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24화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가해진 발차기.
그 공격에 안면을 두른 외골격이 반쯤 함몰된 가운데, 밀려나는 몸체를 향해 질끈 틀어쥐어진 주먹이 겨누어졌다.
그 상태로 이루어지는 빠른 이중타.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균열이 더욱이 커지고, 일부 파편이 퍼져나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크르륵……!!!
이를 악 문 곰이 제 앞발을 휘둘렀다.
쿠궁.
잿더미와 그 아래의 땅을 쓸어내리며 터져 나오는 토사.
그 공격을 측면으로 피해내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곰의 몸이 회전하며 주변에 풍압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잿가루.
하지만 야수의 초월적인 감각은 시각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청각, 그리고 냄새.
시야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표적은 정확히 쫓을 수 있다.
-크르르아아!!!
이윽고 휘둘러지는 발톱이 찢어발기는 실루엣.
하지만 그곳에 자리한 것은 냄새가 묻어난 넝마뿐이었다.
'어디지?'
옷에 시야가 가려져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아래인가, 아니면 위?
측면일지도 모른다.
-후웅!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 덮쳐오는 대기음.
그 소리가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벗어던진 옷의 뒤편이다.
-콰강!!
물렸던 몸이 제자리로.
그를 넘어 전방으로 도약을 가해, 이윽고 발톱에 걸린 옷을 찢으며 곰의 안면을 강타했다.
천에 감싸여져 막혀버린 시야와 후각.
청각마저도 충격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그 혼란에 허우적거리는 상체가 솟아오른 순간.
자세를 잡은 셰인이 이를 악 물며 제 양 팔에 힘을 집중시켰다.
'무호흡.'
두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린 채로 다스렸던 호흡을 멈춘다.
그 순간 피를 타고 흐르는 마나가 전신에 순환.
그 모든 것이 그의 의지에 기인해, 물리력의 성질을 탄성으로 뒤바꾼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탄력으로.
-투파파파파팡!!!!
심장의 펌프질을 동력으로 삼아 가하는 무차별 난타.
그로부터 비롯된 공격은 살과 뼈를 곤죽으로 만들 정도지만, 상대의 몸은 살덩이가 아닌 강철의 벽이나 다름 없는 상태다.
도리어 공격을 가할수록 뼈가 부서지는 것은 이쪽.
그 난타에 한계에 치달았음을 느낀 셰인이 표정을 구긴 순간, 난타를 견뎌낸 곰의 앞발이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쿠광!!
한 방에 땅을 뒤집는 공격.
사방으로 솟구치는 퍼지는 연만 속을 누비는 셰인의 눈앞에, 어느덧 날카로운 발톱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셰인은 그 발톱에 역으로 달려들고, 제 어깨를 세워 공격에 대한 가드를 시도하였다.
-카칵!!
어깨를 이용한 회절에 궤적이 틀어지는 발톱.
하지만 그 힘은 이전처럼 마나를 찢지 못한다.
도리어 그 힘을 역으로 이용해 품안으로 위빙을 시도한 셰인이, 이윽고 거리를 좁힌 상태로 곰의 안면에 주먹을 휘둘렀다.
-투콰앙!!
난타 끝에 이루어진 전력을 다한 스트레이트.
이후 튕겨져 나간 거체에 다시 달려갈 수 있겠지만, 정작 셰인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제 팔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뼈가 시리다.'
감당하지 못할 힘에, 본래라면 감당할 수도 없는 적이다.
한계에 부닥친 몸은 당연히 빠르게 망가질 수밖에 없다.
뭣보다 뼈보다도 피가 흐르는 체내에 부담이 크다.
"쿨럭……."
마나를 받아들인 혈관이 터지며 발생하는 내출혈.
그로 인해 터져 나온 각혈과 더불어 현기증이 머릿속을 들쑤셔왔다.
고작 몇 합을 겨룬 것만으로, 그는 몇 번이고 사경을 헤매는 경험을 하기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아. 지금은…….'
내출혈을 유발하는 상처가 수복되고, 부러졌던 뼈의 균열도 빠르게 아물며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다.
죽을 각오를 한답시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던 전생에 비해 훨씬 나은 상황.
지금의 그에겐 고비를 넘기지 않을 '마지막 선'이 존재한다.
'의지가 꺾이지 않으면.'
