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83화
에버그린 블러드메리.
그녀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그녀를 두고 사자의 심장을 먹는 뱀이라고 평하고 있다.
그녀가 강자를 압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닌, 간사한 혓바닥으로 강자들을 굴복시킬 줄 알기에…….
하지만 그건 결코 입담이 좋고, 거짓을 말하는 게 능한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제국에 존재하는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몸이다.'
제국의 핵심인사는 물론이고, 소위 뒷세계라 불리는 곳의 정보까지도.
그녀의 무서운 점은 그렇게 수집한 정보들을 교묘히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이며, 이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제 앞의 권위자들을 무릎 꿇리는 무기로써 작용되기도 한다.
그로부터 비롯된 위협은 황실에까지도 미칠 정도.
그리고 현 골드리안의 가주인 테올린은, 그런 자가 골드리안의 실세로 군림하는 것을 막아내는 데에 성공한 자였다.
그래, 그 당시 치렀던 후계자 싸움은 일종의 방어전과도 같았다.
결코 골드리안에 태어나선 안 될 '마녀'를 가문에서 쫓아내기 위한……. 그저 궁지에 몰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할 뿐인 싸움.
* * *
"조용히 있는지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 이제 슬슬 대화를 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
시계의 똑딱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방 안.
에버그린은 그 안에서 제 배다른 동생이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녀의 친우에게 받은 추천장도 이 순간만은 계기에 불과할 뿐.
그녀가 제 본명을 입에 담은 순간, 이 자리는 셰인에게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전장'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
고심 끝에 그렇게 판단을 내릴 정도로.
그렇게 툭 말을 내뱉고 떠나가려는 셰인을 보며 에버그린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돌아간다니, 그건 악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네가 신경 쓸 바 아니야."
"하하~ 신경 쓸 바가 아니라니. 내가 당신의 정체를 퍼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애초에 쉽게 믿어줄 정보였다면 진작 퍼졌겠지."
자신이 이룬 일들을 보고 의심 정도는 품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제국에선 아직까지 제 정체를 알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단 두 사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자신의 말을 믿어 주리라 여겼던 두 지도자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물러나는 게 악수라고 말하는데,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그런 마당에 자신이 직접 밝히지 않은 자가 이름을 알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지만, 그걸 기미로 자신을 농락하려는 속수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출구를 앞둔 셰인이 에버그린을 스윽 돌아보았다.
눈에 그려진 건 짙은 살의.
"경솔히 입을 놀리다가 문제가 터지면, 당신이 이룬 모든 걸 뒤집어버릴 테니까."
결코 허세 따위가 아니다.
막 환생을 했을 적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제 정체가 밝혀졌을 때에 뒤따라올 책임이 너무나도 컸으니까.
'쌓아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때엔 정말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지금의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적으로 돌리기 싫으면 어중간한 협박은 하지 마라 이건가?"
그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았음에도 에버그린은 별 주눅이 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가소롭다 여기는 것일까?
아니, 그 반대다.
실제로 테이블에 올린 손이 아주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으니.
"역시 당신은 무섭네~"
"마음에도 없는 소릴……."
"내가 거짓말을 많이 하긴 하지만 지금 하는 건 빈말이 아니야. 오라버니는 고집이 쌔서 회유가 어려울 뿐이지, 그렇게까지 두려운 사람은 아니니까."
영향력으로 치면 제국의 세 기둥이라 불리는 '3공작'보다도 큰, 제국의 시장경제를 주름잡는 가문의 가주된 자다.
그런 자를 상대로도 두려운 적이 아니라니.
보통이라면 기가 찰 말이겠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여자는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라고 평해지는 자였다.
"하지만 당신은……. 그래, 이름을 제외하곤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건드리기가 껄끄러운 편이지."
그런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권력자도, 제 앞에 당면한 압도적인 폭력도 아니다.
'정보를 수집할 수 없는 자.'
