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07화
'대체, 어떻게. 이제 와서?'
저 소녀가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것일까?
아니, 이전까지만 해도 신성력도 못 다루던 애송이다.
윤회력을 통해 만약을 구현하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지닌 상상에 믿음이 첨가된 결과다.
결코 실존하는 것에 영향을 줄 순 없다.
'이건 이 자 본인의 힘이다.'
한 소녀가 일으킨 기적에 대한.
그 경의가 가져온 자각 없는 신앙의 개화.
'말도, 안 되는……!'
그것을 알았음에도…….
아니, 알았기에 페니는 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절대적인 공포를 표방한 존재.
시체로 이루어진 군대를 이끄는 것도, 이 육체를 악마의 물고기의 형상으로 잡은 것도 모두 그것을 위해서다.
공포란 신앙을 죽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니까.
"네, 놈……."
그런데 어찌 이 자는, 그런 존재를 마주하면서도 강경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가.
"내가 두렵지 않은 것이냐…?"
-퍼엉!!
물음에 돌아온 주먹질.
안면을 강타당한 몸이 튕겨져 나가다 자리에서 주춤거렸다.
"당연한 걸 묻고 있네."
그를 향해 뻗어진 주먹을 더욱 꽉 틀어쥔 셰인이 이를 갈았다.
"발치엔 산송장들이 개떼처럼 달려들고, 사람을 찰흙마냥 구겨 만든 거대 문어에, 온 몸에 촉수가 돋아나는 놈을 보고 안 무서워서 할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역시 인간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선 심란함에 몸서리가 절로 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태연히 주먹을 쥐며 다가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
"그냥 이런 일도 겪다보면 익숙해지니까 참는 거지."
그게 수월히 이루어질 정도로, 두려움이란 그에게 굉장히 익숙한 감정이기에.
전쟁에서 보내온 시간 동안 공포를 학습하고 내성을 길러와서일 뿐이다.
"뭣보다 그런 일을 벌이는 놈이 나랑 같은 사람새낀데, 이길 가능성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건 아깝다 생각하지 않아?"
"사람, 이라니……. 커헉!"
모욕감을 느끼는 와중에 처박히는 주먹질.
그 공격에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잡은 페니가, 제 몸에서 무수한 촉수를 뿜어내며 주변을 휩쓸었다.
"얕잡아, 보지 마아……"
-쿠과가강!
표면에 박힌 촉수에, 그로부터 주입된 힘이 흉물을 자극시키며 무수한 팔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그 손들이 위에 선 이의 몸을 잡아챌 기세로 뻗어진다.
"나, 는 인간이 아니다아……. 네놈과 같은 하찮은 필멸자와는, 다른……!"
그 사이로 뻗어지는 거대한 촉수들의, 그 끝에 날카롭게 벼려진 뼈의 칼날들이 일제히 셰인에게로 겨누어졌다.
"이 대륙에 공포 그 자체가 될, 이 시대에 진정한 올바름을 전파할 새로운 신이 될 존재란 말이다!! 그런 나를 어찌 네놈 따위가……!"
-퍼펑!
두 다리의 축을 돌리며 가하는 난타.
그것만으로 제 몸을 구속하던 손마저 모조리 끊어지고, 그 공백을 빌은 셰인이 다시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래, 공포를 그렇게 들먹인 이유가, 나름 신 취급받으며 꿀 빨고 싶어서 그랬다 이거지?"
"우, 아……."
한 발자국이 내딛어진 순간 페니의 몸이 자연스레 뒤로 물러났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행동.
그것을 자각했음에도 수치심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셰인은 그런 페니에게 재차 다가서며 다시 팔을 들어올렸다.
"근데 정말 그런 걸 노린 거였으면 일단 그 주둥아리부터 닫았어야지."
"무슨……."
"주님이란 작자가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신자랑 말을 섞는 걸 본 적 있냐!?"
인간이 느끼는 공포란, 언제나 미지에서부터 기인된 것이다.
질병도, 전쟁도, 기근도, 죽음도…….
아무도 이해를 돕지 못하고, 설명을 할 수도 없기에, 인간은 그것을 인지를 초월한 현상이라 여기며 거스를 수 없다 단정을 짓는다.
그렇기에 대적할 수 있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그러니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에, 비로소 신앙을 개화하며 거기에 의존하려 드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 공포의 존재로써 숭배 받고자 한다면,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를 설명하려 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 자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란 걸 아는 순간부터.
그 존재는 거스를 수 없는 존재가 아닌 '따라잡을 수 있는 존재'로 인지되니까.
"그래 이 새끼야. 네가 사람 말을 미친 듯이 나불댄 시점에서…… 넌 그냥 세균병기나 쓰는 일개 군사령관으로 전락한 거야."
그리고 권위자도 결국엔 인간.
그 자가 권좌에서 내려와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있다면.
-퍼엉!
