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47화
"……세실, 나 아파."
"저도 아파요."
"그래, 아프니까 좀……."
만류하고자 어깨에 손을 올렸지만, 정작 세실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셰인의 몸에 머릴 기대고 있었다.
아니, 처박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이대로 떨어지기 싫다는 것마냥 옷자락까지 잡고 있으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할 정도다.
'그래 뭐, 상처야 신성력 바르면 다 낫는데.'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눕혀진 자세 그대로 세실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얼굴 좀 보여줘 봐."
"……싫어요."
"잔말 말고 빨리."
재차 번복하며 머리를 흔드는 세실.
그에 무언가 고민하듯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실어 넣은 세실이, 더욱이 고개를 깊게 박으며 속삭였다.
"역시 싫어요."
"……세실."
"지금은 안 돼요, 그, 하다못해 화장이라도……."
이전까지만 해도 대판 싸웠는데 이제 와서 왜 화장타령일까?
"됐으니까 빨리 보여주기나 해."
어깨를 툭툭 치며 부추기자, 세실이 마지못해 제 고개를 들어올려 셰인을 마주하였다.
코피에 멍자국, 그리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당장이라도 울음보가 터져 나올 듯, 입 안에선 끅끅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전까지 자신을 살벌히 노려보았던 그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나이를 먹어도 아이 같은 건 여전하네.'
18세의 그녀에게서 10세 시절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 그리움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느낀 셰인이,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주었다.
"잠깐만 있어봐. 바로 치료해줄 테니까."
손끝에 어린 빛이 그녀의 얼굴을 차차 쓰다듬어간다.
퍼렇게 물들어진 부분들이 쓰다듬기 무섭게 사그라져 간다.
아픔이 가시는 것을 느낀 세실이 셰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신성력, 인가요?"
"뭐, 어쩌다 보니 사용할 수 있게 돼버렸네."
정식 성직자들이 듣는다면 분명 까무러칠 말이리라.
하물며 그게 세간에서 이단이라 평해지는 자라면 더더욱.
그게 놀랍거나 의아해 보일 법함에도, 정작 세실은 제 손에 있는 빛을 외면한 채 셰인의 몸을 훑어보고 있었다.
"저보다는 셰인이 먼저…."
"됐어, 이 정도면 침 바르면 나으니까."
몸 곳곳이 아파오긴 하지만, 골절이나 근파열은 중요 장기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 대체로 치명상이 되지 않는 법이다.
기껏해야 잔상처가 많아 피가 많이 빠진 게 문제일까…….
하지만 상시로 적용되는 신성력에 아물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회복될 부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클라우디아마저 부서졌으니 자연치유력을 누릴 수 없을 테고.'
이전에 보여준 그 초월적인 신체능력은 클라우디아가 품은 신성력에 의해서.
그것이 산산이 조각난 현재,
클라우디아는 신성력은커녕 특유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파편을 통해 힘을 개방시킨 것도 아주 잠시에 불과할 터.
그렇게 처참히 붕괴된 클라우디아의 파편을 응시하고 있자니 괜스레 불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변상하라고 하진 않겠지?"
원본이 아니라 해도 복제품만 해도 국보로 취급되는 물건.
그에 불안함이 느껴졌지만, 저작 장본인인 세실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괜찮을 거예요. 저도 예전에 한 번 부쉈는데, 장인에게 가져가니 바로 수리해 줬거든요."
"……저걸 부쉈다고?"
"그게 확실히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물러나게 한다라…….
대강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상이 되었다. 아마도 황족 역시 그녀를 탐을 내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보다도 높은 계급의 남자조차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기회마저 박탈한 채 자신을 선택하였다.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외면한 여인에게 칼을 빌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이런 일을 감수하고 빌려줬을 테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였다.
"그건 그렇고, 역시 너무해요……."
그래,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건 따로 있겠지.
어느 정도 치료가 진행되었을 무렵, 세실이 훌쩍이며 셰인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쏘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멍자국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확실히 너무 사정도 안 보고 때리긴 했지."
이 곱상한 얼굴을 이렇게 뭉개버리다니.
일라이가 본다면 척추를 넘어 오체분시를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그렇게 딴청을 피우는 셰인을 쏘아보는 세실.
5년에 걸친 훈련은 지금의 부상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괴로움이 동반된 만큼, 이런 육체적인 고통 따윈 괘념치 않게 여길 것이었다.
"절, 좋아한다고……."
지금 원망스러운 건 셰인이 싸움에 임했던 태도 그 자체였다.
