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43화
"방금,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시간이 멈췄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갑작스럽게 숨통이 멈췄다. 그 역시 자신을 또렷이 노려보기만 할 뿐.
그 흐름이 다시 이어진 건, 굳어졌던 입술이 차차 떼어져 뒷말이 이어졌을 때였다.
"그렇게 말했어."
점차 낮아지는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마치 뒤통수라도 거세게 맞은 듯이, 성벽 위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마저 이명으로 뒤바뀔 뿐.
그 혼란을 가까스로 추스른 소녀가 힘겨이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말을……."
"고작 그거 하나 말하려고 이곳까지 온 거였어?"
그 물음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그가 단호한 목소리를 내며 소녀를 쏘아붙였다.
눈에 비춰지는 감정은 이제까지의 배려와 상반되는 것.
"세실, 난……."
그렇게나 그에게 있어, 제 앞에 있는 소녀의 고백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는 것이었다.
"네가 이런 일을 하길 바라고 치료제를 만들었던 게 아니야."
혈압이 오르고, 그로 인해 머리가 쑤셔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 아픔에 제 머리를 움켜쥐는 셰인.
하지만 벌어진 손가락의 틈으로, 그 눈동자를 통해.
그가 표출하는 감정은 여실히 소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넌 네 앞가림에 신경 써야 할 판에도 모자라 이렇게……."
당초에 그녀가 이런 위험한 땅까지 올 필요도 없었다.
그 손에 검을 쥐는 것도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하고…….
그저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은 뒤, 그렇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의사로써, 자신이 치료한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왜 나 같은 걸 위해……."
그럼에도 이 소녀는 자신을 구해준 이에게 너무나도 많은 마음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 마음 하나 때문에, 그 마음을 이루고 싶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삶을 속박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고작 그 말 하나 하려고 여기까지 온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꼭 말로 해야 아는 거야?"
어차피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다시 마주하더라도 결국 떠날 것이 예정된 몸이거늘…….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아이가, 자신과 같은 짓을 하겠다 선언하는 걸 좋게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셰인, 당신은……."
그런 꾸지람이 억울하게 느껴진 것일까?
세실이 매어지는 목을 억지로 비집으며, 그를 향해 힘겨이 오열을 토해냈다.
"세상 모두가, 외면했던 저를…… 구해주었던, 사람이었어요."
믿음을 빚어 만든 치료제조차도 자신을 구제하지 못했다.
이 세계를 굽어살피는, 그런 위대한 존재를 따르는 이들마저도 멀지 않았다 말했다.
"제가 이렇게 검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덕이었고요."
이런 위험한 땅까지 와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끝내 신화의 반열에 든 괴물을 베어 넘기며, 그렇게 '제국의 검'이라는 이명에 걸맞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그런 사람에게 품는 마음이 잘못되었다면……."
그러니 이런 마음을 품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본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테지만…….
"네가 아니었어도 누구라도 구했을 거야."
그런 세간의 시선 따위, 그에게 있어서만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애초에 기반부터가 잘못된 세계이지 않은가.
그런 세계의 변혁을 믿고 나아가고자 한 입장에서, 세간의 시선 따윈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에선 병자가 차별을 받고.
병자가 그런 세상에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일 따윈, 결단코 있어선 안 될 것이었다.
"딱히 네가 특별해서 너를 구해준 게 아니었다고."
그러니 이 소녀 역시 그에겐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이 여겨야만 했다.
그저 한 명의 환자.
반역자가 되어서라도 의사이기를 희망하는 자신이, 공작가의 영애에게 그 이상의 감정을 품어선 안 될 터이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 마음가짐은 세실도 어렴풋하게 느꼈던 것이다.
그가 출판한 책만을 읽어도 알 수 있다.
그는 그 책을 읽는 모두가 평등하길 바라고, 그들 모두가 차별 없이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그러니 이 땅에 와도 자신이 바라는 걸 거머쥐지 못하리란 것 역시도.
'그래도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랐다고.'
그런 생각 한 번 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한 채 노력만을 강요하는 건 너무나도 잔혹한 일이니까.
"그래, 그땐 너도 어렸으니까……."
그런 자그마한 소망을 조롱하듯, 셰인이 코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길 구해준 사람한테 그런 마음을 품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어리다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그저 태어난 게 몇 달 차이에 불과할 뿐. 성인식을 치르는 날에 차이가 있을 뿐일 텐데.
