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20화
개처럼 툭 튀어나온 입에 쫑긋 솟아오른 귀.
순간 늑대인가 싶었지만 인상이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면이 강하다.
'늑대가 아니라 여우인가.'
아니, 보통의 여우보다도 훨씬 크다.
네 발로 설 수만 있다면 제 허리께까지 올 정도.
하지만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건, 보통의 여우에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부위가 자라나 있단 것이었다.
'……뿔?'
이마에 나선형을 그리듯 돋아난 뿔을 지닌 하얀 여우.
눈앞의 존재를 정의하자면 그런 생물이 될 것이다.
'다른 포식자에게 습격을 당한 건가?'
손을 거둔 셰인이 부상당한 여우의 몸을 살펴보았다.
여우는 호랑이나 곰 같은 최상위포식자라곤 할 수 없지만, 이 여우는 덩치만 보더라도 그들과 견줄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크기보다도 더 눈에 띠는 것은 몸 곳곳에 난 상처들.
"……총상?"
기시감.
그것이 여우의 상처로부터 느껴지는 것이었다.
상처가 생긴 지 며칠은 족히 지난 듯 아물기 시작했지만, 총상의 문제는 외상이 아닌 내부이다.
회전하며 나아가는 총알의 특성상 몸의 구조를 꼬아버리고, 그러한 상태로 수복이 일어나면 오히려 신체적인 장애가 일어날 위험이 커지니까.
특히 안에 탄약이 박혀있다면 파상풍으로 번질 위험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총이라니. 이 심층부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벽외지역엔 야만족은 물론이고 반란군, 망명자, 사교도 등, 엄연히 인간으로 분류되는 자들도 존재하고 있으니까.
애초에 영지군에서 쓰는 총기도 '이단의 기술'을 도입한 것이지 않은가?
그저 몰랐을 뿐이지, 그런 병기를 심층부의 주민이 쓴다고 해서 결코 이상할 건 없다.
의외인 건 그 흔적이 발견된 게 문명의 흔적이 없는 숲이라는 것 뿐.
-……우우.
마저 상태를 살피려는 것도 잠시.
얼굴에 손을 얹었을 무렵, 여우의 눈이 게슴츠레 뜨여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서 나오는 빛에 눈이 부셔서일까?
작게 울음소리를 흘린 여우가 입을 벌리고, 제 혓바닥으로 셰인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에 느껴지는 건 침이 아닌 혈액의 끈적함.
외상은 물론 내상을 심하게 입어 몇 번이고 각혈을 토해냈단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머지않아 목숨을 잃으리라.
"…망할. 동물은 전공이 아닌데."
셰인이 제 손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이전에 잠깐 밝아졌다고 여겼던 손아귀가 지금은 다시 희미해져 있었다.
아주 조금 더 강해진 것 같지만, 확신은 들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빛.
하지만 그런 빛이라도 치료하는 데엔 문제는 없을 터.
이윽고 셰인이 그 빛을 여우에게 뻗으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꼬마야. 내가 이 힘에 관심이 없었다면 넌 내일 아침밥이 되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비정하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말이었다.
그저 가벼운 동정만으로 살리기에, 지금 발을 들인 마경은 알 수 없는 미지로 똘똘 뭉쳐져 있었으니까.
* * *
차갑고, 아프다.
그녀가 제 고향을 벗어났을 때에 느낀 건 오롯이 그것뿐이었지만, 숲에 자리한 포식자들은 그런 공포를 헤아리지 않는 법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건 자신의 주린 배를 채워줄 무언가였고, 그런 마당에 나타난 그녀는 무척이나 탐스러운 과실처럼 여겨졌을 테니까.
죽고 싶지 않기에 처절히 싸웠다.
이제껏 제대로 휘둘러본 적 없는 발톱으로, 그들보다도 더 큰 몸집으로나마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그 자리에서 도망치길 반복했다.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처음에는 그 고통을 딛고 도망쳐야 한다 생각했거늘, 그 생각도 몇 밤이 지나니 서서히 달라지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쉬고 싶어.'
그냥 모든 걸 포기하자고.
그렇게 수풀을 묫자리 삼아 몸을 뉘이려던 때, 문득 나아가는 길목에 자그마한 빛이 비춰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달빛…….
그에 의한 호수의 반사광 같은 게 아니었다.
이 밤중에 그 외에 빛이 날 요인이 존재하던가?
흐릿한 의식으로나마 그런 이질감을 느꼈지만, 그런 와중에도 미약한 익숙함 역시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어머니.'
모두가 그렇게 부르고, 그녀 역시 그렇게 불렀던 존재.
자신보다도 더 크고,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언제 어느 때에나 밝은 모습으로 모든 형제들을 맞이해준 자.
그런 어머니의 곁에 있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만 있다면 언제 어느 때에나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한 확신이.
-투타타타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맹렬한 소음과 함께 먼지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
그래도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다.
그런 열망만이 삶의 의지를 잃은 그녀의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 * *
-타닥, 타닥.
나무가 타들어가는 소리.
숲에서는 그다지 많이 들을 소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만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 귀가 쫑긋 세워지고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눈에 들어온 것은 뿌리박힌 나무가 타들어가는…….
…아니, 그 때와는 다르다.
그저 작게 꺾어놓은 나무에만 불을 붙여두었을 뿐.
어느 종족이 '모닥불'이라 정의하는 물건이다.
-……우우.
동굴 밖으로 머리를 내미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하늘이 비춰졌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나뭇잎.
그 사이로 비추다 사라지는 별빛, 그리고 달.
