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45화 (145/255)

의무병의 환생 145화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전장에 나갈 때마다 몇 번이고 되새겼던 문장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자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수많은 이들의 죽음으로도 이어질 테니까.

그렇게나 스스로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던 자신이 왜 마지막은……. 그 생의 마지막만은 그 목숨을 던지고자 했던 것일까?

아무리 많은 사람을 살려도, 그들 모두가 다시 전장에 들어설 것이 예정되어있다.

그 역시 아무리 살고자 해도,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그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하고는 하였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을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신념에 덮어버리기를 수십 번을…….

그런 매일이 반복되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게 느껴졌거늘.

그럼에도 그 고단함을 안고 나아가야 하는 데에 강박마저 느낀다면, 그 의지는 정녕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괴물새끼…….'

최후의 적으로 이길 수 없는 녀석을 선택했던 건, 어쩌면 그런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일순간 그런 착각마저 들 정도로, 전생에 마주한 최후의 적은 직도할 정도로 강한 자였다.

'괴물새끼라니. 누가 들으면 내 아빠가 괴물인 줄 알겠네.'

정작 치를 떠는 자신과 달리 상대는 어깨를 으스대기만 할 뿐.

그는 단 한 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 방정맞은 태도를 지워본 적이 없던 자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실력은 형편없지만 인성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니까.'

그래, 분명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처먹은 거겠지.

부모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고아 출신인 자신에겐, 한편으론 부러움마저 느껴지는 삶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갑자기 뜬금없이 왜 가족 얘기야?'

'아들이 한 명 있거든. 태어나자마자 이쪽도 전쟁 통에 끌려오는 바람에……. 아마 그 녀석은 제 아비 얼굴도 제대로 기억 못 하고 있겠지.'

-까앙!

주절대는 순간 가해진 기습.

그마저도 검으로 흘려넘긴 녀석이 뒷걸음질을 치며 카일을 나무랐다.

'야야, 내가 아무리 사망플래그를 세우고 있다지만 너무한 거 아니냐?'

'그 빌어먹을 깃발도 주님께서 꺾어주시는 집단에 속한 놈이 뭐가 그리 무서운 건데?'

'하이고~ 이거 참 공감능력도 떨어지시는 양반이네. 너는 뭐 고향에 자식 같은 거 없어? 아니면 아내가 아이를 품고 있다거나…….'

'걱정 마라. 할 때마다 피임구는 확실하게 하고 있으니까.'

'……피임구?'

'너 같은 놈 태어나지 말라고 만든 물건이다. 이 빌어먹을 개딱지 새끼야.'

온갖 발전의 가능성을 틀어막아버린 미개한 제국은 그런 도구도 없는 거겠지.

그에 조롱이라도 한껏 터트려보려 했건만.

'아니, 그게 뭔지는 알고 있긴 해. 교단 사람들이 너희들을 욕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거니까.'

정작 그는 자신의 무지를 창피해하거나 굴욕을 느끼기보단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뭐, 굳이 그런 게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무슨 미친 소릴 하려고?'

'그야 그렇잖아, 사랑하는 자와 맺어져 만들어진 결과를 없애려고 하다니. 좀 이상하지 않아?'

그는 신앙이라곤 없는 방정맞은 사내였지만,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만은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였다.

이성과의 관계에 생명의 탄생이란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인연의 상징이란 그 자체로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지. 한낱 미물이라도 자기가 낳은 자식에겐 깊은 애정을 품는 법인데……. 너희 조국에선 그렇게 가르치지 않나보네.'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의 기쁨.

그건 아이헨발트에서도 마찬가지로 여기는 것이었다.

아이가 탄생하는 그 순간만은 설령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걸 축복해 마땅한 것이라고.

'그거 참 좆같은 가르침이네.'

그럼에도 카일은 그의 말을 엿같이 여길 수밖에 없었다.

보기 드물게도 그 역시 기분 나쁜 내색을 비추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봐, 아무리 그쪽이 교단을 부정한다 해도 그렇게 말하는 건 내 자식한테도…….'

'이런 시대에 태어날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거고?'

단호한 말 한 마디와 함께 뚝 다물어지는 입.

그 침묵에 개의치 않고 자세를 잡고, 그의 자세를 눈으로 훑어갔다.

손에 쥔 검마저 땅에 늘어트린 채로 우뚝 서있는 모습.

사방에 빈틈투성이었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눈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화가 난 듯하면서도 슬퍼 보이는.

그런 눈을 하며 한 말은, 그답지 않게 조금은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고맙다. 덕분에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어.'

'……떠올리다니, 뭘?'