"하지만 세실, 지금 넌 어린아이가 아니잖아."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자신과 같은 나이임에도 많은 것을 알고, 옳고 그름을 판별할 줄 알고…….
"이젠 네가 있는 자리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이 뒤따르는지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런 어른스러운 사람이었기에, 너무나도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소녀조차도 그에게 기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알면, 나 같은 녀석이, 너와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나하나 듣는 것이 괴로웠지만, 그가 하는 말을 없던 셈 치며 흘려 넘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든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할 뿐.
그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게라도 보인 듯, 흥분을 가라앉힌 셰인이 자리에서 등을 돌리며 힘겨이 말했다.
"……세실."
상대는 공작가의 영애.
이 제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가문의 후계자.
"넌 나 같은 녀석이랑 어울리면 안 돼."
하지만 자신은 이단자에 전과자이며, 머지않아 가문에서 제명될지도 모르는 녀석이다.
그 후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마당에, 한때 연을 맺었던 환자에게 누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셰인은 이 소녀가 그 모든 걸 알아주길 바랐다.
현실을 깨닫고, 자신에게 품고 있는 그 마음마저 그저 어린 시절의 치부이며 착각이라 여기길 바란다.
그 또한 이 소녀에게 상처가 되리란 걸 알고 있지만 함께 한다면…….
분명 자신은 이 소녀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게 분명하니까.
"셰인은……."
그렇게 거리를 두고자 하는 그를 붙잡듯.
"저를, 싫어하시는 건가요?"
세실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를 향해 물었다.
등을 돌리려던 그의 발걸음이 멈춰지고, 몸이 비틀어진 상태로 고개만을 돌려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 눈에 비춰진 건 숙여진 고개와 떨리는 손길…….
공허한 성벽의 위에, 오직 혼자만이 달빛에 비춰지고 있다.
"당신과 함께 지냈던 시간을, 행복하다고……."
자신이 떠난다면 이 소녀는 이 성벽의 위에 홀로 남게 될 터이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건, 저뿐이었던 건가요?"
그 날 재판장에 끌려갔을 적부터, 이 소녀는 줄곧 혼자이기를 희망해왔었다.
자신이 우려했던 것처럼. 이 소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감정을 자신에게 할애하고 있었으니까.
"세실, 내가 한 말을……."
"그런 당신의 노력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만류마저도 소리치며 부정하는 소녀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 올리며 붉어진 눈시울을 비췄다.
"이런 저의 마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서……."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
"이런 방식밖에 고집하지 못하는 제가……. 당신의 눈엔, 그렇게나 한심해 보였던 건가요?"
그렇게 위태로운 얼굴을 한 한 명의 소녀만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돌아보던 셰인이 머뭇거리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음에도 그걸 강제로 틀어막듯.
"……그게 당신이 바라는 거라면."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자신이 지켜줬던 아이 역시 더 이상은 아이로만 있을 수는 없는 상태다.
그런 책임을 알아가는 시기에 느낀 절망이 어떤 식으로 어그러질지…….
세실이 마치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 제 손을 차차 성벽의 아래로 옮기기 시작했다.
"저 역시 더 이상 검을 쥐지 않을게요."
그 손에 쥐어진 검.
클라우디아를 이 성벽의 밑으로 떨어트릴 기세로.
"세실, 그건……."
"당신이, 저를 구제해 줬기에 쥘 수 있었던 검이에요."
아무리 단단한 검이라 한들, 이만한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크게 망가지고 말 것이다.
이 제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복제품이라 한들 그 상징마저도 붕괴시킨다는 건, 제국에 있어서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무게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그 검을 휘두르는 걸 당신을 위한 일이라 여겼지만, 사실 당신이 그걸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런 건 얼마든지 내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소녀는, 그 검을 떨어트리는 걸 제 마음의 상처를 달랠 수단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만한 고난에.
그 흐름에라도 몸을 맡기지 않는다면, 이 고통은 계속해서 자신을 잠식하려 드리란 걸 알고 있으니.
"원한다면 당신을 포기할 수도 있어요. 그게 당신이 바라는 저의 행복이라면……."
그의 곁에 서는 것조차도 포기할 수 있다면.
