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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32화 (132/255)

의무병의 환생 132화

"……대단해."

싸움…….

아니, 학살이란 표현이 적합한 광경.

멀리 서 있던 병사들은, 그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저게 가능한 거야?"

"말도 안 돼."

마나의 사용이라곤 기껏 해봐야 강체술 정도가 고작. 긴 시간을 소요하며 벌이는 광범위 마법조차도 아니다.

대형종이라 불리는 마물들의 학살은, 오롯이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 이룬 것이었다.

'저게 전설의 소년병…… 변경 굴지의 단두대인가.'

무장이라곤 고작 무식하게 단단할 뿐인 손도끼 하나.

그 손도끼로 이루어지는 교전은 두 합을 넘지 않고, 언제나 살아나가는 건 그녀 쪽이었다.

1만에 달하는 사교도 무리에 뛰어들고, 그 우두머리의 목을 직접 베었다는 일화는 결코 허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크와아아아!!

그리고 마물들은 그만한 적을 앞두고도 공포를 토로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그저 양분의 흡수와 진화.

사람의 냄새가 난다면 그저 그곳으로 몰려들 뿐이며, 설령 상대가 자신을 죽일 힘이 있다 해도 공포 따윈 느끼지 않는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건 그런 본능에 충실한 공격들.

-까드득! 끼긱!

하지만 그 어떤 공격도 그녀의 몸을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발톱도, 칼날도.

이제는 그마저도 무시하고 나아가는 몸에 매달리기까지 했지만, 도리어 그들의 흉기가 부러지는 어이없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밀도의 근육.'

옷에 감춰져 여리여리해 보일지도 모르는 몸의 실체란,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작은 요새라 해도 과언이 아닌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끌면 위험해지겠어요.'

다행히도 일부 마물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었지만, 방어선으로 달려드는 마물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다.

시간이 잠시 늦춰졌을 뿐.

상황을 타개할 확실한 수단이 없다면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옷이 찢어질지도 모르지만 좀 더 무리를 해야……."

-쿠웅!!

무언가를 준비하려는 것도 잠시.

마물 무리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가 일라이를 향해 달려들고, 그 육중한 주먹을 머리를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어?"

뒤늦게 주먹을 감지한 일라이의 두 눈이 둥그렇게 뜨여졌다.

별다른 방어가 필요 없는 튼튼한 육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신경이 미친 듯이 자극되고 있었다.

'위험하다'라고.

-쿠궁!!

그 주먹이 적중한 일라이의 몸이 휘청거렸다.

흐릿한 시야에 겨우 들어온 것은 거대한 소머리의 괴물…….

그것도 이전에 쓰러트렸던 대형종보다 두 배는 더 커다란 몸집이다.

그리고 체격에서 비롯된 힘이란 머리하나가 커지면 곱절로 증가하는 법.

-크오오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소머리의 괴물이, 그대로 쓰러진 일라이의 몸을 양 손으로 내리쳐대었다.

가드를 올리는 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이전의 기습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아 몸에서 힘이 주욱 빠져버렸으니.

소머리의 괴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쓰러진 그녀의 몸을 붙잡은 채 무자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쿠궁!! 쿵!!

그대로 땅에 처박힌 채로 쓸리고, 몇 번이고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육체.

그 모습은 마치 인간의 형태를 한 둔기로 땅을 부수는 것과 같다.

한낱 인간의 몸이란, 그런 무자비한 폭행을 견뎌내기엔 너무나도 나약하다.

-쾅!!

전력이 실린 휘두름을 마지막으로 축 늘어진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발을 디뎌야 할 일대가 으스러질 정도의 난동질.

그로부터 비롯된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마물이 그녀의 늘어진 몸채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손에 잡힌 다리를 그대로 들어올려, 그 몸을 자신의 입까지 끌어당기고자.

-꾸드득.

하지만 어째서인지 팔이 그 자리에 고정된 듯 움직이지 않고 있다.

