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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18화 (118/255)

의무병의 환생 118화

-카르륵.

귀를 간질이는 소음에 일깨워지는 정신.

그렇게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자각한 건 온몸에 들쑤셔오는 고통이었다.

'…역시 돌을 베개로 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나.'

셰인이 뒤통수에 기대어진 돌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필 이전 날 야영에서 습격을 당해 침낭을 잃어버린 상태.

급한 대로 배낭이라도 베개로 쓸까 생각도 들었지만, 앞으로 몇 개월은 이어질 여정인 만큼 배낭의 손상은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칫 머리를 기대었다 찢어지기라도 하면 짐을 가져가는 데에도 애를 먹을 터.

목숨보다도 소중한 자료가 들어있는 만큼, 영지로 돌아갈 때까진 취급에 주의를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보다 잠자리가 사나워서 그런가, 뭔가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카르륵, 키르륵.

동굴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그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니, 햇빛을 등지고 있는 거대한 살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원형의 입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촉수들…….

아니, 일단은 혓바닥일까?

그 중 하나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이 꼭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셰인이 쓰게 웃으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손을 들어올렸다.

"안녕 친구들. 오늘도 좋은 아침이네~"

-시캬아악!

상쾌한 햇빛과 그렇지 못한 문안인사.

마경에서의 아침은 늘 그런 식이었다.

* * *

이스타 섬에 머무른 주둔자들의 주 목적은 심층부의 조사.

당연히 섬과 인접한 지역에 대한 생태조사도 이루어졌지만, 정작 셰인은 그 인근지대를 벗어난 지 벌써 사흘은 넘은 상태였다.

그런 마당에 당장 쓸모 있는 정보라고 해봐야 마물들이 들끓는다는 것 뿐.

그 정도는 대륙에 상륙한 첫날부터 질리도록 실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참나, 이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나?"

심층부에 들어선 지도 언 보름째.

고원지대에서의 도주를 반복한 셰인은, 이윽고 산지의 절벽을 오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크르륵, 카르륵!

절벽 밑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마물들이 내지르는 것.

짐승을 베이스로 하나, 그 외엔 특정한 형체도 없이 살아움직이는 존재들을 무작정 쫓아다니는 흉물들이었다.

심지어 생물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공포와 생존본능도 결여된 상태.

사냥한다고  금품과 경험치가 나오는 것도 아닌 만큼, 떼를 짓는 마물을 상대하는 건 언제 어느 때에나 손해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부분 몸이 기형이라, 벽을 오를 수 있는 놈들이 한정되어 있다는 건가.'

대부분은 다리나 겨우 달려있으며, 그마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기어 다니는 놈도 있다.

흡수한 대로 성장을 빠르게 이루지만, 그 성장 자체가 유전자를 베이스로 한 진화가 아닌'자발적 돌연변이'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

그로 인해 자칫 진화가 잘못되면 움직이지도 못해 굶어 죽는 경우도 허다하며.

그런 식으로나마 개체수가 조절되어 야만족이나 야수 등,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만한 생태가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정작 이 고원을 누비는 동안엔 사람 그림자는 코빼기도 못 보았지만…….'

-콰강!

배후에서 돌이 무너지는 소리.

쯧, 혀를 찬 셰인이 배후로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바위를 가르며 나타난 건 신음을 흘리는 사람…….

아니, 그저 형태만 유사할 뿐이다.

검은 피부나 붉은 눈동자는 마찬가지며, 뭣보다 체격은 셰인보다 머리 둘은 더 크다.

체중만 본다면 두 배는 더 많으리라.

-쿠오오…….

"이야, 근육이 참 대단하시네~ 양배추 좀 많이 드셨나봐?"

-쿠오아아아아!!

비아냥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곧바로 마물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두른 순간, 셰인이 그 타이밍에 맞춰 근처의 산등성이로 뛰어올랐다.

상당히 빠르지만 덩치가 있는 만큼 움직임은 훤히 보인다.

피하는 것은 물론 따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

'문제는 저 녀석의 힘이 주변에까지 미친다는 거겠지.'

쿠르릉.

산등성이를 오르며 피하는 중, 진동음과 함께 돌조각이 경사를 구르기 시작했다.

산의 지반이 난동을 버티지 못해 균열이 가해진 것.

자칫 산사태라도 일어나면 이쪽도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산을 내려가면 마물들이 몰려들 테고…….'

