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46화
"무, 슨……."
단순히 손날을 휘둘러 검을 부쉈다…….
아니, 클라우디아는 고작 그 정도로 부수어질 만한 검이 아니다.
부수고자 한다면 내부에 힘을 주입하고 터트리는 식으로.
그런 걸 일중극점의 찌르기가 아닌 기술로 이루는 게 가당키나 한가?
'아니, 이론적으론 가능해.'
검의 면이 아닌 날을 베어 가른다면.
그래, 그가 벌인 건 휘둘러지는 날에 맞춰, 그 손날을 정확히 때려 박은 것이다.
강대히 실린 힘마저 파고들고 갈라낼 기세로.
고작 잠깐 숨을 돌릴 정도의 여유가 있는 틈에, 그는 그 정도의 예리함을 제 손날에 담아 휘둘러 가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실전에서 가능한 거야?'
점이 아닌 선.
그 터무니없는 경지의 차이를 자각한 순간 멈추었던 숨통이 트여지고.
"전에 말했지?"
그렇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당수를 주먹으로 바꾼 셰인이 그 끝을 세실의 안면을 향해 겨누었다.
"이게 '보고 베는' 거라고."
-콰앙!!!
또 다시 이어지는 충격.
큰 기술 직후에 이어진 연계기에 제대로 되었다 할 순 없는 일격이지만, 이 쪽 역시 밸런스가 무너진 건 마찬가지다.
이대로 자세가 흐트러지면 다음 일격에 대응할 수 없다.
하지만 자세가 바로잡힌다 해도 지금 그녀의 손은 공허한 상태.
아직 중력에 떨어지지 않은 파편들만이 산발하며, 그 중 극히 일부만이 그녀의 옆을 누비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그 파편을 눈에 새긴 세실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꿈틀거렸다.
'아직이에요, 나는…….'
그 의지에 반응하듯 파편 중 하나가 자연스레 손에 틀어쥐어진다.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주르륵, 파편을 틀어쥔 순간 터져 나오는 핏줄기.
방혈에 의한 고통에 혼란이 가라앉혀지고, 이윽고 냉정을 되찾은 정신이 번뜩 뜨여졌다.
'여기서 포기하면 셰인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돼…!'
흐릿한 시야에 보이는 것은 다잡던 냉정마저 흐트러트리고 만 얼굴.
피칠갑이 된 얼굴에 보이는 것은 자신을 향한 연민. 그리고 희미한 기쁨.
그 희미함이 커질수록, 그의 나약함이 도드라져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것을 느낄수록 그를 향한 열망이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따랐던 건, 나를 이끌어주었던 사람이야. 그리고 그건, 절대로 나만이 독차지해선 안 되는 거라고…….'
그의 강함을 동경하고, 그 뒤를 쫓아 이 자리까지 왔거늘.
자신을 믿고 전력으로 나서는 그 마음에 부흥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데, 그 사명을 져버리고 패배를 인정해서는 아니 될 터이다.
'그러니 주저해선 안 돼요.'
자신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으니.
'그를 위하는 마음이 진짜라면……!!'
-콰르릉!!
그 의지에 기인하여 격하게 터져 나오는 피가, 그로부터 퍼져나가는 방울들이 마나에 의해 터져나가며 피의 안개를 만들어낸다.
그마저도 무시하고 휘둘러지는 주먹이 안개를 가르는 순간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하지만 그건 결코 안면을 함몰시킬 때에 나오는 것과는 다르다.
'이마를 이용한 박치기.'
그의 주먹을 머리를 이용해 버텨내고, 삐걱이는 목뼈에 힘을 주며 견뎌낸 것이다.
"크흡……!"
그 반동이 도리어 팔과 어깨에 덮쳐오고, 그 틈을 노린 세실이 제 손에 쥔 무기를 휘둘러 그 몸을 날려 보내었다.
-콰아아아!!
터무니없는 마나의 격류.
그 사이로 맡아지는 피비린내에 숨을 죽이는 가운데, 뒤로 물러선 셰인이 제 눈에 새겨진 광경을 응시해갔다.
제 몸을 밀어낸 그녀는 피로 버무려진 양손을 어깨너머로 들어 올리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검법 제 1자세-태검(太劍)'
오롯이 거합에, 단 일격에 특화된 자세는 단 일격에 모든 것을 집중한 '필살'에 특화된 자세.