들려야 할 몸 역시 마찬가지…….

분명 늘어졌으리라고 여겼던 그녀의 손이, 그 끝의 손가락의 길이가 되는 선까지 땅 깊숙이 처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한낱 마물 따위가 '대지를 고정대로 삼은 자'를 어찌 잡아당길 수 있을까?

"아……."

정작 그 묘기를 부리는 자는 멍하니 탄성을 흘릴 뿐.

이전의 난동에 입은 피해라고 해봐야 옷이 찢어지고, 입술이 터진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무뚝뚝한 시선이 향한 곳은 마물이 아닌 자신의 몸.

"아끼는 옷이었는데."

찢어진 치맛단을 응시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차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크르와아!!

그 건조한 태도가 심기를 거스른 것일까?

마물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전력으로 들어올리려 했지만, 그 전에 일라이의 다리가 휘둘러진 것이 먼저였다.

-쿠궁!!

몸체를 들어 올려야 할 어깨가 도리어 뽑혀지며, 그 절단면에서부터 피가 왈칵 뿜어져 나왔다.

그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으스러지는 명치.

허리의 탄성을 이용해 몸을 일으켜 세운 직후 가해진 주먹에 의한 것이었다.

-콰아앙!!

거대한 몸체가 마물무리를 구르고 나아가다, 끝내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일순간 무리가 와해된 순간.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아 채워질 터다.

'…몸이 둔해지고 있네요.'

홀로 전장에 고립된 일라이가 제 몸을 훑어보았다.

아끼던 시종복은 곳곳이 찢어지고 더럽혀진 상태.

하지만 더 심각한 건 몸 곳곳이 서서히 검게 물들어지고 있단 것이다.

'숨도 쉬기가 힘들고……. 마물의 피 때문일까요?'

오염된 독기가 어린 액체를 흥건히 뒤집었으니 당연할까.

물론 독 정도는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아닌 방어선 너머에 있는 사람들.

저 멀리, 언덕 너머의 방어선엔 서서히 마물들에게 노출되어 곤혹을 치르는 병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어선이 붕괴되기 직전이야!"

"젠장, 백병전을 준비해!"

이윽고 총에 착검을 하거나, 갑옷과 칼을 쥔 용병들이 마물과의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조차도 고전을 면치 않은 대군.

거리가 좁혀진 이상 그들에게 승산은 없을 터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하다못해 적들의 진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와해시킬 수 있으면 몰랐겠지만,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 해도 결국에는 개인일 뿐이다.

소수의 강자를 탁월히 처리할 수 있을지언정, 다수를 모두 책임질 순 없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한쪽이 뚫려버리니, 그 노출된 위험을 막는 데에 실패하면 희생자가 발생하게 된다.

그 모두를 홀로 책임질 수 있다 자신하는 건 분명 오만이라고 부를 일.

'그래요, 저에겐…….'

그래도 더 많은 마물을 잡아둘 수 있으리라 여겼거늘, 지금의 자신은 입고 있는 옷 한 벌조차 지키기 버거운 상태였다.

한때 누군가를 섬기고, 그자의 가족을 보살피며 입었던 옷조차도.

'애초에 이런 건 어울리지 않았던 거겠죠.'

이런 가혹한 현장에서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길 바라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군복마저 거부했거늘.

그 심성은 이 무자비한 땅에선 너무나도 하잘것없이 망가지고 있었다.

"……진지하게 해야겠네요."

거기에 미련을 가지는 건 잠시일 뿐.

그 미련조차도 사치임을 깨달아가는 그녀가, 다시 손도끼를 들어 올리며 두 눈을 살벌히 벼려가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

"일라이 씨."

흠칫.

달려들려던 몸을 멈춘 일라이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배후로 꺾여졌다.

일순간 눈에 들어온 흐릿한 인영. 그리고 지금 그녀는 경계심을 곤두세운 상태다.