지금처럼 주먹을 박아 넣을 수 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저 그것만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이제껏 공포를 표방한 자의 마음속에 공포가 서서히 침범해왔다.
"대체……."
격동 속에 이어진 힘겨운 물음.
"대체, 네 놈, 정체가 뭐냐……."
셰인은 잠시 주먹질을 멈추고 그를 또렷이 응시했다.
자비 같은 게 아니다.
도리어 더 강한 공격을 하고자 힘을 축적시키는 시간일 뿐.
상대에게 답을 해준 건, 그 잠깐의 여유를 빌어 행한 것일 뿐이다.
"카일 페터슨."
내뱉어진 것은 전생의 삶.
더욱 나아가 그 저주받은 삶에서 비롯된, 영원불멸의 맹약을 이어받은 환생자의 이름.
"언젠가, 이 시대를 바꾸게 될 패잔병이다."
-콰강!!
그 집념이 어린 주먹이 이윽고 안면을 강타하고.
그 뒤를 따른 검은 아우라가 그의 배후에서부터 빛을 퍼트렸다.
언데드들의 침공에서 자유로워진 베르디가, 그의 주변으로 수행원들을 밀집시킨 것.
그 정화의 빛이 이윽고 그의 몸을 분해시킬 기세로 신성력을 퍼트려갔다.
'……아.'
더 없이 따스하고 순수한 광명.
그 빛을 마주한 순간 정신에 교차되는 것은,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기억이었다.
* * *
'폐하. 그대는 이렇게 끝이 나선 안 되옵니다.'
태어나길 지도자가 될 운명을 타고났지만, 정작 그가 제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 도래한 것은 멸망의 조짐이었다.
군중은 검은 재해를 두려워하며 폭동을 벌였고, 그에 어찌 대처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에게 가신들은 조언을 건네었다.
'이 제국에 도래한 역병으로 위대한 피의, 그 맥이 끊겨선 안 되는 것이옵니다.'
'황제여, 부디 이 땅을 벗어날 각오를 해주소서.'
대륙을 벗어날 것을 청하는 신하들의 조언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어린 황제는 그들을 따라 바다로 나서게 되었다.
자신과 달리 의존할 자가 있는 동생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 채로…….
그 후 무수한 희생을 거치고 도달한 섬에서의 생활이 순탄한가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었다.
대륙의 반을 지배한 자에서 섬나라의 왕으로.
그렇게 전락한 자를 따라온 가신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지만, 그럼에도 충신임을 자처하는 자들은 도리어 마음을 굳게 먹을 것을 강조했다.
'황제여. 그대는 저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공포를. 당신이 결코 얕잡아보아선 안 될 존재임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불사의 연구도 그 힘을 얻는 수단 중 하나였을 뿐.
이 작은 섬나라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에겐 힘을 기를 것이 권장되었다.
그 삶이 끝나고 난 후에도.
어찌어찌 사술을 통해 다시 되살아난 그는, 제 가신들의 이상적인 군주가 되는 가르침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지도자에 걸맞는 힘을.'
'통치를 위한 공포를.'
그 가르침에 충실해서인가.
병마야말로 그들의 의견에 필요한 '절대적인 공포와 힘'이라고 여겼기에?
아니, 그저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다 여겨서다.
돌연히 발생한 역병에 의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주변에 휘둘리기만 하며 끝내 고향에 돌아갈 기회마저도 잃어버리고 만…….
그에 대한 미련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부활의 의식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자신이 공포로 여겼던 병마저 구현하기에 이르렀다.
통제되지 못한 힘에 의해 가신들은 전멸했다.
하나같이 역병을 구현해낸 자신을 저주해가며…….
그렇게 육체를 잃고 정신만을 유지한 채, 쌓여가는 시체들이 백골이 되어가는 것만을 응시하였다.
'그들은 과연 나를 숭배한 것인가.'
'자신을 신에 준하는 존재로 만들고, 그 격을 옆에 둘 수 있는 존재로 떨어트려 위안을 가지려고 한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만 휘둘려온 인생이었다.
그런 인생에 대한 후회가, 그 깨달음이 미련으로 이끌리던 정신에 새로운 의지를 불어넣었다.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주도하에 모든 것을 억누르고 모든 것을 지배하에 두겠노라.
그걸 위해서라도 자신의 힘을 증폭시켜줄, 보다 막강한 미련을 지닌 정신을 지닌 존재를 회유해야 한다고…….
윤회력에 의해 깨어난 건, 그런 이유로 되살아난 존재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기록'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의지를 가지게 된 것에 불과했다.
'……그래, 이 또한 결국엔 남의 기억을 이어받은 것에 불과하겠지.'
그 정신을 이루는 건 결국 산 자의 기억에, 과거로부터 탄생한 망령에 불과할 뿐.
그것이 무의미하다 여김에도 삶을 이끌어가는 것이 언데드란 존재이니, 제 의지와 관계 없이 구 시대의 망령에게 휘둘리는 것만이 그의 존재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마주했다.