그 의지를 밀어붙인 끝에 승리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그 믿음만을 유지한다면, 인지를 초월한 저 포식자조차도 넘어서지 못할 벽이라 할 순 없을 터다.
-크와아아아!!!
이윽고 다시 달려드는 곰과의 충돌.
휘둘러지는 앞발을 가드를 세워 막아내고, 뒤로 밀려나는 몸을 바로잡으며 다리에 힘을 실어 넣는다.
-휘리릭!!
정면의 돌진을 몸을 회전시켜 회피.
그 몸이 측면으로 돌아간 순간 허공으로 도약을 가하고, 빠르게 이어진 돌려차기가 곰의 뒷목을 후려쳐 몸을 땅에 고꾸라트리게 만들었다.
그러한 상태에서도 발버둥을 치는 곰.
불안정한 자세에서나마 이루어지는 난동질은, 그 자체로 재해라 여겨질 정도다.
그 틈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생사의 기로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물러선다면 그걸로 끝.
제 몸마저 다스리지 않는 상황에 해야 할 건 도주가 아닌 반격이다.
'여유를 주면 안 된다.'
-쿠웅!!
주먹이 비틀거리는 곰의 안면을 후려친다.
'단 한 순간도.'
쩌억 벌어진 입을 다물게 만드는 어퍼컷.
그 머리가 바로잡히기 전에 이어진 돌려차기가 머리를 밀어내고, 그를 시작으로 이루어진 난타가 곰의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반격할 틈을 주면 안 돼.'
거듭되는 충격에 으스러져나가는 턱뼈와 이빨. 그리고 손뼈.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유혈 중 대부분은, 나약한 손으로나마 성을 부수려는 인간의 의지를 쥐어짜내 일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괜찮아.'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전신의 뼈가 부서지고, 힘줄이 끊어질지언정.
한치의 앞에 찾아오는 것이 안면을 찢어발길 공격과 핏빛 잔향뿐이더라도.
'물러서지 않는다면……. 빛은 나를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 처절한 싸움에는 여전히 빛이 동반되어 있었다.
근거 하나 없는 믿음이지만.
그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세계는 결코 그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도리어 믿음조차도 힘이 되어준다.
-캬오아아아!!!
하지만 힘이란 더욱이 큰 힘에 꺾일 수 있는 법.
몸을 두른 뼈들에 균열이 가해지고, 안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조리 피를 쏟아내면서도, 포식자는 그 모든 공격을 악착같이 버텨내며 반격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 역시 무수한 수라장을 헤쳐 나온 포식자.
그 삶은 오롯이 살기 위한 투쟁만이 존재했으며, 그 가혹함은 이유 없는 악의가 충돌하는 전장과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 삶이 여기서 꺾여선 안 될 터이다.
그저 절박하기만 한 약자의 주먹에 꺾인다면.
그건 이 마경이란 생태와, 그곳에서 살아남은 스스로의 존엄에 모욕이 되는 일일 지어니.
-쿠궁!!!
그 처절한 의지에서 비롯된 내리찍기가 이윽고 셰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대로 땅까지 그 몸을 짓누를 기세로…….
-휘리릭!
하지만 정작 손에 가해지는 충격이 얕기 그지없다.
분명히 적중했지만.
그 몸은 그 궤적을 틀어내며 측면에서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으니.
'아니, 회전하는 것만이 아니다.'
찰나의 순간, 곰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제 힘을 흘려보냄으로써 생겨난 회전력.
그로부터 회전에는 무시무시한 양의 아지랑이와 진동이 동반되어 있었다.
의지에 기반하는 에너지가 자신이 가한 공격의 힘마저 이용하는 순간.
그 광경은 그저 강함만을 추구해온 포식자에겐 진묘함마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저것은 대체 무엇인가.'
평생을 야생에서 보내온 야수는 생각해볼 것도 없는 개념.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기교는 오직 약자만이 구사하는 '기술'이라 정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생에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던 자.
그런 자가 연마한 기술은, 때로는 그 일대의 지형마저 뒤바꾸는 '일순간의 재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쿠과가강!!
앞발에 집약된 방대한 마다가 땅을 찍어누르고, 그에 집약된 마나가 땅 속 깊숙이 침투.
그 힘은 이윽고 폭발하며, 그 위에 자리한 모든 것을 위로 띄우기 시작했다.
