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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59화 (159/255)

의무병의 환생 159화

"도련님께선, 혹시 여성과 어울린 경험이 많으신 건가요?"

영지의 한 식당.

그 야외테라스에 위치한 자리에서 겸상을 한 아드리아나가 셰인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마침 식전에 내어진 차를 마시려던 셰인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노는 놈처럼 보였나?"

아니라고 말은 못 하겠다.

사제복을 입었어도 평소 행실 때문에 껄렁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니까.

얼굴만 테올린과 비슷할 뿐, 모르는 사람은 '잘생긴 양아치'라 오해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상냥해요.'

무심함 속에 숨어 있는 배려가 와 닿는다고 할까.

의외로 주변을 잘 살피며 제 사람을 지키려는 모습은, 가주인 테올린이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전장에선 여러모로 바빠서 그런 일을 할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 좋다고 따라다녔던 애들은 좀 있는 편이었지."

전생은 물론 현생에도 마찬가지로.

물론 둘 다 전쟁통에서의 이야기였고, 둘 모두 연애와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던 삶이었다.

전생은 전장살이의 고됨을 단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니, 포기는 안 했지.'

그저 이뤄야 할 게 있으니 정조를 지키고 있을 뿐.

그런 속내만을 숨긴다면, 개인의 연애사란 이런 식사자리에선 좋은 대화거리가 되어 주리라.

그런 식으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기를 십 수 분이 지났을 무렵.

"자자! 모두 컵 들고 건배 준비합시다!"

마침 점원이 가지고 온 음식이 테이블에 내려앉았을 때, 테라스 안쪽의 식당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을 가득 채운 이들이 화기애애하며 술잔을 들어 올리며 이는 소란이었다.

"오늘 돈 많은 귀족님께서 여기 사람들한테 한 잔씩 돌린다고 합니다! 자자, 다들 안주 하나씩 받으시고!"

"크하하! 누구인지는 몰라도 통 한 번 크시구먼!"

경박한 분위기긴 하지만, 셰인에겐 저택보단 이런 분위기가 훨씬 익숙히 여겨지고 있었다.

군인이나 뱃사람 등, 언제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이들은 대개 기회가 있을 때 호쾌하게 즐기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뭐 그런 거지.'

씁쓸한 건 인생의 마지막임을 전제로 한 연회라는 거다만.

그래도 그런 익숙함을 느끼고자 제 형에게 받은 용돈을 '조금' 쓴 건 싼 축에 속하리라.

"자, 식기 전에 먹자."

"……이전에도 말했지만, 역시 시종으로서 주인이 된 분과의 겸상은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거 신경 쓰면 지는 거야."

이제까지도 단둘이 거리를 다니지 않았던가?

예절교육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건 내일부터 차차 해가면 그만인 문제다.

내일의 자신도 뒤로 미룰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셰인에게 있어 귀족다움이란 사소한 문제일 뿐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쯤에서 교육을 할 생각이었건만, 결국 오늘은 좋을 대로 휘둘리고 말았군요.'

그리고 아드리아나 역시 당장은 교육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진 상태였다.

길을 걷는 중의 에스코트가 생각보다 완벽해서였을까.

개인적으로 불쾌한 감이 없진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합격점이니 일단은 계속 지켜보는 편이 좋다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마주앉은 채로 식사를 하고, 가볍게 배를 채운 후 후식으로 내어진 음료잔이 테이블에 올라왔을 무렵.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셰인이 그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아드리아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양손으로 찻잔을 쥐고 있던 아드리아나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무엇을 말이죠?"

"너 혹시 귀족 출신이야?"

"……."

침묵이 묘하게 길어진다.

잠자코 대답을 기다리니, 아드리아나가 이내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두며 조용히 대답했다.

"……확실히 시녀들 중엔 귀족 출신인 분들도 적잖게 있었죠."

대체로 다른 가문에 시집조차도 가지 못한 이들.

혹은 쫓겨나거나 가문이 가난하여 지원을 받긴커녕, 오히려 명문가에서 돈벌이라도 해오라 파견을 보낸 이들이다.

