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52화
골드리안 후작령에서 '피르엘 바이서스'라는 이름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평민의 출신으로 상인의 길에 들어서고, 이후 골드핸드에 들어서 상회의 자금을 운용하는 금고관리자 겸 대금업자로 승격된 사람.
이른바 자수성가의 표본과도 같은 존재로 알려진 자로, 귀족들과 나란히 하는 권력을 쥔 그는 무릇 평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이걸로 거래는 체결되었군요."
하지만 그 누가 알고 있을까.
그렇게나 명망이 높은 상인이, 사실은 수면 아래에서부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전복을 꿈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피르엘. 당신 덕에 앞으로의 장사도 더욱 수월히 이루어지겠군요."
저택 내 집무실.
그곳에서 피르엘과 마주앉은 중년의 남자가 흡족히 웃으며, 자신이 손에 쥔 서류의 내용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피르엘과는 오랫 동안 거래를 해왔다.
공적으로도
그리고 사적으로도.
그 관계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은, 이후 자신을 더욱 높은 자리로 올려다 줄 초석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자료는 마음에 드십니까?"
"네,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분명 이 자료를 전해 받게 될 다른 분들도 기뻐하시겠지요."
그래, 지금의 거래는 오롯이 그것만을 위해 오래도록, 그리고 은밀하게 준비를 거쳐 온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날 계약에선 법에 위배되는 부분은 거의 없고, 설령 누군가 꼬투리를 잡더라도 허수아비를 여럿 세웠기에 꼬리 자르기도 어렵지 않다.
실패 시의 리스크도 전무한 매력적인 기회.
이런 기회를 가벼이 여기며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이건 골드핸드에 있어선 핵심이라 부를 만한 것일 텐데……."
물론 그만큼 골드핸드는 큰 피해를 입을 터.
이 일이 밝혀진다면 피르엘은 골드리안에게 큰 원한을 사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일말의 죄책감 하나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잠시 몸을 담고 있을 뿐인 장소에 불과할 뿐입니다. 저도 이젠 코 묻은 돈을 회수하는 일엔 손을 떼고, 슬슬 당신과 같은 큰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골드핸드의 신뢰를 받아 어엿한 간부직에 올랐지만, 공교롭게도 그가 맡은 일은 골드핸드 전체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이미 터를 잡고 있던 이들이나 유서 깊은 가문의 협력자 등등…….
그런 이들을 자신과 같은 미천한 출생으로 제치고 올라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보다 높이 올라가기 위해선 골드핸드만으로는 안 된다.'
오히려 그의 목적에 골드핸드란 훼방이 되는 존재.
그건 오랜 시간에 걸쳐 내부의 사정을 꿰어왔기에 더욱이 굳어진 확신이었다.
"골드핸드는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시장을 독점해 왔어요. 그런 폭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대의를 위해서라도 이게 옳은 선택이지 않겠습니까?"
그 폭정을 깨트리는 데에도 분명 무수한 피해가 일어날 터.
사실상 시답잖은 명분이나 다름없지만, 당초 상인이란 돈을 위해선 신앙조차 수단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에 누구보다 충실한 것이야말로 자신이 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던 이유.
그로부터 개화된 야망이, 고작 누군가의 부하 노릇을 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데에 꺾여선 안 될 터이다.
"독점의 분쇄라……. 후후, 그런 목적이라면 이런 식으로 정보를 내어주는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죠."
이내 자료를 회수한 거래자가 조용히 예의를 취하였다.
더러운 일이라도 신사적으로.
그런 태도야말로 자신들의 속내를 감춰주는 무기가 된다는 걸, 두 사람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만 실례해 보겠습니다."
"네, 가시는 길이 편하도록 마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그것으로……."
막 떠나가는 그를 배웅하려는 것도 잠시.
집무실의 문이 덜컥 열리고, 누군가가 그들이 있는 곳에 급히 난입해왔다.
"피, 피르엘 님! 스, 습격입니다!!"
저택에서 봉사하는 사용인 중 한 명.
자신의 충실한 하인이 땀까지 뻘뻘 흘리며 자신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평소라면 시답잖게 흘려 넘겼을 보고였다. 이전에 시장터에서 있었던 수금업자 무리의 '사소한 다툼'처럼.
"습격이라니, 심각한 거 아닙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제가 고용한 이들이라면 별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겠죠."
피르엘이 걱정하는 거래자를 타이르며 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이 저택에 있는 이들은 하나하나가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며, 그 명성을 대륙 곳곳에서 날린 바가 있던 이들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약을 내어주기까지 했으니……. 황도군 정도의 병력이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겠지.'
약물.
제국에선 불법으로 여겨지는 일이지만, 그 유통과 제조에 대해서만 밝혀지지 않는다면 외부적으로는 드러날 일이 없는 것이다.
약을 주입하여 신체능력이 상승한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남들보다 힘이 세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넘어갈 뿐이니까.
설령 의구심이 든다 해도 그걸 증명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
이단의 지식을 익힌 심문관들이라면 또 모를까, 그들의 경우에는 교단 내에서도 숫자가 매우 적어 활동반경이 한정적인 편이다.