스스로를 패잔병이라 소개한, 이 시대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과거의 존재를.
'그런가……. 이 녀석도, 나와 같은 처지였나.'
그를 마주하며 그것을 자각한 순간, 하나의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개화되었다.
같은 과거의 망령임에도 발생하는 극명한 차이에서 비롯된 부러움.
아니, 그걸 넘어서 선망이라 불리는 감정…….
'통치를 하는 것엔…….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이 순간, 역사 속에 잊힌 지도자의 망령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권위자에게 필요한 것은 압도적인 힘.
하지만 그로부터 유도해야 할 것은 결코 공포만이 아니다.
'경외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역량의 끝을 알 수 없기에 우러러보게 되는 마음.
그는 소실되어가는 정신을 통해 남자에게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그러한 감정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정신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그리고 영원히…….
* * *
-쿠르릉.
숲을 뒤덮은 거대한 흉물의 몸이 차차 무너져 내리고, 언데드들 역시 힘을 잃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쓰러졌음을 의미.
동시에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셰인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해치웠나?"
"그, 으……."
신음소리와 함께 움찔거리는 페니의 몸.
흠칫, 놀란 셰인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주먹을 틀어쥐었다.
"야 이 씨 아직도 더……."
"괜찮아요."
베르디가 셰인을 붙잡았다.
부러진 손가락으로나마 억지로 주먹을 쥐려는 그의 손을.
자신을 뒤따르는 수행원들의 신성력을 불어넣어 주면서.
"이젠……. 끝났어요.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
간곡히 이어지는 만류에, 셰인이 부러진 제 손을 늘어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쓰러진 후, 언데드들 전원이 언제 그랬냐는 듯 거동을 멈춘 채 쓰러졌다.
그 어디에도 습격은 오지 않는다.
길었던 싸움이 마침내 끝이 난 것이다.
"……이걸로 끝이라니."
하지만 역시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전까지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걸로 끝이라니.
"확신하는 이유가 있는 거야?"
아직 더 무언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는데?
불안을 느끼는 셰인에게서, 베르디가 조용히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녀와 같은 힘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고개가 향한 곳은 페니의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제 몸을 구속하거나 주변을 휩쓸던 촉수도, 다른 언데드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도……. 이전까지 내뱉던 광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살아 움직이는 소사체로 정의될 존재.
그를 응시하는 베르디의 눈에 차차 동정이 어렸다.
"사령술의 근간이 되는 윤회력은, 죽은 자가 가지고 있던 기억을 반복시키는 힘이에요."
"기억을……. 반복시키다니?"
"그렇게 되살린 기억에 강한 열망이 있으면 의식을 이어갈 순 있지만……. 그것도 완벽하다 할 순 없어요. 시간의 흐름은 느끼더라도, 일부의 기억은 망각하게 되죠."
미련에서 깨어난 존재이기에, 그 미련을 추구하는 결과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모든 것을 두루뭉술하게 넘기는 것이다.
페니가 이 섬에 남은 생존자들의 수를 가늠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
그리고 그런 상태를 의학적으론 생명이라 정의하진 않는다.
"그 기억을 왜곡해 부추겼던 악령이 사라진 지금, 저 언데드는 페니 씨 본인이라곤 할 순 없을 거예요. 그저 생전의 미련만으로 움직이는……. 그런 기록체에 불과할 뿐이죠."
그 미련이 생존본능에서 이루어졌다면 산 자를 쫓을 뿐인 송장이 되고, 그를 넘어선 미련이 있다면 기억에서 파생된 의지를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베르디는 말했다.
자신의 몸은, 현재 그런 언데드들을 부리는 '사령술의 근본'이 되는 힘이 깃든 상태라고.
-우우웅.
그 윤회력에 의해 구현된 수행원들의 몸에서 진동이 일었다.
무언가 말을 하는 듯 했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나름대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해도, 이제까지의 말을 되새겨본다면 그들의 정체는…….
"베르디. 너도 알겠지만……."
"알아요."
"……."
"…이 아이들이 그들과 다르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측은히 말한 베르디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시체를 매개로 일으켜 세운 것도, 기록의 매개를 통해 구현한 것도 아니다.
그저 힘을 다룬 자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사실상 투영한 대상과 관계 없이 탄생한 존재.
관점에 따라선 망상의 실체화라 치부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래도……."
그들을 돌아보는 얼굴엔 애틋함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믿고 있어요."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그런 진실 된 자애로움이.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도 분명 셰인처럼,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들로 자랐을 거라고."
이윽고 수행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기사가 베르디를 마주하며 자리를 잡았다.
가슴이 벌어져 있는 흑기사.
그 가슴팍에 손을 얹은 베르디가 인사를 하듯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제 믿음이 틀리지 않다면……. 그런 암실에서도 빛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