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53화
'무척이나 귀한 물건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암거래상이 약을 내어주며 의기양양하게 했던 말.
하지만 희소성과 물품의 가치가 언제나 비례하는 건 아니다.
귀하다 한들 하자가 크다면 도리어 없느니만 못한 법이니.
'이런, 위험한 물건을 제가 쓰라고 내어주신 겁니까?'
설명만 들어보면 신빙성도 없거니와, 그게 사실이라 해도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고작 약물을 몸에 주사하는 것만으로 신체증강은 물론 써클이 몇 단계는 증가……. 심지어 마나유저가 아닌 이들조차도 마나를 다루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터무니없는 효력을 지닌 약물이지만, 그 뒤에 따르는 후폭풍은 도리어 손에 쥐는 것만으로 위기감을 가증시킬 정도였다.
차라리 독약을 맞는 편이 더 낫다 생각될 정도로.
'뭐, 만약에 무슨 일이 터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그 약을 강경히 내어주었다.
어디까지나 '보험' 정도로 사용하라고 할 뿐, 절대로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덧붙이면서.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쓴다고 바로 죽는 것도 아니고, 후유증이 심하긴 하지만 성직자들에게 맡기면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을 겁니다. 하나 정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써도 충분하겠죠.'
그래, 신성력이라면 몸에 투입된 독도 몸에서 빼내는 것이 가능하다.
적어도 현 시대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신성력으로 빼내지 못하는 독은 불경한 존재로, 혹은 저주라 취급하며 배척하기 일쑤이니.
'하지만 조심하세요. 두 개 이상 사용한다면…….'
그래도 하나 정도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써도 되리라고.
피르엘은 그 말을 신뢰하며, 제 몸에 약물을 주사한 후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악을 펼쳤다.
하지만 그 생각이 무색하게도.
-투쾅!!
강화된 육체는, 고작 제 앞에 있는 자가 휘두르는 주먹 하나 버티지 못한 채 나가떨어지기만 반복할 뿐.
"커헉!!"
집무실의 벽이 무너지고, 이윽고 저택의 복도로 튕겨져 나간 몸이 바닥을 대차게 굴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운 피르엘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노려보았다.
"기껏 마지막 수단으로 마련한 게 도핑이라니……. 사람을 대체 얼마나 호구로 보는 건지."
성큼성큼 다가오며 자신을 한심하다는 투로 말하는 습격자.
그 도발에 이를 바득 갈은 피르엘이 제 손아귀에 힘을 실어 넣었다.
'아, 아니야. 아직 이걸 다루는 데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바닥을 디딘 손가락이 단단한 바닥에 파고들을 정도다.
바위조차도 두부마냥 으스러뜨릴 수 있는 힘.
제아무리 상대가 로열 나이츠라 하더라도, 이 힘을 가벼이 털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아악!! 죽어어!!"
괴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드는 피르엘.
그 힘은 확실히 대단하지만, 결국에는 생각을 거치지 않는 무지성 돌격에 불과하다.
-휘리릭!
전방으로 뻗은 손으로 공격을 흘려보내고, 그 회전력을 공격에 담아 반격을 가한다.
발차기는 정확히 옆구리에 적중.
그에 밀려나기 무섭게 붕대가 몸을 휘감고, 그에 구속되어 허우적대는 순간 피르엘의 얼굴에 그의 양 주먹이 겨누어졌다.
"자, 잠깐……."
-파파팡!!
마치 샌드백을 후리듯.
그렇게 맹렬한 연타 속에서 몇 번이고 반격을 가하고자 했지만, 정확히 표적에 적중하는 그의 주먹과 달리 피르엘의 손은 허공만을 허우적댈 뿐이었다.
"아주 참 인생 편하게 살아서 좋겠네."
그런 격차로부터 현실감이 멀어져가는 것마저 느껴지는 찰나.
타격으로부터 비롯된 연쇄적인 파공성 속에서, 자신을 마주한 그의 중얼거림이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는 씨발. 매일 같이 근손실 올까 걱정이 돼서 책보는 시간도 아끼는 마당에."