무의식에서 비롯된 휘두름이 곧 자신의 배후를 노렸다.

설령 그 목소리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한들.

-파앙!

하지만 그 주먹은 대상의 머리를 강타하지 않았다.

경쾌한 마나의 폭음과 함께 궤적이 틀어지는 주먹.

그 주먹은 불청객의 머리 위를 지나쳐, 그 배후에 있는 괴물의 몸을 찢어발겼다.

'내 주먹을……?'

주먹의 궤적을 비틀다니.

마물들 중에서 가능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영지군에서도.

"일단 이거부터 끼시죠."

하지만 상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눈가에 손을 얹었다.

공격인가?

뒤늦게 눈가에 손을 얹었지만 그때엔 이미 처치가 끝난 상태였다.

그녀의 가장 큰 제약 중 하나인 '원시'를 해소시켜줄 장비를 착용시킴으로써.

"최전선에서 활동한다면 안경보단 그게 훨씬 낫겠죠."

콘택트 렌즈.

일라이가 착용하는 안경의 도수에 맞춰, 셰인이 유리를 깎아 즉석에서 제조한 물건이었다.

급조한 만큼 1회용에 불과하지만 착용하고 활동하는 데엔 지장이 없을 터.

하지만 시야가 선명해진 건 나중으로 미뤄도 될 문제다.

"도련님이 왜 여기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걱정을 토로하는 일라이에게 셰인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그쪽만큼은 아니지만, 제 한 몸 지킬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까.

마물을 상대로 학살을 벌인 그녀보다 더 평온한 얼굴.

그렇게나 '아군과 함께' 최전선에 서는 상황은, 그에게 무척이나 익숙히 여겨지는 것이었다.

* * *

"…결국 뛰쳐나갔나."

그리고 존은 그 모든 상황을 망원경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제대를 앞두고 뛰쳐나가다니.

괜스레 자신의 배려를 무시한 것처럼 느껴져 입술을 깨무는 것도 잠시.

"참모님! 저희도 합류하겠습니다!"

속으로 투덜거릴 무렵, 배후에서부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전투에 참여조차 못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자들.

그럼에도 그들 중 다수가 손에 총을 쥔 채, 전선에 합류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네, 완전히 나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방어선을 사수한다면, 총 정도는 쏠 수 있습니다!"

그 소년병이 무언가 수를 쓴 것일까?

아니, 그들의 배후를 뒤따라온 이를 보며 바로 알 수 있었다.

-카우!

뿔에서 빛을 뿜으며 다가온 것은 한 마리의 여우.

셰인이 심층부에서 발견하고 데리고 온 존재가, 뿔에서부터 신성력을 뿜어내며 병자들을 이끌고 있다.

그에 살짝 놀란 듯 눈을 벌려뜨는 것도 잠시.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얼추 해 볼 만하겠는데."

머릿수가 절대적인 전장에서 어느 정도 병력이 보충된 상태.

하물며 마물들 쪽은 전략이고 뭐고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그것만으로 승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정작 나머지 병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히 그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해 볼 만하다니."

"확실히 병력이 보충되긴 했지만 아직 그렇게 단정 짓는 건 무리가 아닙니까?"

"그래요. 일라이 씨도 아까 전까진 한 마리를 상대로 고전했었고……."

"아무리 선생님께서 강하다곤 하지만, 앞에서 시선을 끄는 역할이 혼자에서 둘이 된 것뿐이지 않습니까?"

하나하나가 정말 타당한 의견이다, 라고.

"…혼자가 둘이 된 것뿐이라고?"

그럼에도 존이 코웃음을 터트리곤, 두 사람이 뛰어든 마물무리의 사이로 손가락을 향했다.

"너희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저 소년병의 포지션은'서포터'야."

"……예?"

"서포터라니……."

병사들의 얼굴이 차차 멍해지기 시작했다.

