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67화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 자체로 출산의 성공을 알리는 승전보.
곧 아이를 받는 역할을 수행한 사제들이 방문을 열고 빠져나왔다.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네, 그럼……."
곧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 중 한 명, 아드리아나가 자신이 따르는 이를 돌아보며 조심스레 자리를 비켜주었다.
"들어가시죠. 도련님."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열린 문틈으로 나아가는 셰인.
이후 방에 들어섰을 때 그를 마주한 건, 식은땀에 젖은 채로 요람을 품에 안고 있는 안주인이었다.
"아, 도련님, 오셨, 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안주인님."
"고마워요, 여기까지 찾아와주셔서……."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
그럼에도 엘레오노라는 제 품에 끌어안은 아이를 놓지 않고, 그를 애틋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건강한 아이에요. 한 번 안아보시겠어요?"
"…제가 안아 봐도 되는 겁니까?"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을 정도예요. 도련님은 바쁜 그이를 대신해서 자리를 지켜주고 계신 거니까."
현재 테올린은 영주로써의 공무 때문에 외부로 출장을 나간 상태.
그로 인해 아내의 출산일에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지만, 가문의 일원 중 그를 책망하는 이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가문의 일원들은 물론 엘레오노라조차 테올린이 짊어진 무게를 이해하는 상태.
그 무게를 느낀 셰인이 말없이 엘레오노라에게서 요람을 받아들였다.
"으애앵, 응애애애……."
이전까지 거세게 들렸던 울음소리마저 칭얼거림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신성력에 의해 출생 직후의 아픔이 사그라지고 있기 때문.
그렇게 조용해진 아이가 제 품에 안긴 것을 마주한 순간, 셰인은 가슴이 술렁거리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내가 아이를 껴안는 날도 오고.'
전쟁시절만 해도 이런 일은 없으리라 여겼건만.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아기가 든 요람을 흔들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아, 사내 녀석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더 크게 울어봐."
"여자아이입니다."
"어쩐지 애가 참 곱상하게 생겼더라니."
신생아를 본 적이 있어야 골격구분 하던가 하지.
겸연쩍게 웃은 셰인이, 곧 자신에게 다가온 수녀에게 제 품의 아이를 내어주었다.
그 순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빛을 발하는 수녀.
그녀 역시 셰인과 마찬가지로, 제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뿌듯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를 제 손으로 받아냈으니 기쁠 법도 하겠지.'
아이를 낳는다는 건 막대한 생명력을 쏟아내는 일.
그 과정에서 산모가 죽거나 하는 일도 결코 적지 않지만, 신성력을 그 동안 주입해내면 산모와 태아. 둘 모두 안정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게 가능해진다.
'실제로 성직자가 아이를 받았을 때의 사망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했던가.'
인력이 부족하여 고액의 헌금마저 받는 성직자들이라지만, 아이가 탄생할 때만큼은 그 곳에 최우선적으로 향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적을 베풀어준다.
생명이 탄생하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이라 여겨지는 일이니.
"그럼, 저는 이 아이를 잠시 씻기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이를……. 잘 부탁드릴게요."
이후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는 사제.
그 후 홀로 침대에 누워있는 엘레오노라의 곁으로, 그녀의 전속 시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후의 요양을 위해 그녀를 보좌해주기 위함이리라.
그런 시녀들의 부축을 받는 가운데, 엘레오노라가 피로에 젖은 얼굴을 셰인에게 향하며 힘겨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도련님, 그 아이를 안아주셔서."
"아뇨, 별말씀을……."
"사양하지 않으셔도 돼요. 진심으로, 도련님께서 있어주셔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시녀들이 그녀의 이마에 어린 땀을 닦아준다.
손에 쥔 수건이 흥건히 적을 정도로 많은 땀…….
그만큼 큰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었겠지만, 모든 게 끝난 지금 그녀의 입가엔 힘없게나마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존경스럽네, 이런 면은.'
괜히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일까.
테올린이 어째서 그녀를 아내로 간택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람이 무고한 여인을 치정싸움에 이용했다고…….'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더욱이.
"그리고……. 도련님에게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아직 의심의 끈을 전부 놓지 않은 가운데, 엘레오노라가 주변의 시녀들을 향해 힘 없이 손을 휘저었다.
행동을 읽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녀들.