하지만 무기가 붕괴된 현재, 그녀가 손에 틀어쥔 것은 오직 클라우디아의 파편을 틀어쥐며 나오는 유혈뿐이다.
그 피가.
그녀의 의지에 기인하는 마나와 함께 서서히 그 위로 곧게 뻗어지고 있다.
'출혈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이윽고 잡히게된 형체는 한 자루의 검.
과격한 운용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핏방울조차,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셰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살짝 벌리다, 이내 진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저런 미친 짓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마나란 의지에 기인하며 이끌리는 에너지.
당연히 육체에서 떨어져 나갈 시, 그 결속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마나가 체내에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다름 아닌 혈관.
심장과 함께 흐르는 피를 타고 흐르는 만큼, 외부로 흐르는 유혈에 어린 마나는 통상보다 의지가 소실하는 속도가 더뎌지게 된다.
지금 그녀가 행한 것은 그러한 원리에서 기인한 것…….
제 피와 생명검을 매개로 삼아, 즉석에서 만들어낸'외부 내장형 써클'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칫 운용이 잘못되면 온몸의 피가 빠져나와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는, 그런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기교를.
'그 미친 짓을……. 그 녀석도 내 앞에서 태연히 저질렀었지.'
그래, 저 터무니없는 기술이 셰인에겐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지막의 순간. 제 목을 날려버렸던 것이 바로 저것을 통해 만들어진 검이었으니까.
'이 정도까지 즐기게 해준 너에게 경의를 표할게.'
'허, 좀 큰 기술 쓴다고 개폼은 오지게 잡고 있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이 기술을 쓰는 건 나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거든. 너무 위험해서 비전으로 남겼다간 내 아들내미가 따라하다 죽을 것 같고……. 그러니 너를 끝으로, 이 기술은 다시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야.'
제국의 검이라 불리는 녀석조차도 사용에 신중을 기하고, 후세에 전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던 기술.
그 녀석은 친히 그 기술을 이용해 제 목을 베어 넘겼고, 그 순간에 느껴졌던 감각이 이 순간 저 흉흉한 붉은 빛을 본 순간 다시금 재현되고 있었다.
'형상은 붉은 외날의 곡도…….'
마치 초승달처럼 휘어진 검의 형상. 그 예리한 칼날의 크기는 가히 대검에 준하고 있었다.
'혈도개방(血刀開放)'
가문에조차도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그렇게 과거에 잊혔어야 할 비전이.
이 순간 200년의 시간을 넘어, 그 피를 이어받은 후세의 손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우연인가.'
아니면 피에 새겨진 본능의 영역인가.
적어도 그 기술이 제 아비로부터 전수된 건 아닐 것이다.
'그 녀석은 방정맞긴 해도 거짓말을 할 녀석은 아니야. 저런 위험한 기술을…….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아들녀석에게 전해줬을 리는 없겠지.'
그 아들놈을 위해 전쟁을 빨리 종결시키겠다고, 그 방식을 전쟁이 아닌 종전으로 택하기까지 했던 녀석이 아닌가.
당연히 전쟁도 끝난 마당에 그 비전이 후손에게 전해졌을 리가 없다.
실제로 세실 역시도, 자신이 이런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클라우디아…….'
제 손에 쥐어진 클라우디아의 파편.
기껏 해봐야 복사본에 불과하지만, 그 복사본 역시 본체의 일부를 깎아 만든 무기다.
생명과 의지를 지닌 무기의 일부를 깎아서.
'당신의 기억이군요.'
그 기억이 이 순간 자신의 무의식에 간섭하여 지금의 기술을 만들어내었다 한다면…….
'그 또한 쓸 수 있다면 써야 할 뿐.'
출혈에 의해 주욱 빠져버린 힘. 그럼에도 기를 쓰고, 악으로 버텨내며 피로 벼려진 곡도를 위로 들어올렸다.
피가 굳어져 만들어진 칼날은 그 자체로 추가적인 써클.
그 힘은 분명 통상의 두 단계는 높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굉장하지만……. 역시 그 녀석에 비하면 부족해.'
그리고 그건 지금의 그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엔 버텨내지도 못하고 목을 내어주었던 공격.
눈 깜짝할 새에 이루어졌던 공격이기에 분석할 여력조차도 없었다.
그저 그 위력이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것과 출혈을 이용한 써클의 추가를 '혈도에 관한 지식'도 없이 본능적으로 이루어낸 그의 천재성이 경악스러울 뿐.
