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76화
"자, 잠깐……."
"안 들려."
-쩌억! 파악!!
안면을 중심으로 무자비한 폭행을 이어가는 셰인.
그 폭행조차 주먹이 아닌 손바닥과 손등만을 이용하고 있다.
어중간한 구타에 굴욕이 느껴지는 상황. 그럼에도 팔다리가 쉬이 움직이질 않는다.
"끄, 아악! 악!!"
이내 검마저 손에 놓은 채 비명을 지르는 호위.
의식이라도 잃으면 고통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머리채를 붙잡은 셰인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조절까지 하고 있는 상태였다.
바로 기절시켜버리면 때리는 시간이 줄어들고, 그런 참교육의 시간이 적어지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테니까.
"잘못했어요, 안 했어요?"
이내 피떡이 된 얼굴을 벽에 매다박은 셰인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입술은 부르트고 이빨은 하나 같이 덜렁거리는 상태.
그러한 상태로 호위가 어버버거리기만 하니, 셰인이 피식 웃으며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주인한테 충성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개념은 좀 챙기면서 사시죠."
기사에겐 마땅히 지켜야 할 기사도라는 게 있듯, 귀족에게도 마땅히 지켜야 할 노블리스 오블리주(귀족의 의무)가 있는 법이다.
셰인이 보기엔 바닥에 쓰러진 호위들도, 자신을 보며 벌벌 떠는 돼지도 그런 본분을 망각한 것처럼 보였다.
"너, 너 운 좋은 줄 알아! 이 열차가 역에 도착만 하면 네 놈 따윈……. 께흑!!"
바로 훗날을 도모하며 도망치려는 녀석을 붕대로 잡아 끌어오는 셰인.
너무 무게가 나가는 바람에 바닥에 질질 끌리듯 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저기요 돼지 백작님……. 아니, 백작이 아니라 아들내미였나? 그럼 뭐라고 불러야 되죠? 돼지 도련님? 아니면 돼지 저하?"
"이, 이 자식이 누구보고 돼지라고……."
-짜악!
고꾸라진 그와 눈높이를 맞춘 채 따귀를 갈기는 셰인.
그에 어버버하는 돼지가 다시 셰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
치켜세워진 입꼬리가 굉장히 섬뜩하게 보일 정도로.
"제가 존대할 때 잘 들어처먹으세요. 도살장 돼지마냥 멱 따이고 싶지 않으면."
난생 처음 들어본 험악한 협박에 몸서리를 치는 비만 귀족.
이내 침묵을 한 그를 마주한 셰인이 피식 웃으며 제 품에서 수첩을 꺼내었다.
"네, 저도 다 이해합니다. 몸에 살이 많으니까 만사가 짜증나고 그러시겠죠."
"무, 무슨……."
"원래 비만인 사람들이 정상체중인 사람들에 비해서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편이거든요. 그런 내적 부담이 주변에 방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당연히 당신쯤 되는 귀족분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평민분에게 패악을 부렸겠습니까?"
이전까지 살벌하게 협박을 하던 그가 왜 갑자기 친근하게 대하는 것일까?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이내 대략적인 것을 적어낸 셰인이 그 쪽지를 귀족의 품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제가 댁 몸을 보면서 검토해봤는데, 여기 적힌 대로 1년 정도운동을 하시면 어느 정도 건강한 몸을 가지시게 될 테니까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내, 내가 그런 걸 왜……. 꿰엑!!"
친절히 대답한 셰인이 돼지의 얼굴을 맨 손으로 움켜쥐었다.
제 손가락이 볼살에 파묻힐 정도로 아주 거세게 힘을 주면서.
"나도 일단은 입장이란 게 있어서 어지간해서 일을 크게 벌리고 싶진 않거든?"
냉정히 벼려진 목소리.
그에 몸을 부르르 떨며 시선을 옆으로 힐끗 향하자, 자신을 충혈된 눈으로 쏘아보는 그의 눈이 비만귀족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러니까 딱 한 번만 경고할 테니까 잘 새겨들어. 내가 이 열차에 있는 동안 또 지금처럼 개난장 치면, 그 땐 네 몸뚱이를 열차 밖으로 직접 내던질 줄 알아. 알아들었어?"
"히, 히익!!"
손을 놓아주기 무섭게 땅을 질질 끌다 이내 도망쳐버리는 돼지.
그를 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셰인이 귀족에게 핍박을 당하는 평민을 마주하였다.
"괜찮아요?"
"아, 네……. 고, 괜찮습니다."
이전의 무자비한 폭행에 겁을 먹은 것일까?
셰인을 마주한 평민 남성이 야수를 대면한 토끼마냥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전에 때려눕힌 녀석처럼 바로 도망치진 않는군.
셰인이 쓰게 웃으며, 제 품에 든 손수건에 마나를 실어 넣었다.
