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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14화 (114/255)

의무병의 환생 114화

"참 예나 지금이나 능구렁이 같은 건 변함이 없구려."

드레이크 나저러.

스스로를 뒷방 늙은이라 칭하고 있지만, 동년배인 파라켈쿠스는 그가 영지군에 소속되며 이룬 업적을 익히 들어온 자였다.

현 영지군의 기반을 다진 전설적인 참모.

그런 그가 확신을 가지고 행한 일은 언제나 옳은 결과를 내었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일을 벌이는 건 그만큼 이 섬의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의미.

그걸 이 원정대 전체에게, 저 하늘에 수놓인 광활한 불꽃을 통해 증명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 노동을 행하는 이들이 직접 체감함으로써.

"그래, 기왕 잔치를 할 거라면 더 성대하게 하는 게 낫겠지."

이내 자리를 이동한 드레이크가 인근의 언덕 중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대량의 화약을 등지고 있는 한 소녀.

청색의 피부와 뾰족한 귀는, 그 소녀가 자신들과는 다른 태생에서 비롯되었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그 소녀를 마주하며 지시를 내렸다.

"코델리아 양. 얘기했던 대로 해줄 수 있나?"

"…제자 된 자가, 스승을 배웅하는 데에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겠지요."

그녀 역시 그에게 보은을 입은 자 중 한 명.

호기 있게 미소를 지은 코델리아가 자신의 왼팔에 힘을 집중하였다.

사방에서 솟구치는 화약상자들은 염동력에 의한 것.

매직미사일과 마찬가지로 기초 중의 기초에 해당하는 마법이지만, 보통은 그마저도 가벼운 물건이나 옮기는 선에서 그칠 뿐이다.

8써클의 마나를 활용한 염동력은 그 자체로 일대를 제어하는 수준.

그건 이 영지군에서 오직 코델리아만이 가능한 일이며, 그 또한 약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은사가 만들어준 결과물이었다.

'선생님. 당신이 개화시켜주신 저의 재능……. 결코 허투루 쓰지 않겠습니다.'

그 보은을 표현하고자, 코델리아는 자신의 손에 힘을 주어 제어 하에 놓인 모든 폭약을 하늘 높이 날아올렸다.

드레이크가 그 폭약을 향해 의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자, 2차 사격 개시!!"

-퍼엉!!

관을 타고 쏘아올린 포탄들이, 이윽고 높이 솟아오른 폭약더미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 * *

"다들, 왜……."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에 수놓인 가운데.

해안가에 선 베르디는 인기척을 느끼고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꽃을 등지며 다가온 것은 검은 옷을 걸치고 있는 이들.

불길해보이기도 하나, 그들의 몸에 흐르는 빛은 그들의 마음이 순결함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 섬에 주둔한 성직자들이다.

그중 선두에 선 성직자가 베르디를 마주한 채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왜긴요. 오늘 위령제를 진행하기로 했으니까요."

위령제.

죽은 자의 혼을 기려주는 장례이자 축제로, 제국의 각 지역에선 그 땅에 매장된 이들을 기리고자 성직자들을 대거 대동하고는 한다.

그건 이 섬에 있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

이 해안가에 모인 성직자들은 모두 뒤늦은 위령제를 위해 모인 것이었다.

"베르디는 소식을 못 들으신 건가요?"

"하기야, 언제나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셨으니까요."

"매일 기도도 외딴 곳에서 혼자 하셨고……."

하나같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제들.

그중 누구의 얼굴에도 적의나 두려움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제 주변에 여전히 배교의 상징인 검은 아우라가 존재함에도.

"…다들, 괜찮으신 건가요?"

불안함을 느끼며 되물었다.

해를 입을까 두려운 게 아니다.

그 반대로, 자신의 존재가 그들이 가진 신앙에 해를 끼칠까 걱정이 들었기에.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들 중 누구도 베르디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혼란스러울 수만은 없으니까요."

"뭣보다 이 이상 장례를 늦출 수도 없고요."

부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록 그녀가 가진 '윤회력'이란 교리에 어긋난 힘이지만, 그로부터 비롯된 순수함만큼은 이곳에 있는 그 어느 성직자들보다 고결하니까.

-퍼어엉!

그런 와중에도 하늘에는 연달아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다.

