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48화 (1부 완결) (148/255)

의무병의 환생 148화

1부-에필로그

-구우우우~~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새의 울음소리.

해안가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선원이 그 울음소리에 반응하고, 제 입에 손가락을 향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에 반응하여 궤적을 꺾는 한 마리의 비둘기.

그 새를 받아들인 선원이, 그 다리에 끼워진 쪽지를 확인하고 섬 안으로 발을 들였다.

다듬어진 길목을 따라, 그 위에 위치한 도시를 향해 들어서는 선원.

그의 어깨에 올라탄 비둘기를 본 선원들의 머릿속에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선장님, 전서구가 도착했습니다!"

그건 방에서 자신의 동무와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는 선장 역시 마찬가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드레이크가, 자신의 의수를 움직여 그의 어깨에 올라탄 전서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다리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메시지로.

그 안엔 영지 측에서 이전에 쓴 메시지에 보내는 간략한 답변이 적혀있었다.

"영지에서는 뭐라고 보냈나?"

"이후 새로이 원정대를 보내온다더군. 앞으로 1달 정도면 돌아갈 수 있겠지."

파라켈쿠스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는 드레이크.

이후 편지의 마지막 문구를 읽은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 친구는 무사히 도착한 듯 하군. 제대일에 맞춰 도착한 모양이라 다행이구먼."

"이 편지를 받았을 때쯤엔 이미 제국에 돌아갔겠지만 말이야."

전서구로 날아가도 1달은 족히 걸리는 거리니까.

하지만 그들 역시 머지않아 제국으로의 귀향이 예정된 이들.

인연이 있다면 지금의 아쉬움은 마냥 영원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섬 생활도 끝이 나는 건가."

"학자들이랑 성직자들은 계속 여기에 남는다고 하던데."

"하긴,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가면 문제가 많겠지."

복귀를 위한 항해선의 소식을 접한 선원들이 하나 둘 씩 소감을 토해낸다.

대부분은 기뻐하는 분위기.

금지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성직자들 등등, 불안한 점이 적진 않지만 그것도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일 것이다.

돌아가는 때가 늦어질 뿐이지, 자신들이 돌아갈 때쯤엔 분명 제국은 바뀌어있을 테니까.

'그래, 그 소년병이라면 분명 그것을 이루어 내리라.'

그 믿음만은 이 섬에 있는 전원에게 존재하고 있는 상태였다.

"레온은 돌아가실 건가요?"

마침 창고에서 필요한 물품을 옮기던 코델리아가 제 옆을 따르는 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자신보다 세 배는 더 많은 짐을 챙기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

그가 짐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린 채 턱을 괴며 대답했다.

"돌아가야겠지. 기사단의 일도 있으니까."

거진 1년 간 함께 하면서 거리감이 줄어든 상태.

그런 레온을 친근히 여기는 코델리아이기에, 개인적인 사정을 토로하는 데에도 거리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네, 저도 보육원을 너무 오랫동안 비웠기에 돌아갈 필요가 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독립하지 않은 아이들 중엔 맏이였다 했었나……. 여러모로 고생이 많을 것 같군."

자신의 형처럼.

잠시 그런 생각이 든 레온이, 이내 쓰게 웃으며 코델리아의 안색을 살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얼굴엔 왜인지 모를 근심이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께선 이미 제국에 돌아가셨겠죠."

아직 그에게 입은 은혜를 갚지도 못한 참.

하지만 코델리아는 이제껏 블레이즈의 영향권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당장은 소년병 취급이기에 책임이라고 할 건 없지만, 자체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란 쉽지 않은 입장일 것이다.

"코델리아."

그런 코델리아를 신경 쓴 레온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 너만 괜찮다면, 같이 제국으로 가지 않겠나?"

"……네?"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살짝 얼굴을 붉히며 볼을 긁적이는 레온.

"마법을 배운다고 하면 전문적인 시설에 도움을 빌리는 게 좋을 테니까. 마침 내 가문이 터를 잡은 곳에도 배움을 가지기 좋은 시설들이 있으니, 괜찮다면 우리 가문이 네 후견인이 되어줘도 좋다 생각이 들어서……."

"……."

"그,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써……."

자신이 말해놓고도 낯간지러운 것일까. 애써 변명을 하는 레온을 보던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광경을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한 수녀가 있었으니…….

"저 녀석들. 대체 누구 앞에서 염장을 지르는 건지."