'즉, 이 영지에서 대대적으로 이단 활동이 벌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한, 심문관들이 냄새를 맡을 일도 없다.'
교단에서도 자신을 노릴 만한 거리는 마련하지 않은 상태.
그러니 약물을 복용한 실력자들을 이용하면, 습격자가 누구건 몇 명이건 쉽게 제압해 쫓아낼 수 있으리라.
"로열 나이츠……."
이어지는 말을 듣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뭐?"
"그, 금색 패에 세 개의 말이 새겨져 있는 문양! 그 습격자가 가지고 있던 건 분명 로열 나이츠의 인장이었습니다!!"
쿵!!
굉음과 함께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그저 놀란 것뿐이다.
지금의 땅울림은 분명 착각이리라.
"로열 나이츠라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보고를 들은 게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
그 이름을 함께 들은 거래자가 두 눈을 부릅뜨며, 피르엘을 향해 격노를 내질렀다.
"피르엘!! 거래가 막 끝난 참에 황실에서 조사관을 파견하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그, 그게, 저도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보고가 잘못된 건가?
상대가 단순히 그렇게 위장을 했다면?
'아니, 가능성이 0%가 아니라면 절대로 가벼이 여겨선 안 될 상황이다.'
로열 나이츠.
이름 그대로 황실에서 직접 임명한 수사관의 직책이지만, 그로 인한 권한은 일개 귀족이나 재산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결과만 옳다면, 그들이 하는 모든 종류의 위법행위를 불문으로 붙이니까.'
대체로 문제가 발생하면 관련된 분야의 종사자가 그 사건을 담당하고, 그 후 절차를 거치며 신중히 해결해가는 것이 사회의 원칙인 법.
하지만 로열 나이츠는 그런 절차를 무시하며, 스스로가 부정하다 판단이 되는 문제에 강경히 나설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이는 집행에 성공했을 때에 주어지는 '면죄부'로 인해 가능해지는 것.
결과가 올바르지 않을 시엔 권리를 몰수하며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지만, 반대로 결과만 옳다면 어떤 분류의 죄라도 사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녀석이 지금 이곳에 들이닥치고 있다면…….'
예고도 없이, 아직 자료의 파기조차도 되지 않은 마당에 자신의 본가에 쳐들어오고 있다.
뒤늦게 상황 파악을 마친 피르엘이 사용인과 거래자를 서로 잡아당겨, 집무실의 밖으로 떠밀어 버렸다.
"이, 일단 이분을 뒷문으로 대피부터 시켜라!"
"네, 넵!!"
끌려가면서도 자신을 향해 아우성을 치는 거래자.
그렇게 홀로 방에 남은 피르엘이, 제 배후에 자리한 집무실의 환경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 대체 뭐부터 숨겨야 하지?'
조작된 장부? 아니면 은밀히 빼돌린 기밀문서?
-콰강!!
아니, 애초에 생각할 시간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로열나이츠는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 수여되는 자격.
홀로 활동하는 경우가 잦은 만큼, 은밀히 숨겨진 부조리를 파헤치려면 개개인이 '군단급의 전력'을 갖출 필요가 있으니까.
"안녕하세요~ 잠시 검문 좀 하러 왔습니다만……."
머지않아 집무실에 난입한 남자가, 이후 제 양손에 쥐어진 두 사람을 땅에 떨구며 피르엘을 마주하였다.
사제복에 금발을 지니고 있는 청년.
그 손에 쥐어진 금색의 패는, 이전에 보고로 들었던 것이 거짓이 아님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어이쿠야, 이거 한창 바쁘실 때 찾아온 건가?"
"이, 이익……!!"
거들먹거리는 목소리에, 막 집무실을 뒤지며 자료를 회수하던 피르엘이 표정을 왈칵 우그러트렸다.
"뭐, 뭐냐 네 놈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는 거야!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커헉!!"
다가설 것도 없다.
손에서부터 던져진 붕대가 피르엘을 속박하고, 이후 난입한 자의 앞까지 그 몸을 끌고 왔다.
셰인이 그 멱살을 붙잡고 들어올려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대충 댁이 누구고 뭔 개짓거리를 하고 살았는지는 떨거지들 때려잡으면서 다 들었거든요? 그러니 잡설은 다 생략하고 조사 좀 하려는데……. 얌전히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잠깐, 기다려 보게!! 내 일단 정리부터 하고……. 카흑!!"
그대로 벽쪽으로 집어던져진 피르엘.
이후 그가 떨어트린 자료들을 훑어본 셰인이 바로 코웃음을 터트렸다.
'명칭이 좀 다르긴 하지만 증상을 보면 거의 빼박이네.'
예상했던 대로 그의 장부엔 약물로 추정되는 물자가 여럿 존재하고 있었다.
아쉬운 건 이 자가 유통을 맡은 게 아닌 단순한 고객이란 것뿐.
어디까지나 회수업자들의 힘을 높여 수금의 능률을 높이고자 약을 구매했을 뿐이지, 실제로 약을 제조하고 유통한 건 뒷세계와 연루된 집단으로 추측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거 보니……. 허 참나. 약물 정도는 애교 수준이었잖아?"
