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55화
제국의 법상 형량을 마친 죄수는 사회로 복귀하기 전, 후속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쳐갈 필요가 있다.
그 목적은 대상이 된 죄인이 사회로 복귀하기 전의 '제약'을 걸기 위해.
어디까지나 전과자의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보험의 목적으로 치르는 것인 만큼 방청객을 모집하지 않는 등, 일반적인 재판보다 훨씬 축소된 규모로 이루어진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론.
'피고는 제국 역사상 유례 없는 사태를 불러일으킨 전적이 있는 몸입니다. 여러모로 도덕적인 부분이 결여되었다는 점과 더해, 제국에 일어난 혼란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도 그의 활동은 엄중히 다스릴 필요가 있겠지요.'
황실과 사법부, 그리고 차기 교황 후보인 추기경 등등…….
당시 셰인의 재판을 주도했던 이들은, 사실상 제국을 이끄는 실세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었다.
축소된 규모라곤 하나 재판에 참여한 인원 하나하나가 쟁쟁한 이들이었으며, 그건 그만큼 해당 죄수가 사회에 일으킨 파장이 크다는 의미기도 했다.
즉 일반적으로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후속재판이 그만큼 가혹해진다는 것.
'도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별문제가 없다 사료됩니다.'
하지만 그런 제국의 터줏대감들을 대면하면서도, 홀몸으로 강경히 제 의견을 주장하였다.
5년 전의 재판에서 셰인을 변호한 전적이 있던 변호사, 제네릭 얀데르센이었다.
'먼저 그가 이단의 문명에 손을 뻗은 건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며, 블레이즈 변경백 역시 그가 5년간 이렇다 할 사고를 친 적이 없다 보고를 올리기까지 했으니까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는 블레이즈 변경백의 협력하에 이단의 지식이 적힌 서적을 제국에 출판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 지식이 제국에 녹아듦으로써 생긴 문제는…….'
'서적 내에 적힌 내용 중 이단에 위배가 되는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하물며 그 지식으로 행하는 것 역시 인명의 구조에 초점을 둔 것. 실제로 성직자 중에도 그 지식을 빌려 병자들의 구호활동의 능률을 높인 경우도 적잖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여 셰인에 대한 변호를 이어갔다.
스스로의 주관성을 배제하고.
제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한, 최대한 객관적인 의견을 빌어서.
'효율에 대한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점을 경솔히 녹아들게 만듦으로써 여러 반란세력이 자극되었고, 그로 인해 제국 내부의 정세도 혼란해지지 않았습니까?'
'블레이즈 변경백님께서 내어주신 보고서를 읽어보니, 그는 영지에 있는 동안 반란군 토벌에서 큰 공훈을 세웠다고 하더군요.'
설령 반란군들이 그 점을 빌어 기승을 부린다 한들, 애초에 그 지식을 퍼트린 장본인부터가 반란군들과 척을 지는 자였다.
반란세력이 해당자를 상징으로 삼는다는 논리조차도, 그의 활동에 제약을 가해야 할 이유가 되진 못하는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 반란군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논리만으로 처리해선 안 되는 법.
당시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재판대에 오른 자가 이 제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의 시발점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반란군은 푸른 화살 외에도 여럿 존재하고, 그들 중 일부는 그를 우상으로 섬기며 결속력을 다지고 있기까지 하죠.'
'물론 당사자와 협의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선 잘못을 논해선 안 되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자 하는 건 그에게 처벌을 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가진 제국에서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죠.'
활동시간과 공간의 제약, 주기적인 감시와 보고, 죄를 저질렀을 시의 가중처벌 등등…….
그 모든 안건은 어디까지나 그걸 위한 것이지, 셰인 골드리안이란 존재를 무작정 부정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장만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피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불쾌감, 혐오, 그리고 증오…….
아무리 정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들, 이 제국에 있어 이단이란 그런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니까.
'정 그에게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면, 저희들에게 그가 무해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증명을 이 자리에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그의 활동에 제약을 걸고, 그 후 주기적으로 그의 활동을 지켜보며 이후 방안을 개선할지를 검토하면 그만이겠죠.'
설령 그가 옳다 하더라도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건 지금이 아니다.
그렇게 결정을 짓고 제약을 걸자는 것이, 당시 자신을 벌하고자 했던 제국의 권위자들이 내렸던 결정이었다.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이 자리에 있는 그는, 도리어 그들이 예의상으로 했던 그 말에서 돌파구를 찾아내었다는 걸.
'보여주다니, 어떻게 말이죠?'
한 법조인이 그에 대해 가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일그러진 것은 고작 수 초 후.
'그, 그 빛은!?'
