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35화
그것은 검이라기엔 너무나도 볼품없는 무기였다.
곧게 뻗은 검신도, 심지어 날을 고정시키는 손잡이조차도 존재하지 않은 칼.
검을 거머쥐어야 할 것이 손이거늘, 도리어 그는 그 손으로 칼을 표방하는 '흉내'로써 실체를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흉내 역시도 결국에는 기술이라 부르는 것.
'마나가, 매서워.'
그 또한 경지에 오른다면 진짜를 넘어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 지금 이 남자가 하고자 하는 건 그 흉내의 끝에 다다른 자만이 행할 수 있는 기교다.
'면이 아닌 선을 가르는 참격.'
그렇게 공간의 틈을 벌리듯 휘둘러지는 칼날은,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용조차도 그 목을 내어줄 수밖에 없으리라.
설령 그러지 못할지언정 그럴 기세로, 그럴 각오로.
-스각!!!
그 집념이 어린 칼날이, 이윽고 마룡의 목에 처박히며 큰 상흔을 남겼다.
'혈도개방 6써클-용골참.'
그 이름대로 용의 뼈를 갈라낼 칼이 내질러진 순간.
하지만 그 거대한 상흔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일이다.
제 앞의 땅을 깊게 파헤친 정도에 불과할 뿐, 마룡의 입장에선 기껏 해봐야 가벼운 생채기 에 불과할 뿐이었다.
신화의 재림이라 평해질 괴물은, 고작 두 개의 손가락만으로 만들어진 칼날로 베기엔 너무나도 거대했다.
-키오, 아아아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영물을 표방한 존재의 목에 상처가 새겨진 것이다.
고통을 느낀 마룡이 포효를 지르고는, 벌어진 입을 통해 살덩이들을 미친 듯이 내뱉기 시작했다.
그것은 표적을 노린 투하가 아닌 구토.
표적에 상관없이 터져나가는 살덩이에 주변이 수라장이 되는 가운데, 그 난동질에 노출된 두 사람의 균형이 크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런……!"
특히나 필살을 위해 집중을 하고 있던 셰인은 후폭풍에 휘둘린 나머지, 그 균형을 잃고 밖으로 튕겨지기까지 했으니.
그 몸은 끝내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채 추락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 그려진 것은 더없는 만족감이었다.
"서포트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거리가 멀어지기 직전, 셰인이 가까스로 균형을 잡은 가면의 검사를 향해 낮게 말했다.
그에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검사의 시선이 참격을 가한 곳으로 향해졌다.
전체적으로는 얕지만 분명 상처가 그어져 있다.
그저 기술의 특성상 범위가 한정되었을 뿐.
그는 정확히 마룡의 목에서 취약한 부분을 찾아내고, 그것을 두 눈으로 응시하며 정확한 참격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남아 있는 건 그가 불가능한 '거합'이 가능한 자.
실력은 그와 비교하면 미숙할지언정, 그가 갖추지 못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을 깨달은 검사를 향해 셰인이 소리쳤다.
"끝장내!!"
-끼요오아아아아아아아!!!!
최후가.
이 거대한 괴물이 그 순간이 찾아옴을 자각하며, 등골을 벌벌 떨어대기 시작했다.
한낱 인간의 입장에선 그 경기를 버텨내는 것도 버거운 일.
그럼에도 가면의 검사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는다.
'집중해…….'
한 발자국씩 내디뎌지는 발걸음.
시선은 목표를 향해 고정시킨 채로, 자신의 손에 쥔 검에 마나를 불어넣고, 의지를 발휘한다.
그 의지를 읽고 차차 형태를 바꾸어가는 생명검.
사용자의 의지에 기인한 그 칼날은 더 없이 순수한 빛을 자아내며, 소유주의 손을 감싸듯 칼날을 만들어갔다.
'검과 육체의 일체화.'
오직 성검인 클라우디아이기에 가능한 기술.
이윽고 그것이 위로 뻗어져 한 자루의 장검이 되었고, 그로부터 피어오르는 광채가 이 일대의 어둠을 환히 게워내기 시작하였다.
위기에 빠진 주둔자들도.
그리고 저 멀리에서 지켜보는 증원군 역시.
그렇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한데 집중된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용자는 오직 검 한 자루만으로, 끝내 만물의 정점에 선 지배자를 쓰러트리는 데에 성공하였노라.'
묵시록의 한 성자가 만들어낸 구절.
그들이 살아가는 현재에서 까마득히 동떨어졌기에, 전설을 넘어 신화의 반열에 들게 된 이야기.
그 이야기가, 저 드높은 자리에 선 자의 광채가 섬광으로 뒤바뀐 순간.
-서걱!!
이윽고 현실이 되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 * *
새벽녘의 햇살이 세상을 밝힐 무렵.
존의 부대는 뒤늦게 합류한 증원군에게 신변을 위탁하며, 자신들의 상처와 혼란을 달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이끌고 온 부대엔 적지 않은 성직자도 포함된 상태.
