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08화 (108/255)

의무병의 환생 108화

스르륵.

가루가 되듯 사라져 가는 기사.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그녀의 호출이 있기 전까지 모습을 감춘 것뿐이다.

그 믿음이 존재하는 한, 그 믿음으로부터 태어난 이들은 그녀의 곁을 영원히 수호할 것이다.

그것이 신앙을 가지지 못한 소녀가 찾아낸 빛을 거머쥐는 방법.

그 길은 현 시대에 만연한, 신앙을 습득하는 정석을 따르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아이라면 이겨낼 수 있겠지.'

그녀는 자신보다도.

그리고 자신이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고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 으…….

그렇게 미소를 지을 무렵 귓가에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페니 플레밍.

그녀가 가진 미련의 잔재가 남아 있는 언데드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그어어…….

그 존재가 신음을 내뱉으며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무뎌질 대로 무뎌진 육체로나마, 이제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자신의 미련을 이루기 위해서.

"따라가죠."

"…그래."

이내 셰인은 베르디와 함께 페니의 뒤를 조용히 뒤따랐다.

너덜거리는 발걸음이 비탈길을 힘겨이 내려갔다.

몇 번이고 넘어지며 태워진 살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지만, 베르디와 셰인은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이런 몰골이 되어서도 이루고 싶은 미련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안쓰럽다는 이유로 간섭을 하는 건, 생에 마지막 미련을 해소하고자 하는 망자에겐 모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페니는……."

그저 그 뒤를 따르며 알고 있는 것만을 가르쳐줄 뿐.

"그녀는 이 섬에 오기 전부터, 비밀리에 이단의 지식을 연구하던 사람이었어요. 그건 블레이즈 영지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연구였죠."

"……영지에서도?"

"이 섬으로의 원정을 지원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자신이 연구하던 자료의 흔적을 찾으려면 제국의 땅을 벗어날 필요가 있으니까."

그러던 중 역병이 창궐하며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게 된 때, 그녀는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겐 이 역병을 해결할 수단이 있었지만, 정작 그 병에 휘둘리는 이들이 의존하는 건 다름 아닌 신앙이었으니까.

"페니는 알고 있었어요. 자신의 연구가 공표되면 어떻게 될지."

서서히 의학이 전파될 조짐을 보이는 영지와도 격리된 장소.

아직 제국의 풍조가 남은 그들이 이단의 연구에 의존하길 거부하리란 걸, 제국민인 페니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만에 하나라도. 신앙으론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그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면……."

미지에 대한 공포는 신앙을 죽이는 법.

그렇게 제 풀에 꺾여가는 그들이 나중에라도, 자신이 만든 해결책에 손을 뻗는다면. 그 의지를 이어줄 수 있다면…….

"하지만, 결국엔 불길 속에선 그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고 말았어요."

그 사실을 인지한 베르디의 얼굴이 측은히 물들어졌다.

"그건……. 페니의 각오가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의사인 셰인은 알고 있다.

화형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죽는 그 순간까지 느끼는 처형법이라는 걸.

의식이 깨어 있는 채 몸을 토막 쳐도 장기를 산 채로 뽑아낸다 해도, 그 고통은 몸이 산 채로 태워지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니 비극이 일어난 이유는 그저…….

그런 당연히 뒤따라올 감정에, 그 감정을 이용하고자 하는 존재가 끼어들었다는 것뿐이다.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었을 뿐이야. 페니도, 그리고 이 섬에 있던 사람들도……."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신앙을 찾았는데, 어찌 신앙을 버리면서까지 그 미지로부터 답을 찾으려 들 수 있을까?

그것이 이 시대엔 당연한 것이다.

그로인해 생긴 비극에 대해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평소처럼 '이해 정도는 할 수 있다'하고 넘어가는 것 뿐.

"그래도, 이제라도……."

그런 식으로 그들의 죄를 넘경야만, 당장 해야 할 일에 전념할 수 있을 테니.

"앞으로라도, 이후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싶어요."

"……그, 어어."

신음소리를 마지막으로 페니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유적도시의 변경, 가장 외진 장소에 위치한 건물의 앞에.

"어, 으……."

그리고 그 순간 지나쳐온 산등성이 위로 밝혀지는 태양빛.

언데드에겐 치명적인 것이다.

그 빛은 그들의 민감한 감각기관을 물들이고, 정신에 혼선을 가져와 윤회력의 고리를 끊어내니까.

"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두 눈은 저 멀리 떠있는 태양으로 향해져 있었다.

썩어문드러진 두 눈으로나마 을 찬찬히 응시하고 있다.

"언, 젠 가……."

차차 바스러지는 육체에 힘을 풀고, 저물어가는 정신으로나마.

"언젠가, 는… 분명……. 누군가는……."