"그렇게 말했던 건, 거짓말이었나요?"
"아니, 그건……."
"거짓말이 아니면, 왜 전력으로 나서지 않은 거예요?"
겨우 닦아낸 눈가에 다시 맺히기 시작하는 눈물.
제 가슴팍에 올린 양손은 당장이라도 휘둘러질 듯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하필이면 마운트 포지션에서 주먹을 휘두를 준비를 취하다니.
사실 결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전력이 아니긴. 지금도 온몸의 진이 다 빠질 정도인데."
"그래도 좀 더 강하게 나올 수 있었잖아요. 그 때 그 괴물의 목을 베었던 것처럼……."
솔직히 말했음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재차 나무라는 세실.
"그래요, 그때처럼 더 크게 밀어붙일 수 있었을 텐데."
부대가 습격을 당했을 당시, 과감히 뛰어들었다 한들 혼자서는 그 목을 떨어트리지 못할 괴물이었다.
하지만 셰인은 그런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
자신보다도 더 정확하게 적의 약점을 보고, 그 부분을 정확히 그음으로써.
"그때처럼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범위가 적을지언정, 그건 어디까지나 일대를 초토화시킬 만한 괴물을 대상으로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참격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절대적인 필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기술.
하지만 이전의 전투에선 그만한 파괴력이 보이질 않았다.
차마 그 경지까지 넘어서지 못한 자신을 배려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이게 내 전력이야."
그럼에도 셰인은 세실의 꾸짖음에 같은 말을 번복할 뿐이었다.
그 말에 울컥함을 느껴 뭐라고 말을 했지만, 정작 셰인은 세실과 달리 그런 체력조차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여?"
"……아뇨."
초췌한 눈동자 속에 엿보이는 체념, 그리고 만족감.
그를 마주한 세실이 마지못해 대답하며, 그의 몸에 다시 머리를 기대었다.
그래, 이 이상 나무라봐야 의미는 없을 것이다.
정말로, 진심으로.
이전의 싸움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발휘해 펼쳤던 것이었으니까.
'정말로 해냈구나.'
4써클.
현재 자신이 도달한 경지 내에서, 허락되는 최대의 전력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 모든 공격을 이 소녀는 몸으로 버텨내고 달려들고, 거기에 더해 성인식 이전에 4써클로의 경지상승까지 이루며 몰아붙이기까지 하였다.
특히나 마지막에 보였던 그 일격은 자신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했을 정도.
그 반동을 버티지 못했기에 마지막의 절개술을 파훼하지 못했고, 그것만으로 이 아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게 증명된 거나 다름없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6써클로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제 손가락을 슬며시 내려다보는 셰인.
하다못해 그 마지막 필살만은.
제 전성기의 전력을 살려 대응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혈도개방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
'이 아이의 사랑은 카일을 향한 게 아니니까.'
그래, 지금의 자신은 셰인 골드리안이니까.
그런 몸으로나마 카일 페터슨의 숙명을 이루고자 결심했지만, 지금의 이 싸움은 그 사명감이 아닌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벌였던 일이다.
'지금의 당신은, 피오의 제자가 아니게 되더라도 많은 것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요 카일. 이런 세계라도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상기하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당신이 행해온 모든 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증명하는 거예요.'
그래, 제 스승이 말했던 것처럼.
지금의 자신은 카일 페터슨의 숙명만을 짊어진 게 아니니까.
시작은 과거에서 비롯되었을지언정, 그 끝만은 자신의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그녀로부터 증명받았는데.
그 욕망을 이루는 데에, 한계 이상의 힘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이 아이와의 싸움만은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쓸 수 없는 거야.'
그렇게까지 무리를 해가며 이루면, 이후 그녀와 지내는 모든 것은 그런 감당하지 못할 일들의 연속이 될 테니까.
감당하지 못할 욕망은 파멸로 이끄는 법이 아닌가.
그걸 견제했기에 그녀와 맺어질 수 없다고 말했던 게 아닌가?
"많은 걸 짊어지니까."
그 점을 어렴풋이 이해한 세실이, 셰인의 옷을 움켜쥐며 먹먹함을 토해내었다.
"그러니까 당신을 따라다녔던 아이한테도 따라잡히고 마는 거예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싸움에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봐주지 않았다는 걸.
사실은 그러길 바랐지만, 그런 바람에 충실해선 그의 신뢰를 져버리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걸.
"조금만, 이 어깨에서, 짐을 덜어두었어도, 이기는 건 당신이 되었을 텐데……."