서포터는 보통 성직자나 보급반 등, 지원을 맡는 자들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던가?

하지만 상대는 엄연히 전투원으로써의 조예를 기른 자. 하물며 이제껏 누구도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심층부에서 생존하기까지 한 몸이다.

아무리 약하다 쳐도 일라이보다 한 수 아래 정도에 위치한 전투원이라고…….

그건 존 역시 반쯤은 공감하는 의견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까놓고 얘기하면 어지간한 돌격병보다 더 잘 싸우는 게 저 소년병인데……. 정작 저 친구는 그 싸움실력마저도 '보조'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주장하더라고."

그저 누군가를 보조하기 위해 어지간한 강자를 넘어서는 힘을 가졌다는 것.

그 의도가 제대로 부합되기 위해선,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전력을 가진 자가 그 곁에 설 필요가 있을 것이다.

"궁금하지 않아? 우리가 아는 최강의 돌격수와, 최고의 서포터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 이상의 결과를 논하는 건 넌센스다.

상정할 수 없는 결과란 참모로써 결코 환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의 두근거림을 억누를 순 없었다.

* * *

-키샤오아아아!!!!

벌어진 집게 입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

마치 사마귀와 같은 생김새의 대형종이, 특유의 날카로운 칼날을 휘저으며 언덕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진로를 방해하는 마물들은 휘둘러지는 칼날에 무참히 도륙 내어질 뿐.

-콰강!!

그만한 괴물의 몸에 두 사람의 주먹이 처박힌 순간, 각각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되어 피를 퍼트렸다.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더러운 유혈…….

그마저도 즈려 밟은 셰인이 자세를 잡으며 옆에 선 이에게 툭 말을 던졌다.

"잡졸들은 방해하는 놈들만 쳐내요."

지시는 최대한 간결히.

"최대한 큰 놈 위주로……. 맞죠?"

이해 역시 빠를수록 좋다.

적을 향해 휘둘러지는 주먹은 더욱이.

-퍼엉!!

나아간 일라이의 주먹이 잔챙이를 후려치고, 그에 뜯겨진 머리통이 마물무리를 치고 지나가며 육체를 대파시켰다.

그렇게 무너진 진영을 나아가는 그녀의 표적은 갑피를 두르고 있는 대형종.

그런 그녀보다 앞서 나아간 셰인이 괴물의 옆을 지나치며 붕대를 펼쳤다.

-까드득!

온몸이 붕대에 봉해져 묶여버린 상황.

하지만 셰인은 그 마물과 힘겨루기를 벌이지 않았다.

관절과 관절 사이를 잇는 붕대는 오히려 대상의 움직임을 족쇄로 삼는 법.

그 또한 힘으로 끊어내면 그만이겠지만 아주 잠깐 정도는.

그녀가 거리를 좁히는 순간까지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콰앙!!!

휘둘러진 손도끼가 머리를 강타한 순간.

강철과도 같은 단단함을 자랑하는 두개골이 부러지고, 그 내부의 머리통까지 으깨져 피를 퍼트렸다.

또 다른 대형종이 습격을 가해온 건 그 순간.

-쿠오와아아!!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거체.

제 동지들마저 찢으며 일라이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 때에 일라이의 주먹은 주변에 들이닥친 잔챙이들에게로 겨누어진 상태였다.

휘두르면 대형종에게 습격을 당하고, 주먹을 회수한다 해도 반격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는다.

셰인이 난입한 건 그 딜레마에 빠진 순간이었다.

-휘리릭!

던져진 붕대가 일라이의 주먹을 휘감고, 그 순간 셰인이 힘을 실어넣어 팔의 궤적을 교묘히 비틀어내었다.

잔챙이를 노렸던 주먹은 대형종에게 적중.

이후 그녀에게 독을 퍼트리려 다가온 마물이, 붕대를 당겨 거리를 좁혀온 셰인의 발차기에 찢기며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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