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85화 (185/255)

의무병의 환생 185화

'앞으로 1달 후에 사교회가 열릴 예정이야.'

블러드메리 본가의 뒤뜰에 위치한 연병장.

그곳에서 리나와 함께 수련을 하는 중, 셰인은 에버그린에게 들었던 지시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교회?'

'그래~ 변경지대에 얼마 없는 높으신 분께서 주기적으로 제공해주는 만남의 장이지.'

후작가문 체펠리.

대체로 중심지대에 밀집된 고위귀족들과 달리, 변경지대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후작의 작위를 하사받은 가문이었다.

그 역할은 광활한 변경지대에 상주하는 귀족들을 규합시키는 것.

황실에서의 직접적인 지원까지 받는 가문인 만큼, 그 가문이 주도하는 모임은 변경 출신의 귀족들에겐 중대한 행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당신의 협력을 바라면 나도 그 사교회에 따라가라는 거야?"

'공교롭게도 달링은 공부를 위해서 타지에 가있는 상태거든. 마침 달링을 대신해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에 딱 부합되지 않겠어?'

'……달링?'

'아이 참~ 그거야 내 사랑하는 남편을 말하는 거지~! 부끄럽게 그런 걸 내 입으로 말하게 만들고……. 우리 동생도 참 심술궂다니까?'

속에 누가 들어있는지 뻔히 아는데 누가 네 동생이냐.

남편을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일단 서자라곤 해도 엄연히 후작가의 일원이니까, 사교회의 동행자로써 필요한 위상은 충분하겠지. 그러니까 그때가 오기 전까진 최대한 힘을 길러두도록 해.'

'뭐?'

'사교회에 참여하기 전까지 힘을 길러두라고 했는데 왜?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자각은 있나 보군.

귀족들의 사교회라고 하면 보통 춤을 추거나, 뷔페식을 즐기며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관례일 터인데.

'설마 거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거나 하는 거야?'

'딱히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대비를 해서 나쁠 것 없으니 그런 것뿐이지.'

'…대비라니, 뭘?'

'모든 상황에 대해.'

이야기는 거기서 끝.

그 후에도 몇 번 찾아갔지만, 에버그린은 최대한 무력을 키우라는 말을 제외하곤 아무런 정보도 내어주지 않았다.

신중한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숨기는 건지.

'이유가 두루뭉술하긴 하지만, 뭐가 됐건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건 좋게 볼 일이겠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셰인은 제 제자인 리나를 옆에 둔 채 과녁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어 보였다.

이제까지의 수행을 통해 각성한 마나회로 1써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이게 매직미사일."

손가락 끝에서 쏘아진 무형의 덩어리.

그것이 훈련장에 배치된 과녁에 부딪치며 '퉁'하는 소리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건 염동력."

그 뒤를 이어 두둥실 떠오르는 돌멩이가 그 옆의 과녁으로 던져진다.

하지만 그 힘은 매직미사일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

돌멩이는 과녁까지 다다르지도 못한 채, 모래더미 속에 툭 떨어지고 말았다.

셰인이 피식 웃으며 제 어깨를 으쓱였다.

"이 두 가지가 1써클의 마나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이지."

"……생각했던 것보다 그다지 강력하단 느낌은 들지 않는군요."

"당연한 거야. 마나라는 건 의지에 반응하는 힘이니까."

제어 하에 놓인 마나는 육체의 내부에서, 그리고 육체에 가까울수록 사용자의 의지를 더욱 잘 받아들인다.

반대로 퍼트린 마나는 멀어질수록 의지의 소실도 가속화되는 법.

마나를 뭉쳐 쏘는 매직미사일은 물론, 염동력 역시도 멀리 있는 것을 띄울수록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 신체와 직접적으로 맞닿은 도구를 사용할 경우……."

-파앙!!

돌멩이나 마나의 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경쾌한 소리.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진 붕대가 과녁을 강타한 후, 셰인의 손 위로 되돌아와 춤을 추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마나가 가는 길을 도구를 이용해 다져서, 마나의 소실을 어느 정도 줄이며 효율적으로 운용을 할 수 있게 되지."

