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31화
"선생님?"
"선생님이 왜……."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이 천지이거늘, 그들을 치료해야 하는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아니, 지금은 그 병자들조차도 그의 뒤를 따라붙고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그들의 얼굴엔 하나 같이 미약한 기대가 느껴지는 상태. 거동조차 처음에 비하면 상당히 온전해져 있었다.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건가?"
"아니, 그건 무리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아무리 그가 터무니없는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한들, 수술이란 결국 자연치유력을 수월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처치에 불과하다.
처치 후 고작 반나절밖에 안 됐는데 병자들의 건강이 호전되다니.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는 한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
그래, 신성력.
지금 그의 배후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그저 주변을 밝히기 위해 쓰이는 조명 따위가 아니었다.
"빛이……. 어떻게?"
설마 그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이곳에 있는 병사들조차도 미처 갖추지 못한 힘을, 의학이라는 이단을 추구하는 자가?
-……카우.
아니,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게 아니다.
셰인이 슬며시 몸을 비킨 순간, 그 빈자리에 하얀 털을 지닌 거대한 여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배후를 가득 채우는 광채는 그 여우의 뿔에서부터 새어 나오는 것.
'동물이, 신성력을…….'
오히려 이단자가 신성력을 다루는 것보다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앙이란 오직 인간만을 위한 것이거늘. 짐승이 어떻게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이곳에 있는 아이는……."
그 괴리감이 병사들의 머릿속을 들쑤시는 가운데, 셰인이 콘에게 손끝을 향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심층부를 누볐을 무렵, 저를 구제하고자 주님께서 보내주신 사자이십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언.
신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건 그렇게나 중대시 여겨야 할 것이었다.
하물며 그것이 이단을 표방하는 자가 하는 말이라면 더더욱.
"신의, 사자……?"
"그 여우가 말입니까?"
"……"
셰인이 말없이 콘을 내려다보았다.
불안한 듯 셰인을 흘깃흘깃 쳐다보는 콘.
당장이라도 그의 몸에 달라붙으려는 듯 보이지만, 지금의 셰인은 그런 콘의 어리광을 받아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가 신의 사자라고 주장한 이상,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제 말에 신뢰가 떨어지게 될 테니까.
"……네,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누구도 그렇게 말하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셰인은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며 병사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여전히 교단을 상징하는 옷을 입은 채로.
자신이 이제껏 거쳐 왔던 일들을 간추리고, 또 간추려서.
"심층부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지금 저희들을 덮쳐오는 위험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들도 존재하고 있다 할 수 있죠."
마냥 거짓말은 아니다.
심층부에는 지금 그들이 있는 곳보다도 많은 마물들이 존재했고, 그들 모두가 천이 넘는 병사가 아닌 개인을 추적하고 달려왔으니까.
그 외에도 야만족들의 강함도, 어그러진 생태에서 진화를 거듭한 생물들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심신이 무너졌을 무렵, 이 아이는 돌연히 저의 곁에 찾아와 병들어있는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어지는 건 그런 진실 속에 교묘히 숨어있는 거짓말.
"지금처럼, 신이 내려주신 힘을 이 뿔에 품은 채로……. 그렇게 부상을 입고 쓰러진 저의 몸을 치료해 주었죠."
그 상황을 겪지 못한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욱 나아가, 지금 보이는 광경을 납득시키기 위한 '허구'를 들먹인 결과물.
"물론, 이 아이가 그걸 직접 말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디까지나 저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었죠."
거짓을 고하되.
그 내용은 누구나 공감하며 당연시 여길 수 있는 것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이 아이가 품은 빛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 험난하고 절망적인 장소에도 빛은 존재할 수 있구나. 더욱 나아가, 그 섬에 남겨진 이들의 숭고한 의지를 제국에 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주님께서 들어주신 것이라고……."
"주님께서……."
"정말로?"
병사들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하는 술렁거림.
비록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진실된 신앙을 가진 자는 없지만, 그저 믿는 것과 의존하는 건 별개로 쳐야 할 이야기다.
절망을 용기로 이겨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찾아온 위안을 주는 존재.
거기에 희망을 가진다면, 그 누구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용기를 다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지금 셰인이 행한 것은 그런 허구에서 비롯된 희망의 연출.
제 스승이 한때 가르쳐 주었던 '올바른 약의 사용법'이다.
-……우우.
그리고 콘은 셰인의 그 모습을 위태로이 쳐다보고 있었다.
밑으로 늘어진 두 주먹이 심히 떨려오고 있다.
지금 하는 것이 진심이 아닌 연기임을 가르쳐주듯.
아무리 당당한 척하더라도, 그 역시 불안을 느낄 줄 아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아우우…….
지금 상황을 넘기더라도 이후는 어떨까?