설령 열화판이라 한들, 지금의 상태에선 막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는 공격이다.
'안전을 노리려면 잠깐이라도…….'
이윽고 셰인의 손가락이 제 목을 향해 겨누어졌다.
저 기술에 대항하기 위해선 자신도 전성기의 전력을 구현해야 한다고…….
'아니. 지금은 안 돼.'
그 무의식적인 행동에 의식이 간섭한 순간, 혈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굽혀지며 주먹이 틀어쥐어졌다.
이제까지의 전투로 퍼져나간 잔재마력을 한 곳에 집약시키기 위한 매개체로.
"마지막……."
이윽고 곡도를 틀어쥔 세실이, 그에 자신의 의지를 틀어박으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마지막이에요."
이제까지의 전투로 전신 곳곳에 흩어진 잔재마력.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무기에 끌어 모음으로써, 힘과 힘의 충돌을 유도한다.
의지라는 틀에 가두어진 무수한 난기류의 폭풍.
그 힘을 집약시킨 피의 날이 요동치다, 이내 휘두름과 함께 해방되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제 주먹에 집약시킨 힘을 모아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기본-극도.'
기본에 기본을.
기술을 극한까지 갈고닦아 만들어진 일격을, 서로를 향해.
-콰아아앙!!!
그 두 가지의 필살이 충돌하며, 그 후폭풍이 성벽 위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거센 폭발은 전장에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이목조차 집중시키기에 이를 정도.
그 여파를 정면에서 받아낸 두 사람의 몸이 자리에서 날아갈 듯,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아직…….'
그 힘을 이를 악물며.
제 턱이 부서져라 견디며, 두 다리를 땅에 뿌리박아 저항하였다.
'아직……!'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공기의 파장.
그 거센 흐름에 시야의 모든 것이 일그러져 보이는 가운데, 이윽고 소용돌이치는 안개마저 갈라낸 두 사람이 제 눈에 새겨진 모든 것을 눈에 새겨갔다.
누더기가 된 몸.
피와 눈물로 추하게 문드러진 얼굴. 전신의 근육은 파열되고 뼈 역시 성한 곳이 없다.
마나를 끌어 모으는 것조차도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나 두 사람의 몸은 처절히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독기만은 살아있다.
그 독기로 벼려진 비수만은, 정확히 서로를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이게 정말로 마지막.'
5년의 세월.
'이걸로 승부가 갈리게 된다.'
그 끝에 이루어진 짧은 결투가, 이 순간 서로를 향해 뻗어진 손을 통해 결정되었다.
그리고…….
* * *
'셰인, 뭘 하시는 건가요?'
그가 성에 온 지 아직 1년 채 안 되었을 때였을까.
그를 쫄래쫄래 쫓아다니기만 했던 시절, 세실은 뒷산에서 홀로 나무를 향해 손날을 내지르는 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
아니, 그저 손날이 아니다.
그 끝이 나무를 스칠 때마다 파편이 튀기며, 나무에는 하나의 자국이 새겨지길 반복했다.
마나로 손끝을 벼려 만든 흉기……. 그의 손은 그렇게 정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절개술이라고 하는 거야. 쉽게 말해서 손을 칼로 바꾸는 기술인 셈이지.'
'무검술이랑은 다른 건가요?'
'무검술은 날이 서질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호신기에 불과하니, 뭉툭하더라도 제 역할만 다하면 충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절개술 역시 전투에 적합하다고는 할 수 없는 기술.
기껏 해봐야 기습에만 의미를 두는 게 정상이지만, 당시의 셰인은 마냥 현재의 상태엔 안주할 수 없던 몸이었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제 힘을 키울 필요가 있었으니까.
'이 절개술에 무검술을 더하면 위력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가 하는 고민이 그저 가벼운 호기심이나, 개인적인 훈련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었다.
그것을 4년간 반복해 연마하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런 당시의 기억 역시, 그가 사라진 자리에선 이윽고 하나의 추억으로 변질되기에 이른 상태였다.
그런 기억에 이끌려서일까.
소녀는 그가 훈련했던 자리에서, 그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그 행동을 반복해왔다.
'앗……!'
처음 휘둘렀을 무렵, 나무에 부딪친 손날의 피부가 찢어지고 말ㅇ았다.
