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12화
그저 장난으로…….
사춘기 소녀의 입맞춤이란 그 정도의 이유로 행할 만큼 하찮은 것이었던가?
적어도 이 아이에 한해선 그럴 리가 없다.
비록 척을 졌더라도, 이 소녀는 영지군에 소속된 동안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아이였으니까.
"……왜."
어린 나이에 신성력을 각성할 정도의 소녀가 아닌가?
그 신앙을 잃었다 해도 잠시일 텐데.
"왜 나 같은 걸 좋아하게 된 건데?"
제 마음의 지조를 가진 소녀가 진심을 고백했는데, 그걸 하찮게 흘려 넘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녀의 고백을 진지하게 생각하자 여겼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야."
"그냥."
메어리가 제 옷자락을 움켜쥐며 힘겨이 말했다.
"그냥, 계속 지켜보다가 좋아하게 된 걸, 어떻게 하라고."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하지만 그런 반응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히 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첫눈에 반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없진 않을 것이다.
'메어리는 셰인 골드리안을 좋아한다.'
과정이 어떻건, 그 명제만은 분명한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명제를 달리 해석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교단의 사람이 이단자를 향해 연심을 느끼고 있다.'
그건 그 자체로 신앙에 해가 되는 일일 것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그럼에도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한 건 정말로 성직자를 그만두기 위해서일까?
지금이라면 이단자인 자신과 어울려도 된다고 생각해서?
……모르겠다.
심리학에 정통하지 않은 그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 서투른 몸이었으니까.
뭣보다 누군가의 연심을 분석한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용납되지 않을 터다.
그러니 메어리가 '왜'자신을 좋아하는지는 제쳐두자.
진지하게 자신이 메어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고백에 어떤 답을 돌려둘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메어리가 날 좋아한다라.'
턱을 괴는 셰인의 모습을, 메어리는 조마조마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침묵이 흐른 후.
"…미안, 역시 무리야."
이내 셰인의 입에서 여과 하나 없는 본심이 내뱉어졌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메어리가 숨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어째서?'
잠깐 그런 말이 나오려다.
이내 그 입이 다물어지고, 그 입가엔 쓴웃음이 그려졌다.
"역시, 그렇지?"
이제까지 서로 척을 지고 살지 않았던가.
하물며 지금의 자신은 신성력도 잃어버린 몸.
그런 자신을 보며 '고작 그거밖에 안 되면서 이제까지 나댔냐?'같은 멸시를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터이다.
"하기야 나 같은 건……."
-꽈앙!
굉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아픔.
알밤을 얻어맞은 메어리가 눈물을 찔끔 빼내며 소리쳤다.
"왜 때리는 거야!!"
"그럼 손이 안 나가겠냐 이 답답아!? 그런 태도 하지 말라고 위로한 지가 언젠데!"
"위로 같은 거 해달라고 한 적 없어! 그리고 애초에 때리고 싶은 건 나란 말이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한테 고백한 건지나 알아!?"
18년 생에 걸쳐, 그리고 앞으로의 생에서도 더 없을 결심이 동반된 고백이었거늘.
그걸 고작 한 마디로 거절하는데 화가 나지 않고 배길까?
하지만 애초에 셰인이 지금 폭력을 휘두른 건, 상대가 자신의 행동을 오인하는 것을 정정하기 위함이었다.
"거절한 거 아니야."
"……뭐?"
"지금은 무리니까 나중을 기약하겠다는 거지."
눈을 껌뻑이는 메어리.
그렇게나 셰인이 돌려준 대답은 어처구니없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기약한다니……. 이제 곧 떠나니까 그냥 흘려 넘기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어찌 답할까 곤란함을 느끼던 셰인이,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힘겨이 대답했다.
"지금은 대답하기 곤란해서 그래.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니?"
"소위 말하는 짝사랑이란 거야. 정확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루어질 리가 없는 사랑이니까 포기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
거절의 이유를 들은 메어리가 말없이 그의 안색을 살폈다.
요컨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제 고백을 거절했다는 것.
그건 신자와 이단자라거나, 개인적인 악연과는 별개 된 이유였지만…….
정작 그 의사를 밝히는 그의 얼굴엔, 더 없는 착잡함이 그려져 있었다.
정말로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발휘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면서도, 그걸 포기해야 한다는 걸 각오한 사람만이 표할 수 있는……. 그런 감정.
"…그건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마 모를 거야. 직접 마주해본 적은 없을 테니까."
적어도 블레이즈 영지에 있는 동안 만난 건 아니라는 것이다.
14세, 혹은 그 이하의 나이에.
적어도 메어리의 입장에선,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그런 나이라 할지라도.
"……응. 진심으로."
눈앞에 있는 자가, 그 자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 역시.
그 긍정을 들은 메어리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연심을 품은 자가 있지만, 그 자와 맺어지지 못하니 포기를 자처하는 사람의 모습.
그건 이단자를 사랑한 신자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을 정리하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 같거든. 그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
내색을 하는 것은 잠시뿐.
쓴웃음을 호의로 승화시킨 셰인이, 이내 메어리를 정면에서 마주하며 말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때에도 여전히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때 다시 고백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이 상황을 넘기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이만 가볼게. 다음에 보자."
단칼에 쳐내지 않은 고백을.
그걸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라 말을 하는 게, 그를 잊으려 한 소녀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정말로 모르기에…….
그는 저렇게나 가볍게 자신을 홀로 두고 떠날 수 있는 것일까?
"……바보."
노을마저 저물고, 하늘의 붉은 빛마저 칙칙해져가는 때.