서로 다른 금속반응이 뒤엉키며 만들어지는 불꽃은, 먹이 드리워지기 전의 밤하늘보다도 이 섬을 더욱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을 등에 진 누군가가 베르디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교단에선 죽은 자를 기릴 때엔 하늘에 불꽃을 쏘아 올림으로써 이룬다 하지."

두터운 갑옷을 걸치고 있는 장성.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음에도, 그 위세는 뒤따르는 성기사들 못지않기에 이른다.

레온 아슬란.

제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성기사 가문의 후계자인 그 역시, 이곳에 모인 성직자들과 함께 위령제에 참여하고자 구색을 갖춘 상태였다.

"불꽃은 그 자체로 생명을 상징하는 요소니까. 제국의 위령제는 그 불꽃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며, 기리고자 하는 이들의 영혼이 천당에 도달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지."

턱을 괴며 연이어 터지는 불꽃을 감상하는 레온.

설명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엔 더 없는 만족이 그려져 있었다.

"영지군에서 장례를 할 때엔 불이 붙은 화살이나 대포를 쏘았지만, 이런 식으로 대량의 불꽃을 하늘에 터트리는 광경은 처음 보는군. 그들을 추모하는 데엔 좋다고 생각한다만……."

"좋기는 무슨. 장례라는 건 원래 엄숙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건데, 저렇게 소란스러우면 안 되는 거잖아."

투덜거리며 그 옆으로 따라 나온 것은 동년배의 수녀.

그녀 역시 베르디가 알고 있는 자였다.

"그래도 다들 아직 미련이 남아 있으실 텐데, 이승에서 빨리 떠나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메어리."

베르디가 투덜거리는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레온과 마찬가지로 미성년에 신성력을 각성한 소녀. 자신 같은 반푼이와는 달리 '제대로 된 성직자'였다.

근 몇 달간 제대로 얘기조차 나누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가 신성력을 잃은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할 거라 여겼으니까.

"저기……."

"어떻게 됐어?"

그런 그녀에게 죄책감을 토로하려 했지만, 정작 메어리는 그런 개인적인 감정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질문을 건넸다.

두서를 잘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무엇이, 말인가요?"

"고백 말이야 고백. 그게 아니고서야 이 야밤에 그 녀석을 혼자 배웅할 리가 없잖아?"

"그게 무슨……."

-우우웅!!

의미를 되물으려던 때, 주변의 수행원들이 격하게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얘가 뭘 좀 아네!

-딱 좋은 때였는데 그냥 돌려보내고!

-베르디는 겁쟁이!

하나같이 메어리에게 동조하며 자신을 나무라는 반응.

어쩔 줄 몰라하는 베르디가 대답을 망설이다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녀 역시 고작 18살의 소녀.

제 속내에 대해 한창 부끄러움이 많을 시기다.

"저, 그런 건……."

"안 봐도 뻔하지. 네 성격상 고백이고 뭐고 간에 그냥 어버버 하다가 돌려보냈을 테고."

눈살을 찌푸린 채 다가선 메어리가 베르디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런 식으로 남을 배려하기만 하니까 네가 자기애를 가지질 못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밖에 못하면, 교단에서 널 받아들여줄 날은 평생이 가도 안 찾아 올 거라고."

교단이 자신을 받아들여준다니.

왜 이 소녀는 그런 걸 염두에 두는 것일까?

당장 제 주변에 떠도는 아우라들만 하더라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이거늘.

분명 그렇게 생각했지만…….

"적어도 이 섬에 있는 동안은……. 그렇게 혼자 끙끙 앓지 않아도 되잖아."

메어리는 그 불안을 단호히 부정하고, 그녀 역시 제 곁에 서있을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주변에 있는 신자들도 그를 부정하지 않는다.

고작 100여 명 남짓한 신자들.

그들의 뜻이 교단 전체의 뜻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섬에서만큼은 그들은 자신의 적이라고 할 순 없었다.

적어도 이 섬에서만큼은…….

'정말로…….'

적어도 이 섬에서 만큼은 괜찮은 것일까?

정녕 이제껏 그들을 멀리해 온 자신이, 이제 와서 그들의 곁에 서도 되는 것일까?

그런 갈등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건 분명 그들을 이 자리에 모은 자에게 누를 끼치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가 만들어준 기회가 아닌가.

그가 떠나고 난 자리에 머무르기를 희망했다면…….