제국 내에 있는 정보에 해박한 그녀이지만, 그렇기에 제국 외의 존재에 대해서는 신중히 접근하는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이 시대의 사람도 아닌 자라니. 그 미지의 존재에게 신중히 접근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괜히 폭주를 할 수도 있고, 또 내가 회유하다가 역린을 건드려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데……."
가장 최악인 건 제 앞에 있는 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
그것만은 에버그린이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녀는 이 자리에서 그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뭣보다 당신과 싸우는 건 애초에 고려조차 할 수 없으니 더욱 두려울 수밖에."
상대는 이 시대에 유일무이한, 그저 정보전에 능하다는 것만으론 수집할 수 없는 정보를 가진 존재.
200년 전의 인간이라는, 이 시대의 누구보다도 큰 특별함을 가진 자였으니까.
"……."
말없이.
그저 지긋이 에버그린을 쳐다보는 셰인.
비록 말재주가 좋다고 할 순 없는 몸이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감정을 읽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의 말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것이 연기라면 분명 천부적인 연기자란 뜻이겠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돌아가야 할 발걸음을 물려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마음이 바뀐 거야?"
"자세히 얘기해 봐."
다시 자리에 앉은 셰인이 그녀를 째려보았다.
"당신 정도 되는 인간이 나한테 뭘 바라는지."
에버그린 블러드메리.
그녀는 자신을 무척이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경위로 자신의 정체를 파악했는지는 아마 알려주지 않겠지만, 자신에 대한 정보를 퍼트릴 생각이 없다는 건 확실할 것이다.
오히려 그 정보를 홀로 독식하고자 할 터.
그러니 일단은 들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것을 수락하건, 거절하고 경계를 하건. 그건 모두 듣고 난 후에 결정할 문제일 뿐.
"아버지께선 언제나 말씀하셨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알아야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곧 셰인의 말에 에버그린이 대답했다.
이전까지의 진중한 분위기를 해치듯, 특유의 천진함을 스리슬쩍 드러내면서.
"그렇다면 내가 바라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일단 되는 대로 혼란을 일으켜보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어?"
"……자기 목적을 위해 이 제국이 좀 더 시끄러워졌으면 좋겠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이 제국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자신을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고?
"뭐, 대강 그런 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릴.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건 임기응변을 다룬 말이지,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기회를 즐기라는 말 따위가 아니다.
그런 걸 진지하게 한다면 이 여자는 미쳤거나, 아니면 잠재적인 범죄자의 기질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열차에서 마주했던 강도와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광기가.
"대충 보니까 상당히 뒤가 구린 짓을 많이 하는 모양인데……. 그런 것 치곤 영지의 분위기는 꽤나 유쾌하고 발랄하네."
"축제와 장례식은 성대할수록 많은 것이 묻히는 법이지. 그 누가 이 영지의 주인이 된 자가 당신도 경계할 정도로 뒤가 구리다 생각하겠어?"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바로 교수대에 목이 걸릴 일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인간사회에 있어 유희만큼 돈이 되는 사업도 없으니까. 특히나 술은 마진이 가장 잘 남는 사업 중 하나지. 내가 양지에서 벌이는 사업은 주류업이나 불법약물 유통에 비하면 얌전한 거라 생각하는데~"
"그 돈으로 하는 짓거리가 더럽다는 게 문제지.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해도 그 돈이 구린 속내를 정당화시켜주진 않아."
"하지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지. 평민은 물론 상인도, 정치인도……. 사회적 동물이란 결국 물질적인 가치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법이거든."
스윽, 그녀의 손에 쥐어진 부채가 제 입가를 감추었다.
"물론, 전생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당신은 현세의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무가치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만인의 공감을 얻을 줄 아는 권력자의 조력은 당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
잘 안다는 듯이 떠드는군.
어째서 많은 사람이 그녀를 경계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조금만 대화를 나누어도 감정이 멋대로 흔들리는데다, 교묘하게 흘리는 말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유발하니까.
