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23화
'무슨, 놈의 힘이…….'
적의 공격을 밀어내는 회절로 대응을 했음에도, 그 회피는 곰의 앞발을 한 끗도 밀어내지 못했다.
그저 앞발길질.
압도적인 힘으로 휘두를 뿐인 공격.
-파앙!!
그 공격이 적중하기 무섭게 폭음이 울려 퍼졌다.
급한 대로 몸에 두른 강체술마저 박살날 정도의 위력.
그 충격에 밀려난 셰인의 몸이 잿더미 속을 구르다 나무에 처박혔다.
"쿨럭……."
어찌어찌 몸은 보호했음에도 전신이 욱신거린다.
그것을 견디며 자세를 잡으려는 가운데에도, 곰은 달려드는 기세를 멈추지 않았다.
-쿠궁.
앞발로 땅을 찍어 누르고.
-크와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다시 도약을 가해오는 곰의, 그 벌어진 입에서 새어나오는 침과 함께 핏방울이 흩날렸다.
그것을 눈에 새기는 것만으로 위기감이 미친 듯이 가증되며 심장이 벌렁거렸다.
'시발, 사람이 어떻게 곰을 이겨.'
애초에 인간과 곰은 태생부터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기술이나 무기, 마법 등으로 어찌 대응할 수단이 있을지언정, 그것도 상대가 어떤 상태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외벽의 곳곳엔 약간 눌리거나, 그을린 것 같은 자국이 다수 엿보이고 있었다.
이전에 인간무리와 교전을 했을 때의 흔적.
하지만 거기에 입은 피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다.
'총기로도 모자라 대포를 수십 발을 맞고도, 거기에 있던 사람들을 다 전멸시켰다는 건가?'
5써클로도 어림없다.
6써클이라면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간다는 건 사실상 뒤를 보지 않고 싸우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많은 입장에서 섣불리 손을 뻗기란 쉽지 않은 법.
그리고 그 찰나의 망설임은, 이윽고 포식자와의 거리를 완전히 좁히기에 이르렀다.
-쿠웅!!
추적 끝에 이어지는 육탄돌격.
그 충격에 대차게 튕겨져 나간 몸이 근처의 나무를 부수며 잿더미 속을 굴렀다.
한 번 부딪친 것만으로 전신이 마비될 정도다.
'…방법이.'
쓰러진 셰인이 떨리는 손가락을 제 목으로 겨누었다.
도망치다 죽냐, 죽을 걸 각오하고 싸우냐.
선택지가 그것밖에 없다면 후자를 택하는 편이 더 나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보루로써의 낫다는 의미일 뿐.
어느 쪽도 택해도 되지 않는다면 택하지 않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뭔가 방법이…….'
마지막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눈동자를 굴리는 셰인.
그에 맞춰 곰이 두 앞발을 땅에 처박은 채, 그를 향해 다시 도약을 가할 준비를 취했다.
이변이 일어난 건 그 순간.
-카우우우!!!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은 무언가.
하얀 잔상을 그리며 빠르게 난입한 건, 이마에 뿔이 돋아나 있는 한 마리의 여우였다.
"콘……?"
도망치라고 했을 텐데 어째서?
-카우우! 카우아아!!
울부짖은 콘이 곰의 주변을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여우치곤 덩치가 크다지만, 곰의 앞에선 몇 입이 채 안 되는 크기다.
그런 여우가 성가신 듯 곰이 머리와 앞발을 휘둘러댔지만, 콘은 그를 빠르게 피해내며 몸을 물리고 있었다.
휘둘러질 때 발생하는 풍압만 해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게 늦는다면 그대로 몸이 찢어지리라.
"콘, 그러지……."
만류를 하려던 입이 잠시 다물어졌다.
콘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도망치라는 거야?'
그건 셰인이 이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힘을 충전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힘을 통해 이 자리를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터이다.
'그래, 여기서 도망치고, 망가진 몸을 차차 회복시켜 가면…….'
그렇게 목숨을 부지하고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정답이겠지만, 차마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크르아아악!!
일순간의 망설임을 깨트리는 괴성.
그 직후 곰이 제 머리를 휘둘러 콘의 몸을 튕겨내고, 대차게 밀려난 몸은 잿더미 속을 구르다 축 늘어졌다.
아무리 보통의 여우보다 크다 한들 곰에는 비할 바가 못 되는 상태.
저 거대한 포식자를 버텨내기엔 콘의 몸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크르르…….