이곳에 남은 흔적을 모두 긍정하는 것이, 남아 있는 자들의 역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모두, 위령제를 시작하죠."

이내 손을 맞잡은 그들의 몸에서 하나둘씩 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의 기도가 어우러지며 만들어진 빛은 이윽고 그들을 넘어 모래사장 전체를.

더욱 나아가 바다에 펼쳐진 안개를 걷어낼 기세로 뻗어나갔다.

그 광명이 뻗어가는 곳을 눈으로 쫓는 베르디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제 곁에 선 수행원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

'셰인. 보이시나요?'

이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지만 그래도 빛만큼은…….

자신들이 다다르지 않는 곳에도 전해질 것이다.

'이 섬에 있는 모두, 당신을 잊지 않을 거예요.'

비록 빛일 뿐이지만, 그래도 의미는 전해질 것이다.

그 진실 된 믿음이, 이 순간 그들이 발하는 빛을 더욱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 * *

그리고 셰인은 그 모든 것을 대륙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바다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육지에 다다른 후에도 그 빛은 여전히 그의 시야에 비추고 있었다.

"……허."

안개 너머로도 선명히 보이는 백이 넘는 성직자들의 기도가. 그 위쪽의 창공을 뒤덮고 있는 화려한 불꽃이.

비록 바다 전체에 비하면 한 장소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 방향을 응시하는 이의 두 눈을 채울 정도로 화려한 빛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배웅 한 번 성대하게 해주시네."

발을 디딜 수 있는 땅에서 발하는 신자들의 순수한 빛도,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곳마저 비추는 화려한 색의 불꽃도.

그들이 합심해 만들어내는 빛은, 그가 살며 보았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 모든 것이 이윽고 하나의 의미가 되어, 이 순간 유일한 관중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게…… 내가 이곳에 와서 이룩한 일이다 이건가."

성직자와 학자, 그들을 포함한 군중.

공존하지 못하리라 여긴 이들이 죽은 자들을 추모하며, 환영받을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이의 여정에 무운을 빌어주고 있다.

그런 이들이 만들어낸 풍조에 대중이 잇따르는 광경.

저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사회라 할 수 있고, 저 빛은 그런 사회에 도드라지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한 자각은 이윽고, 이단의 땅에 들어선 소년의 마음속에 한 가지 소명으로 다가왔다.

"……아니, 이룩해낸 게 아니라 이룩해야 할 거겠지."

비극이 있었다.

고향에서도 멀리 떨어진 외진 땅에서, 정체불명의 재해를 극복하지 못한 그들은 끝내 이성을 잃기에 이르렀다.

기댈 수 있는 수단은 오직 신앙 뿐.

새로운 해결책을 들고 왔다 한들, 검증되지 않은 해결책은 또 다른 미지로써 다가와 그들의 두려움을 가증시켰다.

저 섬에 있는 이들은 그런 폐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뒤늦게 목도한 자.

하지만 그들이 자신에게 협력한 건, 결코 자신들의 미래가 그들처럼 되리라고 여겨서만은 아니었다.

갈등과 분쟁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결국엔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끝내 공존을 택하게 되었다.

그것이 이 외딴 섬에까지 와서 찾아낸 '올바름'이리라.

그 올바름이 머지않아 대륙에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들은 저 섬을 유일하게 떠난 자신에게 그 꿈을 맡기는 것이다.

그 무게가 이 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있거늘…….

그럼에도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 순간이 지나고서도 제 여정에 끝없이 상기되고, 그렇게 반복될…….

흔히 '감동'이라고 정의될 감정이, 이 순간을 뇌리에 각인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카르륵!

그 감상이 주변에서 밀려드는 기척에 죽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저 한창 좋을 때에 찾아왔기에 껄끄러울 뿐이지.

"……참 좋을 때에 매너 없이 쳐들어오고 지랄이네."

이윽고 광명이 자리한 섬으로부터 등을 돌린 셰인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조용히 마주하였다.

어둠 속에 도사린 그림자.

그리고 그런 어둠 속에서도 붉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

드문드문 들려오는 울음소리엔 분명 식탐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물.'

이 벽외지역에 자리한 위험 중 하나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순간, 셰인은 자신이 자처한 일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가 후기]

다음 세 편은 셰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블레이즈 영지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번외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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