괜스레 배알이 뒤틀리는 것을 느낀 붉은 머리의 수녀. 메어리가 제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딱히 질투를 느끼거나 한 건 아니다.

레온은 예전부터 함께 지내온 친구고, 코델리아 역시 이 섬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건 두 사람이 이단에 대해 과할 정도로 호의적이라 해도 마찬가지.

그 두 사람을 나무라기엔, 메어리 역시 마냥 떳떳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이지.'

셰인 골드리안.

그 얄미운 녀석의 얼굴을 떠올린 메어리가 제 주먹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

그 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공교롭게도 메어리는 그 정도 소리까지 듣지 못할 정도로 청력이 나쁜 건 아니었다.

"뭐야, 왜?"

돌아본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수녀복을 입은 분홍머리의 소녀.

자신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듯 우뚝 서 있던 소녀가, 제 양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와아."

하고 힘없이 외치는 베르디.

이후 그 모습을 마주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니, 베르디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었다.

"놀라셨나요?"

"……놀라겠냐."

장난을 치는 건 친근함의 표시라고 하던가.

하지만 베르디는 그런 것마저도 굉장히 서툰 아이였다.

이 섬에서 지낸 지도 1년에 가까워지는 참. 그 동안 몇 번이고 이런 일을 반복했으면 슬슬 깨달을 때도 되었을 텐데…….

'요령이 없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그런 요령 없는 아이를 골려먹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하는 거다.

메어리의 눈총이 곧 베르디의 배후에 있는 그림자로 향해졌다.

"또 그 뒤에 있는 애들이 시킨 거지?"

-우우웅.

옆에 떠오른 검은 형체들이 격하게 진동을 일으킨다.

뭔가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공교롭게도 메어리로선 뭐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하며 코웃음을 터트린 메어리가 마저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염장을 지르고 있는 상태. 베르디가 그런 메어리의 옆에 자리를 잡으며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고민이 있으신 건가요?"

"고민이야 늘 있지."

세상에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런 고민으로 심란해진 마음을 다스리고자 먼 산을 쳐다보고 있자, 메어리의 안색을 살피던 베르디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셰인을 생각하고 있던 건가요?"

움찔.

메어리가 몸을 움츠리며 베르디를 돌아보았다.

"그걸 어떻게……."

"왠지 그럴 것 같은 얼굴이라고 첼리가 그랬어요."

-우우웅.

옆에서 진동을 일으키는 개구쟁이 수행원.

그를 험상궂게 우그러진 얼굴로 째려보자, 기겁하는 그림자가 베르디의 등 뒤로 다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자는 둥그렇게 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기만 할 뿐.

그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악의가 전혀 없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자기 혼자만 창피할쏘냐.

그 얼굴이 아니꼬워 한 번 일그러트리고자 직설적으로 얘기했지만, 정작 베르디는 그에 한 점 부끄럼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네, 저도……."

수줍게 붉어진 볼.

"요즘엔 셰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제국에 돌아가게 되면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그것을 응시하던 주변의 검은 그림자들이 더욱 웅웅거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던 메어리가 볼을 살짝 부풀리다, 이내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도 재능인가."

"무슨……."

"됐으니까 기도나 하자."

화제를 돌리는 메어리가 제 양손을 조용히 맞잡았다.

갑작스러운 태세의 전환에 의아해하는 베르디.

메어리가 그런 베르디를 돌아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엿다.

"그 녀석. 제국으로 돌아가면 여러모로 많이 휘둘릴 테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라도 몸 간수는 잘해야 할 텐데, 무사히 있어 달라고 주님에게 부탁은 드려봐야지."

이단자라 해도 그 신념만은 분명 올곧을 테니까.

그것을 몸소 증명한 소녀가 그 의견을 새겨듣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메어리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아뇨,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무슨 말이야?"

"그를 위하는 마음도,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저희들의 위안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걱정이 드니 기도로나마 그 걱정을 삭히고자 한다.

결국 타인을 위해서라는 마음 역시도 그런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기심이라는 형태의 자기애로.

"그러니까 메어리. 지금부터 저희가 할 기도는 셰인을 위한 게 아닐 거예요. 다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닐 테고요."

양 손을 맞댄 채로.

곧 베르디가 화사하게,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을 위하는, 저희 자신을 위한 기도죠."

자신을 사랑해야만이 타인을 위하고, 사랑할 수 있으니…….