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소년을 눈으로 쫓는 소녀가, 제 주변을 감싸는 광명을 느끼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거절하지 않으면……. 계속 널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
다시 빛을 거머쥐기 위해선 응어리를 풀어야 한다 여겼거늘…….
그럼에도 빛이 되돌아온 건 제 마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섬기는 자는, 저 자가 지닌 고결한 이상이 이 이 시대에 편입되길 희망한단 것일까?
* * *
-쏴아아.
달빛이 만연한 밤.
모래사장에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울려 퍼지길 반복하는 가운데, 셰인이 나룻배의 위에 자신이 챙겨온 배낭을 올려두었다.
"이걸로 준비는 끝인가."
자료도, 식량도, 그 외에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챙겼다.
본래 떠날 시기는 내일로 둔 상태.
그때에 다른 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날 예정이었지만, 정작 셰인은 그때를 기다리지 않고 밤중에 이곳을 벗어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다들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괜히 나 때문에 시간 허비하게 만들 순 없으니까.'
항생제를 만들었고, 그 항생제를 이 섬의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기도 했다.
선장의 잃은 팔을 대체하는 작업도, 학자들과의 관계도 원만히 끝났고…….
교단사람들이 불안하긴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자신은 차라리 없는 편이 신앙을 유지하는 데엔 좋으리라.
'메어리도 나 때문에 마음 쓰지 않게 하는 게 좋을 것 같고.'
침묵도 배려가 될 수 있는 법.
그러니 떠난다면 조용히 가자, 결심한 셰인이 자정시간에 맞춰 배를 띄울 준비를 취했다.
"떠나시는 건가요?"
그 순간 배후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의 손짓을 저지했다.
낯익은 목소리.
지금 들리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지만, 셰인은 별 내색하지 않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마주하였다.
"……다들 할 일이 많으니까. 괜히 나 한 명 배웅해준다고 민폐 끼치고 싶진 않거든."
"아쉬워할 거예요."
"아쉽긴 무슨. 이번이 마지막도 아닌데."
"그래도 아쉬울 거예요."
소녀가 번복해 말한다.
그를 돌아본 셰인이, 제 망막에 새겨진 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베르디."
베르디 하트리스.
그런 이름을 지닌 소녀만이, 이 늦은 밤에 자신을 배웅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 섬에 막 왔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입고 있는 수녀복도, 베일 밑으로 흘러내린 분홍빛의 머리카락도.
하지만 공허하리라고 여겼던 눈동자엔 빛이 깃들어 있었다.
셰인이 배 위에 올렸던 발을 거두며 베르디를 마주했다.
"어떻게 안 거야? 내가 지금 출발한다는 거."
분명 떠나가는 건 내일이라 모두에게 일러두었거늘.
"……왠지, 그럴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곳을 배회하지 않았던가?
어영부영 보냈다 한들 멀리서나마 서로를 지켜보았고, 그렇기에 서로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점을 이해한 건 셰인 역시 마찬가지.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소녀에 대한 걱정이 더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섬사람들이랑은, 잘 지내고 있어?"
자신은 약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베르디는 신앙을 잃은 성직자들을 대신해 환자들을 보살피고자.
그렇게 섬에 있는 동안 서로를 챙기지 못했고, 그 시간 동안 셰인은 내내 베르디에 대한 취급을 불안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이 소녀에겐 여전히 윤회력이란 이질적인 힘이 존재하고, 성직자들의 침묵도 어디까지나 신앙이 돌아오지 못해 이루어지는 것일 테니까.
그들과 자칫 잘못 연루되면 또다시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네, 덕분에……."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베르디는 셰인의 앞에서 자상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처음엔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저를 신뢰하고 상처를 맡겨주고 있어요. 교단 분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주고 있고요."
"……다행이네."
그건 베르디가 가진 힘이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 섬에 있는 교단 소속의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어, 그들이 발휘할 힘이 적기 때문인가?
어떤 이유건, 그것은 이곳이 제국이 아니기에 가질 수 있는 평온이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비극을 겪음으로써, 자신들이 줄곧 고수해온 것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는지를 실감하는 상태니까.
'하지만 베르디도 언젠가 제국에 돌아가게 될 거야.'
그녀가 가진 힘은 '만약의 존재'를 긍정하며 생긴 것.
그 마음은 분명 고결하겠지만, 청렴결백할 힘을 비틀어 만들어낸 결과인 만큼 제국이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형량이 끝나면 그래도 복귀 정도는 가능한 자신과 달리, 이 소녀는 어쩌면 영원히 제국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소녀와 마주하는 것이 괴롭게 느껴진다.
제국에 돌아갈 수 있는 자신에게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했기에.
"바람이 찬데 이만 들어가.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외면하려던 셰인을.
"매번."
베르디는 몸을 돌리려는 그의 손을 잡아 그를 묶어두었다.
"언제나 먼저 제 곁에 다가오셨으면서 이제는 그냥 떠나려 하시네요."
나약한 손길.
떨쳐내려면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지만, 목소리에 어린 힘만은 결코 녹록치 않다.
떠나기를 주저하는 셰인이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베르디를 슬며시 돌아보았다.
"이제야 겨우……. 이렇게 당신을 마주할 용기가 들었는데."
언제나 회피했던 시선을 또렷이 뜨고,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에서 그를 마주한다.
멀리서 관망할 때와는 다르다.
지금의 베르디는 그의 곁에 서길 희망하고 있었다.
허락된다면 그의 곁에 서고.
가능하다면 그가 짊어질 것을 함께 짊어지고 싶다고.
"당신은 매정하게도, 저에게 잠깐의 시간도 주지 않고 떠나려고 하네요."
그 마음을 실천하기 무섭게 떠나려는 그를, 어찌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