그런 포기 역시 그를 향한 사랑의 증명이 된다면.
"다른 사람과, 맺어지는 게 당신이 바라는 행복이라면……."
그녀는 기꺼이 그를 외면한 채로, 자신에게 뒤따를 책임을 짊어질 각오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 그것이 모두가 원하는 길일 것이다.
세상 모두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 역시도.
"그래도……."
그것을 머리로 이해함에도.
어째서 이 순간 검을 쥔 손에는 실낱같은 힘이 잔재하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만……."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
세상 모두가 그걸 바란다 해도 한 사람은.
그 검을 쥔 장본인에겐 아직 미련이 남아있으니까.
"딱, 한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아직은 그 미련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그러니 소녀는 그 역할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셰인은……."
그 서글픈 물음이 소녀의 입을 통해 그에게로 전해졌다.
"저와 함께 지냈던 시간이…… 정말 사소하다고 여겼던 건가요?"
가문에 대한 책임이나 사회적인 입지. 사회의 풍조…….
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조금이라도.
그가 자신에게 향한 마음이, 그저 자신을 '한 명의 환자'로서 여기는 것이 전부라면.
그 또한 그의 뜻이다 생각하며, 그를 향한 마음을 미련 없이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함께했던 시간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저뿐이었던 건가요?"
그 대답을 들은 순간만은 찢어질 듯 아프겠지만 사람이란.
그런 절망을 느끼기에, 진정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정말로, 당신은……."
그러니 거절을 할 거라면 확실하게.
현실을 깨닫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진정 마음을 품은 자의 입으로 직접 고해주길 바란다.
"당신은, 이런 저를 한심하고 혐오스럽게 생각해서……. 저를 내치려는 건가요?"
잔혹한 이야기다.
그에겐 한때에 불과하지만 저 소녀에겐 인생의 절반이니까.
거진 10년에 걸쳐 키워온 마음을 냉혹히 내친다는 건,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썬 분명 버거운 일이 될 터이다.
하지만 어찌 물음에마저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여기서 소녀의 미련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이제까지와 같은 잘못을 계속해서 반복할 터인데.
'그러니 대답해야 한다.'
그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는 걸.
그러니 딱 한 마디로, 이 자리에서 소녀와의 연을 끊기를 희망해야 한다.
'그래, 라고.'
딱 한 마디.
그렇게만 말하면, 그걸로 이 소녀가 품은 모든 마음을 정리하게 만들 수 있다.
더 이상 이런 위험한 땅에 오도록.
자신의 청춘을 헛된 곳에 허비하도록 만들지 않아도 된다.
"싫어……."
그 목적을 가지고 입이 벌어졌음에도, 어째서인지 그 뒷말이 제대로 이어지질 못한다.
그저 말 몇 마디.
그렇게 표현될 '거짓'을.
그것을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될 터임에도.
"……할 리가 없잖아."
결정적인 순간에 내뱉어진.
차마 다시 주워 삼킬 수 없는 진실 된 속내가, 그 스스로를 하여금 나약한 인간임을 실감케 만들었다.
"……네?"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소녀.
그런 소녀를 마주하던 셰인이, 이내 쓸쓸히 미소지으며 마저 말을 이어갔다.
"이 영지에 온 동안 단 한 번도 그때를 잊어본 적이 없다고……."
희미한 웃음과 찌푸려진 눈살.
그 배후에서부터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 그리고 체념.
"……그렇게 말했어."
그 말을 입에 담으며 자신의 삶을 되새겼다.
그 끝에 개화된, 모든 병자들을 평등히 여긴다는 소명을.
그리고 그 시작만은…….
이 가혹한 세계에서의 시작을 이루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제 앞에 있는 가녀린 소녀였다는 사실 역시도.
-퍼펑!!
그러한 속내를 실토한 순간 들려오는 거센 파공성.
그를 시작으로 영지 곳곳에 경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비상! 비상! 성벽 밖에서 대규모의 포격이 감지되고 있다! 신속히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성벽으로 집결하라!!
시끄러운 경보음과 함께 울려 퍼지는 고함.
그 소음이 영지 전체에 울려 퍼지며 병사들의 경각심을 일으켜 세웠다.
성벽의 보수작업이 겨우 끝나기 무섭게 들이닥치는 포격…….