그 관심을 미끼로 삼고, 결정적인 순간에 덥썩 물어 제 식량으로 삼기까지…….
천부적인 사냥꾼이란 이런 존재를 말하는 것이리라.
"……카일 페터슨."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결코 사냥감 따위가 아니다.
많은 것을 아는 그녀조차도 자신에 대해선 경계를 하고 있는 상태.
그 미지야말로 자신의 무기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이 자리에서 그녀에게 마냥 꿇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까 전 당신은 그런 이름을 가진 녀석에게 시킬 일이 있다고 했지?"
로열 나이츠이자 이단자인 셰인 골드리안이 아닌, 200년 전의 인간인 카일 페터슨에게.
그건 그녀가 자신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게, 단순 '이단의 지식'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 200년 전의 인물인 당신밖에 못 할 일이지."
에버그린이 곧 무릎께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물론 무엇을 시킬지는 당장 들려줄 순 없지만……. 당신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당신이 이 제국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기회를 찾고자 혼란을 바라는 사람이 말은 잘하는군.
그런 사람을 신뢰해도 되는지 의심이 들었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상대의 불신이 적의를 가져야 할 이유가 되진 않아요.'
'오히려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사람은 경계해야 하는 법이죠. 진실 된 믿음이란, 의심의 끝에 스스로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생기는 거니까.'
엘레오노라의 말대로다.
믿지 못할 녀석이라 해도, 일단은 그 녀석과 어울려봐야 믿을 수 있을지 말지를 논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마찬가지로 원하는 바가 있다면, 설령 불구덩이 속에라도 들어가야 한다.
"……좋아, 어울려줄게."
-촤학!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부채를 활짝 펼치는 에버그린.
분명 얼굴을 감춘 베일 너머에는 진한 미소가 그려져 있으리라.
"후후,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당신과 이렇게 연을 맺을 기회가 오다니. 나중에 노라에게 감사를 전해야겠는걸?"
많은 것을 아는 그녀라도 자신이 이곳까지 오리란 건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그녀가 자신을 알음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맹을 맺게 되었다는 거니까.
단순히 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정도가 아닌, 로열 나이츠와 마찬가지로 양날의 검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힘을.
"자 그럼 얘기는 이렇게 끝난 걸로 알고, 슬슬 거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자면……."
"아니, 그 전에 잠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것도 잠시.
제지를 가해오는 셰인을 보며 에버그린이 의문을 토로했다.
"어머, 뭐 빼놓은 말이라도 있는 거야?"
"그래, 아주 중요한 걸 하나 빼먹었지."
셰인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제 이마와 턱 부분에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베일."
"응?"
"베일 말이야. 얼굴 감추고 있는 거."
"……."
"……설마 협력자에게 얼굴도 안 깔 생각이야?"
침묵하는 에버그린.
그런 에버그린을 앞둔 셰인이 재차 베일을 까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얼어붙은 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감추는 것들을 치우기만 하면 그만일 텐데.
"어머나~ 숙녀의 비밀을 캐려고 하다니~ 아무리 우리가 협력관계라곤 하지만……."
"걱정마라. 이미 처음 봤을 때부터 턱 돌아간 건 눈치 챘으니까."
-쿵!!
테이블을 내리치는 소리.
이번에는 셰인이 아니라 에버그린이 일으킨 것이었다.
"다, 다, 당신……. 그걸 어떻게!?"
"이런. 이거 역린이었나?"
이전까지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그녀가 이 정도로 당혹을 보이다니.
확실히 베일의 안쪽엔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어느 각도로 보아도 입모양만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근데 이쪽은 뼈를 보는 데에 익숙한 몸이거든.'
턱관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셰인의 육안으로 보건데, 그녀가 가진 '결함'은 귀족의 여인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눈썰미가 좋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눈치 챌 줄이야."
"걱정마라 꼬맹아. 난 딱히 그런 부분에 대해선 편견이 없는 사람이니까."
"꼬맹……."
"그럼 아니냐?"
