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41화
-쿠광!!
대찬 붕괴음과 함께 건물의 벽을 부수고 나간 셰인의 몸.
가까스로 파편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셰인이, 제 앞으로 발걸음을 옮겨오는 이를 차차 응시해갔다.
터벅, 터벅.
귓가에 들려오는 조용한 발걸음소리.
이전의 그 강대한 파장을 일으킨 자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소음이다.
"……몸도 안 좋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 따져야 할 건 그녀가 보통의 사람보다 큰 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
그런 디메리트에도 이만한 위력을 발휘하다니.
굉장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몸의 상태도 크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
하지만 정작 세실은 그런 진심어린 걱정조차 묵언으로 응대할 뿐.
그 태도는 훈련장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한결같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걱!!
거리를 차차 좁혀오며 휘둘러지는 참격.
그 휘두름에 의해 쏘아진 진공의 칼날이 셰인의 옆에 있는 기둥을 양단시켰다.
비워진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을.
-쩌저적!
그 순간 기반이 흔들린 건물의 천장이 무너지고, 셰인이 다급히 몸을 굴려 그 범위를 벗어났다.
'일대를 전부 빌렸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건물 몇 개가 무너져 내린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기세만은 아예 주변을 전부 뒤집어버릴 정도. 벌써 몇 채나 되는 건물이 그녀의 검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주변에 사람이 전혀 없는 게 불행 중 다행이군.'
그리고 가장 큰 불행은 다른 표적이 없으니, 저걸 자신 혼자서 모두 버텨내야 한다는 것.
그만큼 작정하고 준비한 만큼 응대하지 않으면 이 쪽도 피해를 입겠지만, 그럼에도 섣불리 거리를 좁힐 엄두가 나질 않았다.
상대의 자세는 셰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말 빈틈이랄 게 없었으니까.
'일단 거리를 벌려야 한다.'
무너진 건물을 벗어난 셰인이 다급히 거리를 질주했다.
상대는 검사.
근거리에서의 싸움에 특화되어 있으며, 멀리 있는 표적을 노리고자 한다면 그만큼의 체력과 마나를 소모해야만 한다.
마나의 특성상 거리가 벌어질수록 위력도 반감되는 법.
그러니 멀리 떨어져 있다면 자신을 노리기도 쉽지 않아질 테지만…….
-파앙!!
그 순간 폭음과 함께 멀리서부터 날아든 투사체.
살기를 감지한 셰인이 손을 이용해 공격을 쳐내었지만, 그 충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칼로 파편을 쳐냈어?'
마나가 육체에서 떨어지면 물리력은 사라지지만, 그 여파만은 남아 주변 사물에 영향을 끼친다.
세실은 그 특성을 이용해 파편을 쳐내어 원거리의 표적을 노리는 것.
위력은 물론이고 정확성 역시 예사롭지가 않았다.
-파칵!!
바닥을 긋는 검이 다수의 파편을 위로 튕겨내고, 그 모든 것이 염동력에 의해 그녀의 앞에 고정된다.
그 순간 허공을 향해 휘둘러진 검.
-투타타!!
검에 부딪친 파편은 그대로 투사체가 되어 셰인을 향해 쇄도하였다.
그 공격을 이전처럼 손으로 쳐내려 했지만, 일순간 경각심이 곤두세워지는 것을 느낀 셰인이 다급히 자리에서 몸을 비틀었다.
파큭! 스친 부분의 피부가 찢어지며 터져나오는 핏방울.
강체술로도 이전의 파편을 막아내질 못한 것이다.
'투사체를 회전시킨 건가.'
강체술은 무의식을 통해 공격이 오는 방향으로 마나를 밀집시키는 방어법.
그 특성상 직선에서 오는 공격보다는 다수의 타점을 노린 공격에, 혹은 면적이 큰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관통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회전공격 역시 마찬가지.
직격한다면 관통은 몰라도 반절 정도는 몸을 파고들 위험이 있다.
'터무니없는 기교다.'
검사임에도 저런 게 가능하다니.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세실이 주춤거리는 셰인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오기 시작했다.
사정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그 점을 경계한 셰인이 다급히 근처의 벽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파팡!
마나가 발휘하는 흡착력에 의해 고정되는 두 발.