그렇게 자기애를 알아가는 소녀들은, 이윽고 어른이 되어가는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 * *

"셰인 골드리안."

사령실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를 입에 담은 사샤가 손에 쥔 서류의 내용을 근엄한 목소리로 읊어갔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너의 형량이 완료되었음을 선고하겠다. 이후 네 신변은 나 블레이즈 변경백의 휘하에서 벗어날 것이며, 귀족으로서의 권한 역시 다시 주어질 것이다."

지난 5년간 무탈히 영지를 위해 봉사해 온 죄수병을 향한 존경, 경의.

그 모든 것을 담은 조촐한 제대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를 듣고 있던 셰인이 새끼손가락으로 제 귀를 후비며 툴툴거렸다.

"권한이 되돌아오는 게 뭐 대수인가? 어차피 돌아가자마자 가문에서 제명될 게 뻔한데."

"……카일 선배님, 일단 절차는 제대로 밟아주시죠."

"됐어 이 녀석아.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서류에 도장 찍고 대충 끝내."

5년의 끝에 찾아온 제대라면 신날 법도 하거늘.

정작 그는 남들과 달리 이 영광스러운 순간을 대충 넘기려들고 있었다.

하기야, 이후에 있을 일은 이 영지에서의 활동보다 더한 고난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 당연할까?

"당신이 바란다면 기꺼이."

피식, 웃은 사샤가 이내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셰인의 소속이 블레이즈를 벗어나게 되는 순간.

이후 제국의 사법부에서 훗날의 처리에 대해 전해듣고 나면, 그는 마침내 죄인의 신분을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

"좋아, 대강 처리도 끝났으면 난 이만 가볼게. 나중에 또 만날 기회가 오면……."

"그 아이와는 인사하지 않고 가시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인사를 남기려던 셰인의 미련을 건드리듯, 사샤가 그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 물음에 잠시 행동을 멈춘 셰인이 제 머리에 감겨진 붕대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인사할 게 뭐가 있어. 영원히 작별하는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말도, 전해야 할 감정도 어젯밤의 싸움에서 모두 마무리 지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끝을 내야 한다.

이별을 길게 이어가면 그 미련만 길어지고, 이후 찾아올 재회에서의 감동 역시 그만큼 사그라질 테니.

"그 또한 당신의 의지라면 따를 뿐이죠. 이제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이내 수속을 마친 후, 사샤가 떠나가는 그를 향해 말 없이 경례자세를 취하였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며 사령실을 벗어나는 것도 잠시.

마침 복도의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셰인 골드리안……. 이렇게 마주한 건 처음이었던가?"

자신과 같은 금발에, 대조될 정도로 검게 태워진 피부를 가진 동년배의 청년.

"……나를 알아?"

괜스레 빈정이 상해 말을 놓아 물으니,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반가움을 토로했다.

"알다마다. 일단은 그대의 팬이니까."

"팬?"

"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말을 아끼도록 하지. 중요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는 게 좋은 법이니까."

툭툭.

어깨를 두드리며 옆을 지나치는 그가, 셰인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여 말했다.

"머지않아 제국에서 보도록 하지."

"……."

말없이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때 그는 이미 사령실에 뒤이어 들어간 상태.

공교롭게도 그에 대해선 뭔가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특유의 오만한 태도가 거슬리게 느껴졌지만…….

"뭐, 아무래도 좋겠지."

그의 말대로 나중에 제국에서 만난다면 그 때 가서 아는 채를 해도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건물을 빠져나간 셰인이 홀로 길에 발을 들였다.

그 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검문소를 벗어나, 제국으로 향하는 마차에 오르기 위해…….

"하, 조용히 좀 가나 했더니."

그 길목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몸이 우뚝 세워지고 말았다.

양옆으로 일렬로 늘어져 있는 병사들.

영지 내에 소속되어있는 병사들이, 그가 가는 길목에 무수히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 차렷!!"

그런 그들을 지휘하는 것은 시종복을 입은 여인을 옆에 두고 있는 실눈의 남자.

"선생님에게 경례!!"

그 호통소리와 함께, 주변에 자리한 병사들이 일제히 제 손끝을 이마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점의 흔들림 없는 경례자세.

그런 와중에도 그 누구도 입 한 번 열지 않으며, 제 옆을 지나고 있는 소년을 응시하고 있다.

