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19화
숲에서 보내는 나흘 차의 밤.
이미 숲의 심층부라 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지만, 그 동안은 고원에서 지낼 때에 비해 위험이라고 할 건 거의 찾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미지를 상대할 바에야 다른 사냥감을 물색한다고 할까.
그 덕에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 역시 편히 진행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겠지."
랜턴의 불빛만이 비추는 동굴의 내부.
셰인은 그 안에서 이제껏 거쳐온 곳들을 바탕으로 한 일지를 적어가고 있었다.
제국측 사람 중엔 이제껏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지역들.
그러한 곳을 두 발로 거닐며 모은 자료는, 추후 영지군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숲은 고원지대와 달리 마물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음……. 서바이벌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얼추 생존도 가능하다. 단, 신성력 보유자가 함께 하는 편이 독에 대한 위험이 적다…….'
마지막으로 자료를 대강 훑어본 셰인이 노트를 배낭에 집어넣고, 기지개를 피며 굳어진 몸을 풀어갔다.
"좋아, 이제 할 일도 끝났으니 슬슬 시작해볼까?"
밤이기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
보통은 그 시간을 빌어 잠을 자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현재 셰인은 신성력 덕에 피로와 졸음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성직자들은 수면시간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편이었지.'
매일 이른 아침마다 기도실에 있던 사제들.
처음에는 그저 성실하다 싶었지만, 애초에 잠이란 몸의 피로와 뇌의 손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회복이 주 목적인 만큼, 수면시간을 신성력으로 줄일 수 있는 것도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면시간이 줄어든 만큼 하루에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봐도 되겠지.'
지금부터 행할 '수행'은 그 덕에 생겨난 여유를 빌어 행하는 것.
마침 들어선 숲에도 위험이라 할 건 없으니, 긴 시간을 잡고 명상을 하기에도 적절하리라.
'자, 집중하자.'
곧 셰인이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양손을 모아 집중을 시도했다.
호흡과 함께 체내에서 순환을 이루는 마나.
그 감각은 혈관단위까지도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유년기부터 행했던 명상과 더불어, 라인하르트 가문에 신세를 지는 중에 배웠던 단련법이 더해진 결과.
그로 인해 도달한 경지는 3써클로, 성인 이전이라면 그럭저럭 천재소리를 들었을 경지다.
섬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섬에 있는 동안 4써클로 상승했어.'
4써클.
제국에선 이름난 강자의 반열로 여겨질 경지로, 그 경지에 성인 이전에 도달하는 경우는 제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다.
당장 떠오르는 건 마탑의 수장인 아제롯테와 라인하르트 공작 정도일까?
'그래, 질리언 그 녀석도 블레이즈 영지에서 4써클로 상승했다 했었지.'
현재 질리언은 전생의 자신과 같은 6써클.
마나 운용에 더욱이 통달한 마도사들을 제외하면, 무예를 다루는 자들 중에선 정점에 올랐다 봐도 무방한 경지다.
물론 써클이 전부가 아니라곤 하나 강함에 기여를 하는 건 분명한 사실.
각 써클간의 격차가 배수가 아닌 '곱절'로 비유되는 만큼, 성인 이전에 4써클로 성장한 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이 몸은 다른 가문 출생과 비교하면 재능이 떨어지는 편이라는 것도…….'
귀족출생인 만큼 평민보다 우월하긴 하겠지만, 셰인이 속한 골드리안 가문은 마법이나 검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은 가문이다.
즉 경지 개방의 가속화가 이루어질 선천적인 요인은 전무하다는 것.
그럼에도 평균을 넘어선 속도로 경지가 해방되었다면, 필시 그에 따른 이유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혈도개방인가.'
혈도개방.
마나가 흐르는 길인 혈도를 조작하여, 써클의 경지를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도핑'에 가까운 기술.
스테로이드를 사용할 때처럼 일시적이고 폭발적인 증가효과를 낼 뿐, 사실상 마나회로와 신체 양측에 큰 무리가 가해지는 걸 전제로 한다.
'그리고 마나회로는 근육으로 비유되기도 하지. 쓰면 쓸수록 단단해지는 식으로…….'
물론 마법사들도 마나회로가 특정 혈관이라는 걸 알지 못하지만, 인류는 수천 년 간의 기록과 전승을 통해 후세에게 지식을 전파해온 종족이다.
명상과 마법 운용 등. 경지상승에 필요한 것이 꾸준한 단련이라는 건 수천 년에 걸쳐 증명된 상태.