그로부터 비롯된 도약으로 몸체를 반대쪽의 벽으로 날려 보내고, 그것을 반복해 위쪽을 향해 건물 위까지 도약을 가한다.
그건 세실 역시도 마찬가지…….
아니, 그 속도만은 셰인보다 훨씬 빠르다.
단순 도주만을 생각한 셰인과 달리, 그녀는 처음부터 셰인이 벽 위로 오를 것을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까앙!!!
이윽고 지붕 위에 오르기 무섭게 가해진 대검의 일격.
절개술이 어린 손과 충돌한 칼끝에서 불씨가 튀어 오르고, 그 여파에 밀려난 셰인의 발은 건물의 옥상 끝까지 밀려나서야 멈추게 되었다.
'……고작 3써클의 위력이 아니야.'
세실의 경지는 3써클.
그 또한 성인식 이전에 도달한 것치곤 굉장하다 평해질 경지이지만, 지금의 위력은 그저 실력만으로 넘어섰다 하기엔 무리가 있는 영역이었다.
아무리 대검이라 한들 4써클인 자신과 힘을 겨룰 정도로 힘을 끌어올리다니…….
'저 검 때문인가.'
생명검 클라우디아.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마나는 물론 신성력을 자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무기.
그 검을 쥔 자는 설령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라도, 성기사들처럼 개인의 치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까다로운 건 검의 형체와 무게를 조절할 수 있다는 거다.'
대치 중인 현재, 세실이 쥐고 있떤 대검은 어느 한 순간 레이피어로 바뀐 채로 셰인에게 겨누어지고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지닌 또 다른 기능인 '형상변화.'
마나가 주입되는 순간 형체가 바뀌는 금속이, 신성력을 통해 빠르게 회복되어 그 형체를 굳혀버리는 것이다.
'볼레로 그 썩을 녀석도 저걸 사용했었는데…….'
셰인의 체감상으론 벌써 20년도 더된 이야기.
그런 기억이 이 상황에 대한 낯익음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녀가 직접 대련이 아닌 '살육전'이라고 거론한 만큼 더더욱.
"자리를 비워달라고 한 건 훈련장과 그 일대……. 라고 하지 않았어?"
건물의 옥상에 선 셰인이 제 뒤를 힐끗 쳐다보았다.
훈련장이 자리한 지구가 성벽 인근에 위치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참이다.
이 이상은 방어선의 영역.
그저 경고차원에서 자리를 비우라고 말을 해줄 수 없는 장소다.
"어째서……."
그럼에도 그러한 장소까지 밀어붙인 세실은, 도리어 셰인을 향해 원망을 토로하고 있었다.
"어째서 반격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결투를 신청하지 않았는가.
이 쪽도 상대를 죽이고자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고 도망치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해 반격을 가하지 않았다.
과장 없이 상대를 죽일 각오로 검을 휘두르는 자신을.
"……할 리가 없잖아."
그런 세실에게 셰인은 제 나름대로의 이유를 설명했다.
"나는, 그냥 너와 얘기를 나누려고 온 거였으니까."
그저 대화만을…….
이제까지 못다한 대화만을 나누고 떠나는 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게 당신이 바라는 전부인가요?"
"5년 만에 만났으니까. 여러모로 쌓인 이야기가 많은 게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세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투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인사보다도 도전의 제안을 먼저, 반가움에 앞서 살의를 표출하며 달려들기만 할 뿐.
"그런데 넌 나랑은 생각이 다른 것 같네."
적어도 이단자나 제국의 적이라고…….
마냥 그런 이유로 달려드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최근까지 그녀와 함께 했던 일라이가, 세실의 이름을 거론했을 때에 적의를 거두거나 하진 않았을 테니까.
"셰인……."
하지만 그럼에도 세실은 셰인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듯이.
아니, 오히려 화가 난 것처럼, 검의 손잡이를 더욱 거세게 틀어쥐기 시작했다.
"저는. 5년 전부터, 오늘만을 기다려왔어요."
"세실……."
"당신과 검을 나눌 수 있는 건 지금밖에 없으니까요."
이곳이라면 신분이 어떻건, 전과가 어떻건 서로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세실은 그와 담판을 짓는 데에 사용하겠다 다짐을 한 상태였다.
"당신은 그걸로 좋은 거예요?"
그 마음을 그 역시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저와는 그저 말 몇 마디만 나누고, 그렇게 헤어지는 걸로 족한 건가요?"