"얼굴이 좀 많이 부었네요. 이거라도 얼굴에 붙이고 계세요."
마나에 의해 수분이 모이고, 그것이 급격히 차가워지며 냉기를 품게 되었다.
붓기를 가라앉히는 데엔 도움이 되리라. 그 호의를 마주한 환자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뭘요. 같은 사람끼리 돕고 사는 거죠."
의사로서도, 귀족으로서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감사를 연신 듣는 가운데,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리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위들을 스윽 돌아보았다.
'무자비하면서도 친절한….
자신의 주인이자 가르침을 구한 스승은, 그런 두 가지의 모습이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 * *
밤이 깊은 시간.
승객들이 하나둘씩 잠들어가는 와중에도 열차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탄수차에 석탄을 밀어넣는 인부와 기관수만이 교대로 일을 하는 시간을 가질 뿐.
그런 늦은 시간에도 리나는 셰인이 내어준 과제를 수행하고자, 랜턴의 불빛에 의존하며 제 앞에 있는 서적의 내용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정리를 하고 있었다.
"도련님, 이 부분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반대편에서 개인적인 연구를 하는 스승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렇게 평소처럼 질문을 건네려 했지만, 정작 돌아오는 대답은 조용한 숨소리 뿐.
"도련님?"
-털썩.
턱을 괴던 손이 미끄러지듯 기울어지고, 이내 셰인의 머리가 책상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럼에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리나가 어쩔 줄 몰라하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앞에 있는 책들을 하나 둘 씩 정리해갔다.
'그러고 보면 도련님께선 수면시간이 무척이나 짧으신 편이니까.'
수면시간은 하루에 2~3시간 정도.
그 외의 시간은 개인적인 연구와 자신의 교육에, 그리고 제 몸을 단련하는 데에 투자를 하는 상태.
불과 저녁시간만 해도 저녁식사를 가지고 오자, 방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던 사람이다.
'신성력을 통해 수면시간을 줄일 순 있다고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도련님의 수면시간은 보통의 사제들보다도 훨씬 짧은 편이에요.'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무엇을 이루려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고자 했는지도.
'사실은 순수한 학구열만으로 따라붙었다곤 할 수 없었는데, 말이죠.'
그저 시종으로써 따라가고자 한다면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 뻔하니까.
그러니 무엇이건 그를 따라가 보필할 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 명분이 마침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을 뿐.
그런 계기를 마련한 자는, 지금 이 순간 리나에겐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로써 다가오고 있었다.
시종과 주인으로서도, 스승과 제자로서도 아닌…….
'이 감정은 뭐라고 정의를 해야 할까요?'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그저 그를 마주할 때면, 그리고 누군가를 직접 치료하는 모습을 보일 때면 그것이 더욱 도드라지는 게 느껴질 뿐.
"잘 모르겠군요. 제 주인이 된 분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게 옳은 일인지."
이내 리나가 팔을 한데 모으고, 피로에 젖은 고개를 숙여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잠을 청하고 있는 제 주인이자 스승의 얼굴을.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녀의 머릿속엔 당시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아이를 품었을 때.'
그레이스가 낳았던 아이가, 온몸이 기형이나 다름없던 아이가 그의 손에서부터 차차 바로잡히고, 이윽고 울음보를 터트렸던 그 순간.
그 당시에 그의 손에 비춰졌던 그 빛으로부터, 리나는 성경 속에 적힌 '흙으로 인간을 빚는 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정말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저런 식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라고…….
-덜커덩!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리고.
그 직후 두 사람이 위치한 방에 누군가가 난입해 들어왔다.
"내려라."
랜턴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험상궂은 눈빛, 그리고 검은 복면.
무언가 위험하다는 걸 직시한 리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에게 경계심을 표출했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저희가 대여한 객실입니다. 이런 식으로 침입해 오는 건……."
-철컥.
금속의 마찰음.
그와 함께 그의 손에 쥐어진 무언가가 리나의 머리로 향해졌다.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
하지만 그 앞에 뚫려있는 구멍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존재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
총기.
그중에서도 실린더에 탄을 넣고 쏘는 '리볼버'라 불리는 물건으로, 제국 내에선 엄연히 유통이 금지된 무기다.
"죽고 싶지 않다면 내리는 게 좋을 거다."
'열차에 강도단이 숨어들었다.'
그 사실을 파악하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 * *
강도.
제국의 중심지대에선 그 존재가 매우 뜸한 상태다.
중심지역엔 황실이 위치한 제도는 물론이고, 3공작과 더불어 골드리안과 같은 고위귀족들이 다수 포진해 있으니까.
반대로 변경지대는 그런 권위자들의 관심이 적은 편.
그렇기에 치안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만큼, 각 지역을 오가는 통행자와 상인들에게는 그들을 차단할 호위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열차에 탑승한 호위병력의 숫자는 무척이나 적은 상태.