마나회로에 해당하는 혈관 역시, 근육처럼 자극을 받으며 단련된다는 건 아주 허황된 이야기라곤 할 수 없다.
'그게 사실인가 아닌가를 알기 위해선 시험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은 썩 마뜩치 않은 게 문제군.'
그야 혈도개방은 큰 리스크가 동반되는 기술이니까.
3써클이었을 적엔 4써클만 되어도 당분간 근육통에 시달려야 하고, 5써클만 되어도 일시적인 경지의 하락을. 6써클을 1분 이상 유지하면 뒤가 없다는 식으로 싸움에 임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감내하며 시험하기엔 야생이란 너무나도 가혹하지 않은가?
'하다못해 그 페널티를 줄이는 법이라도 안다면……. 음? 잠깐만.'
문득 턱을 괴던 셰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나 지금 신성력 쓸 수 있지 않나?"
그것도 독버섯 정도는 먹어도 별 탈이 없을 정도다.
독과 마찬가지로 혈도 개방에 뒤따라오는 부담 역시, 상시적으로 발동되는 재생력에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단 것이다.
'그렇게 리스크가 적어졌다면, 일단 1단계 상승 정도는…….'
후으.
호흡을 다스린 셰인이 조심스레 자신의 쇄골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5써클의 혈도가 자리한 장소.
그 부분을 찌르자 체내에 자연적으로 모이는 마나의 양이 크게 증가하고, 몸이 한층 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크윽……."
마력회로를 타고 흐르는 마나가 온몸을 들쑤시기 시작한다.
3써클일 때에 상승시킨 거에 비하면 부담은 덜하나, 당초 써클이란 각 단계간의 격차가 곱절로 벌어진다 평해질 정도다.
4써클에서 5써클로 상승시켰을 때의 부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
그리고 지금 셰인이 하고자 하는 건 무작정 힘을 해방시키는 게 아닌, 그 마나를 다스리며 경지상승의 윤곽을 잡는 것이었다.
그건 그 자체로 큰 집중과 안정을 요구하는 작업.
조금의 흐트러짐조차도 큰 반동으로 덮쳐올 것이다.
"커헉!!"
이윽고 벅차오르는 호흡을 버티지 못한 셰인이 자리에 몸을 고꾸라트렸다.
혈액의 순환이 빨라진 만큼 머리에 도는 혈류 역시 증가하고, 그로 인해 대량의 산소를 요구한 폐 역시 자극이 심하게 가해진 것.
셰인의 마나운용 루틴이 호흡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호흡의 지장은 곧 운용의 오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예상했던 것보다 반동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건가.'
스읍, 하아.
숨을 내뱉은 셰인이 제 목에 손을 얹었다.
본래라면 몇 분은 더 숨을 다스려야겠지만, 수십 초 만에 호흡은 안정을 이루게 되었다.
몸 곳곳의 들쑤셨던 고통도 마찬가지.
예상대로 자신이 보유한 신성력이, 미약하게나마 혈도개방의 반동을 약화시켜준 것이다.
'상시적인 육체파괴가 신성력에 의해 약화된다……. 성기사들이 한계 이상의 근력을 거리낌 없이 쓰는 것도 이런 특성 덕이었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지금 노려야 하는 건 한계의 돌파가 아닌 역량의 증가.
부담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언정, 수행 중에 생기는 호흡곤란을 어찌 하지 못하면 진척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행을 하려면 차라리 신성력을 먼저 기르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건가.'
신성력의 양이 증가하면 호흡곤란의 부담도 줄어들 터.
그렇게 결론을 내린 셰인은 마나의 운용을 중단하고, 먼저 신성력을 증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하였다.
하지만…….
"……망할."
랜턴의 불빛마저 완전히 사그라지고, 이윽고 나무동굴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온 시간.
그러한 장소를 밝히는 것은 오직 손아귀의 미미한 빛뿐이었다.
그마저도 집중을 끊으면 바로 사그라질 만큼 초라하기 그지없는 상태.
집중한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신성력은 이전에 비해 티끌만치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애초에 빛이라는 건 근육이나 써클과 달리 단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물며 셰인은 학자다.
신성력이 어떤 이유로 만들어지고, 그 힘을 내려주는 것이 누구인지. 그 자세한 힘의 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식보다도 신앙을 우선으로 둘 수 없는 만큼, 순수한 믿음을 가지는 데에 '왜?'라는 의문에 지속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학자와 성직자가 결코 상종할 수 없다 여겨지는 이유다.
학자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탐구하는 존재고, 성직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의심해선 안 될 존재이니.