이후 셰인이 그들의 사이를 지나 거리를 좁히니, 엘레오노라가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채 나지막이 속삭여 말했다.
"그레이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셨으면 해요."
"……."
"…부탁드릴게요."
어째서.
자신도 보살피기 버거운 마당에 그레이스에게,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를 의심하는 셰인으로썬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저 당장의 미소엔 별 다른 꿍꿍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만이 겨우 파악될 뿐.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뭐가 됐건 그녀와 접촉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이내 셰인이 엘레오노라에게 인사를 한 후 방을 벗어나고, 그 빈자리를 채운 시녀들이 엘레오노라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안주인님, 방금 무엇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이건 다른 사람은 알 필요가 없는 문제다.
이미 그녀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는 그를 제외하곤.
"……그러고 보니, 날이 좀 먹먹하네요."
슬며시 창가로 향해진 시선.
분명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경사스러운 날임에도, 하늘에는 먹구름만이 가득하였다.
곧 폭풍이 휘몰아칠 것 같다.
* * *
"도련님께선, 아직도 전 시녀장님께서 살해당하셨다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레이스의 별채로 나아가던 중 배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자신의 전속 시종인 아드리아나가 내뱉은 것이었다.
그 물음에 잠시 숲길을 거닐던 발걸음이 뚝 멈춰지고, 그의 고개가 배후를 향해 살짝 비틀어졌다.
약간 벌어진 눈은 놀란 듯 보이기도 하였다.
마치 그녀의 입에서 직접 그런 말이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한 것처럼.
"…답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시종으로써의 사소한 궁금증일 뿐이니까요."
사소한 궁금증이라니.
이제까진 잠자코 있었던 그녀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무언가 사고를 터트릴 것 같아서인가?
지난 1주일 간 잠자코 있던 자신이?
"증거가 없는 일에 계속 몰두할 정도로 미련한 놈은 아니야."
그래, 어디까지나 당장은.
직접 조사해도 진전이 없을 게 뻔한 만큼, 거기에 몰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건 가문 내에서의 혼란을 피하고자 하는 아드리아나에겐 환영하고 싶은 이야기일 테지만…….
"그런데 넌 아닌 것 같네."
그런 예상과 달리, 셰인을 따르는 아드리아나는 밑으로 늘어진 손을 굳게 틀어쥐고 있었다.
특유의 단안경 너머에 비춰진 감정 역시도.
"1주일 전, 도련님께서 별채에 들리신 후부터 저택에 불온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건 도련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요?"
그건 원망인가?
자신의 원수를…….
제 조모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자를, 이제 곧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레이스 씨를 의심하고 있는 거야?"
"도련님께선……."
잠시 말을 잇던 아드리아나가 이내 이를 질끈 깨물었다.
"실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 충분히 이해해."
아무리 시녀된 자가 입에 올릴 말이 아니라지만, 그녀의 조모는 셰인이 가문에 복귀하기 전까지 그레이스의 별채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몸이다.
그리고 현재엔 가문 내에 그레이스와 관련된 불온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태.
그 소문 하나하나가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던 '불륜' 따윈 사소하게 만들 정도로 심각한 사유들이었다.
'가문에 배신자가 속출하는 이유가 그녀와 연관이 있다거나, 외부자와 내통을 하고 있다는 둥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으니까.'
별채에 계속 가두어진 그녀가 그런 게 가능할 리 없겠지만, 당초에 소문이란 근거 없는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 소문에 살이 붙여지며 사실로 바뀌는 것 역시 드물지 않은 일.
"…나도 확실하지 않아."
그리고 셰인 역시 그레이스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
피오에게 교육을 받은 것도 어디까지나 '만에 하나의 사태'를 염두에 두어서이지, 정말 그녀에게 들었던 일이 그레이스에게 일어났다 장담할 수도 없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한들, 그레이스가 아리엣을 살해했단 의혹이 사라진다 할 수도 없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가야 할 명분이 필요한 거고."
별채에 있는 첩실에게 서자 된 녀석이 접근하는 것도 썩 좋게 보이진 않을 터.
그나마 총애를 받는 안주인의 지시를 받은 지금이라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빌어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두 확인하자.
그걸 위해 별채에 들어서려는 순간, 대문이 박차고 열리며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시, 시녀장님! 큰일 났습니다!"
