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22화
"……이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카우!
콘이 울부짖으며 마저 셰인의 소매를 당겼다.
몸체에서 비롯된 힘이 상당하다.
마나까지 쓰며 버티려 했지만, 그런 힘싸움이 계속 되면 한 벌 뿐인 사제복이 찢어져버릴 지도 모른다.
'평소랑은 다르네.'
무언가 위험이 있다면 울음소리를 내며 가르쳐주었거늘.
이렇게 강경히 행동을 한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것이 이 앞에 도사리고 있다는 뜻일까?
어지간한 포식자들도 자신의 힘을 보고 도망치는 마당에?
'아니, 짐승 몇 마리 쫓아내는 걸로 자만할 수는 없지.'
애초에 셰인은 싸움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해야 할 때는 해야 하지만, 굳이 안 해도 될 싸움은 삼가고자 하는 마음이 큰 편.
하물며 지금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이 심층부에서 온전히 생존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앞에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도망치는 게 옳은 판단이리라.
"……네가 그렇게 말린다면야 어쩔 수 없지."
가급적 제대일에 맞추고 싶지만 그게 제 안위보다 소중하겠는가?
괜히 가까운 길을 고집하지 말자, 생각한 셰인이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까지와 달리 일대를 빙 둘러갈 계획을 하면서.
-……우우.
하지만 어째서일까.
정작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콘의 고개는 자신의 배후로 향해지고 있었다.
위태롭게나마 뒤따르던 발걸음마저 차차 늦춰가면서.
"…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래도 울음소리라도 내었거늘. 이내 발걸음마저 멈춘 콘이, 이전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분명 위험하다 말을 했음에도.
"신경 쓰이는 게 있는 거야?"
셰인이 다시 콘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콘이 잠시 셰인을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리며 우는 소리를 내었다.
-끼이잉…….
구슬픈 울음소리.
그건 결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함께 지낸 건 보름뿐이었지만, 서로 의존할 게 없는 처지인 건 마찬가지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셰인이 말없이 콘의 몸을 살펴보았다.
미약한 신성력으로나마 보름에 걸쳐 치료를 한 상태.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내상과 외상을 수복하는 거지, 결손부위까지 재생시킬 순 없다.
그녀의 가죽 곳곳에 듬성듬성 털이 빠진 부분은, 이전에 총상으로 추측되던 상처가 난 곳이었다.
'콘은, 사람에게 습격을 당한 적이 있어.'
비록 이 숲에 온 동안은 마주한 적은 없지만, 상처에서 총알까지 발견했으니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적어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총을 다룬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니.
'하지만 같은 인간이라고 호의적이라고 할 순 없지.'
애초에 동족끼리도 혈투나 전쟁을 벌이는 게 인간이란 존재가 아닌가?
뭣보다 셰인이 소속된 영지군은 벽외지역에 있는 '모든 인간'을 적대시하고 있으니, 심층부에 있는 인간에게 호의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어지간해선 피해가야 하겠지만, 한편으론 호기심도 적잖게 느껴졌다.
'심층부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했을 때 얻은 정보는 영지군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물론 최우선 목적이 아닌 만큼 배제해도 되는 문제.
하지만 그런 배제해야 할 이유도 여럿이 뭉치면 강제성을 띠는 법이다.
"콘."
셰인이 몸을 맞추어 콘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고개를 젓는 콘.
하지만 계속 지긋이 쳐다보니 시선만을 힐끗힐끗 셰인에게로 보내어왔다.
셰인이 콘을 향해 말했다.
"우린 친구지?"
보통의 짐승보다 훨씬 영리한 존재였다.
언어를 구사할 순 없어도 상대의, 그 감정과 분위기만은 읽을 수 있을 터이다.
"친구끼린……. 서로 돕고 사는 게 맞는 거겠지?"