아무리 기적의 힘을 간직하고 있다 한들, 인간이 아닌 짐승이 신성력을 다루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
설령 받아들인다 해도 이런 거짓을 거듭하는 자신이 떳떳하다고 할 수 있을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앞으로의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그러한 불안감이, 자신의 그릇에 담겨진 빛으로부터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아우.
그런 그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리라.
그 사실을 자각한 콘이 몸의 떨림을 멈추고, 곧 셰인을 지나쳐 병사들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카앙!!
그 직후 이어지는 힘찬 울음소리.
그와 함께 뿔에서 감도는 빛이 더욱 선명해지고, 이내 주변으로 크게 확산되었다.
그에 노출되며 서서히 사그라져가는 고통과 활력, 그리고 북돋아지는 용기.
초월적인 무언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확신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되어주는 법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도, 주님께선 여전히 저희를 지켜보고 계신 겁니다."
셰인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쐐기를 박듯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애로운 얼굴로.
비록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곤 할 수 없는 미소지만, 그들의 쾌차를 바라는 마음만은 분명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실에 교묘히 숨겨진 선의의 거짓말.
그로부터 비롯된 강한 설득력에, 제 앞의 존재를 끝내 '기적'이라 받아들이며 하나 둘 씩 고개를 조아리기 시작했다.
"신이여……."
"사지로 나아가는 저희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소서."
병자들의 아우성이 서서히 사그라져가고, 그 현장을 둘러보던 셰인이 만족스레 웃으며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그래, 이게 옳은 거다.'
그저 잘 만들어진 거짓말에 불과하지만, 언제나 현실에 드러나는 것은 결과뿐인 법이다.
꾸짖을 기회도 살아남는 자에게나 주어지는 법.
그러니 진정 누군가를 구하고자 한다면, '거짓'이라는 죄를 범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해선 안 될 것이다.
그것이 틀리지 않다는 건 그의 양손에 어린 빛이 가르쳐주고 있으니…….
-카우!
뭣보다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자신이 거둔 반려의 위상은 특이한 짐승에서 '신의 사자'로써 격상되어 있었다.
그 거짓말을 부정한다면 그녀의 뿔에 깃든 순수한 힘마저 부정하는 것일 터.
그건 결코 교국을 표방하는 제국에선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이 순간 셰인은 그녀의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병사들을 보며, 그 가능성을 실감하고 있었다.
"……자 그럼 연극은 이걸로 끝내고."
이내 병자들을 콘에게 맡긴 후, 셰인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전선을 향해 발을 내디딜 준비를 취했다.
"의무병은 의무병의 역할을 해야지."
환자를 줄이기보단, 환자가 나올 상황을 배제한다.
그것이 전생에 제 스승을 넘어서고자 하는 남자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 * *
-투타타타타!!
언덕의 방어선에서부터 빗발치는 무수한 섬광.
그 공격에 쓰러진 놈들은 그대로 경사를 굴러 쓰러지는가 싶었지만, 그것만으로 개떼처럼 몰려드는 마물들을 몰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기관총!! 빨리 장전해!"
"탄약 다 떨어졌어. 이제 소총탄밖에 안 남았다고!"
"그럼 소총탄이라도 넣고 쏘던가!"
"구경이 다른데 어떻게 쏘라는 거야!?"
다급함에 말다툼을 하면서도 사격을 멈추지 않는 병사들.
예전에 비해 장전속도를 극대화시켰다 한들, 지금 몰려드는 마물들을 모조리 몰아내는 데엔 무리가 있었다.
굉음이 들려온 건 그 순간.
-쿠궁!
기겁한 병사들이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았다.
언덕으로 몰려드는 마물들을 맨 손으로 밀쳐내며 다가오는 거대한 괴물…….
그 형상은 인간과 짐승을 혼합시킨 거인과도 같다.
"대형종이다!"
"당장 대포 가져와!"
"이미 저번 작전에서 망가진 지 오래야!!"
중화기조차도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처지.
급한 대로 소총으로 대형종을 쏴대었지만, 녀석은 그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겨우 물량공세도 막아내는 마당에 저런 거물이 침공하면 진영은 붕괴, 부대는 그걸로 전멸을 각오해야 하리라.
-파앙!!
그 순간 울려 퍼진 파공성.
보통의 총성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을 가진 탄환이, 전장을 가로질러 대형종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쏘아진 총탄과 함께 뚝 떨어져 나오는 살덩이, 그리고 걸죽하기 그지없는 검은 피.
그럼에도 대형종은 언덕을 오르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총알이 발포된 방향을 지긋이 쳐다볼 뿐이었다.
"…역시 저격총으로는 어림도 없군요."
-철컥.
노리쇠를 당겨 총의 탄피를 빼내는 일라이가, 그 총을 옆에 있는 병사에게 넘겨주며 바리케이트를 뛰어넘었다.