마침 셰인을 뒤따르는 아드리아나를 알아본 건 별채를 관리하는 집사.
창백히 굳어진 안색을 보아 별채 내에서 문제가 생긴 듯하였다.
"무슨 일이시죠?"
"그레이스님께서, 그…. 지금 방 밖으로 나오시고는 복통을 호소하셔서. 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복통.
그 단어를 듣자마자 셰인이 다급히 별채로 뛰쳐 들어갔다.
"도련님!?"
"아드리아나만 따라와! 당신은 다른 사람한테 알리지 말고 별채 돌면서 사람들 입단속 시켜!!"
"네, 네!?"
당황하는 집사를 뒤로하며 그레이스의 방으로 뛰어가는 셰인.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 셰인의 발걸음의 복도 한 중심에서 멈춰지고 말았다.
"아, 으으…. 하아……."
제 배를 끌어안은 채로 자리에 주저앉아있는 그레이스.
차마 몸을 눕히지 못하는 건 제 배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리라.
'집사 그 멍청한 새끼가, 대신 봐줄 사람도 안 부르고 본가로 뛰쳐나가려고 한 거였어!?'
어차피 신성력을 때려 박으면 그만이니 환자의 상태를 방치한다…….
셰인이 오기 전의 블레이즈에서도 숱하게 있었던 광경이다.
사람의 목숨이 걸린 전장에서도 그 지경인데 귀족가라고 다르겠는가?
'따지고 들 때가 아니야. 일단 환자부터…….'
셰인이 그레이스를 들쳐 업고 방으로 들어가려다, 그 안의 더러움에 눈살을 찌푸리며 등을 돌렸다.
"경비병! 경비병들 숙소 어디 있어!?"
"이, 이 쪽입니다!"
더러운 방에서 산부의 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이후 아드리아나의 안내를 받으며 향한 곳엔, 대낮부터 퍼질러 자고 있는 경비병들이 셰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뭐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주둥아리 나불대지 말고 다 꺼져. 턱뼈 부숴버리기 전에."
이를 갈며 그들을 쏘아보자, 지레 겁먹은 경비병들이 다급히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셰인이 제 품에 안겨진 그레이스를 침대에 비스듬히 눕히고, 그녀의 상태를 점검하였다.
"괜찮아요?"
"아, 아아. 으극, 하아아…."
격하게 숨을 몰아쉬는 그레이스. 셰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의 하반신을 돌아보았다.
낡고 더러운 드레스의 밑으로 흐르는 무색무취의 액체.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앙수가 터진 것이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긴 했지만, 하필이면 엘레오노라와 같은 날에 일어날 줄이야.'
곧 출산의 임박.
그것을 아드리아나 역시 직감한 듯 다급히 방을 벗어날 준비를 취했다.
"당장 사제분을 부르고 오겠습니다!"
"안 돼!"
뛰쳐나가려는 아드리아나를 제지하는 셰인.
확실히 신성력을 이용하면 안정적으로 출산할 수 있지만, 지금 그레이스는 절대로 신자들에게 맡겨선 안 되는 상태였다.
"아니, 에요. 전, 절대로…. 아무하고도……."
출산이 임박한 지금도 무고를 주장하는 그녀.
그 모습이 처절하면 처절할수록 누군가는 그녀가 무고하다 생각할 것이며, 셰인 역시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말에 강한 설득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주님, 대체 왜……. 왜, 어째서어……."
'역시, 느껴진다.'
침대에 누운 채 비탄을 흘리는 그녀의, 그 손을 맞잡고 있는 지금…….
아주 희미하지만, 그녀에게도 신앙을 빚어 만든 힘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저 현 상황에 심란함을 느낄 뿐, 그럼에도 이 정도나마 주님에 대한 열망을 가진다는 건 대단하다 여길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식으로 무고를 주장하기엔 상황이 너무 나빠.'
법에 교리마저 끼워 넣은 제국에 있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명현상은 그 자체로 악마의 소행이라 여길 일.
단순히 탄생의 저주라고 여기는 것과는 급이 다른 문제다.
악마와 엮여있다는 건, 반세기도 전에 폐지된 마녀사냥을 다시 시작할 명분으로도 충분할 정도니까.
"도련님, 전 비록 상황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대로 두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뒤늦게 그레이스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된 아드리아나가 설득하듯 외쳤다.