그리고 셰인 역시 콘과 교류하며 많은 위안을 가져왔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런 그에게 있어서 생존 중의 가장 큰 적은 포식자나 질병이 아닌, 사회적 동물이라면 당연히 뒤따라오는 '고독함'이었다.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확인하러 가도 돼. 불안하면 나도 같이 가줄 테니까."
하물며 이 아이는 심층부에서처음으로 받아들인 '환자'가 아닌가.
비록 말도 통하지 않는 축생이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감사를 할 줄 알고, 자신의 신변을 걱정해줄 정도의 마음을 가지기도 한 아이다.
그런 아이에게 많은 위안을 가진 자신이, 이 아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아우.
그 의사를 읽은 듯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콘이, 곧 셰인의 옆을 지나쳐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떨리면서도 방향만은 올곧게.
불안하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는, 그런 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심리는 대체 무엇에서 기인한 것일까?
-부스럭.
의문을 느끼며 마저 걸음을 옮기는 가운데, 문득 발을 디딘 곳의 감각에 이질감이 드는 것을 자각했다.
그 순간 코에 맡아져오는 매캐한 냄새.
'……잿더미?'
언덕을 내려가 도달한 장소에 펼쳐진 타들어간 나무들.
형태만이 겨우 남아있는 건 극 소수였으며, 그 뼈대마저 으스러져 바닥에 고꾸라진 나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까지 지나친 곳엔 그래도 생명이란 게 존재했거늘.
그 어떤 생물도 이 황량한 곳에는 발조차 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 일대에 들어서기 무섭게 뛰쳐나간 콘을 제외하곤.
"잠깐, 콘!"
불렀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윽고 콘이 형태만 앙상히 남은 탄 나무들의 너머로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주변에 자리한 환경이었다.
'숲에서 불이 난 것 같긴 한데……. 자연적으로 이만한 화재가 나는 경우가 있긴 한가?'
식물의 기름이 자연적으로 발화하여, 혹은 번개에 의해…….
하지만 후자는 먹구름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불이 나더라도 머지않아 꺼지기 마련이다.
뭣보다 이 숲은 상당히 습진 장소.
식물들에 물이 많이 함유한 만큼, 불이 붙더라도 그 확산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식물이 자연적으로 분비한 기름에 불이 붙어서라기엔 규모가 너무 커.'
사람이 작정하고 불을 질렀다면 모를까.
그리고 그 설마 하는 생각에 대한 증거물은, 그의 눈앞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총.'
잿더미에 파묻힌 타버린 총기 하나.
이미 작동은 안 되지만, 영지군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부류의 소총이었다.
이곳에서 벌어진 재해가 '사람에 의해서'란 걸 알기에 부족함이 없는 증거물.
'아마도 밀렵……. 이라 할 순 없겠지. 여긴 사람의 손이 닿은 곳이 아니니까.'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땅에서 생물을 죽이는 게 죄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숲을 전부 태워버리고,필요 이상으로 무언가를 죽여대는 건 같은 인간으로썬 좋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혀를 끌끌 차는 셰인이 망가진 총기를 내던지고, 콘이 사라진 곳을 향해 다급히 달려나갔다.
불태워진 숲과 드문드문 보이는 발자국.
탄 내 사이로 맡아져오는 화약과 기름 특유의 냄새…….
그 모든 것을 지나친 끝에 도착한 곳은 상당히 넓게 자리한 공터였다.
그 역시 대부분이 불타있었지만, 그 흔적만은 뒤늦게 들어선 이에게도 고스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무?'
숲을 이루는 나무들 중 그 무엇보다도 훨씬 거대한, 높이만 해도 블레이즈 방벽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
지름 역시 수백 명이 손을 맞잡고 둘러쳐야 겨우 끌어안을 수 있으리라.
그만한 규모의 나무조차 내부까지 불태워져 가지만이 앙상히 남은 상태.
콘은 그런 나무의 인근 중 한 곳을 파헤치고 있었다.
-컹, 컹!!
바닥을 뒤덮는 잿더미를 자신의 앞발을 이용해, 하얀 털의 사이에 잿가루가 덕지덕지 묻어날 정도로.