시작은 비아냥.
그와 함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을 향한 극도의 분노였다.
"그깟 약 좀 해서 힘이 넘쳐난다고 도취감에 찌들어대는 것도 모자라, 지 피 깎고 몸 불사르며 운동하는 놈들을 동네 개새끼마냥 취급하질 않나."
대의라곤 티끌만치도 보이지 않는…….
아니, 분명 대의적인 이유도 존재하겠지만, 지금 그가 발휘하는 분노에 비하면 정말 티끌만 한 수준으로 전락될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나 도핑으로 부풀려진 몸이란 무투가로서도, 그리고 의사로서도 짜증만이 솟구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뭐? 기고만장하게 여기까지 온 걸 후회하게 해주마?"
-파앙!!
거센 충격과 함께 밀려나는 피르엘의 몸.
그 직후 던져진 붕대가 그의 전신을 휘어감아 당겨지고, 이내 다시 셰인의 앞까지 무기력하게 당도하게 되었다.
"내가 200년 전만 해도 너 같은 약쟁이 새끼들을 몇 수레는 때려잡았는데, 그걸 도발이랍시고 떠들어대는 거냐 지금?"
"무슨…… 쿠학!!"
그대로 복부를 걷어차인 피르엘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벽을 쓸어가다 이윽고 창고 한복판에 추락하였다.
입 밖으로 왈칵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
이전의 일방적인 구타에서 입은 내상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은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되잖아…….'
제 부하들에게 넘겨준 약만 하더라도 상식을 넘어선 부류의 물건.
그리고 지금 자신이 쓰는 건 그보다 수십 배는 더 능률이 좋은 것이다.
그런 걸 제 목숨까지 걸어가며 사용했는데,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쥐지 않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털리기에 급급하다니.
'안, 돼, 안 돼. 여기서 다 끝낼 수는 없어.'
로열 나이츠는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병력.
본부에 증원을 요청하는 것도 부정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확보했을 때이다.
아직 그 증거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이상, 그를 여기서 매장시켜 버리면 어떻게든 발뺌할 구실을 만들 수 있을 터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직…… 아직!!'
몽롱해진 정신 속, 오롯이 그 작은 희망 하나만을 되새긴 피르엘이 창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자를 돌아보았다.
취급 주의라 표기되어 있는 상자의 균열.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이전에 자신이 주사한 것과 같은 모델의 주사였다.
자신뿐 아니라 부하들에게도 비상용으로 내어주고자 추가로 발주했던…….
'그, 그래. 여기서, 끝낼 수는 없잖아.'
입가에 미소를 그린 피르엘이 이내 그 주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중독증세와 판단력 저하.
약물에 따라오는 부작용은, 그 약을 내어주었던 이가 했던 경고마저도 그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고…….
-쿠구구구!!
마저 창고지대로 뒤따라 달려가려던 중, 돌발적으로 일어난 지진에 셰인의 발걸음이 끊어지고 말았다.
'……마나 폭주?'
제 몸을 두르고 있는 강체술마저 흐트러지고 있다.
외부의 물리적 타격이 없음에도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
주변에 순수한 마나의 유동이 감지되었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름 아닌 자신이 날려버린 약쟁이가 있는 곳에서.
"미친, 이건 또 뭐야."
붕괴된 현장에 자욱이 깔려야 할 먼지가 회오리치고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가 서서히 장막을 들춰내고, 이윽고 셰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어, 어어어……."
퍼렇게 물들어진 피부에 퀭한 눈동자.
그리고 벌겋게 부풀어 터질 듯 맥동하는 핏줄.
몸체 역시 보통의 사람보다 두 배 이상은 거대해져 있다.
"이런 미친놈."
사람…….
아니, 사람의 탈을 쓴 흉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모습이다.
머리색과 골격의 형태만으로, 이전에 자신이 날려 보내었던 그 녀석이라는 걸 겨우 알 정도다.
-푸쉬이익!
당혹을 내지르기 무섭게 터져 나오는 증기.
