 그 감각! 그건 그녀가 가진 미련이 강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기억을 무지러지게 둘 순 없어요!!"

지하를 벗어나 도달한 곳은 유적의 위.

살과 뼈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시체의 거탑이 유적도시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제는 아무도 자리하지 않은 공허한 도시.

그 너머로는 섬 곳곳에 자리한 산과, 그곳을 빽빽이 채우는 나무들이 비춰지고 있었다.

"베르디 씨이이~ 어디 계신가요오오~♬"

머리가 비틀어지다, 이내 360도로 돌아가길 연이어 반복한다.

그 시야에 보이는 건 주변의 열기. 언데드의 고유능력인 열감지를 이용한 탐색술이다.

그로부터 감지되는 자들 중 하나가 유적도시에 존재하지만…….

아니, 저 자는 아닐 것이다.

저건 그저 겁쟁이일 뿐이다.

수백 명을 희생시켜가며 목숨을 부지할 뿐인 하루살이.

지금은 그런 놈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아, 저기군요."

이윽고 페니의 시선이 산의 한가운데로 향해졌다.

숲의 한복판. 그 언덕 위에 생명이 느껴지고 있다.

그를 응시한 순간 몸 곳곳의 입들에 미소가 그려지고.

그 희열에 반응하듯 발에 디딘 살덩이가 폭발했다.

-퍼엉!

압력에 밀린 몸이 산지의 한가운데에 추락하며 미끄러졌다.

넝마 밑의 몸이 으스러졌지만, 그 정도의 충격이야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다.

꾸드득, 드득.

기어가듯 움직이는 몸이, 이윽고 베르디의 앞에 섰을 무렵 본래의 형태로 갖춰졌다.

"……페니 씨."

"네~ 베르디 씨~ 당신의 페니가 왔답니다~♡"

-드드득, 드득.

몸을 이루는 촉수들이 꼬이고, 그 촉수에 내재된 뼈들이 비틀어지며 괴음을 자아내었다.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다.

재생할 수 있는 신체 따위야 얼마든지 망가져도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자신의 품에 받아들이는 것뿐이었으니.

"그……. 의식의 중간에 방해가 들어와서 많이 놀라셨죠? 이해해요. 그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난입해 당신을 납치했으니 놀랄 법도 하죠."

납치가 아니라 구출이었다.

오히려 자신을 구속한 것도, 인지를 초월한 괴물인 것 역시 그녀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겐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닿지 않으리라.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그 인간은 머지않았을 테니까요. 당신도 그걸 알기에 그 자의 품을 벗어나 저를 마중 나오신 거겠죠?"

"……."

베르디가 말없이 가슴께를 틀어쥐었다.

로자리오를 쥔 손의 밑으로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

그 박동엔 언제나 미약한 고통이 동반되었지만, 지금만큼은 그 간격이 일정하다.

마치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듯.

"페니 씨."

그렇게 냉정을 가지며 물었다.

"당신은, 저를 받아들이신 다음 무엇을 하시려는 건가요?"

상황에 휩쓸리지만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의 표현.

그 태도를 마주한 페니가 잠시 촉수를 거두며 미소를 지었다.

"아, 하하! 내 정신 좀 보게~ 그래요, 계획 정도는 설명해주는 게 좋겠죠. 그게 예의일 테니까요."

그렇게 페니는 베르디의 물음에 어찌 답할지를 고민하였다.

촉수로 턱을 괸 채로.

그렇게나 그녀의 태도엔 여유가 있었고, 이후의 말 역시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졌다.

"일단은…… 그래요, 먼저 이 섬에 있는 자들부터 고통스럽게 죽여야겠죠."

촉수에 빨판마냥 돋아난 눈동자들에 그려지는 눈웃음.

"한 명씩, 한 명씩……. 자신들의 곁에 있는 동료가 한 명씩 사라지며, 언제 자신의 차례가 올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겁니다."

"한 명씩, 말인가요?"

"아, 그래도 한 명만은 살려둘 거예요. 일단 이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가르쳐줄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모두를 학살할 자신이 있음에도 하나씩 죽여 간다.

그건 그녀가 지닌, 복수심이라는 미련에서 기인한 일이었다.

정작 그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듯.

"……지금 이 섬에 남아 있는 생존자는 한 명 뿐이에요."

"네? 한 명이라뇨?"

"저와 셰인은 외부에서 유입되어 온 거니까요."

실제로 그 한 명을 제외하곤 그녀에게 먹히거나, 그녀가 만든 군단에 합류한 상태다.

그건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이 없는 페니도 알고 있을 터.

"아하,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되었던 거였어요."

이내 상황을 자각한 페니가 촉수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요, 이제 마지막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거죠? 이거, 그것도 모르고 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닐 뻔했네요. 하하하!"

복수가 머지않았다는 점에서 기뻐하거나, 혹은 허탈함을 느낄 법 함에도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

베르디는 그 태도로부터, 그리고 페니가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부터 미약한 기대를 품었다.