아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총명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니까.
그럼에도 반격 하나 하지 않는 건 그저 자신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할 뿐.
"그럴 리가……."
"그런데 왜 이 싸움에 진지하게 임하질 않는 거죠?"
그건 그녀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화가 나는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과 함께 해온 시간이란…….
그를 생각하기에 5년에 걸쳐 쌓아올린 강함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시련'조차도, 눈앞에 있는 자에겐 하잘 것 없게 여겨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제가……. 아직도 당신의 보호를 받을 만큼 어린아이로 보이기 때문인가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면 더 이상, 저와는 마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요?"
흠칫.
셰인의 몸이 크게 떨렸다.
아주 잠시에 불과했지만, 세실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 반응을 눈에 새긴 것만으로 체내의 피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쩌저적!
발을 디디고 있는 자리에 가해지는 균열.
그와 함께 더욱 맹렬해진 마나의 파장과 함께,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의 날이 더욱이 커지기 시작했다.
대검을 넘어선 특대검.
그에 실린 힘은 용의 목을 베고자 했을 때와 같다.
-콰아앙!!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낸 셰인의 몸이 건물의 옥상에서 크게 밀려나, 이윽고 성벽의 한복판에 충돌을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는 닫혀 있는 초소의 문에.
사다리와 이어진 성벽 내의 초소는, 그 자체로 여유 공간이 있어 충돌의 피해를 크게 줄여주었다.
"무, 뭐야! 무슨 일이야!?"
물론 초소인 만큼 망을 보는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만.
셰인이 제 몸에 총을 겨누는 감시병들에게 손을 가로저으며, 파편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서, 선생님이 왜?"
"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게요."
병사들의 걱정을 만류한 셰인이 무너진 문의 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눈에 들어온 건 지붕의 천장을 도려내어 만든 거대한 투사체.
"조금 주변이 시끄러울지도 모르지만 그 점은 양해 부탁하고……."
-쿠과강!
날아든 파편을 발로 걷어차 붕괴시키고, 그 직후 마나를 이용해 벽에 몸을 흡착.
그 순간 멀리서부터 도약을 가해온 세실의 레이피어가 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까앙!
칼과 손의 충돌.
그 충격을 흘리듯 측면으로 돌아선 세실이, 벽에 두 발을 붙인 채로 셰인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휘리릭!
정면에서 달려드는가 싶었지만 발을 움직이는 곳은 아래.
중력에 몸을 맡기듯 내려가던 몸이, 그 순간 회전하듯 위로 올라서며 레이피어를 찌르고 들어왔다.
-까가강!!
호흡을 멈춘 채로 쏟아지는 맹공. 그 공격은 결코 끊어지지 않고, 도리어 셰인을 역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기세만은 50m를 넘는 성벽을 오를 정도로.
아니, 기세만이 아니다.
이 순간 세실은 진심으로, 자신이 앞두고 있는 자를 압도하고자 하고 있었다.
'진짜……. 이 정도까지 무대포로 밀어붙일 줄이야.'
난격에 박차를 가해가는 가운데, 칼이 충돌하는 손끝에서 불씨가 미친 듯이 터져나오길 반복했다.
그로부터 비롯된 전율에 살벌함마저 느꼈지만, 그보다도 더 식겁하게 느껴지는 것은 다름 아닌 높이.
공방을 주고받는 현재, 성벽을 역으로 오르는 셰인은 제 몸이 차차 지상에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하니 도약은 꿈도 못 꾼다.'
자칫 실수해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
그럼에도 세실은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셰인을 몰아붙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대략 40m정도까지 올라온 후, 벽에 몸을 고정시키는 것도 슬슬 벅차오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깐 숨을 돌리려면……!'
-쿠궁!!
이윽고 셰인의 주먹이 제 배후의 벽을 후려쳤다.
그 순간 붕괴되며 드러나는 내부의 공간.
성벽 내 최상단에 위치한 초소에 몸을 굴린 셰인이, 다급히 제 호흡을 다잡으며 자세를 고쳐갔다.
겨우 발을 디딜 여유를 확보한 순간.
하지만 이 순간은 휴식이 아닌 반격에 써야만 한다.
'이제 곧 큰 게 올 거다.'
이윽고 같은 장소에 도달한 세실.