겨우 응급처치로 생만을 연명하던 병사들은, 그제야 한결 편해진 얼굴로 신자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존이 느낀 것은 감사보다도 경악에 가까운 감정.
"……설마 구조를 위해 황도군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군요."
황도군은 황실 직속의 병사들.
그 중에서도 이곳에 모인 이들은, 현 블레이즈 영지에 찾아온 황태자를 호위하기 위해 소집된 정예 중의 정예들이었다.
그런 강자들을 이끄는 호위병단의 단장. 마일즈가 존에게 겸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태자님께서 영지에 계신 동안은, 저희 역시 블레이즈에 소속된 영지군이라 할 수 있겠죠. 태자님의 명을 제외한다면 협조하는 건 마땅한 일일 겁니다."
그 발언이 마냥 가식이 아니라는 건 존 역시 알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건 그런 믿음직한 아군이, 왜 하필이면 외부 파견자들의 '구조'를 펼치고 있냐는 것.
"영지의 상황은 어떻죠?"
마지막으로 영지를 벗어났을 당시를 떠올리며 묻는 존.
마일즈가 머뭇거리다,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피해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만,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습니다. 참모인 당신이 이런 곳까지 나와 지휘를 할 정도의 사태였으니,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겠죠."
"네, 뭐……. 솔직히 사교도보단 이전의 괴물이 더 식겁했지만요."
그리 말한 존이 쓰게 웃으며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땅에 반쯤 파묻힌 채로 뉘어져 있는 거대한 마물의 시체.
목이 잘려나간 후에도 안에 자리한 마물들이 빠져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황도군이 휘두르는 칼질에 무참히 썰려나가고 있었다.
일대에 존재하는 마물과 공명하는 것도 모자라, 그 모든 것을 흡수하고 배출하기까지 하는 괴수.
그런 녀석이 만약 영지까지 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늘 있는 일입니다."
진저리를 치는 마일즈의 옆에서 존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한 일이 있음에도 태연해 보이는 모습.
마일즈가 의아함을 느끼며 물었다.
"늘 있다니, 지금과 같은 일이 말입니까?"
"지금보다도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일이요."
그럼에도 안전한 곳에 있는 이들은 그것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는 실정.
그럭저럭 막을 만 하면 어떻게든 지원을 줄일 생각만 하니, 군사비를 줄인다는 말에 발끈하며 태자의 멱을 쥐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제국에 돌아가면 말 좀 잘 전해주시죠.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습니다~ 하고."
대략적인 사태가 끝난 후, 긴장이 풀어진 듯 경박히 조잘댄 존이 그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친근한 척을 해도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서러울 뿐이군.'
공교롭게도 그는 황가의 피를 이은 이들의 수족에 불과한 자였으니까.
그들이 지시하는 일엔 개인의 감상은 사치일 뿐. 제국의 수호를 위해선 스스로의 존엄과 도덕마저 버릴 각오를 하리라.
그건 마일즈뿐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각오한 것이기도 하였다.
아니, 정확히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너무 무모하셨습니다."
어느덧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한 검사.
지금 황도군이 둘러치고 있는 거대한 괴수의, 그 목을 도려낸 신기를 벌인 검사를 향한 말이었다.
그들과 같은 옷과 가면을 뒤집어씀에도 그를 향한 말엔 존중이 담겨있었다.
결코 자신의 부하에게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태도.
"……."
가면의 검사가 그 태도에 무뚝뚝히 말하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마일즈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이 집단에 속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내포된 의미를 이해한 마일즈가 예의를 취하듯 고개를 숙였다.
"짧은 시간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 인사를 끝으로 마일즈 역시 자리에서 등을 돌렸다.
함께 하는 것은 잠시일 뿐.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한 순간, 거리를 두는 데엔 일말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 * *
"너무 무모하셨습니다."
성직자들에게 망가진 몸을 맡기는 가운데, 그 곁을 지키는 일라이가 쓰러진 셰인을 나무라기 시작하였다.
특유의 무뚝뚝한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자신이 땅에 내팽개쳐진 것을 보고 그만큼 걱정했다는 뜻일 것이다.
"저에게 그곳까지 던져달라고 한 것도 착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대로 추락했겠죠. 높이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도 지금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추락할 때보다 던져졌을 때에 입은 피해가 더 컸지만 말이죠.'
야단치는 일라이를 앞둔 채 속으로 비아냥을 흘리는 셰인.
하지만 애초에 제 몸을 전력으로 던져달라 했던 건 다름 아닌 셰인이었다.
수십 미터 위까지 단시간에 도약할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니까.
그 여파로 몸이 날아가는 압력에 전신이 망가지고, 무리한 상태에서 필사의 일격을 날리다 추락한 것 등등…….
그 모든 것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모두가 살았으면 된……."
"그 모두에 도련님이 없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
단호한 꾸지람에 다물어지는 입.