제대로 마나를 벼리지 못한 나머지 거친 나무의 표면에 여린 피부가 그대로 맞닿은 것.
그것이 아프게 느껴졌지만,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가 훈련에 사용했던 흔적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무수한 손짓에 의해 쓰러져 있는 나무들.
하지만 그 시작만은, 지금의 자신이 남겼던 것만큼이나 볼품없는 상처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 역시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 기술을 구사하지는 못했다는 것.
'시간을 들이면…….'
시간을 들여 그가 사용했던 기술을 구현한다.
그건 소녀에겐 무척이나 버거운 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당장 제 아비가 주는 수행마저도 한계를 넘어선 것.
거기에 추가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완치될 수 없는 병을 닳고 있는 몸으로는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좋아. 하루에 한 번이라도…….'
여유가 되는 선에서.
그렇게 소녀는 매일 같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와 같은 기술을 구현하는 데에 힘을 써왔다.
처음에는 한 번으로.
서서히 훈련에 적응해가면 두 번, 세 번의 횟수로 늘리고.
그렇게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기를 5년이 흘러,
이윽고 하루에 휘두르는 횟수가 백을 넘어섰을 무렵…….
* * *
"보고 벤다……. 라고 하셨죠?"
그렇게 만들어진 무기는, 검이라기엔 너무나도 볼품없는 것이었다.
곧게 뻗은 검신도, 심지어 날을 고정시키는 손잡이조차도 존재하지 않은 칼.
검을 거머쥐어야 할 것이 손이거늘, 도리어 그는 그 손으로 칼을 표방하는 '흉내'로써 실체를 메우고 있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지만 흉내 역시도 결국에는 기술이라 부르는 것.
그 기술의 끝을 마주한 셰인이 애매히 웃으며, 제 목에 겨누어진 손끝으로 시선을 향했다.
라인하르트의 무검술은 그저 호신기.
예리함이 아닌 견고함에 치중된 만큼, 본래엔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에 대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제 목 앞에 겨누어진 것이 그 정도에 불과한 기술이었다면, 셰인 역시 그녀의 고개 옆으로 뻗어진 손을 마냥 멈추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아이헨발트식 절개술.'
무기가 아닌 메스를 대체한 기술.
전생에선 적을 기습하여, 급소를 노리는 정도에 불과했던 기술이었다.
그 칼날은 '메스'를 표방한 만큼 예리함은 그 어떤 명검보다 뛰어나지만, 그를 보완할 내구도가 무척이나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예리함을 만들어내는 데엔 그만한 정밀함이 필요한 것.
그 중요성은 아이헨발트의 의사들에겐 누누이 강조되어왔고, 수 년에 걸쳐 익히되 평생에 걸쳐 연마해야 한다 일러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셰인은 그 기술을 이 소녀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수행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신이 없는 5년의 세월에 걸쳐 그것을 자체적으로 익혀온 것일 뿐…….
'이게 비장의 칼인가.'
아마도 이제까지의 결투에선 써본 적이 없었겠지.
정말로 최후의 최후에. 발악과도 같은 마지막의 의표를 노리고자 연마했던 기술일 테니까.
"잘 찔러야 돼. 어중간하게 그으면……."
"알아요."
피와 멍으로 범벅이 된 얼굴.
하지만 그 시선만은 올곧게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다.
자신의 목의, 정확히 '정맥'이 있는 곳으로.
"가르쳐주셨잖아요. 셰인이, 제 목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을 때……."
그래, 천식에 대해 설명할 때 해부도를 여럿 보여줬었지.
그 당시 지식마저 이제껏 되새겨왔다면, 8써클의 강체술마저 찢어내는 절개술로 목을 베어 넘길 수 있다는 건 결코 허세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셰인."
그 끝을 피부에 맞대고 있는 세실이 힘겨이 물었다.
"더……."
목소리의 떨림은 덮쳐오는 피로를 견디지 못해서인가?
"더, 하실…… 건가요?"
당장이라도 툭 치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셰인은 여기서 저항할 여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미 마지막 공방에서 손끝이 크게 빗겨난 시점에서,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아니."
그래, 지금은 완벽한 외통수다.
이내 셰인이 뻗어진 손을 거두며 조용히 말했다.
"내 패배야."
치열했던 싸움이 끝나고.
이내 울컥함을 견디지 못한 세실이, 그대로 셰인의 몸을 끌어안은 채 땅을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