제 조모의 원수일지도 모른다 해도 상황이 상황이란 것일까?
"그녀를 구하기 위해선 기적이 필요해요!"
하지만 기적이라니.
지금 제 손에 쥐어진 여인이 발하고 있는 힘이 선명히 느껴지는데.
그 힘에 기대고도 이렇게나 괴로워하는데. 그 괴로움이 그저 그녀가 가진 신앙이 부족하기에 생기는 것이란 말인가?
"기적이 없다면 병자를 내버려둬도 되는 거야?"
개소리 집어치워.
"무슨……."
"사람도 사람을 구할 수 있어."
규율을 세우는 것도, 죄를 짓는 것도 그 죄를 처벌하는 것도 인간이거늘.
구제조차도 인간의 손으로 하지 못하리라 누가 정의를 내렸는가?
그 결정 또한 하늘이 아닌 인간이 내린 것이라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 역시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셰인이 이 시대에서 추구해야 하는 건 그런 일이었다.
"분만 시작할 테니까 손 좀 빌려줘."
셰인은 의사다.
기적의 힘이 없어도 사람을 구하는 존재.
그건 빛을 거머쥔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네? 분만이라니……. 서, 설마 도련님께서?"
당황하는 아드리아나.
셰인은 그에 개의치 않고 제 손에 마나를 끌어 모아 표면에 불을 붙였다.
소독술을 이용해 감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
그렇게 준비를 거치는 와중에도 셰인의 시선은 그레이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주여, 제발……."
그래, 영문도 모르는 상황이겠지.
순결을 유지하는 중에도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으니 혼란스러울 법도 할 것이다.
그 마음만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셰인은 궁지에 몰려있는 그녀의 발버둥을 보는 것만으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레이스 씨.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그런 그녀에게 셰인은 지금부터 '잔혹한 일'을 강행할 생각이었다.
정말로 그녀가 무고하다면, 그녀가 처한 일의 원인을 가르쳐주는 것은 필요한 일일 테니까.
"지금 당신의 배에 있는 아이는……."
그것을 위해 가장 먼저 진상을 가르쳐준다.
자신의 스승의 지식으로부터 겨우 알아낸, 자신조차도 믿지 못한 진실을.
"그게 무슨……."
거기에 먼저 당혹을 토로한 건 아드리아나.
그렇게나 셰인이 말한 건 이 제국에 있어서 어처구니없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셰인 역시도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바였다.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일일지언정, 거기에 천문학적인 확률에 기적까지 더해져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벌어진 건 벌어진 것이다.
그 당시 자신이 비약으로 구제를 했던 소녀에게 벌어졌던 일처럼, 지금 제 앞에 있는 여인이 그런 기적의 순간을 겪지 않으리라곤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정, 말로……."
그리고 이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제 앞에 있는 자의 몫.
"네,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악마에게 홀린 것도 아니에요."
셰인이 혹시나 싶어 하는 마음에 바로 쐐기를 박았다.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
이윽고 움켜쥐었던 손에 차차 힘이 풀려간다.
그 직후 시작되는 격한 몸의 떨림. 산통이 더욱 심해지며 앙수가 거세게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앞둔 셰인이 자신의 손에 마나를 끌어 모으며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스승님.'
허공에 휘둘러진 손끝에 비추는 섬광.
'이 못난 제자에게 힘 좀 빌려주시죠.'
그 순수한 빛이 먹먹한 하늘에 가려진 태양을 대신해, 그들이 서있는 방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 * *
-덜커덩.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그 아래에 펼쳐진 칙칙한 길목을 가로지른 마차가, 이윽고 골드리안의 정원에 들어선 후 멈춰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빠져나온 것은 성직자들.
하지만 출산을 돕기 위한 신자들은 아니었다.
이미 엘레오노라의 출산이 성공적으로 끝난 마당에, 교단에서 추가로 증원이 올 리는 없을 터.
"저기. 무언가 잘못 알 고……."
"아뇨, 제가 불렀습니다."
당황하는 사용인들의 사이로 누군가 가로질러 걸어갔다.
복장에서부터 걸음걸이까지 우아함이 묻어나오는 여인.
골드리안 가문에 소속된 첩실 중 한 명인 '라라티나 골드리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