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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의 환생-175화 (175/255)

의무병의 환생 175화

집체만 한 검은 철덩어리를 이어 만든 이동수단.

그를 지탱하는 수십 개의 바퀴가 레일에 맞물려 있으며, 선두에 뚫려있는 굴뚝에선 희미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다.

마차의 크기를 키운 듯하면서도 그것을 잡아끄는 말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움직인다면 기계장치의 힘을 빌리는 것이라 추측되었다.

"이게, 무엇인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셰인도 리나와 마찬가지로 적잖게 놀란 상태였다.

지금 제 앞에 있는 건 전생은 물론 현생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셰인이 마침 근처를 지나는 역무원을 붙잡으며 물었다.

"저기요 아저씨. 이거 뭐라고 부르는 겁니까?"

"아아, 이건 기관차라 하는 겁니다. 대량의 물을 끓여 일어나는 증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물건이지요."

"물을 끓여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죠~"

흥미가 생겨 물으니 역무원이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정식 명칭은 증기 기관차.

예상했던 대로 복합적으로 설계된 기계장치의 힘을 빌려, 말이나 마나의 힘없이도 자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이동수단이라고 하였다.

크기도 크기이지만 동체가 발휘하는 마력도 매우 크기에, 사람뿐 아니라 대량의 물자를 옮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평해질 정도.

레일이 깔린 곳의 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왕복하는 통행과 교역에선 마차와 비교를 거부하는 능률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효율보다 더 파격적으로 여겨지는 건, 이 기계장치에 '그 어떤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석탄을 태워서 이 탄수차에 있는 물을 대량으로 증발시키고, 그 압력을 이용해 동체를 움직인다는 겁니까?"

"오오, 이해력이 좋으시네요~ 보통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 마련인데 말이죠."

"공학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익혀둔 바가 있으니까요."

블레이즈에 있었을 적, 셰인은 기계장치에 의존한 의수나 의족을 만드는 기술을 개인적으로 연구해본 경험이 있었다.

배경지식이 있는 만큼 관련된 분야에 대해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은 상태.

오히려 인체를 모사한 의수에 비하면 기관차는 덩치만 크지, 설계 자체는 굉장히 단순한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단순하기에 마도구 같은 것에 비하면 훨씬 값이 싸게 먹힌다.'

제작비 자체는 상단 하나를 꾸리는 데에 필요한 말과 마차보다 훨씬 높지만, 일단 만들어놓으면 연료와 유지비를 제외하곤 지출이 거의 들지 않는다.

말을 키우고 관리하는 데에 필요한 인력과 수고로움도 적은 편. 돈지랄의 정수라 불리는 마도구형 탑승물에 비하면 가성비가 매우 뛰어나다.

'뭣보다 돈이 없는 평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마음이 든다.'

싱긋, 미소를 지은 셰인이 평가를 정리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의료품을 수송하는 데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어."

"네?"

"아니, 아직은 대량 생산에 신경 쓸 단계는 아닌가? 제국 곳곳에 레일을 깔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의문을 느끼는 리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셰인은 자신의 생각만을 읊으며 상념에 잠길 뿐이었다.

그런 궁리 중에 입가에 그려지는 희미한 미소.

"갈 길이 머네. 정말로."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제국이 발전하는 것이 엿보이고 있다니.

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이로썬 긍정적으로 여길 부분이 아니겠는가?

* * *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역무원의 외침과 함께 열차 선두에 뚫린 굴뚝에서부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로부터 비롯된 힘이 장치를 움직이고, 그로 인해 바퀴가 굴러감으로써 거대한 동체가 움직이는 광경.

수백 톤의 화물과 승객들을 모두 옮김에도, 그 속도는 어지간한 마차의 속도를 넘기에 이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물건이네."

그리고 현재 셰인은 리나와 함께 티켓에 적혀 있는 고급실에 도착한 상태.

마차 안보단 훨씬 쾌적한 데다, 대형 건축물로 분류될 물건임에도 주변과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연구나 수업을 하는 데에도 별문제가 없다는 뜻이니까.

'신경이 쓰이는 건 티켓으로 빌릴 수 있는 방이 여기 하나뿐이란 거고.'

힐끗, 하고 자신을 뒤따라오는 리나를 돌아보는 셰인.

그녀 역시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동안엔, 셰인과 함께 이 방에서 머물러 지낼 예정이었다.

"이거, 졸지에 같은 방에서 머무르게 됐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니야."

그저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되어 미안하단 의미로 한 말이었거늘.

공교롭게도 셰인은 남녀간의 정사를 다룬 농담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것이 다 큰 처자가 하는 말이라면.

