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77화 (177/255)

의무병의 환생 177화

"도련님!?"

"괜찮아. 사람은 이 정도로 안 죽어."

달리는 마차에서 굴러 떨어져도, 대체로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으면 불구가 되고 마는 법.

마찬가지로 이 열차의 속도는 마차보다 조금 더 빠른 수준으로, 힘조절을 해서 던진다면 죽을 일은 없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네."

반대로 불살주의자인 그의 자비는 딱 죽지 않을 정도에서 그친다.

셰인이 리나의 어깨를 잡고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리나. 응급처치법은 익혀뒀지?"

"네, 네?"

"내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 좀 간호해줘. 목숨만 붙어있으면."

당황하는 리나를 뒤로하며 제 손가락을 푸는 셰인.

"제대로 된 치료는 가정교육도 못 받은 후레새끼들을 처리한 후에도 늦지 않겠지."

뚜두둑.

몸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관절의 마찰음.

한 강도가 벌벌 떨다, 이내 통하지 않는 총을 내버리며 나이프를 빼들고 달려들었다.

"이,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떠드는 거야! 너 혼자서 여기 있는 놈들을 어떻게 다……."

-콰차앙!!

나이프가 몸에 닿기도 전에 튕겨져 나가 창문 밖으로 떨어지는 강도.

1초 채 되지 않는, 정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강도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어졌다.

셰인이 그 중 한 강도에게 다가서며 제 손바닥을 펼쳤다.

"자, 잠깐, 뭘 하려고……."

-짜악!

그대로 따귀 한 대.

입술이 터지며 볼이 부풀어 올랐지만, 세인은 멈추지 않고 고개를 숙인 이의 안면에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케, 케헥, 그, 그만……."

"못 버틸 거 같냐?"

"제,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 나 죽겠……."

-콰차앙!!

"갸아아아아아아!!"

용서를 구하기 무섭게 창밖으로 냅다 던져지는 강도.

이후 셰인이 나머지 강도들을 쏘아본 순간, 어쩔 줄 몰라하는 강도들이 총구마저 내리며 제 몸을 떨어대었다.

"야 너희들."

셰인이 그들을 쏘아보며 제 손가락을 벽쪽으로 향했다.

"거기 옆에 벨 보이지?"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종.

저 종을 울리면 금속이 튕기는 소리가 울리고, 그것이 기관실에 전해져 직원들을 호출할 수 있게 되는 구조였다.

셰인이 그 벨을 가리키며 말했다.

"맞다가 뒤질 거 같으면 벨 눌러. 내리게 해줄 테니까."

내리게 해준다니…….

-덜커덩.

달리는 열차 안인데 어디에?

* * *

-땡땡땡땡땡!!!

기관실 내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벨소리.

그 뒤를 이어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더불어, 끔찍한 비명소리가 창 밖에서부터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아아악!! 아파요!!"

"아악! 살려줘어어어!!"

누가 들으면 창밖으로 내동댕이라도 치는 줄 알겠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가죽 옷의 사내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들, 제압만 하라니까 아주 신나게 날뛰고 있군."

손에 쥐고 있는 대구경의 리볼버가 바닥에서부터 거두어진다.

그 밑에 고꾸라져 있는 시체 한 구.

부서진 머리에서 비롯된 혈향이 기관실 내에 자욱이 퍼지는 가운데, 총을 쥔 남자가 깔깔 웃으며 제 팔을 들어올렸다.

"나쁘지 않아. 그래! 이런 물건을 털어먹으려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시작만은 은밀하게.

하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 화끈하게 벌이며, 뒷수습은 그때 가서 생각하도록 한다.

그와 같은 강도들에게 있어선 가히 인생의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일이다.

"기관사 영감. 궁금하지 않아? 이 열차가 멈춰 설 때쯤엔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지."

씨익, 미소를 지은 남자가 열차의 관리장치를 앞둔 기관수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이 열차에 있는 물자는 물론, 승객들 역시 하나 같이 '좋은 상품'으로 쓰일 예정이니까.

물론 저항을 하는 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사살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마 이 열차가 멈춰 설 때쯤엔 반절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총'이라는 무기는, 아직 제국의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대체, 이런 짓을 하는 이유가 뭔가."

늦은 밤, 오롯이 홀로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수가 힘겨이 그를 향해 물었다.

이미 열차의 점거가 끝난 마당에도 핏대를 세우며 일갈하는 노인.

남자는 그에게만은 관대함을 보여주었다.

이 열차를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끌 수 있는 건 기관수가 유일했으니까.

"무슨 이유긴. 돈이 되니까 하는 거지."

"고작 그런 걸로……!!"

"고작 그런 거?"

딸칵.

리볼버의 탄창이 열리고, 그 안에 비어있는 탄피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섬뜩함이 느껴지는 금속음.

남자는 그조차 익숙한 듯, 제 리볼버에 총알을 하나씩 밀어 넣어갔다.

