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36화 (136/255)

의무병의 환생 136화

"보고는 이상인가?"

사교도 토벌 임무를 마친 후.

서류를 훑어보는 사령관을 앞둔 존이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겪었던 일은 빠짐없이 모두 적었습니다."

다행히도 사망자는 많지 않았지만, 보급도 떨어진 마당이기에 자칫 복귀 중에 전멸할 것도 각오해야만 했다.

그런 그들이 무사히 복귀한 건 천운이라 평해도 과언이 아닌 일.

만약 그 소년병이 타이밍 좋게 합류하지 않았다면, 분명 돌아오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 소년병이 가지고 온 자료 중에 빠진 것은 전혀 없겠지?"

그렇게 모든 사태가 끝이 난 현재, 사샤는 보고와 함께 올라온 소년병의 자료를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정말이지 골이 아파오는 내용이로군.'

섬에서 벌어진 일은 물론이고 심층부 내에서 관찰된 일 등등…….

그 하나하나가 상식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제국의 정세에도 영향을 끼칠 만한 것들이다.

대대적으로 보도하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이 제국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 분명할 터.

"다른 곳에 새어나가진 않았을 겁니다. 복귀할 때까지 엄중히 보관했으니까요."

"자네는 보았을 테고 말이지."

"…유실된 것은 없습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이런 종류의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법이니까."

자신과 의견을 나눠야 하는 부관이니 열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상 독자적인 판단은 허락해줄 수가 없었다.

이 자료를 빼돌렸을 때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경우, 그 책임은 정보를 접한 이에게도 돌아갈 우려가 있었으니까.

"심층부에서나 발견했던 괴수가 돌연히 벽 인근지대에서 나타났다라……."

그러니 민감한 부분에 대해 논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자.

그렇게 판단을 내린 사령관이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며, 당장 중요히 여겨지는 자료들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부관. 이전에 조우했던 그 거대한 마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마치 드래곤과 같은 형체를 지니고 있던 거대한 흉물.

"…세상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례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까진 그만한 괴물이 등장하면 전조 정도는 감지되고는 했었다.

하지만 심층부를 누빈 소년병의 보고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 규모를 자랑하는 괴물들은 심층부에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라고.'

그 역시 그런 놈들을 마주할 때면 그저 도망치는 게 답이라 여겼을 정도.

엄연히 학자인 만큼 관찰과 탐구에 한해선 누구보다도 진지한 사람인 만큼, 기껏 써내려간 자료에 거짓을 적어 두진 않았을 것이다.

이내 사샤가 책상에 서류를 내려놓고, 담배연기를 흩뿌리며 이야기의 결론을 얘기하였다.

"요컨대 심층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서서히 이 부근에도 덮쳐오기 시작했다는 건가."

"그건……."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물어보려던 뒷말이, 이내 사령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에 삼켜지고 말았다.

"좋은 명분이 생겼어."

"명분이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섬에서 추진하는 연구를 이 영지에 한해선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항생제의 레시피.'

사실상 그가 가지고 온 자료 중 가장 민감히 여겨지는 사항으로, 황실에서도 이 약학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생존율을 들먹이며 군사비를 삭감하려 했었다.

그에 골치를 썩는 마당에 더 큰 위험이 온다는 전조를 감지한 참.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교단에서도 증원을 보내기 어려워질 테니, 이 영지를 지키기 위해선 새로운 치유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변경의 상황에 무지하다 한들, 이만한 자료를 본다면 탁상공론만 하는 늙은이들도 현실을 깨닫게 되겠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령관은 그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논리가 안 되면 권력으로.

지금 이 영지에는, 그 빌어먹을 윗선조차 어찌 못할 든든한 조력자가 거주하고 있으니까.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네요."

반면 존은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껏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를 받아들이는 건, 그만큼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았을 때뿐이라는 의미일 테니까.

뭣보다 사령관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패란 관점에 따라선'악마와의 거래'라 평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제국의 풍조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이 땅에, 이제 곧 새로이 군주의 자리에 오를 자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지도 모르는 거래…….

'하지만 그걸 당장 논하기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 상태다.'

뭐가 됐건 영지를 지키는 것만이 자신들의 사명.