"예전부터 누누이 얘기했지만 난 딱히 너를 그런 식으로 대할 생각이 없어."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종으로써 주인이 된 분을 여러 부분에서 보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적어도 이 여행길에서만큼은 시종과 주군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있어주면 안 될까?"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학문 외의 것을 논해선 안 된다고, 적어도 셰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보상으로 돈과 같은 물질적인 거래는 있을 수 있어도, 관계적인 거래는 결코 있어선 안 된다고.

"그러고 보면 도련님께선 아직 상대를 찾지 못하셨지요?"

그렇게 퉁명스레 대처를 하니, 리나가 마침 떠오른 것이 있는 듯 새로운 화제를 거론하였다.

"상대?"

"성인식도 치르신 지 1년에 가까워지고 계시니, 슬슬 결혼상대를 찾으셔야겠지요, 가주님께서도 그에 대해선 여러모로 걱정을 표하시곤 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로써 따라나섰지만 근본은 여전히 시종에 둔 상태.

리나는 셰인을 좋은 신랑감으로 만들어달라는, 테올린의 명령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마음에 둔 상대가 있긴 하지."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셰인에겐 신경 쓰이는 이성이 존재하는 상태.

리나가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어떤 분이시죠?"

"나보다 강한 여자."

"……강한 여자?"

"그래, 나보다 강해서 좋아하는 거야."

좀 더 파고들자면 여러모로 많은 것이 얽혔지만, 결과적으론 그녀가 자신을 이겼기에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애랑 맺어지려면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필요가 있겠지."

그리고 그건 결코 당장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 점을 솔직히 드러내 말하자, 리나가 의외인 듯 숨을 죽이며 셰인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이렇게 나오리란 걸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셰인이 피식 웃으며 방 안의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뭐, 승차감도 나쁘지 않고. 여기서 라면 가는 길에 수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엘레오노라가 참 좋은 걸 추천해줬다.

그녀에게 조용히 감사를 전한 셰인이, 곧장 리나와의 수업을 준비하고자 교재를 펼쳤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인 것이냐!!"

방 밖에서부터 고함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

셰인이 표정을 구기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방음상태가 별로네."

어디까지나 환기 삼아서 창문을 열어놓았기에 그런 것뿐.

하지만 그렇다고 창문을 닫자니 실내이기에 공기가 텁텁해질 우려가 있다.

"제가 잠시 밖에서 확인해 보고 오겠습니다."

"아니, 넌 내 뒤에 있어."

처리한다면 차라리 소음의 근원을 제거해야지.

곧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서자, 객실 복도에 고꾸라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서있는 건 제 입에 손을 얹은 채 몸을 부르르 떠는 한 여인.

그 반대편에 선 것은 호화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는 한 청년…….

아니, 돼지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살이 뒤룩뒤룩 찐 여드름 덩어리와 그를 호위하는 기사 한 명.

"죄, 죄송합니다, 저하! 하, 하지만 저는 엄연히 이 고급실을 대여한 사람으로서……."

"하! 평민 주제에! 감히 귀족인 이 몸을 상대로 말대답을 하는 것이냐!? 애초에 너 같은 녀석이 나와 같은 곳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지경이거늘!"

'뭔 일인지 알 것 같네.'

벼락출세한 졸부나 계승서열에서 밀려난 후계자, 혹은 서자 등등…….

귀족사회에서도 다른 귀족들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이들은 여럿 있으며, 그 화포를 평민들에게 풀어보고자 하는 이들도 두루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평민이 된 이들은 그런 귀족들의 패악질을 잠자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인권에 대한 문제로 소송을 걸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평민은 변호사를 고용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도, 인맥도, 재산도 갖추지 못한 상태니까.

뭣보다 당장 행사하는 물리적인 폭력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오오, 신혼이라 이 말인가? 마침 잘됐군. 아직 순결하다면야 나의 첩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겠어."

"처, 첩이라니 그런 건……. 꺄아악!"

"그래! 당장 그 여자를 내 앞으로 끌고 와라! 하하하!"

"꺄악! 싫어!!"

어째 패악질도 저리 틀에 박힌 수준으로 할까.

쯧, 혀를 찬 셰인이 제 뒤를 따라나선 이의 이름을 불렀다.

"리나."

"말씀하시죠."

"형님이 이 광경을 보면 어떻게 반응하실까?"

"분명 화내시겠죠."

"어째서?"

"귀족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니까요."

"지당하신 말씀이네."

거리낄 건 전혀 없다.

곧 셰인이 리나의 곁을 벗어나 현장으로 발을 옮겼다.