"기관수 영감. 내 고향에선 남의 것을 뺏는 데에 목숨을 거는 게 일상이었어. 리바이던에선 그러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리바이……?"

"아, 혹시 리바이던이 어디인지 알고 있어?"

"……."

"하하, 그야 모르시겠지~ 중심부에서 편히 살던 사람이 변경 깡촌에 관심을 가질 리가 있겠어?"

아니, 몰라서 침묵한 게 아니다.

한때엔 보안관으로서 제국 곳곳을 배회하고 다녔던 몸.

그 성과를 인정받아 열차의 기관수까지 맡았을 정도로, 변경지대에 대한 소식엔 귀가 밝은 편이었다.

'리바이던이라니, 거긴 무법지대가 아닌가?'

제국에서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는 사건과 재난…….

그중에는 몇몇 귀족이 작당하고 반란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며, 리바이던은 그런 반란시도가 실패하여 제국에서도 버려지게 된 땅이었다.

그것이 벌써 50년도 전의 이야기.

그 당사자들은 반역죄로 처형당했지만, 제국에선 그 땅에서 벌어진 문제를 축소시킨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관리 하나 파견하지 않은 상태였다.

즉, 그곳은 반세기 이상 누구의 관리도 받지 않은 무법지대라는 것.

제 배후에서 총을 장전하는 자는, 그런 무법지대에서 이름을 날린 '범죄계의 거물'이라 불리는 자였다.

"리바이던의 검은 사신 리퍼가 바로 이 몸을 부르는 이름이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기억해 두라고. 크하하하!"

리퍼 더 반데드.

리바이던의 검은 사신.

그런 자가 제 배후에 있다는 사실에, 기관수는 차마 제 말을 더 이어가지 못하였다.

'이런 거물이 열차에 무기를 감추고 숨어들다니, 대체 관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국가관리 측에 협력자가 없는 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그에 속으로 오열을 지르는 가운데, 마침 기관실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발을 들였다.

객실에서부터 리퍼의 명을 듣고 난입한 부하 한 명.

그를 마주한 리퍼가 피식 웃으며, 제 손에 쥔 리볼버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오오, 그래. 마침 오셨나 보군."

부하의 손에 쥐어진 것은 어린아이 한 명.

그 아이를 쥔 손은, 이미 일을 저지른 듯 피로 덧칠해진 상태였다.

"으아앙!! 엄마아아! 아빠아아아!!"

아이는 그저 제 부모만을 애타게 부르짖을 뿐.

리퍼가 그런 소녀를 보며 깔깔 웃고는, 제 손에 쥔 리볼버의 총구를 겨누었다.

"기관사 영감. 내가 영감을 살려준다고 해서 태도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심기가 불편해지면 상품을 시체로 만드는 병이 있거든."

"이, 악마 같은 녀석! 애는 놓아줘!"

"워워워~~ 방금 전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심기가 불편해지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니까?"

-파앙!

굉음과 함께 쏘아지는 총탄이 측면의 창문을 깨부쉈다.

흩날리는 파편에 숨을 죽이는 기관수.

그 총알이 소녀에게 날아갔다면, 분명 바닥에 피를 흘리고 있는 제 부하처럼 되었으리라.

"그러니까 허튼 짓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야 이제껏 여럿 죽여 왔으니 더한 개새끼가 될 뿐이지만, 그 장단에 영감님까지 낄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여기서 자신이 일을 저지른다면, 그 순간의 죄는 그 역시 같이 짊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죄의식을 자극하며 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

-콰앙!!

굳게 닫힌 기관실의 문이 대차게 무너지고, 그 틈을 벌리며 누군가가 빠져나왔다.

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소녀를 끌어안고 난입했던 부하.

"뭐, 뭐야, 무슨 일이……."

"됐고, 여기 대가리 누구야?"

난입한 건 자신의 동료가 아니었다.

금발 사제복의 청년.

그 뒤에는 방금 전까지 자신이 들어섰던 칸이 발칵 뒤집어진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고작 수십 초 남짓한 시간 만에, 칸을 점거한 무장병력을 전멸시킨 것이다.

"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콰차앙!!

"갸아아아아……."

인질을 잡던 자가 창밖으로 튕겨져 나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손에서 내팽개쳐진 여자아이를 지나친 셰인이, 수면 부족으로 충혈 된 눈을 쩍 벌려 리퍼를 쏘아붙였다.

"네가 대가리냐?"

"……하하."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난입.

그 상황을 직시한 리퍼가 낄낄대며 리볼버를 쥔 손을 제 배후로 감추었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교묘하게.

"일이 너무 쉽게 풀려서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드디어 재밌는 상대가 나타난 것 같군."

리바이던의 검은 사신.

변경 최흉의 범죄자는, 자신의 계획에 지장이 생긴 이 순간마저 즐겁게 여겨지고 있었다.

* * *

제국 내에서 가장 험난한 장소는 블레이즈…….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국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블레이즈로 밀집시키기 위한 수작에 불과하다.