'페니가 가진 힘은, 죽기 직전의 강대한 미련에 반응해야만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어.'

그저 생존에 대한 갈망만을 추구한다면, 살육과 굶주림의 본능을 가진 언데드가 될 뿐.

즉, 페니와 같은 이들에게 미련이란 삶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자신의 복수가 이걸로 끝이라는 걸 안다면.'

이제까지의 희생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희생될 사람들이라면…….

"그럼, 이제 슬슬 섬을 나갈 때가 되었다는 거군요."

아니, 그렇게 끝날 원한이었다면 자신을 언데드로 만들려 하지 않았겠지.

목적을 짐작한 베르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원한에 먹히셨군요."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학살하려 하다니.

"먹히다니요? 전혀요."

페니의 고개가 우드득 소리가 나게, 직각의 밑으로 내려갈 정도로 크게 꺾였다.

"전혀요. 애초에 그들은 시작일 뿐, 제 진짜 목적은 제국을 멸망시키는 거였어요."

"……멸망이라니."

"그야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그마치 대륙 하나를 지배하는 나라를 상대로 한 말.

하지만 지금의 페니는 그게 가능한 자였다.

당장은 몰라도 먼 훗날엔.

그녀에게 그럴 의지가 있다면.

"완벽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제국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쓰였던 성경의 글자 하나 수정하지 않았죠. 변치 않는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 완벽하다고 여기는 거예요. 설마 제국에서 살면서 그런 자각도 안 가지신 거 아니죠?"

"……."

"……그래요. 누군가 나서지 않는다면, 제국은 영원히 정체된 상태로 있을 게 분명하죠."

그래, 진정 그녀가 복수심을 가진 건 자신을 불태워 죽인 자들만이 아니다.

그런 행동을 하게끔 만든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모든 것.

"그런 나라라도 모두 부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세계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잖아요?"

극한의 상황에서조차도 올바른 답을 외면하는 세계가 잘못되었다 생각하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다.

"……더 나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아하하~ 그건 지금의 저희가 논할 게 아니죠. 중요한 건 세계는 계속 바뀌어야 하고, 그릇됨을 구분짓는 건 현대의 인간이 아닌 후세의 사람들이라는 거니까."

하지만 그 감상은 결코 반란자들의 것과 동일하지 않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건 대의도, 제 욕망조차도 아닌…….

그저 '누군가가 만들어낸 광기'에 휘둘린 결과물이니까.

"…아니에요."

베르디는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받은 힘에서 느껴졌던 감정은 결코 원망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감정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이라곤 할 수 없었으니.

"당신의 미련은……. 그런 걸 이루는 게 아니었어요."

"……네?"

그에 대해 자각이 없는 듯 페니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런 게 아니라니……."

"당신은…. 화형당하는 순간에도 저들을 걱정하고 있었으니까요."

몸이 움츠러드는 페니.

베르디의 말에 무언가 간과한 것을 느겼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들을 걱정하다니, 제가요?"

모르기에 혼란은 가증되었다.

이제껏 되새겨본 정황과 전혀 맞지 않기에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요. 베르디 씨,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세요?"

걱정이라니.

정녕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저는 그들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들은 저를 병신으로 본 것도 모자라 역병신으로 몰며 산 채로 불태웠어요. 제 몸이 불태워지는 걸 보며 기도까지 드렸다고요!"

대의를 위해 금기를 저질렀다 한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자들에겐 그 누구라도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게 당연함에도 베르디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건……. 그녀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에 느꼈던, 그 서글픈 감정에 대한 기대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도, 당신이 저에게 힘을 주입할 때에 느꼈던 건……. 결코 원망만이 아니었어요."

분명 그랬을 거라고.

제발 그러길 바란다고.

"개소리 집어 치워!!!"

그 의사를 표하기 무섭게 페니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쿠과강!!

땅을 디딘 살덩이에 힘이 실리기 무섭게, 숲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살덩이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고작 돌림병 하나 극복하지 못하는 힘 하나만을 믿고 설치는 놈들이 한가득이야……."

달빛 아래에 비춰진 거대한 두족류.

마치 크라켄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 구성은 썩은 살덩어리와 뼈로 이루어져 있다.

"완벽에 변화가 없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변화 없는 규율을 맹신하고, 그렇게 이끌어지는 나라가 천국의 모조판이라 여기는 머저리들이 천지인 세계라고……."

그러한 흉물을 등에 진 페니가, 제 가면을 움켜쥔 채로 오열을 내질렀다.

"그런 녀석들은 변화를 받아들일 자유를 거세 받는 게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해!!"

가면 밑으로 드러난 무수한 눈알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고, 몸에 돋아난 무수한 촉수가 그 머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스리려는 듯.

아니, 그렇게라도 자신의 증오를 유지시키려는 듯이.