'천근추(千斤錘).'
일순간의 무게를 극대화시키는 기술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모든 것을 평등히 솟구치게 만든다.
설령 무수한 세월을 생존한 폭군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크르악!?
위로 튕겨져 나간 채 아우성을 치는 곰.
그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포식자조차 당혹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가 왕으로써 군림했던 것은 오롯이 육지 뿐. 하늘은 그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지금의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을 직시한 셰인이 땅에 퍼부었던 마나의 잔재를 끌어모으고, 그 반동을 출력으로 바꿔 자신의 손에 집약시켰다.
'라인하르트류 무검술.'
그저 메스의 대체용.
전투에선 기껏 해봐야 기습에만 의미를 발휘하는 '절개술'을 전투용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지대한 도움을 준 기술.
그로 인해 벼려진 손날은 그 어떤 명검보다도 예리하겠지만, 상대는 터무니없는 내구력을 가진 괴물이다.
그저 단단하고 날카롭기만 한 것으론 안 된다.
이제까지보다도 더 날카롭게. 그러면서도 강하게.
펼쳐졌던 손날을 접고, 손가락을 세운 것은 그런 이유였다.
'절개-극도…….'
검지와 중지.
오직 그것만을 세운 채로 힘을 끌어 모은다.
물체의 평면, 그 틈을 넘어 평면을 이루는 '선'을 가를 기세로.
그렇게 한계까지 날카롭게 만든 칼날은, 설령 제 앞의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존재라 할지언정 그 목마저 도려내리라.
설령 그러지 못할지언정 그럴 기세로, 그럴 각오로.
'용골참(龍骨斬).'
그 필사의 의지는 이윽고 참격이 되어, 제 몸을 향해 추락하던 몸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내었다.
-파아앙!!
무언가를 벤다기엔 너무나도 경쾌한 소음.
그 직후 사방으로 조용한 바람이 퍼져나가고, 양단된 몸체의 사이로 유혈과 장기가 한 박자 늦게 퍼져나간다.
그 사이를 지나쳐 벗어나는 가운데, 셰인이 멈추었던 호흡을 풀며 자리에 몸을 고꾸라트렸다.
'이젠……. 한계다.'
인간의 몸으로 땅을 부순 것도 모자라, 그 힘을 역으로 손가락에 끌어 모아 고압의 칼날을 만들기까지 했다.
회복력이 몸의 붕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
신성력이 없었다면 진작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혹사였다.
'…하지만 싸움은 끝났어.'
몸 곳곳에 성한 곳이 없고, 특히나 이전에 절개를 사용했던 손가락은 완전히 역으로 구부러져 있다.
겨우 이어지기만 했을 뿐.
그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면 손가락이 완전히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살아있어.'
그래, 죽었다면 이런 태평한 고민조차도 할 수 없었겠지.
지금의 승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 * *
셰인이 다시 움직인 건 한참을 누워있던 후. 석양이 저물 무렵의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전치 몇 개월은 족히 가리라 여겼던 부상이 한나절 만에 회복된 셈.
자신의 신성력이 이전보다 크게 증가했음을 알기엔 부족함이 없는 일이었다.
'…괜히 200년 전에 제국이 승리한 게 아니라는 거겠지.'
아직 정식 신자들과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거늘.
그 점을 되돌아보니 과거 제국이 왜 그렇게나 연합국을 증오했는지, 이유는 몰라도 그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 선동하기도 쉬웠을 테니까.'
선인이라 불리는 자들도 제 이상을 이루려면 권력을 탐해야 하는 법이거늘. 교국을 표방하는 나라의 권력자들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애초에 그들이 정녕 절대적인 정의였다면, 그들과 대척점에 선 자신이 신성력을 각성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면 비슷한 길을 추구하면서도 자각이 없거나.
'……내가 이 힘을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괜스레 불안함이 들었다.
올바름을 지향하던 성직자들조차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런 힘을 추구해도 되는지 한편으론 두려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아니, 깊게 생각하지 말자.'
신앙은 고민과 혼란이 커질수록 사그라지는 법.
그 심정을 털어내며 평온함을 찾은 셰인이, 곧 제 앞에 몸을 뉘이고 있는 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전보다 한결 나아진 숨소리를 흘리며 자신을 응시하는 동행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