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61화
제단에 선 신부의.
"……꽃이 시들었습니다."
나직한 읊조림이 희미한 메아리가 될 정도로, 성당 안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모두가 그를 앞둔 채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예외 없이 모두가 검은 옷을 입은 채로. 그렇게 각자의 기도문을 읊어가기만 할 뿐.
"그 생의 마지막은 시들어갈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저희는 그 꽃이 만개했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부는 그런 대중의 심정을 대변하듯, 주님의 형상을 본뜬 신상을 향하여 추모를 이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솔선수범하게 사람을 이끌고, 때로는 가혹하지만 그 속의 사려 깊은 마음을 비추었던 사람……. 그런 여인이 남겼던 흔적은 지금도 저희들의 가슴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윽고 신부의 고개가 밑으로, 신상의 앞에 놓인 관으로 향해졌다.
꽃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관에 수의를 입은 채 눕혀진 여인.
주름진 피부조차도 이 순간만은 짙은 화장 아래 감춰진 채, 혈기 있던 시절의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재현하고 있었다.
아리에타 실피어스.
태어나기를 가문의 시종으로써 태어나, 선조가 내려준 숙명을 이어 평생을 골드리안에 충실했던 여인.
그 삶에 자유라곤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그 삶엔 미련하나 남지 않았으리라.
관에 자리한 채 평온히 잠든 모습은,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제 주군이 보는 길은 보고 가셨군요."
"오래 사신 겁니다. 가실 때가 된 거예요."
"그래도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조문을 온 이들이 그녀의 앞을 지나며 그리움과 안쓰러움을 조잘거린다.
현 가문의 사용인들은 물론 과거에 신세를 졌던 이들도.
그리고 가문의 가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들은 타 지역의 귀족들까지도.
"그녀의 관에 보다 화려한 꽃을 놓아줍시다."
"보다 값진 물건을 그녀와 함께 묻어주는 겁니다."
"그래요, 그녀에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시종으로선 일류였고, 인간으로써도 인망이 있던 자.
그 성실함은 주님을 섬기는 이들조차 본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으니.
"주님께서 그녀를 인도해주시길."
"그 선한 영혼이 보다 천당을 밝게 비춰주기를 바라며……."
이윽고 성직자들의 순례가 끝이 난 직후, 신부의 시선이 남들과 따로 떨어져 좌석에 앉아 있는 이에게로 향해졌다.
"그럼, 유가족 분께서 나와 주시지요."
호출에 응한 건 잿빛의 베일을 뒤집어쓴 여인.
그녀를 제외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조부는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아비와 어미는 그녀가 어린 나이에 돌연히 세상을 떠버리고 말았으니.
'고독하다.'
그렇게 홀로 관의 앞에 선 여인이 제 앞에 쓰러진 조모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차가워…….'
언젠가 찾아올 때였다.
그것이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에 불과했을 뿐.
제 조모도 이런 날을 대비하여, 자신을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나 혹독히 교육을 시켜왔던 것이다.
그 핏줄이 끊이지 않도록.
실피어스의 피가 골드리안을 영원토록 수호할 수 있도록.
"드시지요."
상념에 잠긴 아드리아나에게, 신부가 제 손에 쥔 잔을 그녀에게 조용히 내어주었다.
성수가 들어있는 잔.
제국에서의 제사는 유가족이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남아 있는 것을 관에 묻힌 이에게 내어주는 것을 끝으로 장례를 마치게 된다.
그 물에 어린 신성함이 몸을 정화하며, 천당으로 향하는 영혼이 남기고 간 미련마저 털어낸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편히 쉬세요, 할머니.'
이윽고 남아 있는 술이 시신의 입으로 향해졌다.
그렇게 흘러내린 술이 그녀의 미련마저 흘려보내길 바라며.
그렇게 가벼워진 영혼이 하늘로 올라, 이내 천당에 닿았으리라 굳게 믿으면서.
* * *
하지만 오롯이 한 사람.
한 남자는 이 사태를, 그저 제 지인의 죽음으로 흘려 넘기질 못하고 있었다.
제국의 전통을 따라 한 달에 걸쳐 이루어진 장례식.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시체가 들어있는 관은 화장되고,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 항아리에 담긴 채 묻히게 될 것이다.
그 시기가 찾아오기 전에 자신이 품은 의구심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쨍그랑!!
그에 필요한 일을 제 형에게 요청한 건 실책이었던 것일까?
"이, 빌어먹을 녀석……."
사방으로 퍼져나간 파편과 바닥에 흩뿌려진 액체.
깨진 병의 머리를 틀어쥔 테올린이, 당당히 집무실에 찾아온 제 동생을 보며 이를 바득 갈기 시작했다.
그 눈동자는 분노와 증오로, 그를 넘어 경멸이란 감정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이냐?"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아 성수가 든 병을 휘두른 것으로 그친 것이다.