곰은 그런 콘을 노리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냥대상으로 삼은 셰인보다, 자신을 귀찮게 한 녀석을 먼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렇게 되리란 걸 알면서도 자신을 대신해 몸을 던져준, 저 연약한 생명체를 먼저…….
'목숨만…….'
그 처절한 발악을 본 순간 차오르는 울컥함.
'목숨만 부지하면……. 그만이란 거냐.'
웃기는 소리다.
아무리 자신이 이 시대에 할 일이 있다고 하지만, 그 할 일 역시도 언제나 제 목숨을 보살피지 않고 행하지 않았던가?
재판에서는 물론, 전쟁터에 온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 후에도 자신이 환자로써 여겨온 아이를 구하고자 몸을 던졌었거늘.
그렇게나 많은 수라장을 던져온 자신이, 이제 와서 죽는 게 두려울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이런 거……. 언제나 감내했던 일이잖아.'
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작만은 내몰리듯 전쟁터에 향했어도, 그런 곳에서라도 성공을 꿈꾸며 악착같이 목숨을 이어갔다.
속해있는 진영이 열세가 되건, 나라가 망하건, 일개 군인인 그는 그저 제 목숨과 주변을 간수하는 것만을 우선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끝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을 때.
그 기로에서 그가 포기하길 결정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의 목숨이었다.
'대장. 안 돼요.'
부상자들을 호송하던 가운데 추적해오는 제국군.
그들을 막기 위해선 누군가가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런 역할을 처음 자처했던 건 부하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카일은 그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협곡에 남기를 희망했었다.
'안 되긴 뭘 안 돼 이 녀석들아. 여기 중에서 나보다 오래 시간 끌 수 있는 녀석이 누가 있다고?'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잖아요!'
부하들이…….
특히나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부관이 자신을 더욱이 만류했었다.
상황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지만, 남게 된 자가 어찌 될지는 뻔히 아는 상황이었다.
그런 때에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인도자'가 사지에 남겠다는데 어찌 방관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어요. 제국이 포기하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전쟁에선 더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예요!'
그러니 자신을 만류하는 그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자신 역시도, 스승과의 작별이 미리 예고되었다면 그들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차라리 사지로 나아갔어야 하는 건 그녀가 아닌 자신이었을 거라고.
'하지만 대장은 이제껏 저희들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을 살려왔잖아요. 그러니 저희보다는, 저희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당신이 살아남는 게 옳은 일일 거예요. 그러니까…….
'아니, 너희들을 이끌었던 건 내가 아니야.'
그래, 그들이 무엇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지 전부 이해하고 있다.
보다 가혹해질 환경에선 자신들보다도 유능한 사람이 남아야한다는 실리를.
그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이제껏 자신들을 이끌어준 자를 향한 감사를.
더욱 나아가 미래에 있을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그 역시 같은 절차를 거닐었던 몸인 만큼, 이해 못 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분수에도 안 맞는 자리였어. 망할 스승 녀석이 멋대로 떠넘긴 자리에 어쩌다보니 앉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사람을 살리는 자란 누구보다도 강해야 한다는…….
언제나 그들을 지도하며 해왔던 그 조언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해왔던 건, 다름 아닌 그들이 의지하고 뒤따랐던 대장 본인이었다는 걸.
'……대장.'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런 녀석이라도 대장노릇을 하니, 이제와선 사람구실을 좀 할 수 있게 되었네.'
만약 그들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면 자신은 어떤 길을 거닐게 되었을까?
이미 벌어진 일에 만약을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 반푼이에 불과한 내가 여기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너희들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자들이 있었던 덕택이었어.'
카일 페터슨.
그는 현재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모든 것에 감사를 느끼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스스로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이라 믿는 자였다.
그 존엄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것이라면.
그것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 역시, 이제껏 거쳐온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뒷일을 부탁할게.'
그러니 그 때에도 목숨을 버릴 것을 과감히 택했던 것이다.
적대하는 세력의 최강이라 불리는 자와도 거리낌 없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일.'
마지막의 순간.
그 자의 손에 목이 베이기 직전에 떠올렸던 것은…….
'제 뒤를 부탁할게요.'
그맘때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보필해온 이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떠났던 스승의 얼굴.
그 때가 돼서야 카일은 깨달았었다.
그 당시에 목숨을 버리고자 했던 결심 역시도, 결국에는 자신보다 앞서 거닐었던 자가 남긴 가르침에서 기인했다는 걸.
그리고 그 가르침은 평생을 함께 할 저주이자, 그렇기에 끝없는 정진을 추구하는 맹세로써 승화되는 법.