"방어선을 맡기겠습니다."
"네? 잠깐……. 커헉!"
무게만 해도 대검보다도 훨씬 무거운 대물저격총.
그에 깔린 병사가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일라이가 자신의 치마폭에서 무기를 꺼내들며 언덕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관절이 펼쳐지며 나타난 건 손에 쥐기 좋은 사이즈의 손도끼.
그녀가 가진 이명인 '변경 굴지의 단두대'의 상징이 되는 무기였다.
"옷이 더러워지니 직접 나서고 싶진 않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어쩔 수 없군요."
고작 한 사람의 몸으로 대군의 사이에 직접 뛰어든다.
그건 누구라도 자살행위라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성자조차 그만한 업적을 이루진 못했었으며, 그러니 그녀에게 얽혀있는 일화도 과장되었다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상태였다.
'한때 영지에 처들어 왔다는 사교도 무리 1만 명. 그 전장에 뛰어든 한 여인이 우두머리의 목을 도려내고 그들을 몰아내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이 자리에서 재현되리라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파앙!!
하지만 그런 선입견 따윈 아무래도 좋을 뿐이다.
경사를 내달린 그녀가 이윽고 손에 쥔 도끼를 투척.
그 순간 던져진 자리를 기점으로 파공성이 울려 퍼지고, 그 도끼가 경사를 가로질러 마물 무리 한가운데에 추락하였다.
으즈적, 쩌적!
회전하는 무기의 궤적에 자리한 모든 마물들이 도륙내어진다.
허나 투척의 표적은 잔챙이가 아닌 그들의 사이에 군림한 거물.
-크학!?
이윽고 머리에 처박힌 도끼의 힘에 튕겨져 나가는 상반신.
그 공격에 대응하지 못한 듯 대형종이 비명을 질렀지만, 일라이의 공격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쿠웅!
땅울림.
그와 함께 이루어진 도약과 함께 그녀의 몸이 마물에게까지 날아가고, 이후 뻗어진 손이 그 도끼자루를 정확히 틀어쥐었다.
그리고 휘두른다.
마물의 몸은 일라이의 회전에 맞춰 허공으로 솟구치고, 이윽고 포물선을 그리듯 날아오른 후 언덕 아래에 처박혔다.
-콰가강!!
충격을 버티지 못한 땅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휘몰아친다.
그 폭풍에 노출되어 사방팔방으로 튕겨져 나가는 마물들.
흙먼지와 피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일라이가 손도끼에 박혀있는 머리를 털어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 가지, 이곳에 있으신 분들에게 여쭙겠습니다."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한들 아직도 수많은 마물이 몰려드는 상황.
"이 중에 제 말을 알아들으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런 와중에도 주변을 향해 묻는 목소리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쿠웅!!
곧 그 물음에 반응한 존재가 연막을 걷어내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갑각류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갑피로 덮여 있는 흉물.
당연한 거지만 그 괴물이 목소리에 반응한 건 그저 본능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각을 자극하는 모든 것을 추적하고, 닿는 모든 것을 흡수하며 진화한다.
마물이란 그러한 본능에, 생존에 대한 갈망이 결여된 존재였다.
"……고맙군요. 당신들이 저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셔서."
그 식탐을 여실히 보이는 아귀를 앞둔 일라이가, 제 손의 손도끼를 고쳐쥐며 낮게 읊조렸다.
전장에 나서며 안경을 벗어던진 현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흐릿한 인영으로 구분지어질 뿐.
"이걸로 힘조절을 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런 상황에 제 앞의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건,손대중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키샤아악!!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갑피의 괴물이 괴성을 질렀고.
-콰아앙!!
그 직후 일라이의 도끼날이 그 마물의 몸통을 후려쳐 날려버렸다.
고작한 방에 전신에 가해지는 균열.
충돌지점뿐 아니라 그 주변에까지 충격이 전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성을 유지한 마물이 눈동자를 부라리며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의 주먹은 그 턱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었다.
-콰득!!
턱을 강타한 주먹에 뜯겨져나간 머리.
힘을 버티지 못한 두터운 머리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이윽고 중력에 의해 포물선을 그리듯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지상에서 울려 퍼지는 살벌한 소음의 연속.
그 소음이 겨우 잦아든 것은 마물의 머리가 땅에 충돌한 순간이었다.
-쿠웅!!
머리가 추락한 지점에 솟구쳐 오르는 토사.
마치 거대한 쇳덩이라도 추락한 듯 지반이 흔들렸지만, 그 진동에 반응하며 날뛰는 마물은 그녀의 인근엔 한 마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은 누구죠?"
등을 돌린 자리에 존재하는 건 으스러진 살덩어리들 뿐.
앞으로 달려올 마물들의 미래이기도 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