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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10화 (110/255)

의무병의 환생 110화

'그렇게 생각하면 난 전생엔 매번 생지옥에서 굴렀다는 거겠지만.'

아니, 지옥이라고 한다면 환생 이후가 더하겠지.

의사로써 환생한 곳이 의학을 배척하는 교국이었으니까.

"팔은 잘 움직이세요?"

그 속내를 숨긴 셰인이 드레이크의 상태를 보며 물었다.

팔이 자리한 곳을 대신하는 건 팔의 형태를 지닌 기계장치.

언데드들의 습격에서 잃어버린 팔을 대체하고자, 셰인이 수개월에 걸쳐 보수를 한 물건이었다.

골자는 철. 표면은 나무로 이루어졌으며, 손가락부터 팔의 관절까지 사람의 신체와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흐음."

그것이 드레이크의 의지에 반응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끼긱.

마찰음이 심하지만 나사의 조임이 심해서일 뿐. 움직임은 꽤 자연스러운 편이었다.

그럼에도 드레이크의 표정이 구겨진 건,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위해 많은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나를 좀 많이 써야 하는군."

당연한 거지만 신경 자체가 연결되어 있진 않다.

어디까지나 마나의 전도율이 높은 소재들로 주요 기관을 채운 것뿐.

그를 통해 마나를 쉽게 받아들이게 만들음으로써, 마나가 발휘하는 물리력으로 팔을 움직이는 것에 가깝다.

사실상 염동력으로 의수를 움직이는 거나 다름없는 일.

그마저도 마나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도 버거우니, 기술적으로는 대단하다고 볼 순 없는 물건이다.

그런 자학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드레이크는 만족감을 표하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나 때는 군에서 이런 것도 상상을 못 했었는데 말이야."

마냥 예의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결손부위는 신성력으로도 재생할 수 없고, 뭣보다 이제까진 고써클의 마나유저라도 이런 걸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사실상 의료와 마나 뿐 아니라'공학'에 대한 조예까지 키워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결과물.

드레이크는 셰인이 만들어준 의수로부터, 이 시대에 새로이 구현될 '의료공학'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었다.

"그래도 노파심에 충고를 하자면……. 이 의수를 제국에 전파하는 건 신중히 결정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하네."

"알고 있어요. 선례가 있으니까."

먼저 구현하려던 자가 반란군으로 전락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가 좀 더 침착했더라면 자신보다 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을 하곤 하였다.

'전과 하나 더 쌓기 싫으면 신중하게 해야겠지.'

그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설득하는 것도 돌아갈 이유 중 하나이리라.

지금은 그 정도의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그럼 팔의 보수도 끝났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떠날 때 보세."

작별을 고한 셰인이 방을 벗어나 거리로 나섰다.

과거 구 황제가 머물렀던 터전을 주둔구역으로 삼은 장소.

언데드들의 난동으로 인해 여러 부분이 망가졌지만, 현재엔 주둔한 병력들 중 상당수가 그 보수에 투입되는 상태였다.

"거기, 그쪽에 짐 쌓아둬."

"공구 가져와!"

힘을 쓰는 일은 주로 용병과 선원들이 전담.

조선공들이 건물의 설계와 지시를 도맡고, 비전투원들은 그들에게 새참을 가져와 공복을 해소시켜준다.

그 중 상당수가 얼마 전까진 흑사병에 고생하던 이들이었지만, 3달 가까이가 지난 지금에 와선 항생제의 도움으로 건강과 면역력을 모두 챙긴 상태였다.

"야이씨 거기 너무 힘 줬잖아! 보수 좀 제대로 해봐!"

"내가 목수인 줄 아냐?"

물론 그 작업을 진행하는 이는 상당수가 뱃사람과 용병들.

성깔이 한 가닥 하는 이들이다 보니, 보수 작업 중에 마찰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러다 또 다치겠네.'

셰인이 황급히 그들의 사이에 난입하며 주의를 던졌다.

"또 싸우시다 팔 부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아, 선생님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저희가 워낙에 험하게 굴러서 그만……."

셰인이 난입하기 무섭게, 노동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한 태세로 돌입하였다.

자신보다도 훨씬 어린 나이의 소년에게도 정중함을 다하는 모습.

멀리서 보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섬에 있는 이들 중 그들을 비웃는 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편찮으신 곳은 없으신 거죠?"

"아휴! 그야 덕분에 말끔히 나았습죠!"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어땠을지……."

"그, 항생제라고 하셨죠? 대체 어떻게 그런 걸 만든 겁니까?"

"양배추가 들어간 건가요?"

셰인이 들어서기 무섭게 대거 몰려드는 노동자.

