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69화
분명 그 품에 안겨진 것은 침대에서 의식을 잃은 그레이스가 낳은 아이일 터.
하지만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그 침묵이 길어진다는 건, 곧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의혹은 차차 사실이 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셰인 골드리안. 이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무력제재에 들어가겠습니다."
밑으로 흘러내린 손이 차차 들어 올려지고, 이윽고 그 끝이 그에게로 뻗어질 준비를 취한다.
과거 죄를 범했음에도, 그 마음만은 순수했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나마 이단의 땅에서 올바름을 지향하고, 그 끝에 빛을 개화하여 이단의 몸으로 제국에 인정을 받은 존재.
그 고결한 심성을 가진 이단자를, 제 손으로 처형할 각오를 취하며.
"…태초에 빛이 있었노라."
침묵이 깨어진 것은 손가락이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내뱉어진 한 마디에 파이몬의 몸이 잠시 주춤거렸다.
"무슨……."
"태초의 존재는 어질러진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여 7일간의 창조를 이어갔으며, 그중 마지막 하루는 흙을 빚고, 자신의 존재를 모사한 완벽한 존재를 만드는 데에 투자하였다."
바로 심판이 이어지지 못한 건 그 구절이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렸기에.
"자신의 분신이 외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기에 주님께선 그를 위해 여성을 창조하였으나, 뱀의 간사한 꾀임에 넘어간 그녀는 끝내 금기를 범하고, 그 금기에 자신의 남편마저 꼬드기기에 이르렀으니."
그래, 지금 그가 입에 담은 건 이 세상의 시작.
그리고 그 역사를…….
위대한 존재가 이끌어간 세계의 기록을 적어놓은 신성한 책의 서문인'창세기'를 다룬 구절이었다.
"그렇게 선과 악을 알게 된 최초의 인간은 수치를 일깨우며 남성에겐 영원한 노동을, 여성에겐 잉태의 형벌을 내으며……."
잠시 그를 단죄하려는 행위가 멈춘 건 그저 익숙한 구절이 들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감히 이단이 된 자가 그런 구절을 입에 담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 삶이나마 온존히 살아가고자 했음에도, 끝내 둘이 맺어져 태어난 두 아이는 서로를 시기하고 증오하며, 끝내 형이 된 자는 제 동생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이것이 인간이 인간을 향해 저지른 최초의 죄악……."
'그리고 그 죄는 끝내 그치지 않고 더욱이 부풀어 세상을 더럽히시니, 주님께선 이를 정화하고자 한 성자를 불러 배를 만들라 지시하며, 끝내 그 배에 오를 자격이 없는 이들을 모조리 수장시켰노라.'
"그렇게 배에 남은 성자의 세 자식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으니…….
'허나 그들은 세상 전체에 뿌리를 뻗으리란 약속을 어기며, 도리어 주를 향한 도전을 위해 탑을 세워 그곳에서의 영원한 삶을 추구하길 택하였고.'
"그에 분노한 주님께선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 분쟁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분열된 땅 위에 그어진 나라라는 경계는, 그 또한 인류의 선조가 저지른 원죄의 흔적일지어니…….'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그가 읊어가는 성경의 내용을 떠올려가는 파이몬.
그 직후 그의 배후에서부터 새어나오는 광채가, 먹에 감춰진 하늘 아래에 어두워진 방 안을 차차 밝혀가기 시작했다.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나 죄악을 증오해야 하는 인간이, 그 시작은 죄악에서부터 시작되었다니."
그래, 인간이란.
그 본질은 결국엔 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단의 사람들이 따르는 교리대로라면 그렇게 정의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이 빛을 갈망하고 몰두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그들은 스스로 일어서기보단, 자신이 직접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보단, 자신에게 찾아올 빛을 더욱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그 말이 제 앞에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데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단을 지향하는 자가 빛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죄를 지었음을 자각함에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스스로의 근간을 이단에 둘 것을 정당화하는…….
그러면서도 주님에 대한 보은마저 거머쥐고자 하는 행위가 가증스럽게 여겨졌기에.
'이 자는 위험해.'
심문관은 이단을 벌하고자 이단의 문화를 이해하는 자.
신자로써 이단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점은 눈앞의 자와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자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설령 그 마음은 고결할지언정, 스스로의 그릇됨을 자각하지 못한 그는 분명 이 사회에 혼란을 초래하리라고.
그렇게 멈추었던 손이 다시 움직이려는 때.
"응애애애애애!!"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품에 안겨있는 무언가로부터…….
그래, 그건 분명 울음소리였다.