아드리아나는 시녀장으로서 그런 이들을 많이 접해본 몸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들과는 달리 귀족이라 할 수 없는 몸입니다. 그저 제가 속한 가문이 골드리안에 대대로 충성을 맹세해 왔기에, 가문의 사람이 익히는 예절 역시 어느 정도 주입받은 것뿐이죠."

"아, 그러고 보면 세습제라고 했었지."

"저 역시 전대 시녀장님과 같은 피를 이어받은 몸이죠. 가문이 대대로 가문을 수호해왔고, 저 역시 그 역할을 마찬가지로 수행하는 중입니다."

요컨대 태어나기 전부터 시종으로서 살아갈 것이 예정되었다는 것.

그 자체는 집안 사정이니 셰인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민도 공무원이나 기사작위를 거쳐서 귀족이 될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그 분야가 시종직이라면 사실상 출세는 불가능하겠지.'

목걸이와 족쇄만 없을 뿐, 평생 한곳에 덜미를 묶여야 한다는 점에선 노예와 다름이 없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200년도 더 되었건만.

사회의 틀이 유지되는 이상, 이에 대한 근간은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저도 한 가지 도련님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씁쓸함을 느낄 무렵 아드리아나가 말문을 열었다.

뭐가 됐건 질문에는 답을 해줘야겠지.

가볍게 물어보아라, 하며 음료를 들이켜자 아드리아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마지막으로 식사에 대한 예절을 교육받은 것은 언제였습니까?"

'그 소리 언제 나오나 했다.'

식사 중에 묘하게 힐끗힐끗 쳐다보더라니.

"미안하게 됐어. 도구를 쓰는 건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전쟁터에도 맨손으로 나가는데 나이프를 쥐는 게 익숙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익숙하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귀족에게 있어 식사예절은 의무적인 일……. 보통은 유년기를 벗어나면 졸업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은 좀 봐줘~ 이쪽은 전쟁터에서만 5년을 굴러서 그런 거 일일이 따질 여유도 없었으니까."

황야 한가운데에서 참호를 파고, 그곳에 며칠을 주둔하는 일도 잦은 곳이다.

식량이라고 오는 것들은 딱딱한 빵이나 삶은 감자…….

그것도 급히 먹고 나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예절 같은 걸 고려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이곳은 전쟁터가 아니니 이런 투정은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변경은……."

그렇게 생각한 셰인과 달리, 아드리아나는 무언가 신경이 쓰이는 듯 이후 이어지는 말의 꼬리를 흩뜨리고 있었다.

"가문에 속해 있었을 적에 익혔던 것을 잊어야 할 정도로……. 그렇게나 가혹한 곳입니까?"

"……."

셰인이 침묵했다.

주변이 소란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도드라지는 침묵이었다.

서로가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히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으니까.

"그렇지. 벽 안에서 가지고 있던 걸 내버려야 살 수 있는 곳이니까."

이내 그의 입가에 자조가 그려졌다.

현생은 물론이고, 전생의 스스로를 향한 감정이기도 했다.

"뭐, 그렇게 모든 걸 내버려도 비참하게 굴러대다 보답도 못 받은 녀석도 있지만."

그래, 지금의 말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셰인은 입을 다물었고, 아드리아나 역시 그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였다.

살짝 벌려 뜬 눈이 묘하게 놀란 것처럼 보인다.

제 얼굴을 통해 드러난 표정이 의외라 여겨졌던 것일까?

"도련님의 이야기인가요?"

"아니, 다른 사람."

"……대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본인의 이야기더군요."

"허허, 누굴 닮아서 이렇게 비꼬는 솜씨가 예술인 걸까?"

"비꼬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가 아니야."

셰인이 단언하듯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지금 거론한 것도, 지금부터 이어질 것도 '셰인 골드리안'의 이야기라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랑 달리 그 녀석은 부모라고 할 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당장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전에 마셨던 음료에 알콜이 들어가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마치 술이라도 들어간 것마냥 셰인의 입에선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스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천애고아였지. 그런 놈을 거두어들인 고아원장은 애들을 착취하는 몹쓸 녀석이었고……. 그런 시설에서 도망쳐 나온 녀석이 자라봐야 건달밖에 더 되겠어?"