"하지만 말로 해선 들어먹질 않으니까 멸망시키려는 거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땅엔 믿음이란 약에 중독되는 약쟁이들만 넘쳐날 테니까……. 그걸 알고 있는 내가 그들을 동정할 리가 없는데 왜……. 왜 내 이해자인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대체 어째서?"

횡설수설 이어지는 절규.

그것을 듣던 베르디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때 우릴 가두었던 자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세태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이 발휘할 수단은, 언제나 인내와 폭력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가해자도, 눈앞에 있는 자도 그 수단으로 폭력을 택했을 뿐.

그것을 이해함에도 베르디는 거기에 동참할 수 없었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망이란 결국 개인의 것이고.

그 원망에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는 자를, 세간에선 '악'이라 칭한다는 걸.

"페니 씨. 용서해 주길 빌게요."

이내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길 결심한 소녀가 결의가 어린 목소리를 속삭여 말했다.

"당신에게 동조하지 못하는 제가, 이 자리에서 당신의 장례를 치르는 걸."

-꾸득.

몸의 격동이 일순간 멈추고.

가면 밑에 감춰진 무수한 눈동자가, 일제히 베르디에게로 겨누어졌다.

"장례라니, 누구를요?"

"……미안해요."

베르디는 그 시선에 주눅 들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만을 담아 그녀에게 사과를 할 뿐.

"미안해요. 당신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해서……."

"가당치도 않은 소릴!!"

사죄에 돌아오는 고함.

나이 든 노인의 것.

진노한 감정이 어린 그 목소리는 이전까지 내뱉던 페니의 것과는 상반되어 있었다.

"고작 너 따위가 이 몸의 장례를 치른다고? 정녕 그것이 네 뒤에 있는 이 군단을 보며 떠들어대는 소리란 말이냐!?"

거대한 흉물 아래, 산을 가득 채운 숲의 사이로 그림자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숲의 나무에 가려졌을 뿐.

그 군세는 분명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대군 못지않으리라.

"설마 나에게 윤회력을 조금 받은 것만으로, 고작 혼자서 이만한 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그런 시체의 군단이, 지금 이 순간 오직 한 사람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 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힘을 받아들인 한 소녀에게.

"가당치도 않은 소리지. 너를 지켜주었던 그 남자조차, 이제는 시한부나 다름없는 상태일 텐데."

외부에서 와야 할 지원군도 유령선에 가로막혀 이 섬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이 섬에서 상대를 대적할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

신앙조차 갖추지 못한 배교자 한 명 뿐이다.

"…아뇨, 혼자가 아니에요."

그럼에도 그녀는 이 자리에 서길 희망하였다.

결코 근거 없는 자신감만이 아니다.

광명이.

그녀의 배후로부터 확산되는 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뭐냐, 저건…….'

신성력.

하지만 그 빛은 베르디의 몸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녀의 몸과 이어져 있는 그림자……. 아니, 허공에 뜬 검은 안개와 같은 무언가.

그것들이 마치 사람처럼 형체를 갖춘 채 주변을 둘러치고 있다.

그러한 인영들이 차차 주변으로 확산되며 일대를 뒤덮고 있다.

"뭡니까, 그건…… 언데드?"

그들에게서 풍기는 힘.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 언데드의 골자를 이루는 '윤회력'이라 부를 힘이었다.

"언데드가 아니에요."

하지만 베르디는 그것을 단호히 부정했다.

애당초 그들의 존재를 담은 건 시체가 아닌 검은 아우라이며, 뭣보다 그들의 근간을 이루는 건 '죽은 자의 기억'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자아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곳에 존재하고 있죠."

그래, 그들은 분명히 '살아있다' 정의할 존재였다.

언데드와 달리, 불안정하게 이성을 유지하는 그녀와도 달리.

"어떻게……."

뒤늦게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린 페니의, 그 거죽을 뒤집어 쓴 무언가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그런 일을……."

"믿고 있으니까요."

반대로 베르디의 입가에 그려진 건 희미한 미소.

그건 분명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들 역시도 제가 그렇듯, 제가 동경해 왔던 분들처럼 빛을 품을 수 있었을 거라고."

만약…….

만에 하나라도, 당시 암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졌을까?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휘둘리기만 했던 자신과는 다른 미래를 거닐었을 것이다.

그토록 신앙을 갈구하기에, 하늘에서 떨어진 칼마저 계시라 받아들였던 그들이라면…….

그 신념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분명 자신이 아는 누구보다도 독실한 신자로써 자라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요. 당신과 겨룰 것은 저 혼자가 아니에요."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러한 믿음이 낳은 존재.

윤회력이라는 힘에 의해, 존재할 수 없는 '만약의 미래'를 구현한 결과.

"이곳에 있는 크리스탈 수도원의 수행원 116명. 전원이, 당신을 상대하게 될 예정이죠."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신앙에 필적한 믿음으로 승화시킨다.

그것이 배교의 길을 택한 소녀가 빛을 거머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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