갓 태어난 아이의.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점과도 같은 것이 이 순간, 뒤늦게나마.
"여섯 째 달에, 주님께서 한 천사를 목수와 약혼한 처녀에게 보내시기를."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그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제 품에 있는 존재를 쓰다듬어갔다.
여전히 손에 빛을 담은 채로.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는, 자신을 찾아온 천사의 말에 몹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사건의.
그 시작을 입에 담아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아이야. 너는 주님의 총애를 받았으니. 그 총애를 통해 한 아이를 낳을 터이니. 그러니 그에게 '예슈아'란 이름을 짓게 하여라. 그리 하면……."
"그자는 누구보다도 큰 인물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그저 머릿속으로만 떠올리고자 했던 말의 뒷구절을, 끝내 제 입에 담고야 말았다.
그 이상은 말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다. 둘 모두 알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주님께서 말하시길, 그자의 조상에게도 왕좌를 주시고. 그렇게 탄생한 왕가는, 이윽고 영원불멸한 나라를 이끌어갈지어다.'
죄악이 만연한 세계를 구제하고자 찾아온 성자.
비록 그 역시 죄악이 들끓는 인류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나, 그 후손은 예언대로 분열되어 혼란스러워진 세계를 규합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런 이들을 머나먼 선조로 둔 것이 바로 현 황실의 일원들.
그들의 선조야 말로 현 제국의 시초이자 근간.
"설마……."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눈치 챈 순간, 파이몬이 그를 향해 뻗은 손을 무의식적으로 내리고 말았다.
그 품에 안겨있는 아이의.
"응애애애애애!!"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기 그지없기에.
그 울음소리를 품고 있는 빛이 너무나도 선명해, 도저히 악마의 소행에 동참하는 자라고 여길 수가 없었기에.
"그런 기적의 순간이."
그래.
이단을 벌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자마저, 이 순간 그를 저지하지 못한 순간 시작된 것이다.
"그런 역사의 한때가, 지금 저희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200년의 시간을 넘어 시작된 반격의 포문이.
* * *
'셰인, 알고 있나요? 산모가 쌍둥이를 품었을 때, 그 태아들은 높은 확률로 그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겨루게 된다는 걸요.'
어미의 배라는 비좁은 공간에 두 명의 아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산모에게는 물론 같은 공간을 쓰는 이들에게도 부담이 가해지는 일.
그리고 유전학적으로 본다면 서로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에서의 분쟁이란 피할 수 없다.
'이런 겨룸에 의해서 쌍둥이 중 한쪽이 흡수되거나, 모체에 환원되는 일이 일어나게 돼요. 이 현상을 의학적 용어로 쌍생아 소실(베니싱 트윈)이라고 부르죠.'
실제로 이 현상을 포함할 경우, 전체 산모 중 2%에 불과한 쌍둥이의 임신율은 10%까지 상승한다고 한다.
반대로 10%까지 갈 수 있는 쌍둥이의 임신율은 태반이었을 적의 경쟁 과정에서 1~2%까지 떨어진다는 것.
한 배에 두 명의 아이가 공존한다는 건 그만큼 치열한 싸움이 이루어진단 것이며, 이런 분쟁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그러니까 간혹, 그 흡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태아의 흔적이 다른 한쪽에 남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
'네, 맞아요. 다만 그 경우 흡수된 태아는 제대로 된 상태라고 볼 수가 없어요. 흡수된 아이에게 다른 쪽의 아이가 가진 유전정보가 섞여 정신질환이 생길 수도 있고, 그 현상이 10년이 넘는 시간의 잠복기를 거쳐 일어나, 임신과 유사한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죠.'
그런 현상이라면 남녀 관계없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남성과 관계를 맺지 않은 처녀는 물론 남성도,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베니싱 트윈이란 현상을 따른다면, 성관계를 거치지 않은 임신은 정말 희귀한 확률로나마 이루어질 수 있단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았을 때 잉태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일 뿐.
처음 카일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떠올린 건 다름 아닌 '암세포'였다.
'이런 사례가 드문 편이긴 하지만, 일단 확인되면 제왕절개로 아이를 빼내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그것도 아이를 받기 보단 종양을 제거한다는 느낌으로요.'
그래, 자신의 신체에 다른 존재가 기생하고 산다…….
그건 태아라는 이름의 암세포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서로가 공존하며 살면 반드시 파멸로 향하니, 제 육체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존재로.
'그리고 교단은 완벽한 인간을 숭상하죠. 이런 현상에 의해 기형적으로 어그러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악마의 소행이라 오해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예요.'
그저 순결한 몸으로 아이를 밴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태어난 아이가 기형을 가지고, 그것이 신성력으로도 회복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뒤틀려 있다면.