그 조그마한 진지함이 어린 검이 너무나도 매서웠기에.

'네가 말한 시대를 빨리 종결시키려고 내가 이 검을 쥐었다는 거.'

그 역시 이후의 싸움엔 더욱 사력을 다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사투가 아닌 저항…….

그때의 싸움은, 분명 그렇게 부를 만한 것이었다.

* * *

그리고 그건 지금 역시 마찬가지.

-쿠웅!!

검 끝에 어린 묵직한 충격.

그 힘을 버텨내는 데에 급급한 세실이 뒷걸음질을 치며, 황급히 상황의 파악에 나섰다.

'힘겨루기에서 밀렸다.'

충돌 직후 몇 합을 겨루었고, 그 끝에 서로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가했다.

그 충돌에서 밀려난 건 세실.

대검으로 후려쳤음에도 고작 주먹질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나간 것이다.

'무슨…….'

애써 자세를 잡으려고 하는 것도 잠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의 몸이 제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자각했다.

성벽 아래로 떨어진 건가?

그 판단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측면으로 향해지는 시선…….

아니, 그 이전에 바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림자.'

몸은 사라졌어도 흔적은 남아있다.

이윽고 시선이 위로 향해진 순간.

-파악!

위에서부터 휘둘러진 발차기에 충돌하는 머리.

그 직후 착지한 셰인이 가드를 세운 채로 품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했다.

-까강!

그 상태로 이어지는 잽과 충돌하는 검.

무검술이 접합되어 견고해진 손은, 진검과 충돌해도 깨지지 않을 만큼이나 견고하다.

그리고 거기에 실린 힘은 검에 넣는 것 이상.

-까끄극!!

연이은 응수 끝에 이루어진 손날과 칼날의 힘겨루기.

그 공방 속에서도 세실의 시선은 미친 듯이 구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대의 공격은 고작 두 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파앙!

스탭 직후 이어진 앞차기.

그 공격에 가슴팍을 적중당해 밀려나기 무섭게, 셰인이 다시 거리를 좁혀오며 손을 뻗어왔다.

'리치를 활용해야…….'

뒤로 물러서며 검을 치켜세운 직후, 일순간 시야가 어두워진 것을 느낀 그녀의 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자그마한 자갈.

성벽의 조각난 파편을 던진 것에 불과하며, 마나조차 실리지 않은 일격은 강체술로도 튕겨낼 수 있다.

그런 판단이 일어나기도 전 무의식이 반응한다.

눈이 감겨진 채로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콰앙!!

그 순간을 노린 셰인의 주먹이 세실의 안면을 강타했다.

"커헉!!"

강체술로 직격을 막아도 충격까지 상쇄할 순 없었다.

가벼운 뇌진탕과 함께 밀려오는 구토감.

그리고 가빠지는 호흡.

'침착, 해.'

어떻게든 상체를 되돌린 세실이 검의 형태를 뒤바꾸었다.

대검에서 장검으로.

긴 리치를 이용해 이어지는 후속공격을 견제하고, 그 후 거리를 벌린 셰인을 향해 다시 달려들 준비를 취한다.

-끼긱!!

그 계획이 검을 교묘히 스치듯 휘둘러지는 주먹에 산산이 조각나고.

-콰앙!!

그로부터 튀는 불씨를 궤적삼아 휘둘러진 주먹이, 다시금 그녀의 안면을 강타해 몸을 바닥에 나자빠트렸다.

"……쿨럭."

짙게 쏟아지는 코피.

보통의 사람이라면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격이다.

그럼에도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던 건 힘조절을 해서일까?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저 순수한 강체술만으론 버틸 수 없으니 본능적으로 고개를 뒤로 미룬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전해진 충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상대가 진심으로 상대를 죽일 생각으로 주먹을 쥐고 있다는 걸.

-파앙!

도약과 함께 그 몸이 잔상이 된 순간, 가까스로 그 움직임을 쫓은 세실이 검을 치켜세워 가드를 시도했다.

그 칼날을 교묘히 빗겨치며 품을 파고드는 발차기.

그 공격에 옆구리를 얻어맞아 기울어지기 무섭게, 반대쪽 장딴지에 로킥이 처박히며 자세가 낮아졌다.

'이런, 자세가…….'

그 직후 숙여진 고개에 들어오는 그림자.

달빛을 감추는 양 주먹이 제 뒤통수를 노리고자 휘둘러진 순간, 세실이 걷어차인 다리를 미끄러지듯 움직여 몸을 회전시켰다.

내리치기는 그것으로 회피, 그 직후 휘둘러진 검격이 볼을 스치며 피를 퍼트렸다.