그녀 역시 도달하기 무섭게 태세를 잡으며, 칼끝을 그를 향해 겨누고 있었다.
"스읍."
서로의 호흡을 멈추고.
온 몸의 신경을 공격을 가하고자 하는 손에 집중시킨다.
이윽고 이어질 것은 제 몸에 깃드는 마나를 한계까지 응축시키고, 그것을 한 곳에 끌어 모아 터트리는 기술.
'무호흡-기본(基本).'
서로가 같은 기술을.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휘두른 순간.
-쿠웅!!!
그 충돌로 인한 여파가 벽과 천장에 균열을 내고, 그 공간을 맥없이 무너트렸다.
그 충격은 성벽 상단부의 함몰로 이어질 정도.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진 길이를 생각하면 전체적으로는 사소하지만, 그 인근에 있는 사람들에게만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여파다.
"무, 뭐야. 무슨 일이야!?"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먼지가 사방으로 퍼져나간 순간,
이윽고 주변에서 경계를 서던 이들의 시선이 한데 집중되는 가운데, 흙먼지 속에서 누군가의 인영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은발의 머리를 뒤로 묶은 소녀. 세실이었다.
'역시 대단하네요.'
벼랑 끝까지 벗어난 세실이, 제 맞은편에서 숨을 다잡는 남자를 보며 이를 깨물었다.
'그만한 힘이 있으면서 왜 당신은…….'
마음속의 술렁거림과 아픔.
그것을 이를 악물고 버텨낸 세실이, 자신의 몸을 회전시키며 검 끝을 성벽으로 향했다.
-까드득!
깊숙이 처박힌 칼날이 추락하려는 몸을 막아낸다.
그 반동에 의한 충격은 잠시 뿐. 오히려 그 반동을 역으로 이용해 몸을 위로 향한 세실이, 이윽고 그 몸을 날려 보내어 성벽의 위로 날아올랐다.
그 터무니없는 기교에 혀를 내두를 법 함에도, 뒤를 따라 성벽을 오른 남자는 제 얼굴을 경직시키며 그녀를 쏘아볼 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공허한 성벽의 위.
그곳에 도달한 셰인이 세실을 설득하고자 차차 거리를 좁혀갔다.
단 한 번 진심을 발휘했던, 그 이전의 한 합만으로 이 싸움이 마무리되길 바라면서.
"세실, 이제 그만……."
"콜록!!"
그렇게 설득을 하려는 남자의 앞에서, 세실이 제 목을 움켜쥔 채 힘겨이 기침을 내뱉었다.
천식에 의한 호흡곤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증상은 호전되긴커녕 오히려 악화되어있는 상태였다.
"콜록, 커헉!"
아무리 당시에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 한들 전공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다.
5년이 그 레시피를 사용했다면 오히려 약에 의한 부작용에도 휘둘렸을 터.
"세실. 약을……."
"아직은."
품에서 새로운 약을 꺼내려던 가운데, 세실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자리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아직 안 돼요. 아직은…."
"……세실."
"적어도 이 결투가 끝나기 전엔……. 콜록!!"
더욱이 크게 기침을 하는 세실. 그 모습을 보던 셰인이 거리를 좁히고, 기침에 시달리는 세실의 손에서 무기를 떨어트렸다.
"됐으니까 이쪽으로 와!"
어떤 이유에서건 제 앞에 환자가 있다면 치료를 해야 한다.
설령 상대가 자신을 위협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
그녀가 바라는 결투조차도, 몸의 상태가 제대로 되어야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천천히 해. 잘못 삼키면 사례가 들릴 지도 모르니까."
파이프 형의 장치를 입에 물려준 셰인.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던 세실이 이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스읍, 하아.
흡입과 함께 목구멍에 퍼져나가는 약물.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기침이 잦아들고,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한 세실이 제 입에 물려졌던 장치를 내려다보았다.
그 장치를 쥐고 있는 거친 손을…….
하지만 그 손길만은 자상하고 따스하다.
"이런 면이에요."
"……뭐?"
돌연히 이어진 말에 의문을 느끼는 셰인.
세실이 매어오는 목을 비집고, 이내 힘겨이 제 말을 이어갔다.
"이런 면 때문에……. 당신을 이때까지 잊지 못한 거예요."
그런 사람과 어쩌면 영원히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거늘.
그 마지막을 고작 대화 몇 마디로 끝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