"실례하겠습니다~"

"뭐냐, 지금 누가 날 방해하는……. 우옷!?"

막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경직되는 몸. 그와 함께 뱃살이 출렁거렸지만, 셰인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그와 대치를 할 뿐이었다.

곧 비만 귀족이 힘겨이 입을 열었다.

"사, 사제…… 가, 왜 여기에?"

제국은 교국을 표방하는 나라.

아무리 귀족이라 한들, 정식 사제들에게 손을 대는 건 그 자체로 명예의 실추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리 허영과 탐욕에 찌든 귀족이라 해도, 제 것은 소중한 만큼 성직자들이 온다면 일단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거다.'

공교롭게도 제국의 성직자들은 '방관자'적 성향이 짙은 편이다.

일반적인 성직자들은 폭력과 분쟁을 멀리해야 하며, 성기사나 심문관들도 허락된 상황에서만 폭력을 행사할 뿐.

결국 그들이 싸움을 말릴 수 있는 수단은 말뿐이지만, 그런 말 몇 마디에 눈치를 볼 정도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제된 자는 시비를 받는 일은 없어도, 애꿎은 부부의 사이를 갈라놓는 폭거를 막을 순 없단 것이다.

"죄송한데 저 사제 아닙니다."

그러니 나선다면 사제임을 주장해선 안 되겠지.

셰인이 자신이 입고 있는 사제복을 펄럭이며 대답했다.

"이건 그냥 입고 다니는 거예요. 아직 정식으로 성직자 딱지 달진 않았으니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그냥 입고 다녀?"

멍한 표정을 짓는 비만 귀족.

이내 사태를 파악한 그가 표정을 왈칵 우그러트리며 셰인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 이익! 감히 네놈 따위가 나를 놀리고 자빠져!?"

"너무 험악하게 굴지 마시죠~ 저도 일단은 당신과 같은 귀족인데."

그러니 해결을 한다면 다른 방향으로. 곧 셰인이 제 품에서 귀족임을 증명하는 패를 꺼내 그의 앞에 보여주었다.

골드리안을 상징하는 마크만을 교묘히 손가락으로 감추면서.

"하! 다 같은 귀족이라고 같은 위치라 생각하는 것이냐!?"

하지만 정작 그는 소란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셰인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욱 호전적으로 셰인을 향해 일갈을 하기 바빴다.

"이 몸은 팔레스 백작가의 차기 가주가 될 몸이란 말이다! 기껏 해봐야 어디 시골 땅이나 가꾸는 남작 나부랭이 주제에……!"

남작이라니, 대체 뭘 보고 그리 추측하는 것일까?

하지만 코웃음이 절로 나오는 그 말에, 셰인은 차마 반론을 하지 못하고 귀족으로써의 인장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귀족사회에 있어 서자란 최하위 귀족인 남작보다도 하찮은 취급이고, 하물며 셰인은 가문을 계승하지도 못한 몸이니까.

상대가 계급을 밀어붙이고 무시를 한다면 당연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래 너도 결국엔 이 바닥에 쓰러진 놈이랑 같은 보잘것없는 놈이다 이거지."

그렇게 반박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우스운 듯, 돼지가 더욱 기고만장한 태도를 취하며 윽박을 질러대었다.

"무슨 깡으로 내 앞에 시비를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라도 분수를 알았다면 당장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게 좋을 거다!"

그 명령과 동시에 그의 옆에 있던 호위기사들이 기세등등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셰인이 손사레를 치며 자리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좀 봐주시죠. 전 평화주의자라 주먹다툼 하는 건 싫어하거든요."

"평화주의자는 무슨! 헛소리하지 말고 당장 그 녀석을 내 앞으로 끌고 와!!"

호위들이 뽑아든 것은 분명히 날이 세워진 진검.

공공시설에서 무기를 소유하는 것 역시 귀족의 특권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 검을 뽑는 이유가 신변보호가 아닌 제 분풀이라면 좋게 봐줄 순 없었다.

-콰앙!!

직후 검과 교차로 휘둘러지는 주먹.

그로부터 비롯된 마나의 폭발이 호위의 몸을 쳐날려 벽에 처박아 넣었다.

그에 다른 한쪽의 호위가 경악하는 가운데, 셰인이 그를 향해 손가락을 겨누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 물론, 오는 싸움 안 받는다곤 안 했습니다?"

"이 새끼가 우리가 누구인 줄 알고……!!"

-쩌억!!

그대로 욕을 내뱉는 안면에 가해지는 따귀질.

그 뒤를 잇는 맹렬한 구타에, 호위가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시하며 몸을 웅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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