그에 필요한 힘을 거머쥐기 위해서라면 영혼마저 팔아야 할 것이, 바로 이단의 군주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지. 그때까진 가급적 이 이야기는 밖으로 새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라."

그렇게 서류를 정리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것도 잠시.

"사령관님."

물러서리라 여겼던 부관이 자리에 멈춰선 채 심각한 목소리를 내었다.

특유의 눈웃음조차 이 순간만은 불안한 듯 잠잠해진 상태.

"외람된 말씀이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말이지?"

"그 소년병을 제대시키는 건에 관한 겁니다."

"……."

"그 섬에서의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 그 소년병 이상으로 적합한 자는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제대까지 하루.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 소년은 이 영지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사태를 종결시킬 수 있던 것도 그의 도움이 컸던 만큼, 존은 그런 생각을 차마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의외로군. 자네라면 그를 한시라도 빨리 쫓아내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지금도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영지인 만큼 희망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희망이라니, 일개 소년병이 말인가?

그 말을 입에 담은 장본인 역시 어처구니없다 여기는 듯하지만, 사령관은 그의 어리석음을 나무라거나 하지 않았다.

신의 기적조차 수단으로 삼는 그녀조차도, 그 소년에겐 많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를 이곳에 잡아두어선 안 되는 거야.'

후우.

한숨을 토해낸 사샤가 그에게서 조용히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이만 물러가도록."

대화는 거기에서 끝.

존 역시 그 이상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고 사령실을 벗어나고, 이윽고 홀로 남은 사샤가 눈을 감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카일 선배. 저는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시건 그 의견을 존중할 것입니다. 부디 후회 없는 선택을 하시길……."

이 광활한 성벽이 두르고 있는 세계에 억압되고, 끝내 외도에 들어설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이단의 위에 군림한 자이기에 더욱이 갈망할 수밖에 없는 소망이었다.

* * *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 속에서, 한 소녀는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세간에서 외도가 판을 친다 알려진 땅의 중심을…….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느낀 것은 괴이함보단 괴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괴리감…….

"석회 도착했어!"

"당장 공장에 보내. 지금도 벽돌이 부족해서……."

"벽돌로 되겠어? 할 거면 철을 덧대야지."

"그럴 예산은 있고?"

사교도와 반란군, 야만족 등등…….

마물 외에도, 같은 인간들의 습격에 의해 성벽은 매 순간 붕괴의 위험을 맞이하고 만다.

그런 성벽을 수복하는 것도 병사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

습격이 끝났다고 보수를 게을리 할 경우,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습격에 대비할 수 없게 될 터이다.

'모두가 필사적이야.'

도로에 멈춰선 세실이 말없이 그 광경을 응시하였다.

이단이라 하면 모두가 두렵고 해괴하다 여길 법하거늘, 정작 성벽을 보수하는 현장의 풍경은 제국의 노동지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터전과 삶을 지키고자 필사적으로. 때로는 그 공동체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그런 현장에서 다른 게 있다면 그저 수단뿐이리라.

'아버지도 한때엔 저들과 함께 활동하셨던 걸까?'

질리언 라인하르트.

과거 가문의 규율에 따라, 이 제국에서 가장 험난한 땅에서 성인식을 치렀던 자.

세실 역시 그 뒤를 이어 이 영지에 왔고, 기간은 짧지만 이 땅에 얼마만큼의 위험이 있는지를 실감해왔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재판 이후로 '그런 일들'을 벌이고 계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 역시.

"세실리아 공녀님."

길을 거닐던 중 돌연히 들려오는 목소리.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보니, 골목길에서 빠져나온 누군가가 세실을 마주하였다.

망토와 가면을 두르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병사 한 명.

가면에 새겨진 마크는 그가 '황도군'에 소속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마일즈 단장님, 이시군요."

"이젠 단장이라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까지 그녀가 황도군에 소속된 건 어디까지나 활동의 편의를 위해서일 뿐.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이 영지에 온 목적의 실현까지 한 발자국만 남은 상태였다.

더 이상 황도군에 소속될 필요가 없는 몸이거늘, 어찌 공작가의 영애에게 존칭으로 불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제까지 신세를 졌으니 예의를 취하는 건 마땅한 일이라 생각해요. 뭣보다 이 영지에 있는 동안은 저 역시 병사일 뿐이고……."