그리고 그건 셰인 역시도 알고 있는 바.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셰인 골드리안!"
머리의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러내리는 가운데, 그에게 다가선 테올린이 멱살을 틀어쥐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귀족으로써의 프라이드를 중시하는 자가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전과를 가지고 가문에 복귀했을 때에도, 그 후 과잉진압으로 빈번이 사고를 쳤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나선 적이 없었거늘.
"네놈은, 대체 어디까지 그녀를 욕보일 생각인 것이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라고 너에게 그녀의 가택을 조사하는 걸 허락한 줄 아느냐!? 이 은혜도 모르는……."
"흑피증에 의해 그을린 듯 변색된 피부."
오열을 끊어내는 말소리.
그에 의문을 느낀 테올린이 눈을 부릅뜨자, 셰인이 제 멱을 쥔 손을 맞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안압상승에 의한 안구 손상, 통상 사망시간에 비해 빠르게 수분이 고갈된 입술……."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제가 그녀의 시신에서 보았던 증상들입니다."
자연사한 제 아비보다도 더 나이를 먹은 몸이다.
그러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러니 자택에서 쓰러진 그녀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며, 바로 장례로 넘어가면 몸을 단장하고 화장도 할 테니 수작을 부기리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코 일반적인 자연사로는 나올 수 없는 증상들이었어요."
하지만 셰인은 전쟁터에서 활동해 온 의무병.
외과가 담당하는 외상치료보다도 더 치명적이고, 수많은 죽음을 봐온 몸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생화학 병기, 그리고 독극물.
"아마도 사망 직전에 치사량의 비소를 섭취한 듯 보입니다."
"……비소?"
"귀족들의 식기를 전부 은으로 바꿔버렸을 정도로 독살에 가장 자주 사용된 물질이죠."
화학지식에 정통한 연금술사가 아니라면 생소하겠지만, 뒷세계에서는 비전으로나마 그 독극물의 제조법이 알려져 있는 상태다.
그리고 아리엣의 사인은 그런 비소의 과다 복용에 의한 급성 중독…….
적어도 셰인의 눈으론 그것이 유력해 보였다.
"……확실한가?"
"……."
"정말로, 그녀가 독살당했다 확신하고 그리 말하는 것이냐 물었다."
"지금 선에선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그래, 식견이 있다곤 해도 전문가 수준은 아니니까.
독살의 흔적이 있다곤 하나 그게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사고로, 혹은 광산에서 흔히 벌어지는 가스중독처럼 환경에 의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의 몸을 보는 데에 능할 뿐, 현장을 조사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가택을 조사해도 별 성과가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직접 부검해 보겠다고…."
그러니 제대로 된 조사를 위해선 전공을 살려야 한다고.
-쿠당탕!
그 의견을 다시 입에 담기 무섭게, 테올린의 주먹이 셰인의 안면을 후려쳐 땅에 눕혀버렸다.
"네놈은."
주먹을 휘두르는 데에 익숙지 않은 손이다.
고작 한 번 휘둘렀을 뿐임에도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
"네 녀석을 길러주었던 유모의……. 네 어미를 대신하는 자의 유해를 훼손하겠다는 것이냐?"
그럼에도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가 그 고통의 진통제가 되어주고, 온몸의 신경을 불태워 마비시키기에 이르고 있었다.
"정녕 그녀의 죽음을 기린다는 이유로, 확신에도 없는 네 녀석만의 추측을 위해 기어코 악마가 되겠다는 것이냐!?"
죽은 자의 시체를 훼손한다.
제국에서는 결코 해선 안 될 불경한 일로 분류되는 것이다.
그 시체를 희롱하는 건 천당으로 향한 고결한 영혼을 조롱하고, 그들이 남긴 미련과 흔적을 더럽히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그런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자라곤 근본부터가 사악한 흑마법사들, 그리고 외도에 들어선 범죄자들뿐이다.
"……이게 제가 그녀에게 보답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국의 방식일 뿐.
셰인의 조국인 아이헨발트에서 부검이란 효율적인 연구법이자 수사 수단…….
동시에 인체연구의 발전에 기여하여, 의료대국으로의 크나큰 도약을 마련해 준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제 근간을 그 나라에 두고 있는 셰인에게 있어, 부검이란 오히려 상대를 존중하기에 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은사에 대한 존중을 져버린 행위를 감사라 포장하다니…."
물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겐 쥐뿔도 통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그렇게 가문의 사람임을 강조를 했는데도, 너는 네 본질을 기어코 이단에 두려 하고 있구나."
싸늘하게 식은 조소가 그의 입가에 그려진다.
그로부터 비롯된 건 상대를 향한 모멸한 비난뿐.
"그런 외도에 들어서고도 죄의식 하나 가지질 못하니, 이단이 이 제국에 받아들여지질 못한다는 걸 왜 모르는 것이냐."