이내 경사를 벗어난 셰인이 산 중턱의 구릉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 직후 절벽을 뛰어올라 구릉지에 도달한 마물.

그는 지친 기색도 없이 콧방귀를 뀌며, 당장이라도 셰인에게 달려들 기세로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짐승 같네.'

마치 소나 말처럼.

겉보기와 달리 여러 생물의 유전자가 합쳐진 듯 하지만, 그건 오히려 셰인에게 나쁘지 않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괜히 인간과 같은 모습이라면 손을 쓰기도 찝찝해질 테니.

-쿠궁!

짊어진 배낭을 멀리 던졌을 무렵 질주해오는 마물.

그를 앞둔 셰인이 호흡을 다잡으며 제 몸을 회전시켰다.

-휘리릭!

돌진을 위해 세워진 머리를 손으로 흘려보내고, 제 옆을 지나치는 마물의 빈틈을 노리며 손날을 휘두른다.

절묘한 기습은 정확히 목을 절단하여 머리와 목을 분리시켰다.

본래라면 거기서 끝이 났어야 할 전투였다.

"쿠, 르르…. 크……."

바닥에 쓰러진 몸체.

하지만 머리는 살아있는 것 마냥 일정치 않은 이빨들을 억지로 딱딱거리고, 그러면서도 붉은 눈동자는 정확히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허, 이건 진짜 걸작이네."

-쿠아아, 하아…….

몸체와 떨어져 있는데도 숨소리를 내기까지.

셰인이 쓰게 웃으며 마물의 머리통을 걷어차 절벽 아래로 추락시켰다.

"네가 그래도 사람이나 짐승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내 눈엔 네가 생물로 안 보이네."

성장조차도 매 순간의 돌연변이에 기대는 녀석들이거늘, 그런 녀석들을 진화론을 숭배하는 학자가 어찌 생물이라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반대로 그런 녀석들이 천지인 장소는, 어떤 의미에선 전장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치 못해 손을 쓰더라도 찝찝함을 느낄 일은 없다는 뜻일 테니까.

* * *

전생에서 야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대륙은 넓고, 그런 광활한 대지에서 사람의 손이 닿은 곳은 무척이나 적었으니…….

당연히 파병을 나가면 문명의 흔적이 닿지 않는 곳들이 많고, 그런 장소에 고립되었을 때엔 산이나 폐허 한가운데에 몸을 숨기기도 하였다.

영지군이 아닌 전생의 이야기였다. 블레이즈는 기본적으로 '방위군'이기 때문에, 거점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손에 꼽았으니까.

'그때에는 부하들이랑 함께 있었지.'

항상 시끄러운 부대였다.

하나 같이 성깔이 있는 녀석들이었기에, 그들이 가는 곳엔 언제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지를 않았었다.

그러다 매복 중에 적군에게 들킬까 훈계를 하는 게 일상이었거늘.

'지금은 적대했던 후손들을 위해 정보를 전달하러 가야 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네.'

그 또한 달게 받아들여야 할 처지겠지.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배낭의 끈을 고쳐 쥐고, 제 앞에 있는 숲을 올려다보았다.

메마른데다 마물들이 들끓는 고원에 비하면 물과 식량도 충분할 터.

야영이 전제되는 상황에 숲을 발견한 건 충분히 긍정적으로 여길 일일 것이다.

'딱히 오염이 없는 걸로 봐선 마물들도 접근하지 않는 것 같고…….'

마물들은 식물을 흡수할 수 없기에 숲에선 활동이 어려운 편이었던가?

그 또한 생존에 용이한 점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마물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위험한 포식자들이 머무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마물보다 더한, 이제껏 만나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생물을 만날 가능성도 있다.

'가령 드래곤이라거나…….'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신화속의 존재.

셰인이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드래곤은 무슨, 애초에 존재부터가 진화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놈인데."

신화 속에서 등장하며 온갖 마법에 통달하고, 한낱 인간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지고의 존재.

하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도 그 존재를 직접 본 적이 없으며, 기껏 증거라고 들먹이는 것이 땅에 묻혀있는 거대한 유해들이다.

대개 200년도 전에 '공룡의 화석'이라고 밝혀진 뼈들 말이다.

'물론 진화론을 부정하는 교단의 입장에선 드래곤도 경외의 대상 중 하나겠지만……. 이런 속내를 드러내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겠지.'

뭐가 됐건 당장 중요한 건 드래곤은 몰라도, 그에 준하는 위험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현재의 목적이 승리가 아닌 생존인 만큼, 싸워서 득이 될 게 없다면 도망치는 게 상책일 것이다.