그 처량한 손짓의 끝에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짐승의 유해였다.
형체만이 남아있는 숯덩어리.
하지만 내부에는 하얀 부분이 여실히 보이고 있다.
콘을 치료하는 중에 분석했던 골격의 구조와 유사한…….
-……끼이잉.
콘이 그런 유해를 입에 조심스레 물고, 셰인이 있는 곳을 향해 끌고 오기 시작했다.
행여나 입에 물었다가 바스라지면 어쩌나, 위태로움을 느끼면서.
-끼이잉, 끼잉!
그렇게 가까스로 셰인의 앞까지 시체를 가지고 온 콘이, 그 언저리를 멤돌며 셰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불안함.
그리고 기대가 공존한 눈동자.
셰인이 그 시선을 착잡히 쳐다보다,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형체만이 남아있을 뿐인 거대한 나무의 주변을 가득 채운 잿더미.
쓰러진 나무들 사이에 묻혀있는 시체, 혹은 그 파편…….
이젠 유기질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모두 화마에 휩쓸려 바싹 말라버렸다.
'숲이 아닌 거대한 화장터.'
그렇게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의 한가운데, 콘은 동족의 시체를 앞두며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고 있었다.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 셰인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은 생물을 치료하라니…….'
공교롭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셰인은 수의사도 아니고, 가지고 있는 신성력도 미약한 상태다.
설령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들 마찬가지.
죽은 자를 살리는 건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다.
"콘, 네 동료들은……."
그걸 이 축생이 이해해주길 바라며 설득하려는 것도 잠시.
-쿠웅!
땅울림이 덮쳐온 건 그 순간.
안쓰러움을 접어둔 셰인이 제 몸을 낮추고, 자신의 손을 땅에 얹으며 마나를 불어넣었다.
'……주변에 뭔가 있어.'
손을 통해 느껴지는 건 충격에 의한 것.
지진처럼 일대 전체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 듯, 충격이 가해진 방향 역시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다.
'인간인가……?'
아니, 폭발물은 아니다.
이만한 충격이 마법에 의한 것이라 한다면, 그 흐름이 여기까지도 느껴져야만 할 터다.
화약도, 마나도 아닌 순수한 힘에 의한 것.
이를테면 거대한 낙석이 땅에 충돌했을 때에 발생하는 부류의 진동이다.
-쿠궁, 쿵.
그런 진동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뭔가 오고 있다.'
그것을 느끼며 자리를 이탈하려 했지만, 그 전에 그 존재가 그들이 있는 곳에 나타난 것이 먼저였다.
-우지끈, 쩌적!
타들어간 나무가 부서져나간 자리에, 이윽고 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니, 스스로 무너진 게 아니라 직접 부순 것이다.
그렇게 난입해온 불청객을 마주한 셰인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졌다.
"미친, 저건 또 뭐야."
크기만 해도 작은 오두막을 넘어설 정도.
그런 몸집을 병기도 아닌 '생물체'가 가질 수 있는 크기라는 게 가당키나 할까?
물론 바다를 누볐을 때에 마주친 크라켄에 비해선 훨씬 작지만, 이곳은 엄연히 바다가 아닌 육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바다와 달리 생물의 성장에 한계치가 존재하는 육지.
-크르르, 카으…….
돌연변이일까?
아니, 형태가 좀 다를 뿐 분명 '곰'이라고 정의할 생물이다.
그저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몸을 덮고 있는 것이 털가죽이 아닌 하얀 뼈라는 것.
흔히 곤충에게나 '외골격'이라고 불리는 것이 건물 크기의 곰 주변을 두르고 있으며, 그런 녀석의 입에는 피가 베어 묻은 고깃덩이가 물려져 있었다.
-우지끈.
사람의 팔이었다.
-뿌드득, 우지끈.
그것이 이빨과 턱의 힘에 찌그러지며 피를 뿜어내었다.
