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72화
잠시 여행을 가겠다…….
셰인이 골드리안의 저택을 떠나기 전, 저택의 사람들에게 일러두었던 말이었다.
아주 거짓말이라곤 할 순 없는 말이었다.
전생의 숙명을 따라 시작하는 여정이지만, 이 몸에 골드리안의 피가 흐르는 한 언젠가 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테니까.
"콘. 미안해."
그러니 제 반려동물 역시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겠지.
-끼이잉…….
제 손에 머리를 비비며 울음소리를 내는 콘.
자신이 떠난다는 걸 직감한 듯하지만, 콘은 아직 제국의 분위기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장기적인 여행을 하기보단 고정된 거점에 머무르는 편이 그녀의 안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터.
-끼우우…….
그런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차마 떨어지고 싶지 않은 듯 콘이 구슬프게 울어왔다.
셰인이 그런 콘의 목을 쓰다듬어주며 머리를 기대었다.
"콘, 너에게도 이 저택에서 할 일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주 잠깐만…….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이라도 이 저택의 사람들을 지키고 있어줘."
-…아우.
이내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는 콘.
그런 그녀를 등진 셰인이 제 배낭을 든 채 저택의 출구로 나섰다.
문지기들에 의해 대문이 활짝 열리고, 이내 영지로 이어지는 도로가 그의 앞에 펼쳐졌다.
그 길을 따라 준비된 마차로 나아가려는 것도 잠시.
"도련님."
마음을 다잡아가는 가운데 배후에서부터 돌연히 들려오는 목소리.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리자 단안경을 쓴 여인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작 입고 있는 것은 늘 입고 다니는 시녀복이 아닌 두터운 코트였다.
손에 쥔 배낭 역시도.
셰인처럼 멀리 떠날 채비를 갖춘 자의 차림새였다.
"이걸, 빼놓고 가셨습니다."
곧 아드리아나가 셰인에게 품에 들어있던 것을 내어주었다.
말이 그려져 있는 금색의 패.
셰인이 그 패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걸 까먹고 있었네."
이 제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셰인에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저 근래엔 이 증패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 잊어버렸을 뿐.
그걸 굳이 가지러 와준 그녀에겐 감사가 느꼈지만, 정작 아드리아나가 셰인에게 표한 것은 그와 상반된 것이었다.
"정말로."
흔히 경의라고 부르는 감정.
"정말로 로열나이츠의 권한을 쓰지 않고, 사건을 해결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억지라고도 여길 수 있는 주장을 교단의 앞에서 펼치고, 끝내 그들을 설득한 이에 대한 감탄.
"아직 네 조모님의 죽음을 밝혀내진 못했지만."
그를 마주한 셰인이 쓰게 웃으며 로열나이츠의 금패를 제 품에 집어넣고는, 미련 없이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비록 몇 달뿐이지만, 셰인이 자신을 위해준 시종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이만 돌아가 봐. 할 일도 많을 텐데."
"한 가지."
그런 무뚝뚝한 태도에도 아드리아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강경히 제 곁을 지키려는 듯.
"외람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안 돼."
그런 그녀를 향해 셰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가문을 벗어나는 건 내 독단으로 벌이는 거야. 진짜 가문을 위한다면 가주 허락 없이 가출한 녀석까지 챙기면 안 되겠지."
그녀가 받은 명령은 골드리안의 일원으로써 셰인을 보필하는 것이지, 이단자의 무리한 이상과 활동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이것이 제 조모의 죽음과 연루된 일이라 할지라도.
평생을 제국인으로서 살아온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을 감당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몇 달뿐이라도 진심으로 자신을 보필해 준 시녀가 아닌가?
그러니 그녀가 자신의 여정에 함께 해선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를 내치려 했지만…….
"가문의 시종으로서 당신을 따라나서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정작 아드리아나는 셰인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에게 동행하고자 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제 왼쪽 눈에 쓰고 있는 단안경까지 벗으면서.
"저를……."
권위를 상징하는 장신구를.
시녀장으로서의 직위와 가문을 오래토록 수호해 온, 그 혈통의 숙명마저 내려두며 그녀는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저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들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뭐?"
뒤를 잇는 말은 셰인의 입장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저도, 당신처럼……."
그래, 정말로.