하지만 뒷말을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베르디는 그런 페니의 눈을 감겨주고 조용히 양 손을 모았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조용하고 조촐한 진혼.

그 장례를 뒤로한 셰인이, 그녀가 들어서고자 한 건물의 입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통하는 길.

그곳에 베르디보다 앞서 들어간 셰인은, 그 통로의 끝에 자리한 방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깊숙이 숨겨져 있지만 잠금장치 하나 걸리지 않은 문.

벌써 몇 년 간 방치되었는지 문에는 낡은 티가 크게 엿보이고 있었다.

셰인은 그 문을 조용히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

그 문을 연 순간 셰인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흔히 연구실이라 불리는 장소.

영지에서 머무른 연구동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도구와 서적들이 가득한 장소.

하지만 곳곳에는 자욱하게 먼지가 깔려 있었다.

벽이고 바닥이고 천장이고, 심지어 그곳에 자리한 가구나 서적들에도.

'……배양접시?'

그증 가장 심한 곳은 책상 위에 놓인 접시.

뚜껑이 열린 채로 방치된 그곳에 무언가 가득 채워지고, 그 주변을 뒤덮고 있다.

주변에 채워진 묵은 때와 같은…….

'아니, 먼지 같은 게 아니야.'

그래, 이건 물질의 분해 작용에서 비롯된 부산물이 아니다.

근본은 버섯과 같은 균.

흔히 곰팡이라고 불리는 것이, 이 방 곳곳에 깔려 있었다.

"셰인."

뒤따라온 베르디가 그를 부르며 방을 둘러보았다.

곰팡이가 가득한 방.

거기에 불결함을 느낄 법 함에도, 그녀는 그저 셰인을 향해 물어볼 뿐이었다.

"이 방에 있는 것들은……. 페니 씨께서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이.

정녕 이 섬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비극을 방지할 수 있는지를.

"……당연한 걸 묻네."

그 물음에 셰인이 바로 긍정을 내뱉었다.

"그녀가 안 했다면, 내가 언젠가 했어야 할 일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이 방 안을 채우고 있는 곰팡이들은, 의사된 자에겐 결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학명-페니실리움 크리소게눔.'

통칭 푸른곰팡이라 불리는 존재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균을 먹어치우며 주변을 '무균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환경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잘 이용한다면 '세균성 질환'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대륙 역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항생제 '페니실린'이다.

페스트를 포함한, 무수한 역병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해주었던 구세주였으며, 아이헨발트라는 의료대국의 시작을 알렸던 개국공신.

'그리고 세균성 질환인 흑사병의 특효약이기도 하지.'

물론 페니실린 자체가 완벽한 만병통치제라곤 할 수 없다.

만능약이라 불리는 설파제나, 대중적으로 쓰이는 세팔로스포린계통의 항생제 등……. 아이헨발트에는 그보다도 더 효율이 좋은 항생제가 여럿 존재했었다.

하지만 그런 항생제들의 시작도 결국엔 페니실린이었다.

페니실린이 없었다면 그 외의 항생제도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며, 진정 의학의 발전과 이해를 추구한다면 그 시작 역시 고스란히 답습할 필요가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면, 그녀가 왜 이 외진 땅에 와서까지 비밀리에 페니실린의 제조법을 연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페니 플레밍……. 그녀는 이 시대에 의학을 전파하려고 했던 거였나.'

그것을 자각한 셰인이 책상에 놓인 책을 쓸쓸히 훑어보았다.

방치되어 곰팡이가 가득 끼어 있는 책.

하지만 그 안의 내용과, 표지의 이름을 읽는 데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정말……. 당신에 대해 알아갈수록, 따라잡을 수 없단 생각이 들게 되네요."

[저자-피오 아스클레]

스승의 이름이 적힌 고문서.

지금은 방치되어 곰팡이가 가득 끼워져 있지만, 읽으려고 하면 못 읽을 것도 없는 물건이었다.

그 책의 안에는 푸른곰팡이를 이용해 페니실린을 제작하는 방법이, 그와 더불어 그것을 대량생산하는 법까지 적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셰인은 처음 접해보는 책이었다.

그가 교과서로 삼았던 건 기초의학과, 외과분야에 관련된 서적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책들만 해도 두께는 백과사전 급에 해당하며, 피오는 이런 책을 수 천 권을 읽고, 그걸 정리한 교과서를 수십 권 집필했던 몸이었다.

그런 스승을 따라잡는 것에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런 재능의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 자신이 이 길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다.

'카일. 의사는 결코 자신이 가진 지식에 오만을 가져선 안 돼요.'

누구보다도 유능했던 의사인 그녀역시, 단 한 번도 제 앞에서 거만함을 표출한 적이 없었다.