한 사람에게 표한다기엔 너무나도 과한 관심이지만, 이 섬에서 셰인이 일으킨 건 그만한 성과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불만족을 느끼는 건, 그들이 체감한 것이 어디까지나 자신이 보았던 것의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항생제 하나 만으로 감탄하면 쓰나? 앞으로 만들 약물들이 얼마나 많은데.'

페니실린은 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이지만, 그 효율은 전쟁 당시의 의학수준을 빗대면 결국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동시에 투여하는 '칵테일 요법'등의 처치도 있음을 생각하면, 항생제의 연구는 페니실린 하나로 그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거리를 지난 후 들어선 시설은 그런 항생제들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아, 선생님 오셨습니까?"

연구동에서 한창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

그들 중 한 명이 셰인을 알아보며 반가움을 표했다.

나머지는 하던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몇몇 이들은 셰인을 보며 힐끗 쳐다보다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들에게 마저 대답한 셰인이 자신을 마주한 학자에게 용건을 얘기했다.

"저번에 부탁드렸던 정리본을 받으러 왔습니다만……."

"아, 저기 쌓아뒀어요. 정리할 필요 없이 바로 가지고 가시기면 될 거예요."

이후 테이블에 올라있는 자료들로 향하는 셰인.

안의 파일들을 확인해보니, 핵심만 간추린 내용들이 다수 적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은 전임자들의 연구성과와 조사자료……. 아니, 정확히는 그 축약본들이다.

홀로 장기원정을 염두에 둬야 하는 만큼 가지고 갈 수 있는 자료는 한정된 상태.

하지만 서둘러 전한다면, 이후 본대가 복귀했을 때에 가지고 올 자료들을 활용할 밑천 정도는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약학에 대한 자료를 가져갈지에 대해서인데…….'

페니 플레밍이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섬에서 진행된 연구.

비록 약학이란 이단의 땅인 블레이즈에서도 이질적인 것이지만, 연구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고난을 겪지 않았다.

약 자체가 화약과 마찬가지로 '화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까.

화약병기 제조에 힘을 쓰는 영지군에겐, 오히려 다른 분야를 알아보는 것보단 훨씬 이해가 쉽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해가 쉬워도, 이걸 연구하는 게 허락된 건 어디까지나 이 섬뿐이야.'

고작 천식약 제조만 해도 제국의 고위 인사들이 모여 재판이 일어났음을 생각하면, 이 연구를 그대로 가져가는 건 원정대 전체에 해가 가해질 위험이 있다.

함께 온 성직자들이 약학을 허락해 준 것도 마녀 사냥의 폐해를 우려했기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되니까 침묵할 뿐.

하지만 그 침묵만으로도 신앙을 시험받았고, 상당수의 성직자들은 그날 후로 신성력을 잃기까지 해버렸다.

그런 마당에 그 자료를 제국으로 가지고 돌아가면 어찌될지는 뻔하지 않겠는가?

'뭐, 일단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문서가 필요하면 내가 직접 작성하면 되겠지.'

그 책임 또한 자신이 짊어질 일.

그렇게 결론을 지은 셰인이 미련 없이 챙겨 온 배낭에 자료들을 채워 넣었다.

그 배낭을 메고 연구실을 벗어나려는 것도 잠시.

"아, 자네 벌써 왔는가?"

막 자료를 챙기던 셰인의 배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메부리코를 지니고 있는 표독스러운 인상의 노인.

이곳에 선 모든 학자들이 존중을 표하는 권위자였다.

그건 셰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오랜만입니다 파라켈쿠스 씨."

파라켈 코페르쿠스.

셰인과 서로의 연구를 보조하던 케이미의 스승이자, 셰인이 생활 의약품 연구담당자란 직위를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준 은사였다.

그 역시 사우전드 블레이즈의 항해선에 오른 선원 중 한 명.

현재엔 화학자로써의 능력을 살려, 셰인이 부탁한 약학연구의 총괄을 맡고 있었다.

"슬슬 이 섬을 떠날 때가 왔나보군."

"…복귀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가장 중요한 걸 놓고 가면 쓰나? 자, 이것도 가져가게나."

이후 파라켈쿠스가 손에 쥔 서류뭉치를 셰인에게 내어주었다.

자신이 챙기고자 했던 그 어떤 자료들보다도 더 많고, 두꺼운 서류뭉치를.

그 안에 적힌 내용은 다름 아닌 항생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건……."

"아직 자료의 정리가 다 안 끝나서 손을 좀 봤다만, 그거 하나 못 기다리고 갔으면 섭섭할 뻔하지 않았나?"