해선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식사 후의 가벼운 입가심용으로, 음료와 함께 먹는 안줏거리로 적당한 화제로 쓸 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전쟁터는 그런 녀석이라도 출세할 수 있던 곳이지."

"……."

"처음엔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았어. 잔챙이들만 잡고 출세하니 장교 딱지라도 달게 되고……. 그런데 좀 더 제대로 된 전장에 가니, 실상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더라고."

원래는 그런 처참한 곳에서 죽어갔어야 할 몸이었다.

그런 녀석을 굳이 주워가 살리고, 끝끝내 사람으로서 살게 만든 자가 있었다.

"그런 녀석이라도 제 목숨을 구해준 은사에겐 뭐라도 느꼈는지, 결국에는 그 사람을 동경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배우게 되더군."

그 얼굴을 떠올리니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사람구실을 하게 만들어준 스승조차도 죽고, 그 뒤를 대신 물려받고, 스승이 그랬듯이 여러 제자를 거두고, 그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고……."

그래도 그 삶만큼은 보람찼지만, 그런 보람조차도 전쟁의 파도 앞에선 부질없이 으스러질 뿐.

그런 생각에 쓴웃음을 지은 셰인이 병에 담긴 음료를 컵에 따르고, 그 음료를 다시 제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부하들만 남기고 그 녀석도 죽어버렸지."

이미 200년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카일 페터슨'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어떤 서적에도 그 이름을 기록하는 자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셰인 역시 지금에 와선 스스로를 그와 별개 된 인물로 여기고자 하고 있었다.

시작은 몰라도 지금은.

셰인 골드리안으로서의 행복 역시 거머쥘 의무가 있는 그는,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어서만은 안 될 존재였으니까.

"……왜 그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건가요?"

아드리아나는 그런 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어렴풋하게.

그저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과, 그럼에도 남들에게 쉽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냥…… 변경에서 돌아온 후에도 자꾸 생각나거든."

그럼에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잔을 들어올렸다.

잔에 남아 있는 마지막 한 모금. 그 수면에 비춰진 얼굴엔 희미한 두려움이 엿보이고 있다.

어쩌면 가문에 있는 동안 내내 이런 표정을 지어보였을지도 모르지.

"가족애라니, 그 녀석은 평생이 가도 이해하지 못할 개념이겠지."

이런 자신이라도 형식으로나마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가주와는 달리…….

그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술잔을 들이킨 셰인이, 이내 컵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찝찝함을 모두 털어내었다.

* * *

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곳은 영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건물.

번화가에 의치한 만큼 성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사람의 발길은 거의 들지 않는 곳이었다.

그만큼 엄중히 통제되는 장소란 의미다.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구역입니다."

"우연이네요. 제가 그 관계자인데."

능청스레 말하며 문지기에게 명패를 보여주는 셰인.

골드리안 가문에 소속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은, 병사들이 자리를 비키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었다.

"모쪼록 정중한 마음으로 그들을 기려주시길……."

마치 기도문과 같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길을 열어주는 병사들.

그 열려진 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셰인이, 자신을 조심스레 뒤따라오는 아드리아나를 돌아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탄, 그리고 미약한 두려움. 그녀답지 않게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직접 들어온 건 처음이야?"

"네, 시녀장의 권한이라면 충분히 들어올 수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이제까진 들어올 일은 없었으니까요."

바쁜 것도 있지만, 이런 장소에 '자신 같은' 자가 들어와도 되는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지의 중심에 세워져 있는 이곳은, 골드리안의 역대 계승자들과 그에 봉사해온 충신들이 묻혀진 '영묘'였으니까.

사실상 제국에서도 신성시 여겨지는 유적지와도 같은 곳.

그곳에 셰인이 굳이 시간을 내가며 들린 이유는, 그가 알고 있는 이 역시 이곳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아버지."

아놀드 골드리안.

카일 페터슨으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이후 거머쥐게 된 두 번째 삶을 선사한 장본인.

셰인이 마주한 것은 그런 이름이 적혀 있는 유골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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