그의 손에서 빛이 새어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시, 신성력?'
'마, 말도 안 됩니다. 어, 어떻게 당신이…….'
'심층부를 누비는 중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이 힘을 하사하지 않으셨다면, 그곳에서 살아나오는 건 꿈도 꾸지 못했겠지요.'
물론 그가 가진 신앙은 유일교의 교리와는 별개 된 부분에서 비롯된 것.
대체로 그런 식으로 손에 넣은 신앙이란 '불순한 무언가'가 섞인 경우가 많지만, 당시 셰인이 다루었던 힘은 이제껏 마주해온 사교도들이 다루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그 자체로 그가 가진 고결한 성품을 증명하는 것.
'적어도 이거라면, 저 스스로가 이 제국에 해가 되지 않은 존재라는 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만…….'
하다못해 이단자인 자신이 신앙을 일깨운 것으로, 자신에게 가해질 제약을 줄여주기를 바란다.
그 빛을 거머쥔 자신이 하는 일은 교단과는 다를지언정, 어느 방면에서는 분명 옳다고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일단, 추기경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겠습니다.'
그 의견에 대해 법조인과 황실의 사람들은 잠시 침묵을 하길 결정하였다.
그들은 신앙을 깨우치지 못한 자들.
신앙을 거머쥔 이단자를 어찌 평할지는, 신앙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그가 변경에 있었을 적에 익히 알고 지내었던 몸입니다.'
그렇게 지목된 추기경 중 가장 먼저 의견을 꺼낸 것은 녹발을 지닌 성직자.
과거 셰인이 변경에 들어서고, 그 후 4년 동안 곁을 보조하며 많은 환자들을 살린 전적이 있는 몸이었다.
'당시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보다도 병자들을 구호하는 데에 힘을 썼던 몸이었죠. 거기에 더해,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파함으로써 전장에 나서지 못하는 성직자들의 아쉬움을 덜어주기도 했습니다.'
추기경 크리스틴.
과거 연을 맺은 바가 있던 남자이자, 그 순수함을 인정받아 차기 교황 후보로 선출된 권력자.
'그런 그를 보면서 늘 생각했습니다. 진정 주님께서 고결한 자에게 이 힘을 내어준다면, 그가 신앙을 깨우쳤을 때에 거머쥐게 될 힘은 더없이 순수할 것이라고 말이죠.'
그 존재는 셰인이 제국으로 복귀한 후, 그의 무고를 증명하는 데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물론 변경에 가지 못한 다른 추기경들에겐 그것이 와닿지 않겠지만…….
'저 역시 동의합니다.'
나머지 4명의 추기경 중 한 사람.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동참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자가, 크리스틴을 따라 제 손을 들어올렸다.
'……토머스 경?'
평생을 이단을 벌해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자.
그 공훈을 인정받아 전대의 사망에 이어 새로이 심문관장의 자리에 오르고, 그 직위를 인정받아 심문관을 대표하는 추기경으로 선출된 자였다.
'저는 오히려 그에게 제약이 아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거머쥔 빛이 정말로 진실된 것이라면…….'
심문관장 토머스.
이 자리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이단을 증오하리라 여겼던 인물이었다.
* * *
"다름 아닌 이단을 벌해온 자가 그리 주장한 건데, 다른 이들로썬 바로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 재판을 얘기한 알랭이 코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등을 돌려 앉은 토머스의 눈치를 살폈다.
어디까지나 전해들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당시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엔 문제가 없던 이야기였다.
이해할 수 없던 건 그 당시의 상황을 만들어낸 자의 속마음.
"하지만 이단을 벌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자가 이단자에게 기회를 주었다니……. 그 소식이 제국 곳곳에 퍼진다면 분명 큰 혼란이 일지 않겠나?"
이런 시대라 해도 수면 아래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은 존재하고 있다.
교단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제국은 모든 이들이 신앙을 가질 수 없고, 무조건 깨끗하게만 사는 건 이상론일 뿐이니까.
하물며 죄를 저질렀는지 판별하는 수단조차도 심문관들에게만 주어진 상태.
대대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만큼, 일반인들은 누군가가 죄를 저질렀다는 자각조차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마당에 그 죄를 판별할 수 있는 자에게 면죄부를 배부한다니……. 사실상 기존의 체재를 뒤집고, 제국에 혼란을 일으키겠다 시도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분명 많은 혼란이 일어나겠지. 특히나 우리와 같은 지도계층에 있어선."
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밑에 붙어 있는 기생충들까지.
그리고 그 시작점은 아마도 그가 복귀하게 될 골드리안 가문이 되리라.
"저는 그저 그의 고결함을 인정했을 뿐입니다."