일라이는 여전히 촉촉해진 눈으로 셰인을 쏘아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원망마저 느껴지는 눈으로.
"도련님께서 타인을 구하는 데에 진지하신 건 알겠지만, 그것도 자신의 몸을 지켜가면서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만 해요."
답지 않게 진지한 충고다.
"……좀 더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주세요."
그런 진지함이 느껴질 정도로 올바른 조언.
어찌 보면 누구나 당연하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정작 이곳에 쓰러져 있는 자는 그 당연함을 매 순간마다 간과해버리는 녀석이었다.
거기에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그의 업이라고는 하나, 그 방식이 무모한 것은 그 역시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혼자라면 그런 것도 거침없이 해도 되겠지, 싶겠지만…….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니.'
왜 지금 들려오는 그 말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200년 전의 사람인 자신은 이 시대에 섞여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설령 무언가를 변화하더라도, 그게 인간관계에까진 얽혀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인가?
"죄송……."
뭐가 됐건 걱정을 끼쳤으니 예의상의 사과는 해야겠지.
그렇게 죄책감을 토로하려는 순간, 문득 제 곁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눈치 챈 셰인이 배후로 시선을 향했다.
다가오는 것은 가면과 망토를 두르고 있는 한 검사.
다른 황도군들처럼 몸을 두르고 있어 구분 짓기가 어렵지만, 셰인은 골격구조만 보고도 대상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자였다.
'이전에 마룡의 목을 베었던 자.'
비록 유사한 건 형태뿐이지만, 그 광경만은 신화 속의 재림이라 평해지는 업적을 이룬 자.
"그 검은…. 클라우디아?"
일라이가 그 검사의 허리춤에 메어진 검을 알아보고 경악을 토로하였다.
클라우디아…….
셰인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그게 뭡니까?"
"황족에게만 허락되는 무기입니다."
그를 응시하는 일라이의 두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마치 이 자리에 있어선 안 될 자를 마주한 것처럼…….
'뭐, 황실의 일원이니 당연한가.'
언제 어디서 마물이 튀어나오고, 지역이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장소에 황실의 일원은 결코 발을 들여선 안 될 테니까.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복제품이라도 황실의 일원들만이 쥐는 게 허락되는 무기.
결코 그들을 섬기는 신하들에게조차 양도될 수 없는 무기였다.
"혹시, 제 1황태자님이십니까?"
"제 1황태자? 그 사람이면 차기 황제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와요?"
"아, 그게 태자님께선……."
-딸칵.
가면의 고정대가 풀리는 소리.
그와 함께 가면이 벗겨지고, 이윽고 두 사람의 앞에 검사의 모습이 드러났다.
생명검 클라우디아. 오직 황실의 일원에게만 허락되는 무기를 허리춤에 메고 있는 자.
그자의 정체는 테라스 제국의 제1계승권자인 알랙산드로스 테라스……. 가 아니었다.
"어, 어어?"
답지 않게 당황하는 일라이.
마치 이곳에 있어선 안 될 자를 마주한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차차 새파랗게 물들어지기 시작했다.
정작 가면을 벗은 이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은 상태.
"못 본 새에, 많이 달라지셨네요."
그저 자신이 이 자리까지 찾아온 용무를 얘기하고자, 마주하는 이를 향해 조심스레 물어볼 뿐이었다.
"저, 기억하시나요?"
물음의 대상이 된 건 셰인이었다.
그녀를 마주한 셰인이 잠시 침묵하다, 조용히 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걸 묻네."
아주 조금.
가까이 거리를 좁혔을 때, 어느 정도 눈치 챘던 것이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라는 걸.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잊었을 리가 없잖아."
그래, 그 아이가 지금쯤이면 이 정도로 성장했겠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어째서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아이가 이 위험한 땅까지 온 것인지.
그 이유를 셰인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라인하르트 가문에 신세를 졌던 몸.
그 규율이 지금까지도 변치 않고, 가문의 계승권을 쥔 자가 그때와 다르지 않다면, 그녀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많이 컸구나, 세실."
"네, 셰인도……."
세실리아 라인하르트.
그녀가 이 땅에 온 것은 어른을 앞둔 현재에도, 가문을 이을만한 계승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긴 자에게 모든 부와 권력, 그리고 5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의 영광을 내어주겠다는 조건을 이룩한 자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그 조건은 어디까지나 '성인식을 치르기 이전'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셰인. 이런 상황에 갑작스러울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그러니 그녀는 이 땅에 와야만 했다.
결정적으로 자신이 가문을 계승하지 않을지언정, 진정으로 그 가문을 계승해주었으면 하는 자가 이 땅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자가 이 땅을 벗어날 때면, 그를 위해 세운 조건이 무의미하게 변하게 될 테니.
그래, 오직 그 조건을 이 순간까지 유지하고자, 소녀는 누구보다도 강해지길 희망했다.
"영지에 도착하면……. 저와 겨뤄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줄곧 연모해온 자가, 자신이 마련한 시련을 넘어서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