찢어진 피부의 사이로 터져 나와야 할 피가, 제 몸의 올라가는 체온을 버티지 못하고 붉은 증기로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피마저 증발할 정도로 열이 오른 건가…….'
아니, 통상보다 체온이 증가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열이 일어났다면 진작 몸이 터져 죽었어야 정상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몸에 투입된 약물에 의한 것.
외부로 배출될 때 증발될 정도로, 혈액이 불안정한 상태로 바뀐 것뿐이다.
'혈액순환의 가속화, 그로 인한 약물의 순환력 증가에 따른 신경자극에 호르몬 과다분비까지……. 덩치가 커진 건 신체의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되어 그런 건가?'
심지어 주변의 환경까지, 그저 거니는 것만으로 붕괴되길 반복하고 있다.
약물이 마나가 흐르는 회로에 해당하는 혈관에도 영향을 끼친 것.
하지만 그로부터 흡수된 마나는 셰인처럼 제어되지 못하고, 그저 물리력으로만 치환되어 주변을 찢어버리기만 하고 있다.
'그래, 아이헨발트에서도 이런 걸 우려해서 약물 실험은 엄격히 통제했었지.'
그런 나라가 멸망하고, 그 당시 사용했던 매뉴얼마저 이단의 지식으로 취급해 지워진 것이 지난 200년간의 역사다.
무작정 억압만 하니 정상적인 연구법은 물론 그 취급법까지 소실시키는 법.
그런 분야에 손을 뻗는 건 언제나 범죄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며, 별다른 규율이 없는 자들이 연구할 때 안정성 같은 걸 고려할 리가 없다.
즉, 지금의 결과는 자신이 숭배하는 학문이, 최소한의 윤리조차도 따르지 않고 벌어지게 된 '그릇된 외도의 산물'이라는 것.
자신이 5년 전 재판을 받은 이유이자, 이 시대가 그토록 의학이란 분야를 증오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아아아각!!"
부작용이 괴롭게 여겨진 듯, 피르엘이 차차 부풀어 오르는 제 머리를 벽에 처박아대길 반복하였다.
핏줄이 선 가죽이 찢기며 피가 터지고, 그것이 증발하며 사방으로 붉은 연기가 퍼져나간다.
그럼에도 그는 그 행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몸을 주변에 부딪치며 혹사시킬 뿐.
하나 그마저도 인기척을 감지하기 무섭게 멈춰지고, 이윽고 그 시선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습격자에게로 향해지기에 이르렀다.
"너, 어어……. 으어어, 아아……."
내버려 두더라도 자멸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개자식이라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죄인 역시 살아서 벌을 받아야 의미가 있는 법.
그가 자멸하도록 방치하는 건 셰인의 철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외부로 나가서 도시를 휩쓸 가능성도 있으니까, 가급적이면 이 저택에서 처리해야 돼.'
제압하려면 최대한 서둘러서.
그에 강박을 느낀 셰인이 제 쇄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마아아……."
입밖으로 희미하게 내뱉어지는 흐느낌.
제 머리를 움켜쥐는 피르엘이 내지르는 것이었다.
"엄마아, 어디 있어요……."
"……."
"돈, 벌어왔어요. 더 이상 배 고플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왜……."
"……하, 씨발."
"어머니이이이, 왜 말이 없으신 거예요오오오!! 으어어어어아아아!!!"
-쿠과강!!
머리가 처박힌 벽이 갈라지고, 이후 그 머리를 쓸며 달려드는 피르엘의 손아귀가 셰인을 향해 겨누어졌다.
그 순간 쇄골로 향하려던 손가락은 자신의 목으로.
5써클에서 6써클로 경지를 상승시키며, 제 몸에 힘을 실어 넣었다.
"지 꼴리는 대로 약 해놓고 이제 와서 약물성 치매는 좀 아니지 않냐?"
뇌손상에 의한 유아퇴행.
약물 복용자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로 인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선명해지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그런 괴로운 기억을 잊고자 이제껏 해온 일에 더욱 열중하고, 그게 어긋난 길을 거닐어서라도 이뤄야 할 야망으로 승격된 것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변경에서도 그렇고."