토머스의 입이 열린 건, 그런 예지를 입에 담으며 코웃음을 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권위를 쥐어준 것은 최종적으로 황실의 선택이었지요."
시선은 여전히 제 앞에 놓인 신상으로.
기도를 하는 자세 역시 풀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말을 할 뿐이다.
"그리고 감히 얘기하자면……. 그 선택에 쐐기를 박으셨던 건 태자님이 아니셨습니까?"
"……."
태자가 침묵했다.
그건 정곡이란 의미인가, 아니면 '추기경 따위'가 차기 황제에게 말대답을 하는 걸 가소롭게 여겨서일까?
적어도 후자는 아닐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테라스.
그는 무척이나 욕심이 많은 자이고, 그의 눈에 있어 눈앞에 있는 자 역시 무척이나 탐이 나는 자였으니까.
"그저 전대의 뜻을 이어받기만 하는 건 재미가 없지."
씨익.
미소를 지은 알랭이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였다.
"나는 무척이나 욕심이 많아서 말이네. 굳이 통치를 한다면,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시대를 다스려보고 싶은 마음이 다분한 상태라네."
그 통치가 완벽할수록 자신에 대한 평가는 더욱이 늘어날 테니까.
교단의 입장에서 본다면 경솔하다고.
군중의 입장에서 본다면 폭군이나 우군이라 여겨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괴물을 잡으려면 심연으로……. 이단심문관들에게 있어선 오랜 격언이지."
하지만 적어도.
제 앞에 있는 자는 자신의 말에 반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심연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면, 그들 역시 자신을 들여다본다고……."
심문관이란 이단을 벌하고자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존재.
그들의 문화에 오래 몸을 담은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단으로 타락하기 쉬운 성향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을 테니까.
"……자네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 것인가?"
어쩌면 그의 존재를 찬동한 것은 그런 타락의 전조가 아닌지…….
지금 자신이 이 자리까지 행차한 건 그것을 제 눈으로 직접 판별하기 위함이었다.
그 의사를 읽은 토머스가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조아리며 나직이 속삭였다.
"저는 그저 올바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딱 한 문장.
하지만 많은 것을 내포한 말이었다.
"……올바름이라."
정의.
어느 곳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법에 의미를 둔다면 원칙주의자가, 신앙에 의의를 둔다면 성직자가, 권력에 의의를 둔다면 왕이 올바른 자가 될 터이다.
그렇다면 심연을 누비는 심판자는 무엇을 정의로 삼는가.
"과정은 그릇될지언정 결과만은 옳기를 바란다……. 그것이 심문관인 자네의 의견인가?"
적어도 자신이 보아온 그 추악함이 사회를 침식하지 않는…….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정의의 근간임을, 태자는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근간이 잘못된 시대엔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지."
그로부터 유대마저 느낀 태자가 만족감을 느끼고는, 이내 그로부터 등을 돌려 기도실의 밖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나는 좀 더 이 시설을 견학하도록 하지. 갑작스레 찾아와 기도를 방해해서 실례했네."
"모쪼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언제나 당신을 유혹하려 들 테니까요."
이곳은 이단을 벌하는 장소.
특히나 그 죄를 인정하지 않은 독한 자들은, 자신을 고문하는 심문관들조차도 몇 번이고 회유하고자 속삭여 온다.
그것을 버텨낼 수 있는 수단은 하나.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마음가짐뿐.
"괴물을 잡으면 심연 속으로……."
그 마음가짐을 유지하여, 이윽고 성자의 반열에 오른 남자가 눈을 감추고 있는 신상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하나, 그 심연 속에도 빛은 존재할 수 있는가?"
고결한 마음을 가진 신자조차 괴물로 전락한다면, 타락한 괴물조차도 빛을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그 손에 쥐어진 빛에는 그런 기대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 * *
"설명해라."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청년은, 현재 자신의 배다른 형의 눈초리에 시선을 돌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얘기 정도는 들어주시는군요."
"몇 번이고 말했지만 들어주는 게 당연한 것이다. 제대로 된 판단과 수습을 위해선."
당연한 거지만 수습을 전제로 한다.
골드리안에 머무른 몇 달의 시간은, 눈앞에 있는 자로 하여금 그런 인식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뭐냐……."
그에 감사를 느끼면서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 셰인 역시 자신이 친 사고가 그만큼 크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기슭 한가운데에 난 길목을 매몰시켜버릴 정도의 산사태.
그 주변에 인부들이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곤혹을 치르는 현장을 앞둔 셰인이, 그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온 제 형을 돌아보며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꽤 과했죠?"
"그것을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이냐?"
염치를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
내버려 두면 전과를 더 쌓을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얼핏 떠오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