조금만 조준이 정확했어도 목이 도려내어졌을 참격…….

아니, 상대가 간극을 조절하여 피한 것이다.

회피를 최소로 해야만 상대의 빈틈을 노리고 공격을 가할 수 있으니.

-투카캉!!

뒤로 물러나는 그녀를 추적하듯 휘둘러지는 난타.

검을 세워 막아냈음에도, 견제를 위한 잽이 몸 곳곳에 처박히며 통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그에 휘둘리는 와중에도 세실의 눈엔 그의 얼굴이 비추고 있었다.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야.'

이전까지 보였던 자상함과 배려……. 그런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다.

밋밋한 입술과 둥그렇게 뜨여진 눈.

그 망막에 비친 것이 오롯이 자신뿐임을 자각한 순간 덮쳐오는 등골의 오싹함.

그래, 지금의 그는 자신을'사람'으로조차 보고 있지 않다.

'나는 너를 죽일 각오로 싸움에 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러진 않더라도 그럴 기세로.

충돌할 때마다 그 의사가 여실히 느껴지고 있다.

'진심이야. 이 사람은.'

그 살기에 몸이 떨려오는 것이 느꼈지만. 이내 그것을 숨을 다잡으며 견뎌내었다.

어중간한 배려.

어중간한 회피…….

자신의 이상은 그런 비호 아래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가능하더라도 그래서는 안 될 터이다.

'오히려……. 바라는 바야.'

-쩌적!!

이윽고 섬광과 함께 갈라지는 도신.

그와 함께 갈라진 쌍검을 틀어쥔 세실이 셰인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혀갔다.

휘리릭, 까앙!

두 쌍검이 휘둘러지며 이어지는 맹렬한 난타음.

그 맹공에 도리어 밀려나기 시작한 셰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제 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오롯이 한 손만으로.

두 배로 늘어난 난격은, 고작 한 손만으로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가볍기 그지없었다.

'공격횟수가 늘었다고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

공격의 무게는 줄어들고, 도리어 체력의 소모는 배로 늘어날 뿐.

-피칵!!

그렇게나마 만들어진 난타 끝에 칼질이 가까스로 어깨에 처박혔지만, 그 날은 피부를 베었을 뿐 그 이상의 근육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위력이 약하다.

그것을 자각하고 검을 빼내기 무섭게 휘둘러지는 발길질.

-쿠웅!!

복부를 강타한 일격에 폐부가 조이는 가운데, 셰인의 손날이 세실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마나로 벼려진 칼날은 강체술마저 무시하고, 그 내부에 자리한 살과 뼈를 모조리 도려내리라.

-까드드드득!!

그 칼날을 검을 세워 막자 맹렬한 불씨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초진동 효과로 이루어지는 참격이 칼날을 깎아낼 기세로.

그 힘겨루기를 버텨내는 중에도 호흡이 가빠지는 게 느껴진다.

'무호흡.'

그 차오르는 숨을 견디며 지중하고, 제 몸의 마나를 일순간에 해방시켜 공격을 튕겨내려 했다.

-쿠궁!

하지만 상대는 그런 수 따윈 이미 읽은 상태.

그 힘의 해방을 동시에 발동시켜 상쇄하고, 다시금 그 칼날을 갈라낼 기세로 손날에 힘을 실어 넣길 반복했다.

삐그극, 삐걱!

온 몸의 뼈가 미친 듯이 전율을 일으키는 가운데, 세실이 참았던 숨을 크게 내뱉으며 제 몸을 자리에서 크게 비틀었다.

-까드득!

일순간 지지대를 잃은 손날은 그대로 허공을 치고.

그 순간 회전에 힘을 실어 넣은 세실의 거합이 셰인의 후려쳤다.

-파앙!!

칼과 충돌한다기엔 너무나도 경쾌한 소음…….

아니, 그 찰나에 맞춰 그 역시 몸을 비틀어낸 것이다.

마나의 기폭을 교묘히 이용해 몸의 회전력을 더하고,

그녀가 거합에 쓴 힘을 역으로 이용한 기술을 시전하기 위해.

-쿠궁!!

다리에 실린 마나가 성벽에 스미고, 그 방대한 마나가 물리력으로 치환되며 모든 것을 공중으로 튕겨 올린다.

그 공격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세실의 몸 역시 위로 날아오르고, 그 몸에 시선을 집중시킨 셰인이 자신의 두 손가락을 세웠다.

발을 디딜 곳이 없어진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전략.

그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회피가 아닌 응수를 가해야 한다.