그 흉측함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국에선, 악마의 소행이라 의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기형 없이 정상적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레이스가 정말로 누구와 맺어지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점을 물고 늘어져 '악마가 위장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레이스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 하는 것이…….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자는 거야?'
'제국의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을 진짜라 여기니까요. 마침 성경에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한 자의 이야기가 쓰여 있네요. 무려 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위인이자, 현 제국을 이끄는 황실의 선조 되신 분을 잉태한 분의 이야기가 말이죠.'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선 그녀가 낳게 될 아이가 세간에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처녀로써 임신을 했다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런 일이 '신화적인 존재'가 일으켰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도리어 그 경외감에 압도되어 근거 없이도 설득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학술적으론 말도 안 되는 일.
하지만 제국은 논리보다도 교리가 통하는 나라다. 그녀의 책략은 분명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아니, 그것보다 너무 그럴싸한 이야기인데…….'
그래, 처녀로써 임신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그저 신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닌 사실임이 밝혀졌으니.
어쩌면 성경 속의 구절도, 이런 사례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르다는 가능성이 재기된 게 아니겠는가?
'설마 그 예슈아라는 황족의 조상도 그 쌍생아 소실이란 현상에 의해 일어난 건…?'
'0%라고 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요.'
혹시나 싶은 말에 피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성경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구시대의 인류는 현대를 기준으로 하면 그다지 제대로 된 상태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시기에도 종교라는 게 판을 치긴 했지만 결국에는 선동의 수단일 뿐.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빛은 결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겠죠.'
그리고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신앙이란 그저 다른 정의관에 불과한 법.
도리어 신앙이 흔하지 않은 시대엔, 그 힘을 품은 이를 낯선 존재라 여기며 거리를 두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희들이 사는 시대보다도 도덕적으로 결여된 감이 훨씬 큰 시대였겠죠. 주님의 아이라 평해지는 황족의 시초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그렇게 어질러진 세계를 정립하는 시초를 마련했기 때문이고요.'
그래, 성경이란 본래 인간의 죄악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환경에서 쓰인 이야기인 만큼, 그 죄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시대의 사람들에겐 신앙이란 그리 와닿지 않은 개념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건 한낱 목수의 약혼자에 불과했던 여인 역시 마찬가지일 터.
'역사라는 건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단 후세에 의해 재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으니……. 태초의 황족을 잉태한 그녀에 대한 설화도, 어느 정도 허구적인 부분이 가미된 걸 감안해야겠죠.'
물론 당시의 의견도 결국 기록의 재해석에 불과할 뿐.
실제 그 역사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제대로 된 진상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런 진상을 어찌 해석하고, 어떻게 이용할지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
'…생각해보면 완전 사기극이네.'
'사기극이라뇨?'
'지금 네가 나한테 시키려는 일말이야.'
실제로 성경 속의 내용이 그저 허구인지, 의학적 사례라 칭해질 만한 일인지……. 지금에 와서 그걸 판가름 짓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하고자 하는 건, 그 진위를 모르는 상황에서 신화 속의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주장하는 것.
그건 셰인이 지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다.
그가 하고자 하는 건 제국이 억누르고 있던 진실을 인정받게 하는 것이지,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의학적 견해를 기적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럼에도 피오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가르침을 구한 자에게 공감을 구하고자 한다.
'셰인, 설령 의학적인 사례가 존재한다 해도, 그건 수치적으로 보았을 때엔 천문학적이라 칭해질 만한 수치예요. 보통의 사람은 제 인생에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그 생을 마감할지도 모를 정도로 희귀한 사례요.'
'그건…….'
'그런 희귀한 사례가 지금 당신의 앞에 나타난 거예요. 마치 기적처럼요.'
세상 모든 것이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여, 그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 자부하는 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수치가 정해진다는 건 그에 대한 기대치마저 정립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분명 피오라면 그렇게 말했겠죠. 천문학적으로나마 수치로 표현할 수 있기에, 제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단언해버릴 수도 있다고.'
그것이 학자가 된 자의.
카일이 뒤따르고자 하는, 가장 유능하고 위대하며, 이상적으로 여겨온 학자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쌍생아 소실이라는 가능성을 알고 있음에도, 그 희박한 확률을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한정짓고 넘어가는 것이 학자란 존재라고.
'하지만 셰인. 당신은 어떤가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한계를 상정 짓는다면, 그 한계를 넓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보다 많은 것을 파악하는 것?
아니, 고작 개인에 불과한 인간이 세상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학자로써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기적의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는 당신은…….'