상품 표기를 바꿔 불법물품을 양지에서 사들였을 뿐 아니라 탈세에 기밀유출, 거기에 범죄세력과의 작당까지…….
블레이즈에서 저질렀다면 그 자리에서 총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이다.
이런 녀석이 상회의 측근 중 한 명이라니.
"형님이 알게 되면 까무러치시겠네."
아니면 알고는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었거나…….
그래,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한 덜미를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치밀한 녀석이 아닌가?
오히려 한탕 하고 떠나기 전에 발견하여 다행이다, 생각하며 자료들을 회수하려는 것도 잠시.
"형님, 이라니……."
벽에 처박힌 당사자, 피르엘이 발발 떨며 셰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특히나 시선이 향해진 곳은 특유의 금발머리.
그 색은 골드핸드에 속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익숙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 그, 그래. 그 머리색……. 그런 거였어! 네가 바로 셰인 골드리안이었구나!!"
이윽고 실성한 듯 폭소를 터트리는 피르엘.
그 웃음소리를 불쾌히 여긴 셰인이 손에 쥔 서류를 구기며 그를 쏘아보았다.
"난 당신을 처음 보는데……. 당신은 날 아주 잘 알고 있는가 보네."
"그야 알다마다! 알 수밖에 없지! 네가 없었다면 이런 계획을 세울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야!"
"……뭐?"
자신이 없었다면 기회가 없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데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네가 로열 나이츠라고? 으하하하! 황실도 아주 갈 때까지 가버렸어! 아무리 제국 곳곳이 심란해졌다지만, 설마 그 반란자들에게 구실을 마련해준 녀석마저 제 편으로 끌어들일 줄이야!"
궁지에 몰린 게 분명함에도, 정작 그는 자신을 향한 비웃음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제국이 자신에게 로열 나이츠의 권한을 준 이유는, 자신이 계기를 마련한 사태를 수습하란 이유도 존재했으니까.
"아무렴, 그 순수했던 꼬맹이도 나이를 먹고 나면 권력에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겠지. 설령 그게 그토록 원망하던 제국의 개가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뚫린 입이라고 아주 막말을 하시는군."
딱히 그의 말에 짜증이 나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의 말은 그저 패배자의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고, 어차피 그의 재산을 몰수하며 신변을 감옥에 넘겨버리면 그걸로 끝날 문제니까.
그래도 거슬리니 일단 입은 닥치게 하자, 생각하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
-꾸드득!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와 함께 피르엘의 몸이 차차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들어진 피부와 그 위로 도드라지는 혈관.
그리고 그보다 더욱 터질 듯이 팽창하는 근육까지.
"야, 잠깐……."
"아무렴, 이단자건 황실의 개건 그딴 게 무슨 상관이야! 여기서 죽여 버리면 아무도 모를 일일 텐데!!"
이윽고 목에 꽂힌 주사기와 함께 몸을 일으켜 세우는 피르엘.
그 역시 여기까지 오는 길에 마주한 놈들처럼 약물을 사용한 거지만, 지금 사용한 건 단순한 스테로이드제와는 급이 다른 물건이었다.
사용 즉시 효과를 볼 뿐 아니라, 척 보기에도 신체능력을 크게 증강시킬 정도.
물론 스테로이드와는 후유증 면에선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중요한 건 당장에 큰 힘을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기엔 더없이 적합하단 것이다.
"고작 권한 하나 얻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보지만, 그래봐야 결국엔 인간의 한계일 뿐이지! 기고만장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설령 상대가 개인의 몸으로 군단급에 달하는 전투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상식선에 해당하는 전력일 뿐.
비장의 약물을 사용한 현재, 그의 전력은 인간을 넘어선 괴물이라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그래, 분명 그럴 터이거늘.
"세상 참 묘하단 말이야."
정작 달려드는 자신을 마주한 그의 얼굴에 그려진 건, 결코 공포라 정의될 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렇게 약을 금지시켜 놨는데도 200년 전에는 본 적도 없는 약물이 대놓고 나타나질 않나……."
극도의 분노와 약간의 호기심.
그리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미약한 동정.
-콰앙!!!
그와 함께 휘둘러진 주먹이 안면과 충돌한 직후, 달려들었던 피르엘의 몸이 역으로 튕겨져 나갔다.
통상보다 수십 배는 강화된 신체이거늘.
상대는 그것을 맨주먹으로 밀어낸 것이다.
"근데 아무리 약이 발전했다 해도 옛날이랑 지금이랑 다름없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냐?"
아니, 지금의 이것도 그의 전력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저 평소보다 좀 더 세게 쳤을 뿐.
하지만 이 싸움이 길어진다면 그 힘은 더욱 늘어나리라.
"약쟁이들 상대로 손대중을 하면 등신짓이라는 거."
약이란 효력이 강할수록 감각과 정신에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법.
그런 녀석이 강화된 신체로 달려든다는 건, 그가 휘두르는 주먹에 더 큰 힘을 실어 넣을 명분을 마련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