정말로 안타까운 사연이라고.
그래, 정말로…….
"왜 개짓거리 친 놈들은 다 이런 식으로 사연팔이를 못해서 안달인 건지."
정말로 흔해빠졌기에.
용서할 가치조차도 없다 판단이 되는 자기변호.
-콰드드득!
그대로 달려든 녀석과의 힘겨루기를 시도하는 셰인.
6써클에 달하는 경지로 보강한 신체임에도 크게 밀려나고 있지만, 그 속도도 차차 줄어들다 끝내 멈추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 직후 이어진 건 찰나의 순간을 노린 박치기.
-쿠웅!
머리가 밀려난 채 복도를 구르는 피르엘.
하지만 그것도 균형이 위태로워서이지 힘으로 밀려서 그런 게 아니다.
제 몸이 망가지더라도 다시 달려들 게 뻔할 터.
셰인은 그런 비참한 녀석의 말로이자 발악을 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였다.
"그래, 너 같은 구제불능의 쓰레기들도 사연이라는 게 존재하겠지."
이내 셰인의 손가락이 자신의 관자놀이로 향해졌다.
"그런데 좀 안쓰럽다고 그걸 다 용서해주면 법이라는 게 왜 있겠냐?"
그것은 전생을 초월하고, 지금의 자신조차도 잠시를 버텨내지 못할 경지.
하지만 한순간이라면.
-번쩍!
이 세계가 증명하는.
스스로의 고결함이 빚어 만든 빛은, 그 몸의 붕괴를 크게 늦출 수 있다.
"아아아아악!!
그 빛이 퍼지는 순간 피르엘이 괴성을 지르며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신성력에 노출되며 몸의 독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껴서일까?
아니, 마비되었던 통각이 다시 돌아온 것일지도 모르지.
"죽어어어아아아아아아!!!"
뭐가 됐건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저 가증스러운 빛을 없애야 한다.
오직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들끓고, 이내 그 모든 것은 광기가 되어 무자비한 돌진에 가세했다.
"이 악물어라. 지금부터 힘조절 없이 칠 거니까."
그런 거체를 앞둔 셰인이 한 것은 그저 자세를 잡는 것이었다.
양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로, 제 옆구리에 주먹을 기댄 채 숨을 멈춘다.
그렇게 자세를 잡은 채로 휘두른다.
그저 그런 식으로, 그저 올곧게 내지를 뿐인.
하지만 그렇기에 제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최대의 필살.
-콰아아아아!!!
이제껏 거쳐온 삶의 모든 것이 담긴 주먹질이, 이윽고 눈부신 섬광과 함께 전방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 * *
"대피는 모두 끝이 났나?"
"네, 모두 끝이 났습니다."
영지 한복판에서 벌어진 거대한 소동.
그것을 사전에 예지함으로써, 영지에 있는 이들을 안전한 지대까지 대피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이는 대대적으로 외부에 이 사단이 전해질 일도 최소화되었다는 것.
그 일을 주도했던 위병단장이, 자신을 막 찾아와 보고를 들은 제 주군의 눈치를 살피며 현장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도련님 혼자서 한 일입니까?"
셰인 골드리안.
이 영지에 오늘 막 복귀한 골드리안 가문의 사생아이자, 제국에 큰 혼란을 초래한 이단자. 그리고 변경에서 5년을 생존해 온 죄수병.
"그래, 아마도……."
그런 그가 저택으로 들어간 것이 확인된 후, 얼마 안 가 그 저택이 완전히 붕괴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땅이 들춰지고 거리를 이루는 블록이 뒤집어졌을 정도.
그 영향은 더욱 나아가 주변의 정원과 물품이 보관된 창고지대까지, 미미하게나마 영향이 가해졌을 정도였다.
'이게 변경에서 살아돌아온 녀석의 저력인가.'
개인으로 군단급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자.
그 힘이 언젠가 자신과 가문을 향해 겨누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런 예감이 든 테올린이, 제 등골에서 느껴지는 오싹함을 견디며 눈살을 찌푸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