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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51화 (151/255)

의무병의 환생 151화

솔직히 얘기하자면.

셰인은 가문으로 복귀하자마자 그에게 쌍욕을 들을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목적으로 사단을 벌였다 한들 결국에는 이단자에 전과자인 몸.

그것만으로도 귀족가에 있어선 큰 해를 불러올 존재일 테니까.

그런 마당에 '얘기라도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어찌 기쁘지 않고 배기겠는가?

"들어주는 게 당연한 거다. 어디까지나 이 영지에서 난동을 부린 자의 이야기를."

물론 테올린의 입장에서, 철창 하나를 두고 이루어지는 대화는 어디까지나 '영주와 범법자'의 관계로서 행하는 것이다.

그저 골드리안의 이름이 들어간 만큼 위병에게만 맡길 수 없어 직접 행차한 것뿐.

덕분에 오후 중의 스케줄을 모두 취소했지만, 그건 차후 생길 문제를 예방하는 거에 비하면 사소한 피해일 뿐이다.

"아니면 내가 이 기회를 빌려 네 놈과 감동의 재회라도 할 거라 착각한 거냐?"

"그럴 리가요."

셰인 역시 그 정도 자각은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연결고리라곤 아버지가 같다는 것뿐.

더군다나 나이차이만 해도 열다섯은 족히 차이가 나는데다, 후계자 수업에 열중한다는 이유로 어렸던 자신에겐 눈총만 주었던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형제애가 생기는 게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제 처지가 어떤지 자각 정도는 있나보군."

테올린이 안도를 느끼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마음에 드는 건 그것 뿐이었다.

대화 시간이 줄었다는 것 하나…….

영주로써의 업무도 많이 쌓인 만큼, 가급적 이 대화는 빨리 끝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가 왜 사단을 냈는지를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 제발 명분이라도 좋으니 납득이 가는 것을 붙여줘라.

그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그냥 빡쳐서 그랬죠."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건, 테올린의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뭐?"

"그 놈들 하는 짓거리가 화가 나서 그랬다 했어요. 상점가 한가운데에서 대놓고 그런 짓을 하는 게 말이죠."

"……."

"형님은 그걸 보고도 그런 생각이 안 드시나보네요."

-쿠웅!!

철창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

다름 아닌 테올린이 내리친 것이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던 빌헬름이 당황하며 그를 제지했다.

"가주님. 지금……."

뿌드득.

이를 가는 테올린이 그를 쏘아붙이며 말했다.

"그래, 거리 한복판에서, 한 상인이 회수업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그 광경을 너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손을 뻗었다, 이 말이냐?"

고작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가주된 자가 여기까지 행차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이나 화가 났기에.

"셰인 골드리안."

낮게 깔린 목소리엔 그런 분노가 노골적으로 섞여있었다.

"아무리 출신에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같은 피를 이어받은 네가 이렇게 안일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서자가 천하다 취급되는 사회라지만 같은 피를 이어받은 자가 아닌가.

자신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귀족으로써 걸맞는, 어느 정도의 절제와 눈치 정도는 갖춰야 하리라고 생각했건만.

정작 이 망할 동생은 자신의 근본을 귀족이 아닌 이단자로, 사회의 해악이 되는 존재로 여기는 듯하였다.

"그런 짓을 하는 걸 제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코웃음이 절로 나오는 말이다.

테올린이 그를 쏘아붙이며 고함을 쳤다.

"설마 네 녀석은……. 그 상인처럼 가지지 못한 자들은 무조건 선량하고 무고하다 착각하는 것이냐?"

"아니……."

"그래, 변경살이를 하며 천박한 자들과 어울려 지냈으니, 그 상인에게 동정을 품은 것도 어느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

반론을 기다리지 않고 행한 비꼬임.

울컥함을 느낀 셰인이 테올린을 쏘아보았다.

"……천하다니. 거기서 지내는 군인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직업이 아니라 인물상을 얘기한 거다. 대체로 그런 곳에 자원하여 가는 이들은 여러 부분이 결여된 이들일 테니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환경이 그릇된 자들이 모이는 직업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다.

테올린이 생각하는 블레이즈란 그런 곳이었다.

애초에 이단을 엄격히 금하는 제국에서, 그런 곳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그런 선입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그 상인도 마찬가지지. 애초에 그가 그 돈을 빌리고,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 원금을 갚는 데에 성공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거다."

징수는 강제적일지언정, 그 강압을 마련한 계기만큼은 그 자가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선택에 뒤따라올 책임을 망각하고 편한대로 돈을 빌린 것도 모자라, 이후에 마땅히 뒤따라오는 책임을 폭정이라 여기다니.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음에도 과분한 욕심을 가진 자의 말로…… 그 방만의 대가가 네가 본 광경의 전부라 할 수 있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대략적으로는 그렇다는 거다. 어디까지나 깊게 파고들지 않고, 그 때의 네놈처럼 길을 가는 길에 잠깐 훑어보았을 때에 한해서!"