적어도 리퍼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 리바이던이야말로 이 제국에서 가장 위험하고 험난한 장소라고.

"사제복을 입어서 사제인가 싶었는데, 폭력을 쓰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렇기에 자신의 부하들을 전부 때려눕히고 온 자가 왔음에도, 그는 기세를 잃지 않고 호승심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데려온 떨거지들에 불과할 뿐.

그는 언제나 자신의 힘만을 믿고, 모든 것을 자신 혼자서 처리할 수 있단 확신이 없다면 활동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되나?"

"…우리가 서로 통성명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

"참 부끄러움도 많으셔라~ 그렇게 모질게 굴면 여자들에게 인기 없을 거라고?"

능청스러운 태도 역시도 어디까지나 상대를 도발하며, 그 마음을 흔들기 위한 계략일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리퍼는 그의 모습을 살피고, 그가 가진 전력을 가늠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 쪽은 첫대면에서 인사를 하는 걸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거든."

금발에 사제복을 입은 청년.

그 외에 특이한 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몸이 단련되었지만 그것뿐.

몸에 두르고 있는 마나의 경지도 기껏 해봐야 '2써클'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리바이던의 검은 사신……. 혹시 들어본 적 있으신가?"

고작 2써클로 열차 전체를 점거한 부하들을 전부 때려눕히고 왔다…….

그건 상대가 적은 양의 마나를 효율적으로 다룰 줄 아는 고수라는 의미겠지만, 기껏 해봐야 그게 전부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압도적인 힘의 차이는 꺾지 못하는 법.

"……검은 사신?"

셰인이 졸음이 쏟아지는 머리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방패는 안 사신?"

-퍼엉!!

품에서 꺼내어진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온다.

대구경의 리볼버.

사람의 머리통은 적중하는 순간 산산조각 내버리는 무시무시한 병기다.

그 공격을 자세를 낮춰 피해낸 셰인이 제 몸 곳곳에 마나를 끌어 모았다.

"내가 첫 대면을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그래도 이름 가지고 장난질 하는 건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말이지."

"얼씨구? 난 또 말장난 하자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런 유치한 별명을 진지하게 입에 담은 거였어?"

"이 자식이……."

"됐고, 네가 검을 샀는지 방패를 빠갰는지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한다."

이후 배후로 향해지는 셰인의 시선.

사방 곳곳에 뒤집어진 객실의 곳곳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시체들이 얼핏 엿보이고 있었다.

강도무리 전체를 통제하기에 무리가 있어 내던졌더라도, 사망자가 나오는 건 차마 피할 수 없었다는 것.

"뒤졌다고 복창할 준비나 해."

하지만 그는 이제껏 숱하게 전쟁을 누볐던 몸.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둘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해야 할 건 하나.

"넌 내가 직접 옆에 두고 조질 테니까."

애도의 방식은 처벌로.

그러니 제 앞에 있는 놈은 남은 생을 고통스럽게 보내리라.

그 의사가 다분히 느껴지는 도발에 리퍼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부족한 녀석을 옆에 몸소 둬주겠다니, 이거 몸둘 바를 모르겠군."

지금과 같은 도발은 처음 듣는 것이 아니다.

리바이던에도 저런 식으로 기고만장하게 달려든 녀석들은 두루 있었으니.

그럼에도 자신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그들 모두가 자신의 마지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지금 역시 마찬가지일 터.

"그래 좋아~!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보……."

-콰앙!!!

바로 달려들려던 직후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둔중한 타격.

리퍼가 행동하기도 전, 대치 중인 셰인이 달려들어 그의 배에 무릎 찍기를 먹인 것이다.

두 다리에 집약시킨 마나의 기폭. 그로 인한 반발력은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한 위력을 자아낸다.

"이 새끼가 말을 하는 중에……. 케흑!"

휘청거리는 그의 머리채가 셰인의 손에 붙잡히고, 반대쪽 손이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골이 떨려오는 충격.

그것이 회복되기도 전, 직후에 덮쳐오는 옆구리의 발차기.

"이 색……."

-파악!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팔꿈치 찍기.

그에 휘둘리기도 전, 아래에서 휘둘러지는 주먹이 밑으로 기울어진 그의 안면을 향해 쇄도해왔다.

'막아야 한다.'

그 생각보다도 먼저, 주먹을 쥔 셰인의 손등에 밀집된 마나가 기폭했다.

-콰앙!!

폭발.

그로 인한 가속도에 의해 휘둘러지는 어퍼컷이 턱을 강타하고, 그 직후 밀려나는 몸이 붕대에 휘감겨 셰인의 앞까지 끌려왔다.

-투파팡!!

무차별적인 난타에 터져나가는 파공성의 연속.

그 소음이 이윽고 주변의 창문에 균열을 가할 무렵, 이전까지 가졌던 여유와 방심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이 새끼, 고작 2써클의 마나로……!!!'

리퍼가 이를 바득 갈며 셰인을 쏘아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