무수한 사람이 모여 있음에도 엄숙하고 조용하기 그지없는 길목이다.

마치 조용히 떠나길 자신을 배려하듯이.

'이 녀석들, 어제만 해도 대판 싸우지 않았던가?'

그걸로 그치지 않고 이후에 올 방어전을 준비해야 할 터인데, 이런 성대한 제대식을 치를 여유를 마련해줄 줄이야.

그런 그들의 행동이 과분하면서도 기쁘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이 또한 자신이 이 영지에서 이룬 성과라 여겨졌으니.

"다들 건강히 지내요."

이내 검문소의 끝에 도착했을 때, 셰인이 그 인사만을 툭 넘기며 손을 흔들었다.

그 후 경계선을 넘기 굳게 닫히는 문.

다시 전시를 준비해야 하는 만큼, 외부의 출입을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행한 것이다.

엄숙하고 성대했던 제대식은 그렇게 종료.

이후 셰인이 마주하게 된 건 성벽 밖에 자리한 공허한 길목이었다.

"자, 그럼 이제부턴 원점인가."

이단의 영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는 그 성과를 제국에 가지고 가야겠지만, 정작 제국은 그 성과를 결코 환영하지 않는 세력.

그리고 셰인이 그런 세력으로 복귀해 추구하는 건 성공도, 복수도 아닌 시대의 격변이었다.

그건 그 어떤 일보다도 어려운 일.

역사를 잊은 이 시대에선 그 일을 함께 따라줄 이는 존재치 않겠지만, 그럼에도 마냥 그 미래가 두렵게 여겨지진 않았다.

설령 이 시대에 홀로 내던져졌을지라도, 자신이 동경하는 빛을 뒤따르는 이들은 분명 존재할 테니까.

-카우!

"…그래, 너도 같이 가야지."

줄곧 따라붙은 하얀 털의 여우.

그 갈기를 쓰다듬어준 셰인이 그녀와 함께 마차가 기대어진 곳으로 향하려던 중, 문득 저 멀리 길목에서부터 한 대의 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마차에 새겨진 문양이 굉장히 익숙하다.

'골드리안……?'

그래, 분명 셰인이 속한 골드리안 가문의 심볼이다.

설마 가문 측에서 자신을 회수하기 위해 마차를 보낸 것일까?

그를 멀뚱히 지켜보고 있자, 이내 제 앞에서 멈춰선 마차에서부터 누군가가 차차 빠져나와 길에 착지하였다.

마주한 것은 오똑한 콧날에 표독스러운 눈빛을 가진 남성.

눈가와 입가에 쳐진 주름에선 세월의 흐름이 다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당신은……?"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느껴진 낯익음.

분명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남자다.

곧 그가 코에 걸려있는 안경을 스윽 치켜세우며 셰인을 마주하였다.

"셰인 씨."

기억 속에는 지적이고 깐깐해 보였던 인상.

그런 인상이 이 순간, 자신을 마주하는 이 때엔 한층 누그러진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5년 전의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하. 이거 참."

자신조차도 잊고 있던 약속을 지키고자 찾아와주시다니.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린 셰인이 그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였다.

"못 본 새에 주름이 늘으셨네요."

"저도 나이를 먹은 것이죠. 셰인 씨께선, 못 본 새에 많이 늠름해지셨군요."

"세상물정 모르는 꼬맹이도 나이를 먹으면 철이 들기 마련이더군요."

제네릭 얀데르센.

당시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해주었던 남자다.

그를 마주한 순간 셰인의 머릿속엔 마지막에 했던 약속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시 만나면 술이라도 한잔하죠.'

자그마치 5년을 기다린 재회의 때.

그것을 상기한 두 사람이, 곧 과거에 나누었던 작별로 현재의 재회를 축복하였다.

"성수는 사양하겠습니다."

"물론, 잔은 유리로 준비해야죠."

환생 후 19년.

셰인은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의무병의 환생 1부 END]

[작가 후기]

1부가 끝이 났습니다.

거의 반년을 넘게 집필한 내용의 전반부가 이렇게 끝이 났네요.

오랜 시간을 집필해온 만큼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배제하고 수정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해온 만큼 쌓아둔 이야기도 많지만, 그 모든 것은 이 소설이 완결 날 때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걸 모두 풀어버리면 이후가 더욱 고단해질 것 같으니까요.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하는 작가 금태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2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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