'막아야 한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심장이 거세게 뛰고, 온 몸의 혈류가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 힘을 견디지 못한 듯 막힌 부분이 펑 텨져 나온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감각이 이 순간 세실의 온 몸을 덮쳐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일격은 오롯이 그 감각에 맡긴 공격.

-쿠우웅!!!

두 개의 손가락.

그리고 대검이 충돌한 순간 일어난 굉음.

그 여파에 피부가 저려오는 것을 느낀 셰인이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저려오는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위력이, 늘어났……?'

분명 대검마저 갈라낼 기세로 휘둘렀거늘.

도리어 상대가 가진 힘의 무게를 간과한 이 쪽이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 이유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셰인……. 그거 알아요?"

힘에 겨운 목소리와 함께 자세를 고쳐쥐는 세실.

몸은 비틀거리고 있지만, 그 몸에서 느껴지는 고리는 처음 교전에 임했을 때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투, 3써클로 했다는 거……."

경지 해방-4써클.

전투를 하던 중, 그녀가 가진 경지가 3써클에서 4써클로 상승한 것이다.

"……허."

그 광경을 본 순간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터트렸다.

괴물은 절대로 인간의 언어를 주절대지 않고, 싸움을 할 때엔 괴물을 연기하는 것이야말로 적의 사기를 꺾는 최고의 수단인 법.

살육전에 입할 때에 맹신하는 그 불문율마저 깨트릴 정도로,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진 소녀의 성장은 놀랍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써클의 상승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곤 하지만……. 설마 싸우는 도중에 각성할 줄이야.'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다.

실제로 셰인 역시 써클개방을 수행할 때엔 혈도를 개방하고, 그 써클의 흐름을 다잡는 과정에서 '호흡을 멈추며'명상을 했었으니까.

그리고 셰인이 세실에게 가르쳐준 마나의 호흡은 무호흡과 심호흡의 반복.

천식환자의 특성상 이제껏 그녀의 수행 역시 그걸 기반으로 했을 것이며.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경지 해방에 영향을 끼쳐, 이 순간 결실을 맺었다 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야 겨우……."

아니, 오히려 그녀는 자신보다도 성장의 기회가 더 빨랐을 것이다.

"겨우, 당신과 대등한 위치가 됐어요."

개인적인 연구, 구호활동, 군인으로서의 업무 등등…….

온갖 부분에 치여 지내던 자신과 달리, 그녀는 오직 검 하나에만 사력을 집중해왔으니까.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하나의 길만을 갈고닦아왔으니, 성장속도에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걸로 만족하면 안 되지."

하지만 인정하는 것은 그게 전부.

-콰앙!!

도약한 셰인의 무릎차기가 세실의 검을 강타했다.

터무니없는 힘이 실린 위력.

분명 경지가 상승했음에도, 그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버겁다 느껴지고 있었다.

힘보다도 그 맹렬함이 꺾이지 않았기에…….

"이쪽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래, 상대하던 적이 전투 중에 각성하는 일 따위.

그는 전생의 전장에서도 질리도록 겪어온 일이었다.

-쿠웅!!

거리가 좁혀지며 다시금 이루어진 힘겨루기.

그 일격에 어깨가 저려오는 것을 느낀 세실이, 이후 이어지는 주먹을 견제하고자 검의 형상을 레이피어로 뒤바꾸었다.

-까가가가강!!!

서로의 난격이 충돌하며 소음이, 사방으로 불씨가 맹렬히 터져 나온다.

그 빛이 시야를 가리기에 이를 지경이 된 순간 눈에 들어온 거센 마나의 파장…….

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큰 기술'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온다.'

제 손날을 극한까지 마나로 벼려내기 무섭게, 그의 배후에서부터 강대한 마나의 파장이 퍼지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는 아지랑이가 서서히 잦아들고.

그 현상이 그의 손을 기점으로 미친 듯이 일어나다, 그마저도 손끝에 한정되기에 이르렀다.

-삐이이이.

귓가에 들려오는 이명.

그 소음에 귀를 기울이는 세실이 검을 치켜세우며 제 두 눈을 감아갔다.

'클라우디아, 나에게 힘을 주세요.'

생명검 클라우디아.

그 복제본이 그녀의 의지를 읽으며 선명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장검의 형태로 뒤바뀐 칼날이 좌에서 우로 뻗어지며, 거센 마나가 밀집되기 시작한다.

'라인하르트 류 비전…….'

이어지는 것은 전력을 실어 넣은 필살의 일격.

그 참격이 휘둘러진 순간.

-콰창!!!

공격에 가해진 응수와 함께, 손에 쥐어진 검이 무참히 붕괴되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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