'괜히 교단 사람들이 인간의 지식은 미천하다 표현한 게 아니라는 건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거머쥘 수 없고,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힘이니까.
하지만 셰인은 여전히 학자이길 희망하는 상태.
그 마음가짐을 간직하되, 기껏 손에 넣은 신성력을 허투루 날리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기적의 가능성을 가르쳐주었던 소녀처럼.
'베르디가 다루었던 그 힘은…. 윤회력이라고 했던가?'
윤회력(輪廻力).
신성력을 기반으로 하나, 그 신성력을 '응용하여'활용한 결과물.
그렇게 만들어진 힘은 대상 사물의 시간을 되돌리고, 어느 한 지점의 상황을 끝없이 반복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언데드란 그런 윤회력을 통해 '죽기 직전의 기억'을 반복시켜 생존본능만이 남게 된 존재.
그리고 베르디는 그 힘을 이용해 언데드가 아닌 존재를 구현하는 데에 성공한 자였다.
'만약의 존재.'
만약 그러한 사건을 겪지 않았다면 그 피해자들은 분명 순수했으리라. 그런 강한 믿음에서부터 파생된 이들.
어디까지나 상상이 구체화되어 의지를 가진 것에 불과하나, 그런 구체화역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한 힘이 '신이 아닌 존재를 믿는 것'을 통해서.
'요컨대 신성력이란 딱히 신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강력히 믿기만 한다면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실제로 셰인 역시 기적이란 걸 긍정하긴 했지만, 그것이 신에 대한 숭배로 이어졌다곤 할 수 없는 상태다.
그저 믿음을 이끌어내기 쉬운 게 신을 섬기는 거란 것만을 알 뿐.
반대로 그렇게 신앙을 제외한 모든 걸 내려놓지 않는다면, 인간은 신성력을 가질 정도의 믿음을 키우지 못한단 것이다.
'그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베르디의 믿음은 정말 고결하다는 뜻이 되겠지만……. 그걸 내가 따라할 수 있냐가 또 관건이란 거지.'
원리를 이해한다 해도 그 대상이 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바뀌었을 뿐.
그리고 그 방식은 오히려 종교라는 정석을 벗어났기에 더욱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구석이 더욱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오히려 나에겐 이 쪽을 지향하는 게 더 맞을 테니까.'
애초에 셰인이 추구하는 건 신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
당연히 교리를 숭상하는 정석을 지향할 순 없으며, 사도를 걷기로 했다면 어떤 분야라도 정석을 마다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기에 셰인은 신성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집중에, 이제껏 되새겨왔던 교리가 아닌 다른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이제까지 거쳐온 삶을 되짚고, 더욱 나아가 그 이전의 삶을 떠올리면서…….
'피, 화약, 시체, 그리고 비명소리…….'
그래, 이전 생에선 그런 게 전부였지.
회고해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종교가 필요한 시대였지만, 그런 끔찍한 시대에도 셰인은 신을 숭배하지 않았다.
죽는 순간에도 마찬가지.
그 당시의 셰인은 마주해본 적도 없는 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직접 만나고, 가르침을 받기 까지 했던 사람.
더욱 나아가 자신을 의사의 길로 이끌어주었던…….
'……스승님?'
그 존재를 떠올린 순간, 손아귀의 빛이 보다 선명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 것 역시 그 순간.
-부스럭.
눈을 부릅뜬 셰인의 양손에 마나가 벼려졌다.
'포식자? 아니면 야만족?'
숲의 특성상 마물이 들어올 가능성은 적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벽외지역의 심층부.
당장의 위험이 없어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이었으니까.
"우우우……."
수풀소리의 뒤를 이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짐승 특유의 낮은 중저음…….
그와 함께 느껴지는 피비린내에 적대감이 가증되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무언가를 죽였거나, 혹은 사투를 벌이고 왔다는 것이다.
"아우우……."
그 울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며, 달빛을 등지며 발생하는 그림자가 나무동굴의 밖에 드러났다.
숨을 굳힌 셰인이 제 두 다리에 마나를 모았다.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대로 달려들기 위해.
-털썩.
하지만 두 다리의 마나가 기폭 되기도 전, 이곳에 다가온 자의 몸이 동굴 앞에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지?
셰인이 두 다리의 마나를 풀고, 동굴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에도 손아귀엔 신성력이 감돌고 있었다.
그 빛을 통해 비춰진 것은 하얀 털을 지닌 짐승…….
-……케흑.
피칠갑이 된 짐승이, 숨을 몰아쉬며 각혈을 내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