-끼룩끼룩. 찌르르르.

숲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들려오는 새와 벌레의 울음소리.

그에 귀를 기울이는 와중에도 두 눈은 주변을 살피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짐승들이 좀 보이는 것 같지만…….'

초식동물들은 기척을 느끼고 달아난 지 오래.

수풀 사이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시선은 아마 포식자들이겠지만, 그 중 누구도 셰인에게 직접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아무리 먹이사슬의 상위권에 속한다 한들, 그들 역시 목숨 귀한 줄은 아는 상태.

습격을 하더라도 신중히 접근할 테니, 이쪽에서 섣불리 행동하지 않으면 대치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건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셰인에겐 무척이나 환영할 일이었다.

'보존식이 너무 많으면 짐이 많아지니 이동이 어려워지겠지. 사냥을 하는 때는 당장 끼니를 때울 거리가 없을 때로 미뤄도 될 거야.'

숲에 들어온 후 수 시간 뒤.

셰인은 수풀사이를 누비던 중 에벌레를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크기부터가 제 손바닥 만한 수준.

그런 녀석이 손에 잡힌 채 꿈틀대는 광경은 혐오 그 자체라 할 수 있겠지만, 정작 벌레를 내려다보는 셰인의 얼굴에 그려진 건 반가움이었다.

"마침 열량이 필요한 참에 잘 됐네, 좋은 단백질 공급원을 얻었어."

에벌레는 변태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며, 이 과정 동안 아무런 섭취도 하지 않기에 대량의 양분을 축적하게 된다.

동일한 무게라 치면 돼지나 소보다 열량이 높을 정도.

성충이 되기 전의 벌레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보양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 먹으면 섭섭하니 버섯도 캐고…….'

이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셰인이, 각 재료를 나무 꼬챙이에 찔러 넣은 후 장작에 불을 지폈다.

감염을 우려해 속까지 익도록.

그렇게 익힌 것들을 베어 물었을 때에 느낀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썩은 달걀을 삶아 먹는 기분이군."

물론 먹으려고 하면 못 먹을 건 없지만, 그 역시 미각이 있는 인간.

기회가 되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몸이다.

"소금이라도 치면 좀 먹을 만 해지겠지."

곧 셰인이 배낭에서 소금통을 꺼내고, 그것을 구워낸 버섯과 벌레에 솔솔 뿌려대었다.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조미료.

소금에 함유된 염분은 체내의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시켜주고, 신체 내의 삼투압이 필요한 모든 부분……. 이를테면 혈액순환 등엔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염분이 부족하면 어지럼증이나 빈혈, 무기력증이 동반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

간혹 저염식이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지만, 하루에 필요한 나트륨이 공급되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이다.

'뭐, 당장은 그런 영양적인 것보단 식욕촉진이 더 와닿고 있지만.'

소금이야 조미료에 해당하는 만큼 용량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그렇기에 몇 개월 간 먹을 양은 충분히 챙겨온 상태다.

그러니 문제로 삼아야 할 건 식량을 어떻게 구하고 먹을지가 아니라, 무엇을 먹고 거를지를 선별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꾸르륵.

"……아, 이런."

식사 후 한 나절이 지났을 무렵 느껴지는 복통.

아마도 이전에 먹었던 버섯에 독이 들어있던 듯 하였다.

입안에 넣었을 때 마비증세가 심하지 않은 걸로 봐선 탈진으로 끝나겠지만, 그것도 장기전이 전제되는 야생에선 심각히 여겨질 수 있다.

"…뭐, 괜찮겠지. 주님의 가호가 함께하는데."

그럼에도 셰인은 그 증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의 그는 신성력 보유자.

서서히 몸을 회복시키는 그 힘은, 독처럼 몸을 차차 붕괴시키는 위험조차도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물론 해로운 성분의 제거로 이루어지는 만큼 면역력을 키우진 못하겠지만, 애초에 상시로 신성력이 적용되는 자에겐 면역력을 논하는 게 우스운 일일 것이다.

'정식 성직자들에 비해 한참 모자란 수준이라도, 야생의 독버섯 정도는 그냥 먹어도 된다는 건가.'

어째서 교단 사람들이 그렇게 신성력에 미쳐있는지, 셰인은 이 야생에서의 여정을 통해 확실히 체감해가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그 힘을 늘리고 싶다는 욕심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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