'그런 아집 때문에 제국이 200년째 발전이 없는 것이라고.'
반사적으로 그렇게 반론을 하려다, 끝내 이를 악물어 가까스로 삼켜내었다.
애초에 어느 정도 각오했던 일이다.
아무리 의도가 옳아도 근간이 이단에 있는 이상, 제국은 이유를 불문하고 그걸 허락하려 들지 않을 테니까.
로열 나이츠의 권한조차 확신 없는 일에 사용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되는 법.
"……어째서 장례식을 그렇게 성대하게 치른 겁니까?"
그러니 파고든다면 다른 방향으로.
과거의 전례와 비교하고, 그 중 의심되는 부분을 거론한다.
"이제까지 다른 사용인들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사고나 수명이 다해 별세하신 분들 중 이렇게 큰 규모로 장례를 벌이셨던 분은 없었다고……."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지적해야 할 문제더냐?"
테올린에게 있어 아리엣은 누구보다도 신뢰하던 충신이었다.
후계자 싸움 때만 하더라도 자신을 계속 지지했던 자.
그 당시 최악의 호적수가 상대로 있었던 만큼, 그녀의 인망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가주의 자리에 앉을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기리고자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는 것이, 제 앞에 있는 자에겐 그렇게나 꼴사납게 보이는 것일까?
"……축제건 장례식이건, 성대하게 치를수록 묻어지는 것도 많은 법이죠."
그래, 지금의 이 상황은 세인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수상히 여겨지는 것이었다.
밝을수록 잘 보이는 세상이라지만, 그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비추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리는 법.
마찬가지로 지금의 장례식은 귀족에 충성했을 뿐, 귀족이 아닌 이를 대상으로 하기엔 너무나도 큰 투자가 이루어져 있다.
영지의 자랑인 활기가 넘치는 상가도 외부의 순례자들에 의해 분위기가 죽어버렸을 정도.
그런 상황을 한 달 이상 방치시키는 건, 언제 어느 때에나 공무를 중시해온 영주가 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형님, 장례식을 그렇게 거창하게 진행한 건 정말 그녀에 대한 존중만으로……."
"……셰인."
그 부분을 지적한 순간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
아니, 평소에 성까지 붙이며 제 정체성을 강조하려 했을 때와는 다르다.
"내 간곡히 너에게 말하마."
흥분이 가득 가라앉은 싸늘한 시선.
억지로 감정을 억누른 듯 보이기까지 하는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해져 있다.
테올린이 그러한 눈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이건…… 아리엣의 죽음을 조사하는 건 네가 나서선 안 되는 일이다."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다.
나서선 '안 될' 일이라고.
그 말을 들은 순간, 셰인은 차마 이제까지처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형님, 설마……."
"만약 네가 로열 나이츠의 권한을 행사하여 억지로 조사하려 든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써서 너를 전력으로 막을 것이다."
그리고 테올린은 제 앞에 있는 이가, 경솔하게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름 아닌 황실이란 뒷배를 지고 있는 자신을 향해.
의혹으로나마 자신이 염두에두는 부분을 건드리지 않길 바란다.
"……그게 제국으로의 반역으로 오인 받을 수 있다 해도 말입니까?"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그와 별개 된 자신의 의사만을 당당히 토해낼 뿐.
"내가 지켜봐온 너는 현명하진 못해도 어리석진 않은 자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저 두려운 것뿐이다.
그 역시 영주로써 보는 시야가 넓으니 자신보다 많은 것을 파악했을 테니까.
의심이 드는 부분도 여럿 존재하고, 그걸 개인적으로 조사하고자 하는 의향도 있을 것이다.
"행실이 귀족에 걸맞지 않을지언정, 네 분수를 알며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일을 저질러왔지. 내가 이제까지 너를 가문에서 내치지 않았던 건, 네가 그 선을 지키는 걸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상이 밝혀지더라도 그걸 수습하는 건 별개의 문제.
자칫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그건 그걸 책임져야 하는 영주의 입장에선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 여파가 크면 클수록 더더욱.
"그러니 제발 가만히 있어라."
그 여파를 해결하고자 눈앞에 있는 자가 발을 들인다면, 그 소란은 어쩌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범주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네 손으로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게 아니라면."
아리에타 실피어스.
그녀에게 얽힌 죽음은, 그 누구보다도 가문을 중시해온 남자가 그런 결정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사태였다.
* * *
빈대 하나 잡자고 집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제 의구심 하나를 해소하고자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없었기에, 셰인은 말없이 집무실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얼굴을 마주한 건 그 문이 굳게 닫힌 순간.
"아, 도련님……."
복도에 발을 들였을 무렵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연한 금발을 지닌 시종복의 여인. 왼쪽 눈에 끼워진 단안경은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드리아나?"
사후 30일.
장례의 마지막 절차가 이루어지는 날, 그녀는 상복이 아닌 시종복을 입은 채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