그리고 그런 대략적인 상황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 자신과 같은, 골드리안과 같은 명망 있는 지도자 가문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한 시민이 돈을 빌렸으나, 그 돈을 갚지 못했기에 돈을 빌려준 쪽이 압박을 가한다.'

대략적으로 확인했을 때에 이번 사태는 그 정도에 불과한 문제이며, 그를 진압할지를 결정하는 건 위병들이, 처벌을 내릴지를 따지는 건 법조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현장에서 바로 간섭해 손을 뻗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넌 골드리안의 이름을 가지고도 그런 일을 저질렀어! 아무런 죄책감도, 생각 하나 없이 경솔하기 그지없게도!!"

-쿵!!

철창을 내리치는 소리.

그 울림에서부터 주먹을 휘두른 자의 분노가 다분히 느껴지고 있다.

"셰인 골드리안……. 너는 위병도 아니고 법관도 아니다. 전과자라 해도, 아직은 골드리안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란 말이다!"

그래, 지금 그가 가장 화가 난 이유는 정의나 도덕이 아닌 역할의 문제.

그가 벌인 일이 명백한 '사법제재'에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평민이 하면 반역으로.

지도자가 한다면 '폭군'으로 평해져도 할 말이 없는 짓거리를, 그와 같은 골드리안의 피를 이어받은 자신이 어찌 가벼이 여긴단 말인가?

"설마 이제 곧 버려질 이름이라 하여 그리 막무가내로 행동한 것이냐? 네 정말로 그렇다면, 내 모든 것을 걸고 네 놈의 앞날을 철저히 짓밟아주리라 이 자리에서 맹세해 주마."

한편으론 살의마저도 느껴지는 눈빛.

그를 마주한 셰인이 말없이 그의 옆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제 주군을 옆에 둔 노기사는 쓰게 웃으며 눈을 감을 뿐.

공교롭게도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현 주군이 하는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그 의사를 거스른 어린 주군을 동정하는 것뿐.

"……네, 그렇죠. 이단의 땅에도 엄연히 규칙이 있는데, 영지에 왔으면 영지법을 따르는 게 당연한 거겠죠."

셰인 역시 그의 말을 타당하다 생각한다.

가진 자가 언제나 선량한 것도 아니고, 하물며 가문의 이름을 짊어진 녀석이 전후사정을 따지지 않고 주먹부터 뻗었다면 누구라도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으로 드러난 사태의 전말만을 따졌을 때의 이야기.

"그런데 형님. 이거 아세요? 영지법의 위엔 국법이 존재한다는 거."

"무슨……."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셰인이 철창 너머로 제 손을 뻗었다.

틀어쥐어진 주먹은 자신에게 겨눈 것인가?

아니, 그저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뿐이다.

"그 깡패새끼들."

이내 펼쳐진 손에 쥐어졌던 건 자그마한 주사기.

이전에 자신이 때려눕혔던 깡패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약물을 쓰고 있었어요."

"……뭐?"

"학명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주사기 안에 들어있는 희끄무레한 액체.

"체내에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단시간에 근육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약물이죠. 마치 마법을 쓰듯, 그 변화가 단시간에 눈에 보일 정도로."

셰인이 그 약물을 눈에 새기며, 그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읊어주었다.

"다만 지속시간이 매우 짧은데다 사용할 때마다 신체에 큰 결함이 생겨서, 약물로 만들어진 근육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 약물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콰드득.

손에 쥐어진 주사기가 분질러지고, 마나로 코팅된 손을 타고 약물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손을 내려다보는 분노는, 고작 가문의 수치 따위를 보는 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었다.

"사실상 자기 생명력을 깎아내며 힘을 증강시키는……. 제국에선 엄연히 금지된 물건이죠."

그리고 아이헨발트에서도.

그래, 지금 이 손에 쥐어진 것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건, 제 조국에서도 엄연히 금지되어있던 사항이었다.

그런 약물을 거리 한복판에서 대대적으로 쓰는 놈들이 상인의 돈을 뜯고 있는데.

더욱 나아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아무도 그 문제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저 사람은 힘이 쌔구나'정도의 생각만 하는 것이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보게 된 광경이거늘.

"그걸 보고 화를 내는 게 그렇게 등신소리 들을 일입니까?"

"그건……."

"네, 그래요. 형님이 하신 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어요.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궁핍하기도 하니, 이것저것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댈 기회는 더 많겠죠."

그럼에도 셰인은 노략질을 하는 평민들이나 슬럼가의 한량들보다도, 부패한 귀족이나 권위자들을 더욱 혐오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개짓거리 시작할 때의 강도는 가진 놈들이 더해요."