애초에 제 입장에선 나이 지긋한 노인조차 동갑내기 술친구나 다름없는 상태.
에버그린 역시 경계해야 할 인물이긴 하지만, 나이적으로 보면 그의 입장에선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셰인에게 있어 그녀가 앓고 있는 '선천적인 질환'은 별로 문제될 게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들켰다고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애초에 내 고향에선 그런 건 차별 축에도 끼지 않았었거든. 내가 손 봐줄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히 고쳐줄 의향도 있어."
"……."
"…그래서 대답은?"
침묵한 채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에버그린에게 셰인이 조용히 물었다.
그 물음에 우물쭈물하는 에버그린.
베일을 걷어내려는 듯 손을 올리는가 싶었지만, 그마저도 끝내 다시 내려가고 말았다.
"역시 벗는 건 좀…."
"돌아간다."
"아, 알았어. 보여주면 될 거 아니야!!"
참 재밌는 상황이 아닌가.
이전까지만 해도 강한 척을 하던 그녀가, 제 비밀을 파헤치기 무섭게 우는 소리까지 내다니.
하지만 셰인도 이 이상 무를 생각은 없었다.
신뢰하진 못해도 협력을 하게 된 입장에, 얼굴도 제대로 못 마주보면 앞으로 서로만 피곤해질 뿐이니까.
"…웃으면 안 된다?"
"안 웃어."
거짓말이 아니다.
의사에게 있어, 제 앞에 있는 자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여자도 씰감하는 바일 터.
"……좋아."
곧 에버그린이 제 얼굴을 감춘 베일을 서서히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 * *
"아, 셰인 씨. 용무는 마치셨습니까?"
슬슬 얘기도 끝나겠다.
에버그린의 방으로 향하던 제네릭이, 문득 복도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방으로 나아가는 셰인을 마주하며 인사를 건네었다.
그의 얼굴에 그려진 건 한껏 만족스러운 얼굴.
제네릭이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뭐, 좋게좋게 끝났네요. 리나와는 얘기 잘 나누셨나요?"
"네, 여러모로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대부분은 서로가 섬기는 이에 대한 고충을 나눈 것이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나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니 다행이군.
셰인이 만족스레 웃으며 제네릭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럼 전 잠시 방에서 짐을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제네릭 씨는 제 누님 좀 잘 부탁드릴게요."
"네? 부탁드린다니……."
"제가 좀 심하게 갈궜거든요."
묘하게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돌아가는 셰인.
그를 보던 제네릭이 턱을 괴며 그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갈궜다?'
보통은 괴롭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에버그린이 제 배다른 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다니.
그녀에게 몇 번이고 호되게 당했던 제네릭으로썬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에버그린. 제네릭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이후 그녀의 개인실 앞에 선 제네릭. 노크를 했음에도 정작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의문을 느끼는 가운데, 곧 문틈의 사이로 한 장의 쪽지가 제네릭에게 전해졌다.
[나 아파.]
딱 세 글자만 적혀있는 편지.
제네릭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의 문을 쳐다보았다.
"……아프면 교회에 가셔야죠."
그리고 독대가 끝나자마자 이런 말이 이어지면 꾀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뒤 이어 내어진 쪽지에 묻은 피를 보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코끝에 비릿하게 맡아져오는 혈향. 쪽지에 찍힌 손가락의 지문마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쪽지 곳곳이 붉은 색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그녀의 몸에 피가 날 정도의 상처가 새겨졌다는 의미다.
[나 진짜 좀 많이 아파서 오늘 일 못할 것 같거든? 그러니까 집무실 책상에 둔 서류 정리 좀 대신 해줘.]
"……전 비서가 아니라 변호사입니다만."
곤란함이 느껴졌지만, 그녀가 이런 식으로 일을 내팽개친 경험은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배다른 동생이 이 영지에 오자마자 이런 변화가 일어나다니.
'셰인 골드리안. 당신은 대체…….'
은연 중, 그를 향한 존경심이 한층 더 승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