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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29화 (129/255)

의무병의 환생 129화

"거기, 팔다리 꽉 잡으세요. 처치하다 발작이라도 나면 갈라질 수도 있으니까."

"가, 갈라져요? 어디가?"

의문에 일일이 답을 해줄 시간은 없다.

셰인이 지시를 하자, 께름칙한 표정을 지은 병사들이 그 몸을 더욱 단단히 굳혀갔다.

"히에에엑! 서, 선생님! 지금 뭘 하시려는 겁니까!"

"뭐긴요, 산 채로 뼈를 손보려는 거죠. 집중하는 데에 방해되니까 잠시 입 다물고 계시고."

"읍, 으븝!"

재갈까지 입에 물리며 처치를 이어가는 셰인.

골절로 인해 부어오른 다리를 향해 손날을 가져가는 데엔, 일말의 거리낌도 존재하지 않았다.

망설임에 의한 수전증은 외과의에겐 결코 있어선 안 될 일.

굳이 느끼는 게 있다고 한다면 긴장보단 아쉬움일 것이다.

'신성력도 못 쓰는데 어쩌겠냐. 억울하면 주님을 원망해야지.'

마약은 제국뿐 아니라 블레이즈에서도 엄격히 통제되고 있으며, 마취제나 진통제 등. 수술에서나 쓰이는 독한 약물들은 대체로 마약 성분을 띠고 있다.

신성력의 도움도 빌릴 수 없는 만큼, 치료를 위해선 약물의 도움 없이 해야 한단 것이다.

'물론 이단자가 신성력을 쓸 수 있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할지 장담은 할 수 없으니…….'

일단 그 부분은 숨기는 게 좋겠지.

그렇게 결정을 내린 셰인은 환자의 부상부위에 재차 처치를 이어갔다.

"으븝, 븝!"

"자자, 괜찮아요. 거의 다 끝나가니까, 조금 따끔한 것만 참으시면 됩니다."

주르륵.

수술대 밑으로 흘러내리는 미미한 덩어리.

총알에 의해 부서진 뼈가 혈관을 틀어막던 부분을 해방시키며, 고여 있던 핏덩이가 빠져나온 것이다.

"조금만, 더……."

이후 수술부위에서 뼈의 파편을 빼내고 어긋난 관절을 바로잡아주는 셰인.

그 후 살을 꿰매어 처치하기까지엔, 대략 3분 남짓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네, 됐습니다."

"푸하아!!"

지옥 같던 3분이 끝나고, 재갈이 풀리기 무섭게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뒤를 이어 비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거늘, 정작 수술을 받은 자는 붕대를 묶어주는 셰인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다리는 괜찮으세요?"

"네, 네에……. 아, 아프긴 하지만, 아까 전보다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감각도 돌아왔고……."

"몸에 피가 제대로 돌기 시작했으니 현기증 증세도 좀 지나면 나아질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과한 운동은 삼가주시고 ……."

진단을 해주면서도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경이로운 손짓.

그것을 멍하니 감상하는 것만으로 환자의 얼굴에 서서히 감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다리를 헤집었는데 의외로 고통이 적으니 놀란 거겠지.'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교단에서 말하는 수술…….

그러니까 고대의 의학이란 '닥치고 환부절단'부터 시작했다 알려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셰인의 출신지는 그런 야만적인 의학의 문제를 보완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진보시켜온 나라다.

진통제를 쓸 수 없어도 정교한 기술까지 없어지진 않는 법.

환부 외적인 부분에 해를 입힐 일도 없으니, 잔혹함에 대한 인식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생에서 전공을 살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나.'

기껏 해봐야 외과적 처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구급법을 전파한 게 고작.

그 외엔 어지간한 부상은 신성력을 이용하는 편이 더 용이하니, 굳이 물리적인 수술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부분 약물 관련이었지.'

천식약을 제조할 때는 물론 심장약을 만들 때에도, 심지어 생활의약품이나 전염병 대책도 대부분은 화학지식에 의존했었다.

제 전공도 아닌 내과나 감염증세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학이 전파되더라도 외과의사는 실업자 신세겠군.'

신성력 사용자는 성기사를 제외하곤 최전선까지 나올 수가 없지만, 응급처치로 목숨을 붙여 후방으로 데려가면 수술보다 효율적으로 치료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 괜스레 씁쓸함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자신과 같은 이들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저, 선생님. 치료를 해주신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 바로 시작하죠. 각오는 되셨나요?"