"당신과 같은 '의사'라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서 들으리라곤 생각할 수 없던 말이었다.
* * *
태어나길 시종으로 태어나고, 자라나길 시종으로 자라났다.
그런 가르침을 주었던 유일한 가족의 시체를 만졌을 때, 그 손끝을 타고 흐르는 서늘함에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의 시체란 이렇게나 차갑구나, 하는 생각보다도 먼저.
이제껏 나를 지켜보고 이끌어준 자가, 이제야 겨우 홀로 설 수 있게 되기 무섭게 제 곁을 떠버렸다는 사실이…….
그런 사람의 유해가 불살라 사라지는 것을, 차마 이 눈으로 보고 싶지 않다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가문에 대한 충성과 의무조차도 그 순간엔 핑계였을 뿐.
그런 스스로가 추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식으로 변명할 정도로 제 충성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회의감마저 드는 스스로에 자책감마저 느껴졌건만.
그런 마음마저 죽이고, 이제까지 해왔던 본분을 반복하는 것만이 답이라 여겼거늘…….
'악마가 아닙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죽여야 하리라 여겼던 마음이, 그 현장을 지켜보는 순간 들끓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저희의 앞에 있는 건 그저 평범한…….'
'평범한 아이와 엄마일 뿐이에요.'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고작 그것뿐임에도…….
이제껏 몇 번이고 봐온 그 광경이, 그날만큼은 남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태어나길 악마로 태어나고,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채 불 속에 던져졌어야 할 아이가.
그의 손에서 빚어져, 이윽고 인간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을 때 느껴진 자그마한 뭉클거림이…….
'아드리아나.'
그 가슴 속의 술렁임이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 그는 자신을 향해 제 품에 안겨진 아이를 내어주었다.
'이 애를 씻겨줄 수 있을까?'
스스로가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
그 끝에 자신을 올려다보며 꺄르르 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아이와 헤어진 이 순간에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지금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그런 그리움이 자신의 삶에 계속 뒤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예감 하나만을.
* * *
"그런 이유로 당신의 뒤를 따르겠다는……."
줄곧 정해진 길만을 따라왔던 자신이, 처음으로 생소한 감정에 몸을 맡겨 선택한 순간이다.
"…그런 제가 미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에 자신감이 없는 듯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수줍게 동행하고자 하는 이를 올려다보는 작은 여인.
셰인이 그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럴 리가."
미지에서 비롯된 공포란 경외와는 한 끗 차이인 법.
비록 의학이란 걸 전혀 알지 못하는 시대지만, 그렇기에 대부분이 두려워할 그것이 누군가에겐 '기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른다.
셰인 역시 그런 경외를 가지는 순간을 느껴온 몸이었다.
그 섬을 벗어났을 무렵, 하늘과 땅을 뒤덮었던 광채의 무리를 보았을 때에도 느꼈던 '감동'처럼…….
그래, 제 앞에 있는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 당시 제 손에서 빚어진 악마가 이윽고 인간으로 탈피하는 것을 보았을 때.
셰인은 그 당시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 자신이 그 섬을 떠났을 무렵에 보았던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드리아나."
학자인 자신이 믿음이 낳은 기적을 인정하듯.
믿음의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살아온 여인은, 이 수난 의학이란 이름의 기적을 인정하려 하고 있다.
그런 여인이 자신의 뒤를 따라 의학을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데, 어찌 기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의학이라는 건 네가 생각한 것보다도 위험한 기술이야."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이 신중히 해야만 한다.
믿음에 보답이 따르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만물을 조작할 수 있는 세계다.
그러한 세계에서 도덕과 규율을 져버린 기술이란, 그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으로 전락할 수 있는 법이니.
"나는 그런 위험한 기술을, 굳이 이 제국에 도입하려는 사람이고."
그런 시대다.
그런 시대에 비참한 최후가 예견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를 뒤따르는 이유가, 그저 감동에 의해서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사람을."
아니, 이건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도련님께서, 그 때 하고자 했던 건 분명 누군가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그녀는 결코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그를 따르려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할 일이었죠.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고요."
눈앞에 있는 자에게 확신이 있다는 걸 느꼈으니.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는 확신이. 이 시대의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겠지만 그 결과만은…….