그에 당혹스러울 법함에도, 현장으로 나아가는 사령관과 부관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왔나."
"생각해 보면 꽤 빨리 물러난 편이었죠."
벽외에 자리한 이들의 대대적인 습격.
그런 일이야 이 영지에선 비일비재하지만, 지금의 습격은 마냥 반란세력 몇몇만이 뭉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과거 200년 전 전쟁에서 패배한 잔당과 사교도, 거기에 더해 야만족 출신의 용병들을 대동하기까지…….
"침공이 온 게 보름 전이었는데, 겨우 정비가 끝날 만 하면 오는 게 참 찰거머리 같군요."
"그런 녀석들이 처들어올 것을 아니 자네를 벽 밖까지 내보낸 거다."
수차례에 걸쳐 오는 대대적인 공습을 약화시키기 위해선, 그들의 핵심세력이 벌이는 준비를 사전에 약화시킬 필요가 있을 테니까.
어차피 예견된 일이었던 만큼 당혹 따윈 느끼지 않는다.
절망하며 이성을 놓는다 하여 사건을 해결할 수단이 생기는 게 아니니, 조금이라도 수비의 효율을 위해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장교 된 자의 자세일 것이다.
"부관, 책임자들에게 전군 소집 명령을 내려라."
"이미 경보가 울렸으니 전부 채비를 갖추고 있을 겁니다. 다만 규모가 규모인지라 저희도 직접 나설 필요가 있겠죠."
그리 말한 존이 굳어진 시선을 어느 한 곳으로 향하였다.
50m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성벽.
그 끝자락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두 명의 인영을 응시하며.
"저 두 사람은 어떻게 하죠?"
"……."
사령관 역시 말없이 성벽의 위로 향해졌다.
이제 곧 파국으로 치달을 땅에서 가장 높고, 고독한 곳에 선 두 사람.
양 측 모두 이 영지에선 대단하다 평가되는 이들이었다.
한쪽은 최전선까지 나가며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치유사이자 지원가.
그리고 다른 한쪽은 신화의 반열에 든 괴물의 목을 베어버릴 정도의 여력을 가진 검사.
그런 두 사람이라면 이후의 싸움에도 큰 도움이 되어주리라.
아니, 더욱 나아가 그들이 이 땅에 잡아둘 수만 있다면 이 이후에도…….
그렇게나 장교의 입장으로썬, 성벽 위에서 대치하는 두 소년병은 탐이 나는 인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관."
하지만 그 모든 건 개인적인 바람일 뿐.
이내 사령관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자리에 멈춰선 부관을 향해 물었다.
"지금 우리는 이전에 자네가 이끌었던 부대처럼 고립되어 있는 상태인가?"
객관적으로 능력의 출중함이 책임으로 이어지진 않는 법.
이미 짊어진 책임을 버리고 떠나는 건 용납할 수 없지만 그 시작만은…….
어떤 책임을 짊어질지의 시작은, 본인의 자유에 맡겨야만 한다.
"아니면 영지 내의 병사들에게 내어줄 무장이 부족하기라도 한가?"
두 사람이 이곳에 있기를 희망한다면 막을 이유는 없다.
반대로 떠나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들을 막아선 안 된다.
이 땅에 오는 자들은 돈이건, 명예건, 자신이 저지른 죄의 값을 치르는 것이건, 저마다 마땅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법이니.
"이 땅을 지켜내는, 저 견고한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라도 했나?"
재차 이어지는 물음에 존이 긴장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이윽고 제 부관을 돌아보는 사샤.
그 눈은 바위처럼 굳세며, 뒤이어 입에 담은 말 역시 한 점의 망설임 채 느껴지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이 영지는, 고작 제대가 예정된 소년병과, 이곳에 오지 않았어도 될 소년병……. 두 사람이 없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만큼이나 하찮은 곳인가?"
그 물음에 돌아올 답이야말로 그녀가 평생을 보내오고, 그를 넘어 선조들이 일구어낸 결과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럴 리 없잖습니까."
"그래, 그대의 말대로."
이내 사샤가 입에 담배를 물고, 그 앞에 불을 지폈다.
한 점의 미련 없는 태도.
어차피 떠날 것이 예정된 두 명의 병사란, 이제 곧 벌어질 대대적인 전투에 비하면 그렇게나 사소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