"네? 각오라니……. 커헉!"

텐트에 들어서기 무섭게 마주하게 된 피가 묻어난 수술대.

그에 주눅이 든 가운데, 까마귀 상의 방독면을 쓴 셰인이 조용히 문을 닫으며 환자를 응시하였다.

"뭐하세요? 어서 안 눕고."

어두운 텐트 안을 밝히는 희미한 조명.

그 빛에 방독면의 렌즈가 반사되며 음습한 분위기를 가증시키기 시작했다.

* * *

언덕의 위에 세워진 임시 주둔지.

그곳에서 밤을 준비하고자 쳐둔 텐트의 사이로, 각 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상자들의 수발을 들고,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고자 불침번을 서기 위함.

그건 현 부대를 이끄는 책임자에게도 해당되는 바였다.

"현 상황의 보고는 이걸로 끝인가?"

"네, 그렇습니다."

"수고했다. 자리로 돌아가도록."

부하의 경례를 받은 존이 거주지 밖으로 발을 옮겼다.

주둔지 인근의 파수들을 살피고 그들을 지휘하기 위함.

그런 와중에도, 그의 머릿속엔 현 상황에 대한 정리가 차차 그려지고 있었다.

'총 생존자 약 1천. 그 중 부상자만 600에 육박한 숫자…….'

과반수를 넘는 부상자.

그들로 인해 복귀가 늦어지고 있지만, 그들 역시 블레이즈를 위해 싸워준 병사들인 만큼 버리고 갈 순 없다.

성직자들에게 맡기기 전까진 강행군은 꿈도 못 꿀 터.

'만약 일라이가 없었다면 사망자는 더 늘었겠지.'

아니, 그보다는 한 소년병이 전파한 구급법 덕일까.

제 손에 감겨진 붕대를 응시하는 존이, 곧 주먹을 틀어쥐며 근처의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마주하게 된 건 저격총을 어깨에 멘 채 자리를 잡은 시종복의 여인.

"일라이."

부름에 응한 일라이가 존을 돌아보았다.

격하게 찌푸려진 눈살.

마주한 이를 섬뜩하게 만들 정도의 적의가, 지금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그녀의 두 눈으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겉보기로는.

"도련님…. 이십니까?"

"안경 써, 안경."

이후 품에서 안경을 꺼낸 일라이가 다시 존을 돌아보았다.

이전과 달리 한층 누그러진 눈으로.

"아, 존이셨군요."

"…너무하네. 그래도 목소리는 제대로 들렸을 텐데."

"죄송합니다. 집중하다 보면 소리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터라……."

지독한 원시인 그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집중을 하면 망원경 없이도 수백 미터 밖의 표적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다.

장애가 있다 한들, 그 장애가 경이적인 신체능력으로 의외의 부분에 득을 준 것.

하지만 아무리 신체 능력이 좋아도, 상사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데엔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소년병이 꽤나 신경 쓰이나 보네."

"……."

일라이가 머뭇거리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5년 만에 재회하지 않았는가.

당연히 그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겠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의 상황은 좋지 못한 상태였다.

"솔직히 이전 싸움도 네가 없었으면 졌을 거야. 사교도 놈들이 이번엔 작정하고 준비를 했으니까."

하나 같이 제정신이 아닌데다, 금기된 기술까지 사용하는 녀석들이다.

광기에 찬 군대를 토벌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

그런 와중에 그녀는 사교도들과의 전쟁에서 선두에 서고, 이후 잔당소탕을 마칠 때까지 홀로 주둔지를 지켜주기까지 하였다.

사망자를 최소화시켜야 하는 존에게 있어, 일라이의 존재는 무척이나 감사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도련님에게도 그런 일을 시키셨던 건가요?"

반대로 일라이는 존에게 적잖은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5년간 그 소년에게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이전 작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그랬지. 내가 아니라 사령관님께서 지시하셨지만."

한 명의 죄수병으로 여겨야 하는 만큼,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라도 반려할 순 없다.

항명은 곧 죽음뿐.

그런 위태로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담하게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충실했었다.

제 옆에 있는 전설의 소년병 출신보다도.