그 결과엔 분명 올곧음이 있다는 걸, 이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그럼에도 당신은 그걸 이루어냈죠. 황실의 권위도, 신성력에만 의존한 것도 아닌……. 당신의 손으로 직접."
그걸 증명한 자가 하는 일이 잘못되었을 리가 없다.
설령 세상 모두가 그를 부정한다 해도, 그런 자를 따르는 일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
그 짧은 순간에 느낀 감동은, 그런 확신을 가지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뚜렷이 주장하는 여인을 앞둔 셰인이, 제 품에 넣어둔 금패의 감촉을 느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로열 나이츠의 권한이라면 조수 하나 정도는 둘 수 있겠지."
곧 셰인이 등을 돌리며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많이 힘들 거야."
"각오한 바입니다."
그렇게 굳은 결의를 간직하며.
아드리아나가 제 옆에 기대어진 배낭을 움켜쥐고, 제 스승이 될 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어디까지나 자아와 진상을 찾기 위한 여정.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자신들이 원치 않은 결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결말이 찾아오건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이 정리된다면 다시 이 가문으로 돌아오리라.
두 사람의 몸에 흐르는 피는, 이 순간에도 이 땅이야말로 자신들이 돌아와야 할 고향임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 * *
"그레이스 골드리안은 명을 받으시오!"
시간이 흘러 골드리안에 찾아온 황실의 사절단.
이미 그들이 올 것을 염두에 두고 있던 그레이스가 정문으로 나서며, 그들이 하는 선포를 잠잠히 새겨들어갔다.
"그대는 위대한 피를 이은 이들의 선조, '예슈아'를 잉태한 성모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런 그대의 존재에 감격하여 황실에선 새로운 자격을 선사하오니……."
이윽고 사절 중 한 명이 손에 쥔 서류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제국을 이끄는 황제와 더불어 유일교의 지도자, 교황의 인장이 함께 새겨진 정식 임명장.
"그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차기 성녀'에 걸맞는 지에 대한 시험을 치를 것이며, 이후 세례식을 거쳐 정식으로 성녀로써의 자격을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성녀.
그것은 작위라기보단, 일종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자리라 할 수 있었다.
주교나 추기경처럼 특정한 권한을 행사할 순 없지만, 그 순수함을 증명하는 한 교단의 비호 아래에서 살아가는 존재.
그런 귀중한 대접은 이윽고 특별함으로 다가와, 많은 이들의 우상으로서 민중의 힘이 되어준다.
즉, 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자신 같은 하찮은 출생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레이스."
문득 배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와 함께 고개를 돌리자,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한 여인이 그레이스를 마주하게 되었다.
엘레오노라 골드리안.
자신에게 찾아온 한 이단자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그 시기가 오기 전까지의 유예를 벌어준 은사.
"모쪼록 건강히 지내세요."
그런 그녀가 자신을 향해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기약이 아닌 작별을.
그건 성녀의 자리에 앉게 되면 이 가문에 돌아올 일이 없다는 뜻이겠지만, 그럼에도 이전까진 느꼈던 긴장이 크게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따스하기에. 그 따스함이 자신이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주고 있었으니.
"네, 테올린에게 안부 부탁드릴게요."
그래, 이제부터 자신은 레펠타리도, 골드리안도 아닌 성녀 그레이스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운명을 준비하는 가운데, 그들이 있는 현장에 누군가가 다가서기 시작했다.
-카우.
짐승 특유의 울음소리에 일순간 경계심을 세우는 성기사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존재가 발하는 빛을 보며, 손에 쥐어진 검들이 차차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성수, 인가요?"
"네, 그러고 보니 변경에서 데리고 왔다 했었죠."
뿔에서부터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여우.
성직자들은 본능적으로, 그가 뿜는 것이 순수한 신성력임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빛을 뿜는 존재가 이끌리듯 다가선 것은 성녀로 추앙받게 될 여인.
"……콘."
곧 그레이스가 그녀의 갈기털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면 저와 함께 가주실 수 있을까요?"
-카우!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콘이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홀로 남은 축생과 악마를 잉태한 여인이, 이윽고 성수와 성녀가 되어 당면한 시련을 준비하는 순간.
한 이단자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그렇게 차차 막을 내려가고.
그 연장선은 이윽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의무병의 환생 7권 END]
[작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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