제 지식에 자부심을 가지되, 그것을 활용할 때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지식을 물려준 이들에 대한 존경을 표출해왔다.

'설령 과거의 의학이 우리들의 시점에서 부족해 보인다 한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시대에 그런 일을 이루었기에, 그들은 우리들보다도 더 굉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저 특출나기만 한 능력으론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니, 학자는 언제나 자신에게 지식을 계승해준 자에게 존중을 표해야 한다.

그 능력으로 이루어낸 모든 것은 누군가가 일구어낸 지식을 계승받고, 그걸 이어갔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저희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감사를 해야 해요. 의학의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해준 모든 위인들에게.'

셰인은 그 의지를 존중한다.

설령 그 의지를 이 시대에 구현하려다 비참히 목숨을 잃은 자를 마주했더라도, 그녀의 연구가 아무도 살리지 못한 것을 마주했음에도.

그 의지만은 이 순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으니까.

"페니……."

그 점을 회고하는 셰인이, 제 스승의 책을 가슴에 품으며 속삭였다.

"제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제 삶을 옥죌 새로운 저주를 쌓아올리고, 그것을 맹세로 승화시킬 각오를 다지기 위해.

* * *

"배를 기대어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밖으로 나와!"

해가 떴을 무렵, 그제야 인근 해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항해선이 해안가에 정박하였다.

원정의 목적지였던 주둔구역이 자리한 섬에.

그런 그들이 먼저 마주한 건 모래사장을 뒤덮은 시체밭이었다.

"시체……?"

"대체 무슨 일이……."

"서, 선생님!"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코델리아가 황급히 모래사장에 발을 들였다.

마침 해안가에 들어선 사제복의 청년.

옆에서 진영을 갖추던 레온 역시 그를 알아보며 소리쳤다.

"셰인! 무사했구나!"

"네 눈엔 내가 괜찮아 보이냐?"

붕대도 다 떨어져서 옷을 찢어 부목을 대고 있는 상태.

베르디도 이전 사태에서 무리를 했기에, 신성력으로는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레온이 애석한 표정을 지었다.

"어, 미안하다……."

"됐어 인마. 네가 이런 것도 아닌데 사과를 왜 해?"

셰인이 피식 웃으며 신성력을 발하는 레온에게 몸을 맡겼다.

"배의 상황은 어때?"

"……네가 배에서 떨어진 후부터 상태가 심각해지고 있어."

성직자들 덕에 아직 사망자는 없지만, 패혈증과 폐렴으로 인해 행동이 어려워진 자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셰인 역시 전염병에선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몸.

"생존에 대한 재회는 나중에 축하하고……. 다들, 지금부터 제 지시를 따라주세요."

하지만 이런 몸으로라도, 병역에 대한 방침을 전파할 순 있으리라.

"먼저 감염증세가 없는 분들은 환자들과의 접촉은 피해주세요. 성직자분들과, 감염증세가 있으신 분들은 환자분들 중에 움직일 수 있으신 분은 이 도시에 있는 건물로 향해주시고요."

병자들에게 환자의 호송을 맡기는 건 무리한 일이겠지만, 성직자들만으로 환자들을 모두 이끌면 시간이 걸린다.

추가적인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

그 다음으로 해야 할 건 환자의 상태를 약화시키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자들을 돌볼 건물은 가급적 창문이 많이 뚫린 곳으로 골라주세요. 지속적으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환기가 잘되는 곳으로."

"공기라니, 그건 좀 위험하지 않겠나?"

"그래, 병이라는 게 냄새로 감염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돌림병이 냄새로…….

의학이 없는 시대치곤 아주 비범한 발상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 시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전염병이란 냄새보다도 훨씬 교묘히 감춰진,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작은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약 없이 저항하는 법은 환자 본인의 면역력.

그리고 불순한 공기는 그 자체로 환자의 호흡을 방해하며, 대사활동을 약화시키는 법이다.

환기나 침구의 교환, 세안 등은 간호학에서 특히나 중시 다뤄지는 요소다.

"그리고 학자 분들께선 저를 좀 따라와 주세요. 지금부터 치료제를 만들 생각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위생이 중요하다 해도 어디까지나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킬 뿐.

병간호를 열심히 한다 해도, 흑사병의 근본적인 치료는 항생제를 통해 이루어야만 한다.

그리고 셰인의 전공은 외과.

혼자서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약을 제조하는 건 무리다.

'그게 교리에 반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겠지.'

그건 지시를 받은 학자들은 물론, 줄곧 셰인의 활동을 지켜봐온 성직자들도 어느 정도 수긍한 바일 터.

이내 그들의 동조를 얻은 셰인이 유적도시로 그들을 안내하려 했지만, 문득 그 길목에 누군가가 서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워드 필립스.

이 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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