사지로 나아갈 걸 희망하는 이 순간에도, 제 머릿속에 그녀의 존재가 아른거리는 것이 그 증거다.
"스승님."
하지만 그 감정은 결코 회고로 끝나지 않으리라.
평생을 뒤따라온 우상을 향한 동경은 이윽고 경외로써 승화되었고.
그 경외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자이기에 더욱이 갈망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법이니.
"……이 못난 제자를 위해 힘 좀 빌려주시죠."
그 찰나의 감정을 제 삶에 속박시키고. 그것을 영원히 이어가고자 각오하는 것을, 인간은 '신앙'이라 정의하는 법.
그 깨달음과 동시에 목으로 겨누어진 손가락엔 망설임이 지워졌다.
'혈도 개방 6써클.'
인류사에 범인이 도달할 마지막 경지라 여겨지는 곳이자, 전성기의 카일이 도달했던 경지.
-쿠궁!!
그 경지를 해방시킨 순간 대지가 전율하고, 사방으로 재의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체내에 흡수된 마나가 의지에 반응해 물리력으로 치환된 결과. 하지만 경지를 넘어선 힘에 뒤따라올 결과는 결코 녹록치 않다.
분명 그럴 터임에도.
'……나쁘지 않아.'
빠르게 무너져 내려야 할 육체에 차차 균형이 잡히고 있다.
고통마저 익숙해지며 정신이 또렷해지는 상황.
그 모든 과정에는 분명히 빛이 동반되어 있었다.
'신성력.'
인간이 가진 믿음에 기인하여 발휘되는 회귀의 힘.
사물의 기록을 되새기는 그 힘은 붕괴되어야 할 육체를 빠르게 수복시키며, 이윽고 육체가 받아들이는 힘을 온전히 구사하게끔 만들어준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통만 버텨낸다면.
-파앙!!
그것을 자각한 이의 두 다리에 집약된 마나가 팽창해 몸을 밀어내고, 그 육체는 잔상이 되어 포탄처럼 쏘아졌다.
표적은 자신을 추적하고자 했던 포식자.
-투콰앙!!
이윽고 발길질이 충돌한 순간 튕겨져 나가는 거체.
그 힘을 자각한 순간 셰인은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전생에 도달했던 경지를 불안정하게나마 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걸.
-크르르, 카아윽!!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겨우 전생의 밑자락까지 온 정도의 경지로는……. 저 망할 괴물을 쓰러트릴 수가 없다.
나자빠진 것도 어디까지나 방심한 중의 기습 때문.
저 거체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면 다시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콘.
셰인은 그 순간의 여유를 빌려 쓰러진 콘에게로 다가섰다.
박치기 한 방에 온몸의 뼈 중 성한 곳이 없다.
내상도 입었는지 피를 토해내고, 호흡도 가쁜 상태.
'하지만 살아있어.'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보다 제대로 된 기적을 거머쥔 지금이라면, 이 연약한 몸 역시 살려낼 수 있으리라.
"…조금만 참아. 바로 끝내고 올 테니까."
이내 근처에 몸을 눕혀준 셰인이 주먹을 틀어쥐며 상대를 돌아보았다.
-콰아아아!!!
그 순간 의지에 기인한 물리력이 주변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형체가 없는 힘일지언정, 그 전율만은 포식자에게도 전해지고 있을 터이다.
-크르르…….
곰 역시 무언가 달라졌음을 자각한 듯 도약하려던 몸을 살짝 물려대었다.
온몸을 두르는 갑주를 통해 전해지는 기이한 감각.
야생에서 평생을 살아온 포식자에겐 낯설기 그지없게 느껴지는 힘이지만, 그와 같은 기백만은 이제껏 여럿 마주해온 바가 있었다.
그는 마경의 포식자이자 지배자.
이제껏 무수한 강자들과 사투를 벌이고, 그들을 먹어치우며 숲의 패왕으로 군림한 자였으니까.
설령 진기한 장치를 쓰는 인간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가히 군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침입자들조차 자신 하나 당해내지 못하고, 꼴사납게 이 숲을 벗어나지 않았던가?
그래, 지금은 그런 싸움의 연장선일 뿐.
설령 이 자가 이전에 상대했던 이들과 달리 비범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런 차이가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오직 그것만이 전부인 세계에선, 이 또한 생존을 위한 사투의 연장선일 뿐.
그리고 이 싸움의 끝에 살아남을 것은 자신이니라.
-크와…….
그러한 확신이 담긴 포효가.
-콰강!!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셰인의 무릎차기에 즉각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