하지만 의식을 잃기 전에 보았던 것과 미묘하게 다르다.
이 숲에서 평생을 보내온 그녀조차도, 저 달이라는 존재가 뜰 때마다 빛의 세기가 달라진다는 건 파악하는 상태였다.
그 날 이후로 대략 세 밤 정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따져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으르르르…….
그녀가 제 배후에 자리한 이를 보며 신음을 흘렸다.
자신과 같은 곳에서 모닥불을 쬐며 잠에 들어있는, 한 인간을 향한 적의였다.
인간…….
이 숲에 돌연히 무리를 짓고 나타나, 동족들을 학살하고 제 고향을 무너트린 존재.
복장도 외형도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런 차이는 전혀 관계가 없다.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자가 인간이란 것.
그들이 습격을 해온 후 고향을 벗어났기에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아니, 분명히 많은 형제들이 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도.
-으르르……!
그 순간을 떠올리는 그녀의 적의가 더욱 거세져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잠들어있지만, 그를 마주함으로써 곤두세워지는 살의를 차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제껏 무언가를 직접 찢어 죽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참을 수가 없다.
그러니 저 자의 피로 동족들의 숙원을 해소시켜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 인간.'
가까이에 접근했을 때에 느껴지는 두통.
그건 제 이마에 돋아난 '그릇'이 눈앞의 존재에게 반응하며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 그릇이 반응하는 경우는 딱 하나. 어머니의 곁에 있었을 때뿐이었다.
'……이 인간에게서 어머니와 같은 힘이 느껴진다.'
어머니와 비교하면 정말 티끌만한 수준이지만, 그렇게나마 존재하는 건 결코 착각이 아니다.
이 존재는 어머니와 같은 힘을 다루고 있다.
그 힘을 다룰 수 있다면, 이전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자신이 이렇게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자가 어머니와 같은 힘으로 자신을 치료해주었다면.'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이 자신을 치료해준 것일까?
그들은 자신의 고향에 있는 모든 걸 불태워버렸다.
머무르던 잠자리도, 동족들도. 그리고 어머니 역시도.
'하지만……. 모든 형제가 같진 않았지.'
그래, 동족들도 모두가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지 않던가?
그 중에는 남들보다 더 믿음직하고 사냥을 잘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문제를 숱하게 일으켜 추방되기까지 한 자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 자 역시 그 때 고향을 습격했던 자들과는 다른 인간이다.
이 자가 자신을 치료해준 것도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란 것이다.
'……왜 날 살려준 걸까?'
의문이 느껴졌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한 채 사그라지고 말았다.
그는 어머니와 같은 힘을 다루는 자.
신뢰할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
결론을 내린 그녀가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이내 나무동굴의 밖으로 빠져나갔다.
정작 떠나가는 모습을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이 녀석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냥 떠나버리네."
역시 짐승은 짐승이라는 건가.
감고 있던 눈을 뜬 셰인이 뒷목을 매만지다 코웃음을 터트렸다.
"하기야, 나도 고맙다는 인사 들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짐승이 목을 노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줘야겠지."
목을 쥐고 있던 손을 슬며시 손으로 끌어오는 셰인.
그 안에 자리한 빛은 여전히 미미하기 그지없는 양이었지만, 그런 힘으로나마 며칠을 보듬어주니 걸어서 나갈 정도로 회복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작 사흘 만에 움직일 정도라니……. 역시 터무니없는 치유력이군.'
애초에 수술은 신체의 장애를 바로잡는 데에, 약은 체내 분비물이 충당하기 어려운 성분을 보충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당연히 양쪽 모두 인간 본인의'자연치유력'에 의존하는 만큼, 빛을 쐬는 즉시 치유가 적용되는 신성력에 비해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식 성직자보다 훨씬 모자란데 이 정도인가.'
만약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자였다면 하루 채 안 걸렸겠지만, 성직자가 아닌 자에겐 이만한 힘조차도 터무니없다 여길 수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근 사흘 동안 신성력이 증대할 여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스승님을 떠올렸을 때에 뭔가 감을 잡았던 것 같은데….'
신성력이 우상숭배에서 비롯되었다곤 하지만, 셰인에게 있어서 스승은 신 적인 존재라고 할 만한 자가 못 되는 상태였다.
그저 남들보다도 특별한 정도일 뿐.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 역시, 신이 아닌 인간에게 느끼는 범주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복잡하군.'
사흘간 여우를 대상으로 여러모로 시험해봤지만, 결국엔 미약한 힘으로나마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다는 걸 안 게 고작이었다.
그 힘을 더 증대시키는 건 나중을 기약해야 하리라.
그렇게 판단을 내린 셰인이 쑤셔오는 골을 움켜쥐며 벽에 등을 기대었다.
"모르겠다,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지 뭐."
그렇게 셰인은 늘 그렇듯 상반신을 세운 채로 잠에 들었다.
밤귀야 밝은 편이고, 신성력도 있으니 선잠을 자더라도 피로는 그리 크게 쌓이지 않을 터.
그렇게 별 다른 대처없이 잠에 드는 가운데, 어느 순간 동굴 밖에서부터 희미한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토도독.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셰인이 즉시 눈을 뜨며 동굴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 들어온 건 새벽녘의 햇살을 등지고 있는 하얀 털의 여우.
그 자의 발치에는 날짐승이나 들짐승 등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
분명 이전에 떠났다고 여겼던 여우가 다시 제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사냥해온 것들과 함께.
"…설마 나 먹으라고 가져온 거야?"
-캉!
여우가 기세 좋게 울부짖었다.
사흘 전만 해도 다 죽어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차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