거리 한복판으로 파견을 보낸 수금업자들이 대놓고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을 이끄는 작자는 이 부정을 감추고자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렀을까?

"……."

그 또한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터임에도, 테올린은 그에 뭐라 말하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알면서도 방치한 건지.

혹은 그들과 한통속이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꾸드득!

그건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처리한 뒤에 따질 문제다.

그 생각과 함께 철창을 벌리며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테올린이 화들짝 놀라며 제 옆의 호위를 향해 소리쳤다.

"빌헬름!!"

-샤학!

경쾌하게 뽑혀져 나오는 장검.

5써클에 오른 강자답게도, 그 칼날은 강철의 경도를 자랑하는 강체술도 찢을 만큼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셰인 도련님."

"괜찮아요."

어쩔 수 없다는 목에 칼을 겨누는 옛 지인.

셰인이 그를 향해 손사레를 치며 호의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런 놈에게 겨누라고 있는 칼인데,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겠어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이내 테올린이 답답함을 거두며 그를 향해 외쳤다.

"셰인 골드리안……. 일단 너는 이곳에 얌전히 있어라. 이 일은 이 영지의 관리인 내가 처리해야 할 안건이니까."

이 영지에서 부정한 흔적이 공공연히 드러났다는 건 바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도 바로 제재를 하는 게 아닌 절차에 맞춰 수행해야 하는 것.

영지의 법을 따르지 않은 개인의 집행은 엄연히 위법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건 셰인 역시 알고 있는 바였다.

"아뇨, 형님은 다른 곳부터 먼저 신경 쓰시죠."

"……정녕 네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냐?"

"형님도 가주로써 할 일도 많지 않습니까? 이런 시답잖은 문제 해결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리실 텐데."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죄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이후 영장을 발부받은 후 대대적으로 토벌하는 것까지…….

그 모든 건 엄연히 정해진 규율을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거 처리하시는 걸 언제 다 기다리고 있겠어요? 애초에 길가에 똥이 있으면 더러워서라도 치워야 하는 법인데."

하지만 셰인은 지금의 상황을 테올린과 달리 받아들이고 있었다.

누가 그것을 처리할지를 논하는 게 아닌, 문제가 확인되었다면 누구라도 치울 명분이 생기는 부류의 문제로.

"그래도 정 그 절차라는 게 필요하다면, 제가 오늘만은 형님을 위해 위험부담을 안고 특별한 서비스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셰인은 그런 명분에 공신력을 더할 수 있는 상태.

제 소매에서 꺼내든 물건이 그 증거였다.

"이거면 충분하겠죠?"

손아귀에 쥔 한 장의 패.

그것을 본 순간 테올린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숨을 죽였다.

"그걸 어떻게……."

"제국으로 복귀하는 중에도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는 셰인.

그를 마주하고 있던 테올린이 이내 눈을 감고, 제 옆에 있는 자에게 손짓을 하였다.

"빌헬름, 칼을 거둬라."

"……."

칼을 거두며 자리를 비켜주는 빌헬름.

그런 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남긴 셰인이, 테올린의 가슴팍을 툭 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다 끝내고나면 바로 저택으로 돌아갈게요."

이내 구치소 밖으로 유유히 떠나가는 셰인.

그 빈자리를 눈으로 쫓은 빌헬름이 조심스레 제 주군을 돌아보았다.

"가주님, 도련님을 이렇게 보내주셔도 괜찮은 겁니까?"

"됐으니까 위병단에게 전해라. 이후에 벌어질 일을 수습하려면 당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테니까."

그렇게 말을 남긴 테올린이 그에게서 떨어져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냉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거센 힘이 실어 넣은 발걸음.

밑으로 늘어진 양손에 솟은 핏줄은, 그가 지금의 상황에 무척이나 화가 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에바……. 넌 대체 어디까지 꿰고 있던 거냐.'

그 날 후 석 달이 지난 현재에도, 테올린은 빌어먹을 여동생이 떠나기 전에 거론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 * *

-콰강!!!

영지의 변경에 위치한 대저택.

한 재산가가 터를 잡고 있는 그곳의 정문이 대차게 부서지고, 밖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 저택의 정원을 구르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의식을 잃고 뻗은 상태.

정원을 지키고 있던 사병들이 기겁하며, 대문을 통해 들어오는 이에게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뭐, 뭐야! 어떤 놈이야!!"

"누구긴."

들어선 것은 금발에 사제복을 입은 청년.

곧 그가 제 손에 쥐어진 패를 내세우며 외쳤다.

"탐관오리 때려잡으러 온 암행어사지."

금색의 패에 그려진 세 개의 말.

소유주가 '로열 나이츠(황실 직속 수사관)'에 소속된 자임을 가르쳐 주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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