애초에 지금의 결과를 위해 전력으로 저항했던 게 아닌가?
그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역시 이렇게 끝을 맺는 데엔 미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마음은 확인했지만, 그 마음은 맺어지지 못한 채로 앞으로도 평행선을 그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기만 하면……."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마음조차도.
"지금 이렇게 우리 둘이 겨루는 일도 없었겠지."
그 시작만은 그가 짊어진 사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동정, 구제, 사랑…….
그 모든 건 그런 사명의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마음이라도 시간이 지나니 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마음이 사명을 수행할 자신에게 훼방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당신은, 피오의 제자가 아니게 되더라도 많은 것이 남아 있어요.'
지금의 자신은, 결코 사명만을 수행하는 인형 따위가 아니니까.
카일 페터슨이 아닌, 카일 페터슨이라는 의지를 이어받은 셰인 골드리안으로.
그것이 지금의 그가 가진 정체성일 것이다.
"고마워 세실."
그러니 적어도 지금만은.
지금 이 순간만은 전생의 숙명을 집어던진 채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
"날 위해 열심히 해줘서."
자신을 찾아 이 머나먼 땅까지 온 소녀를 위해.
"나를……."
이 순간만은 이 소녀가 등을 기대고 쉴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고 싶다.
"나를, 이제까지 기억해 줘서."
그런 소녀를 지탱해주는 게 자신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신조차도 구제를 거부했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마저 꺾어 누를 정도로 강해져있다는 사실이.
그런 잠재력을 개화시킨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 지나온 길이라는 점이, 그 어떤 사실보다도 자긍심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자각할수록 손에 어린 빛이 더욱 거세져 가는 게 느껴진다.
그 따스한 빛을 마주한 세실이, 제 얼굴에 그려진 근심을 지워가며 입가에 미소를 그려갔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지금의 마음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처음 그가 경고했던 대로.
지금의 마음은 그저 어린 시절의 민감함에, 제 목숨을 구제받았다는 크나큰 보은이 가미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며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공교롭게도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앞날을 알기엔 저는 너무 어리니까……. 어쩌면 언젠가, 저희는 서로의 마음에 관계없이, 다른 누군가와 맺어지는 걸 택할지도 몰라요."
그도, 그리고 그녀도.
둘 모두 이 자리에 선 건, 그저 과거에 묶인 인연을 따른 결과이니까.
그런 두 사람이 미래가 어찌 될지를 논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그래도 지금은."
그러니 지금에 충실하자.
"지금은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그 마음은 과거에서 비롯되었을지언정,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드는 정열만은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지금은, 이 마음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해요."
그 또한 미래에 있어선 추억이 될 일.
그들이 할 일은, 그 추억을 보다 의미 있게 포장해가는 일이 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로부터 유대감을 느낀 셰인이, 제 몸에 고개를 뉘인 소녀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끝까지 이 마음이 유지된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이 마음이 유지되고 있다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비명, 총성과 포탄소리…….
이제껏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소리들이 서서히 잦아들어 가고, 지평선 너머에서 비추는 섬광과 그림자 역시 차차 종적을 감춰간다.
달의 기울어짐은 처음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이 땅의 명운을 건 총력전이란 그렇게나 치열하게, 준비된 시간이 무색하게도 짧게 끝이 났다.
"…이 손에 있는 짐이 가벼워질 때, 그 때 다시 도전해도 될까?"
그런 일이 이후에도 또 벌어질 테지.
그러니 그 때를 대비한다면 다시 기나긴 준비를 거쳐야만 할 것이다.
그래,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 또한 각오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여긴 소녀가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오고, 셰인이 만족스레 웃으며 그 자리에 몸을 뉘어 잠에 들었다.
치열했던 싸움의 끝에 찾아온 야속한 이별.
그렇게나마 찾아온 휴식으로 두 사람은 피로를 달래가기 시작했다.
비극적일지언정, 그렇기에 언젠가 찾아올 재회는 더욱이 아름답지 않을까. 하며…….
그런 기대감과 함께 잠에 들기를 몇 시간이 지나니, 이윽고 저 너머에 비추는 햇살이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폭음과 쇠비린내, 처절한 함성과 끔찍한 비명,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지평선 끝까지 뻗어진 묫자리…….
그런 잔혹한 세상에도 서서히 땅을 비집고 오르는, 작은 새싹을 환영하듯이.
[작가 후기.]
다음 편. 1부의 마지막 편과 후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