일부로 뺀 게 아니라 조정할 게 있어서 잠시 회수했던 거다.

그렇게 말한 파라켈쿠스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지만, 정작 서류의 내용을 살피는 셰인의 표정은 심각히 구겨질 수밖에 없었다.

[저자-파라켈쿠스]

그것이 자료의 앞에 버젓이 적혀 있는 이름.

그 뒤를 잇는 건, 현재 그들이 있는 연구실에서 한창 연구를 진행 중인 연구자들 전원의 이름이었다.

제국에 공표할 것을 전제로 한 자료에, 이 연구를 주도한 인물이라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다.

"기존의 레시피를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놨지. 설비와 지원만 받는다면 몇 년 내에 제국 전체에 퍼트릴 정도의 양산도 가능해질 걸세."

확실히 약에 있어서 대중화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런 대중화도 결국엔 지식 자체가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걸 행하는 건 오롯이 고대인인 자신의 몫이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거늘.

"파라켈쿠스 씨. 이름은……."

"부담 갖지 않아도 되네."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수정해 달라 청하기도 전, 파라켈쿠스가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애초에 우리도 목숨을 걸고 이 위험한 원정에 참여했던 거네. 그런 우리들이 당장 목숨이나 부지하자고 자네의 연구에 동참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당초에 이곳에 있는 학자들은 현 제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연구를 하기 위해, 그 불만을 표출하고자 변경지대로 향한 '이단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현 제국이 어찌 해결할 수 없는 재해를 해소하는 것을 목도했는데, 그에 동참하는 것은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죄책감 가지지 않아도 되네. 이 연구는 모두 우리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니."

"그래도……."

"정 불안하면 자네가 어찌 해주면 되지 않겠나?"

거듭 불안을 표하는 셰인에게 넌지시 말하는 파라켈쿠스.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셰인이 '네?'하며 고개를 기울이자, 파라켈쿠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천천히 다독여주었다.

"부디 우리가 복귀할 때쯤엔, 그 학문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주게나."

'이 소년이라면 분명 제국을 바꿀 수 있으리라.'

한편으론 목숨마저 걸린 신뢰.

그를 마주한 셰인이 시선을 느끼며 주변을 차차 둘러보았다.

연구동에 있는 학자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적의나 적개심이 아닌 존중과 존경이 어린 눈으로.

자신과 함께 해온 위대한 학자들이, 이 순간 자신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지……."

그로부터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버티지 못한 셰인이, 매어지는 목을 비집으며 그들을 향해 고개 숙였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제 조국의 숭고한 의지를.

이 시대에 이어준 자들을 향한 감사를.

* * *

페니의 연구는 성공적으로 이어받았고, 원정대원들의 건강도 대부분 회복되었다.

적어도 이 섬에 한해선 약학이 대중화를 보일 조짐을 보이는 상태.

신성력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해도, 허락만 된다면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엔 충분한 단계까지 온 것이다.

'이젠 내가 없어도 되겠지.'

인수인계도 완벽히 해낸 상황.

그런 마당에 식량고에 찾아온 건, 앞으로 있을 심층부로의 여정에서 먹을 비상식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식량은 내일 챙겨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괜히 몇 번이고 수고를 하게 만들 순 없죠. 그리고 어차피 보존식이라면 하루 이틀 정도 차이가 나도 상관없고."

"후후, 배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담당자들의 호의어린 미소.

그런 이들에게 화답을 하며 식량을 가져오길 기다릴 무렵, 문득 셰인의 눈에 길을 지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노을 진 거리를 누비는 건 한 수녀.

베일 밑으로 엿보이는 붉은 머리카락은 상당히 눈에 익는 것이었다.

유일교의 정식 사제인 메어리. 셰인이 늘 '주근깨'라고 부르는 소녀였다.

'생각해보면 몇 달 간 마주한 적이 없었지.'

그 시간 동안 워낙에 바빴고, 괜히 성직자들에게도 해가 될까봐 직접 접근하지도 않았으니까.

"야! 주근깨."

그래도 악연도 연이랬다. 눈에 들어왔는데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조금 섭섭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에 늘 부르는 칭호로 불렀지만, 정작 메어리는 그 이름에 발끈하지 않고 제 갈 길을 훌쩍 가버릴 뿐이었다.

무시한 게 아니라 듣지 못한 것이다.

힘없는 발걸음으로부터 그 점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었다.

"…저 녀석, 아직 회복 못 한 건가?"

이 섬에 온 후, 성직자들 중 상당수가 신앙을 잃어버렸다.

그건 제 앞에서 언제나 올곧음을 주장한 소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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