있다고 자부한다면, 그건 그저 선조의 지식을 이어받고 그렇다 착각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그 지식을 감당하는 것도 학자라는 존재.
그 학자 또한 나약한 인간이니, 다시 나아가기 위해선 자신의 부담을 덜어 내줄 존재가 필요하다.
잠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건. 등을 기댈 수 있는 기둥이건.
'그녀를 구제하는 것이, 그저 그들의 지식을 그럴싸하게 꾸며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래, 그것이 카일 페터슨의 의지를 이은 셰인 골드리안이.
의사의 몸으로 신앙을 일깨울 수 있던 이유다.
* * *
'믿음이 없는 탐구는 절름발이와 다름이 없는 법.'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를 두려워하고, 현재에 안주할 뿐인 인간은 결국엔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런 두려움과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때로는 논리적인 면모를 버리며 억지로나마 나아갈 명분을 찾아야만 한다.
'반대로 탐구가 없는 믿음은 맹인이나 다름이 없는 법.'
진실에서 눈을 돌리며 그저 허구의 존재에만 몰두하는 인간은 정체되거나, 끝내 도태되는 운명으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이란 매 순간 한 치의 앞만을 먼저 디디고, 그 앞을 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니.
그렇기에 인간은 결코 자신의 삶에 탐구를 배제해서도, 기적이란 것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되, 그 부족한 몸으로나마 전진하고자 제 앞에 우상을 세우며 나아간다.'
그것이 이곳에 선 자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다.
모두가 외면하며 버려진 기적을 거두어, 진정 기적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건.
오롯이 신앙을 알아가는 학자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응애애애애애!!!"
지금 그 결과물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다.
불완전한 탄생으로 생겨난 기형조차도, 자신의 의학적 처치에 의해 온전히 수복된 아이가.
"이 녀석아. 앞으로 살면서 고생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서럽게 울면 안 되지."
이상한 일이다.
탄생 후 아픈 부분들은 신성력을 통해 모두 회복되었을 텐데, 아직도 온 몸이 쥐어짜이기라도 하듯 고통을 토해내고 있다니.
공교롭게도 셰인으로썬 공감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이전 생에도, 환생한 이후에도, 신생아였을 적의 기적은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아이……."
하지만 아이의 어미는 어떨까?
비록 남자에 대해 알지 못하는 여자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배를 통해 잉태하여 낳은 아이다.
그 진상을 듣고도 그녀는 이 아이를 자신의 핏줄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는, 괜찮은…. 건, 가요?"
"……확인하시죠."
셰인이 곧 제 품에 있는 아이를 그녀에게 내어주었다.
힘없이 아이를 품는 그레이스.
포대기에 감싸인 아이가 엉엉 울음을 터트리다, 그레이스를 마주하곤 서서히 울음을 그쳐가기 시작했다.
"아아……."
그 아이를 본 순간 입가에 그려진 부드러운 미소.
이윽고 아이를 품은 그레이스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아가야, 내가, 네 엄마란다……."
그렇게나 괴로워하고, 그로 인해 열망하던 주님을 향한 증오마저 느꼈음에도…….
모든 것이 정리된 이 순간, 그녀는 자신의 품에 안겨진 아이를 진심으로 제 자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건 그 또한 주님의 뜻이라 생각해서인가.
심문관들과 함께 그 광경을 마주하며, 성경의 구절을 읊었던 남자의 말에 설득되었기 때문인가?
"악마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 속의 구절이 정말로 재현된 것인지 판가름할 만한 여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저희의 앞에 있는 건 그저 평범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평범한 아이와 엄마일 뿐이에요."
그 누구도.
제 앞에 있는 이들을 악마라 칭할 수 없다는 걸.
그 말이 쐐기가 되듯, 이윽고 심문관들의 선두에 선 파이몬의 무릎이 자리에 굽혀졌다.
"주교님……?"
"기적을."
어쩌면 타락했을지도 모르는.
그렇기에 자신이 벌하고자 한 아이가 구제를 받은 순간을 목도하였다.
그 순간의 경외에 충실한 파이몬이, 이윽고 무릎을 꿇은 채 그녀의 앞에서 제 고개를 조아렸다.
오직 자신의 주인.
주님의 앞에서만이 취하는 자세를.
"주님의 신하로써, 이 순간 당신이 내려주신 기적의 아이를 향해 경배를 올리옵니다."
"……."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심문관들.
그들 역시도 이내 파이몬을 따라 하나둘씩 무릎을 굽히고, 양손을 맞잡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가문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던 하나의 소동.
그 끝만은 조용하고 엄숙히 이루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