아니, 어쩌면 그녀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전장에서 보내온 자신보다도.

"일라이."

곧 존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물었다.

이어지는 건 현 부대의 책임자인 그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

"저 소년병의 정체, 혹시 알고 있어?"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가질 만한 의문이었다.

* * *

셰인이 교단에 잡혀갔을 무렵, 일라이는 그가 떠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제국의 녹을 먹는 자가 그 체제에 거슬러선 안 된다는 상식 정도는 갖추고 있고, 설령 거스른다 해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 뻔했으니까.

뭣보다 떠나가는 그가 남겨진 자신에게 부탁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 분노를 삭이며, 그 의지를 헛되이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리라.

그것이야말로 그 역시 바라는 일이라 굳게 믿으려 했지만…….

'일라이. 나는 지금부터 이 제국의 틀을 무너트릴 일을 벌일 생각이다.'

그녀의 전우가 뜻밖의 기회를 제공해준 건, 그 믿음이 정말로 옳은지에 대한 심란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이 계획이 잘못된다면 가문에도 큰 타격이 가해지겠지. 그 아이와 깊은 연을 맺었던 너에게도 큰 해가 가해질 우려가 있을 거다.'

그날의 재판은 결과적으로 교단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에 불과했다.

당시엔 모두가 결사의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

셰인도, 질리언도.

그리고 일라이 역시도.

'질리언. 저는 그 날 당신과 계약을 한 후, 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준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한 상태였습니다. 이제 와서 당신과 결별한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그래도 너에겐 지켜야 할 곳이…….'

'가슴으로 품은 자식도 자식인 법이 아니겠습니까?'

일라이에겐 단델라이언의 아이들도, 전우의 딸도…….

그리고 그 딸과 맺어져야 할 소년 역시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피도 안 이어진 자식들을 위하여 이 먼 땅까지 온 게 아니었던가?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건, 그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질리언이 가장 잘 아는 것이었다.

'가슴으로 품은 자식이라…….'

그 마음이 어디까지나 '아이'에 한해 발휘된다는 것 역시도.

'그 아이의 정체를 알고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정체라니…….'

'이상한 일이지. 고작 14살에, 이제껏 누구도 해결한 적 없는 저주를……. 아니, 장애를 해결할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니.'

그렇게 말을 했을 무렵, 질리언이 제 목에 손을 올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처음 만났을 당시.

도저히 10살의 소년이 발휘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기량과 기백을 떠올리며.

'일라이, 너도 그 아이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

사용인인 그녀는 영주로써의 사명에 충실한 전우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성에서 지내온 몸.

인연을 가진 시간이라면 그보다도 자신 쪽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질리언도 그녀에게 기회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네가 바란다면 가르쳐줄 수 있다. 영지를 지켜야 하는 나를 대신해, 나의 딸을 지켜준 너라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날의 재판이 시작되기 전.

일라이는 제 전우의 입을 통해, 그 정체를 들을 기회가 주어져 있었다.

그 기회를 거머쥐었던 그녀가 한 행동은…….

* * *

"거절했습니다."

"……뭐?"

"질리언에게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

멍하니 일라이를 쳐다보는 존.

일라이가 그런 존을 마주한 채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제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14살에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수천의 야만족을 이끌던 우두머리의 목을 치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당장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들을 5분에 한 명 꼴로 살려내고, 혼자서 수백 명을 책임질 기세로 그들의 검진마저 이어가는 상황.

그 외에도 영지에서 이룩한 성과 등을 돌아보더라도, 그 소년은 질리언이나 안젤라와 같은'천재'의 범주를 넘어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령관님마저 회유시켰는데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겠지.'

다름 아닌 이단자를 개처럼 취급하는 사령관의 호의.

그 또한 그 소년의 정체를 알기에 발휘하는 듯하지만, 공교롭게도 존은 그에 대해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듣지 않았지만 일단 기회가 있었다는 건…. 형님도 그 소년병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건가?'

그 정체를 알기에 재판에서 안젤라를 고발하며, 제국과 척을 질 각오를 했던 것이고?

다름 아닌 제국의 공작이자 제 전우가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이다.

참모로서도, 친구로서도 미친 듯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럼에도 제 앞에 있는 자는 그걸 들을 기회가 있음에도 포기했다고 하니, 어찌 답답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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