"적어도 그 분께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그 분.

황도군에 소속된 그가 섬기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마일즈가 곧 그녀를 찾아온 용건을 얘기했다.

"태자님께서 식사를 청하셨습니다만……. 함께하시겠습니까?"

알렉산드로스 테라스.

차기 황제로 점쳐지는 제국의 제1황자이자, 모종의 이유로 제 휘하의 군대와 함께 이 영지에 방문한 남자.

그 이유가 자신과 엮여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지만, 세실은 그의 마음에 차마 응해줄 수 없는 처지였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힘들 것 같네요."

자그마치 5년이나 기다려온 날. 평소라면 예의로라도 수락했겠지만 오늘만은 무리였다.

그 마음은 마일즈 역시 알고 있는 바.

"그게 당신의 뜻이라면, 태자님께서도 겸허히 받아들이시겠지요."

이내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숙이는 마일즈.

이후 그에게 인사를 한 세실이 거리의 너머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배후를 따르던 병사가 입을 연 것은, 그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졌을 무렵이었다.

"야속한 일이로구나. 이 먼 땅까지 사랑을 찾아 왔거늘, 정작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져 있으니……."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태자님."

마일즈가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가면을 벗으며 드러난 건 금발에 구릿빛 피부를 지닌 청년.

머지않아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 예정된 자이지만, 정작 지금의 그는 이 변경의 땅까지 '휴양'차 방문한 상태였다.

'휴양지로 고른 곳이 변경지대 최후의 보루라니, 그 누구라도 미쳤다 볼 일이겠지.'

하지만 자그마치 차기 황제로 점쳐지는 자.

그가 가는 길이 곧 길이거늘, 한낱 범인이 그의 판단에 왈가왈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곧 태자가 제 안면을 감추는 가면을 내려다보며 감탄을 흘렸다.

"그건 그렇고 이 가면은 참 대단하구나. 눈치가 빠른 그녀조차도 코앞에 있는 상대를 전혀 알아보질 못하다니."

"…가면은 어느 정도의 내구성만을 보장할 뿐, 별다른 은폐기능은 갖추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저 생각이 많을 시기니 그런 것이겠죠."

누군가의 도움을 빌렸다곤 하나 신화의 존재를 모방한 재액을 처리할 정도의 실력자다.

황도군 내에도 그런 게 가능한 자는 극소수뿐.

그런 위업을 아직 성인식을 치르는 중인 소녀가 이루었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으니 탐이 나신 거겠다만…….'

아직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그만한 업적을 이룬 것.

제국에도 그 강함에 매료된 이들이 천지인 상태지만, 공교롭게도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들의 마음에 응해준 바가 없었다.

이미 마음에 정해둔 사람이 있으니 당연할까.

그 마음이 이 영지를 두르는 성벽보다 굳세다는 걸, 마일즈는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상태였다.

"마일즈. 너는 그녀가 왜 이 위험한 땅까지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느냐?"

그런 마음을 끝내 굽히지 못한 자가 이유를 묻는 순간.

마일즈가 잠시 대답하길 망설이다, 이내 힘겨이 말을 이었다.

"그 소년병 때문이겠죠."

왜 불치의 병에 걸린 그녀가, 결투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혼약대상을 정하려 한 것인가?

세간에서 저주라 평해지는 증상을 앓고도, 결코 그것이 동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더욱 나아가 그 증세를 호전시켜준 자의 특별함과 필요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소년을 따라 이 위험한 변경지대까지 왔다고 한다면…….'

굳이 이곳에 올 필요 없이 적당한 자를 후계자로 정해도 될 터이거늘, 그녀는 굳이 여성이자 병자의 몸으로 이 땅에 발을 들였다.

정황을 안다면 그 누구라도, 그녀가 그 이단자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엔 부족함이 없을 터다.

"아니, 틀렸다."

하지만 정작 답을 요구한 자의 반응은 되물음도, 납득도 아닌 부정이었다.

제 추측에 확신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발언…….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마일즈가 알랭을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아니라니, 무슨……."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이 그 소년이었다면 굳이 결투를 청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 말이다."

"……."

마일즈가 말없이 태자를 응시하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신경 쓰이는 자가 떠나간 자리를 응시할 뿐.

하지만 그 눈빛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는 사나운 맹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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