감히 이 거대한 철의 마차를 털어먹으려는 담이 큰 이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리지 않는다면 발포하겠다."
-탕! 타앙!
경고의 뒤를 이어 울려 퍼지는 총성.
그와 함께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방 밖에서 연달아 울려 퍼졌다.
총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달려들다 된통 당한 것이리라.
'이건, 꽤 위험한 상황이네요.'
마나유저라면 강체술을 이용하여 총알 정도는 막을 수 었지만, 애초에 마나를 다루는 법은 귀족이나 돈이 많은 자재, 혹은 군인들이나 겨우 익히는 것이다.
대다수의 민간인은 마나를 다루는 법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
즉, 총기란 마법보다 위력이 떨어질지언정, 민간인과 같은 비마나유저를 더 효과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응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겠죠.'
그렇게 얌전히 투항하며 복도로 나오니, 고급실의 승객들이 바닥에 무릎을 굽혀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몇 사람을 살해한 듯 보이기까지.
그들에게 반항하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뭐야, 방에 있는 건 그 여자 하나뿐이야?"
"아니, 밖에 한 녀석 더 있는데 아직 잠들어 있어."
이후 복도로 나오자 다른 강도들이 리나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에서 희미하게 엿보이는 음흉한 눈길…….
"호오, 이거 꽤 상등품인데? 귀족출신인가?"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얼굴을 꽤나 반반하군. 소녀 취향인 변태들이 좋아하겠어."
-빠직.
자신을 보며 으스대는 강도의 말에 발끈하는 리나.
엄연히 성인인 자를 두고 애취급을 하면 누구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니, 지금은 이런 걸로 화를 낼 때가 아니에요.'
열차 전체가 마비된 상황.
아마도 어느 정도 가다 보면 그들이 좋을 대로 이끌릴 테고, 그렇게 열차 내의 수화물과 승객 모두 그들에게 좋을 대로 이용될 것이다.
그들 모두를 구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할 터.
'하다못해 도련님이라도…….'
이 한 몸을 던져 그를 지켜내자. 그렇게 판단을 마치며 날뛰어보려는 순간.
-콰차아앙!!
배후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
그와 함께 일동의 관심이 리나가 빠져나왔던 방 쪽으로 향해졌다.
"갸아아아악!!"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것은 누군가의 비명.
그 소리가 차차 줄어들다 이내 완전히 잦아들었다.
마치 그 비명을 지른 자가 열차의 안에서부터 밖으로 빠져나간 듯이.
"무슨……."
"야이, 씨발."
이후 방에서 빠져나온 것은 금발에 사제복을 걸치고 있는 남자…….
리나는 그가 자신이 섬기는 이임을 알았지만, 정작 그 모습은 그가 잠들기 전에 보였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 된 상태였다.
"니네는 씨발, 집구석에서 잠자는 사람 깨울 때 대가리에 총빵부터 놓으라고 가르쳤냐? 한참 잘 자고 있는 사람한테 대체 뭔 지랄을 하는 거야."
충혈 된 눈동자에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구부러진 이맛살.
그러한 얼굴로 현장에 들어선 셰인은 제 시종이자 제자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한참 잘 자고 있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녀석과 더불어, 그와 비슷한 짓거리를 하는 녀석들을 때려눕히는 것뿐이었으니까.
"저 녀석은 또 뭐야!"
"해치워!"
-타앙! 까강!
총성, 그리고 몸에 닿기 무섭게 튕겨져 나가는 총알.
불똥과 함께 찌그러지며 산발하는 납탄을 본 그들의 얼굴에 경악이 그려졌다.
"저 새끼 마나유저다!"
"별거 없어! 강체술이라면 동시에 사격하면……. 케헥!!"
마저 대응을 하려는 것도 잠시. 셰인이 제 손에 감겨진 붕대를 집어던져, 선두에 있는 녀석을 제 앞까지 끌어당겨왔다.
그대로 목이 쥐어진 채로 코앞까지 끌려온 강도.
"이봐요 형씨."
셰인이 이를 빠드득 갈며 그를 향해 분노를 토해내었다.
"내가 진짜, 자는 시간까지 쪼개가면서 연구다 운동이다 하면서 아주 바쁜 몸이거든요?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야밤부터 개난장을 치는 겁니까?"
"이, 알게 뭐야!! 당장 놓아줘!!"
셰인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버둥을 치는 강도.
그를 심드렁한 눈으로 쳐다보던 셰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 손을 휘둘렀다.
"알았어, 놓아줄게."
"뭐? 잠깐!!"
-와장창!!
그대로 열차의 복도에 뚫린 창문으로 던져지는 강도.
"갸아아아아아……."
차차 멀어져가는 비명소리에, 현장에 선 모든 이들의 얼굴이 차차 창백한 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