그로부터 퍼져 나오는 유혈의 색이 굉장히 선명한 건, 곰에게 먹힌 자가 얼마 전까지 살아있었다는 걸 가르쳐주는 요소였다.
'이곳에 인간들이 다녀갔다는 건 짐작했지만…….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이야.'
어쩌면 그들과 조우할지도 모른다 생각했었다.
상황에 따라 그들과 교전을 하는 것도 고려했었다.
하지만 정작 저 곰을, 그 곰의 외골격에 묻어난 무수한 피를 본 순간 깨달았다.
'이 부근을 습격하고 불태운 세력이, 고작 저 곰 한 마리에게 몰살당했다는 걸.'
어쩌면 영지군 소속의 부대와 동등한 병력조차 쓰러트리지 못한 야수, 포식자……. 혹은 괴수라고 정의할 존재.
그것을 자각한 순간 셰인이 느낀 건 오싹함이었다.
사람을 먹은 짐승은, 그 피 맛을 잊지 못하고 몇 번이고 사람을 습격하는 법.
"콘, 도망쳐!!"
상황판단을 마친 셰인이 콘을 밀쳐내고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일단 거리를 벌리면 콘의 안전은 확보될 터.
하지만 그렇다고 제 목숨까지 괜찮다 할 순 없는 처지다.
'인간도 아닌 야수야. 그것도 마경에 적응한 야수……. 신성력이란 확실한 약점이 있는 언데드들을 상대할 때와는 상황 자체가 달라!'
돌연변이가 아닌 적응으로.
오랜 시간을 가혹한 환경에서 생존해온 포식자의 위험성은, 감히 마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도망친다.
그 판단은 정답이었다.
-콰강!!
타들어간 숲에 뛰어들은 셰인을 뒤쫓는 곰.
그 곰이 지나친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처참히 바스라지고 있다.
발을 휘두르거나 하지도 않은 채, 그런 것 따윈 애초에 방해물조차 되지 않는 듯 몸으로 밀어붙일 뿐.
불태워진 나무들은 저 무자비한 폭군에겐 장애물 채 되지 않고 있었다.
'불태워진 부분을 벗어나야 한다.'
두 다리에 마나를 실어 넣은 채로 도약을 반복하는 셰인.
다리에 집약시킨 마나의 기폭은 순간적인 도약속도를 높이지만, 정작 그로 인한 가속은 '단거리'에 특화된 것이다.
다리에도 부담이 가해지는 만큼 연속으로 사용하기 쉽지 않고, 뭣보다 마나의 운용에 기본이 되는 '무호흡과 심호흡'의 과정엔 공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대는 그런 찰나의 주춤거림조차 필요 없는 몸.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좁혀지는 거리를 통해 극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아냐, 장애물이 무용지물인 건 나무가 태워져서 그런 거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나무가 있는 곳까지 도망친다면…….'
-쿠궁!!
목적지로 나아가던 중 들려오는 굉음.
그와 동반된 땅울림은 도약 직전의 균형을 무너트리기에 이르렀다.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잡고자 주춤한 순간 발치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그를 따라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들어 올려지고, 이윽고 그의 눈에 거대한 몸체가 눈에 들어왔다.
집체만한 크기의 곰이 하늘을 나는 광경…….
아니, 그저 몸의 탄력만을 이용해, 자신을 상회하는 속도로 뛰어오른 것이다.
"이게 뭔……."
-쿠궁!!
앞질러간 곰이 착지.
그 직후 자세를 전환한 곰의 앞발이 셰인을 향해 겨누어졌다.
-후웅!!
휘둘러지는 것만으로 풍압이 느껴질 정도의 앞발길질.
그것을 앞둔 셰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제 쇄골을 향해 겨누어졌다.
'혈도개방 5써클.'
제국에선 내로라하는 강자의 반열에 들 경지.
-콰강!!
그 경지에서 비롯된 물리력의 기류가, 곰의 앞발과 함께 무참히 찢겨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