"검사들이 검에 마나를 불어넣어 오러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원리인 거군요."

"바로 맞췄어."

이로 인해 마나유저들은 각 사용방식에 부합되는 도구를 기용하는 것을 기초로 삼는다.

마법사들은 마나의 적응력이 높은 지팡이를, 기사들은 검을, 활잡이들은 활을…….

그건 셰인의 조국에 소속된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바였다.

"하지만 지금부터 너에게 가르쳐줄 기술들은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을 예정이야."

"그건, 의술이란 맨손만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기술이란 건가요?"

"도구를 이용하면 부족한 힘을 보강하거나 적용범위를 늘리는 데엔 도움이 되겠지만, 그만큼 제어능력이 떨어져서 운용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

물론 수행이나 부족한 실력을 충당하고자 도구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이 제국은 아이헨발트가 아니었다.

필요한 도구를 상황에 맞춰 손에 넣을 수도 없고, 일일이 만들자니 얘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니 필요한 걸 그때그때 사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맨손을 마나로 벼려내, 도구를 대체하는 법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구하는 건 기사와 같은 견고함도, 마법사들이 일으키는 광범위한 현상도 아니야. 세세하고 정밀한 시술……. 그걸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건, 오직 맨손으로만 가능한 일이지."

그 점을 일러준 셰인이 곧 리나에게 한 권의 책을 내어주었다.

제국에서도 흔히 도는 마법학 개론.

일단은 마나를 다루는 기술인만큼, 기초단계에선 반드시 익히고 가야 할 학문이었다.

"기본은 가르쳐 줬으니까, 당분간은 그걸 보면서 자습하도록 해. 나도 옆에서 훈련하면서 간간이 상태를 봐줄 테니까. 그 정도면 혼자서도 가능하겠지?"

"아, 네! 해보겠습니다."

자습이야 이제까지도 늘 해왔던 것.

오히려 자신의 수행을 봐준다는 데에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렇게 리나의 곁을 벗어난 후, 셰인이 훈련장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으며 호흡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자, 그럼……. 이쪽도 슬슬 훈련을 시작해 볼까?'

리나의 훈련을 진행하는 동안 셰인 역시도 개인적으로 힘을 길러온 상태.

그리고 그 속도는 블레이즈나 골드리안에 있을 적보다 비약적으로 빠른 상태였다.

범죄자 소탕이나 연구 등,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만큼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숨을 가다듬고…….'

곧 셰인이 제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찌른 후, 그 상태에서 이를 악 물며 제 몸 곳곳에 힘을 집중하였다.

'혈도 개방, 7써클.'

후우웅.

굉음과 함께 주변의 모래가 미미하게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제 한계에서 3단계나 높은 경지. 억지로 회로를 개방시킨 만큼 몸에 받아들인 마나는, 제 의지의 한계를 벗어난 채 체내에서부터 격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을 외부로 방출시키지 않게 막는 압박감은 마치 무거운 물건에 깔리기 직전의 근육과 같은 법.

제 몸이 눌리지 않기 위해선 무의식적으로 힘을 실어 넣는 법이며, 그런 과정도 자칫하면 근파열이나 호흡 곤란 등의 문제를 야기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흐름에 휘둘릴 경우, 마나의 물리력이 신체 내부를 헤집는 '리바운드' 현상에 노출될 위험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 내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 믿고 있다면…….'

그래, 제어의 어려움으로 몸에 손상이 가해진다 한들, 지금의 그에겐 빛이 함께하고 있다.

의지에 기인하는 빛은 끊임없이 육체에 가해지는 위해를 완화시켜 주리라.

그 믿음을 굳게 다지며 호흡을 다스리는 걸 반복하니 빛이 선명해지고, 거칠었던 호흡이 차차 안정적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혈관을 팽창시킬 기세로 마나가 날뛰고 있지만, 그 또한 지금에 와선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수준.

-드득.

그 힘이 퍼지지 않도록 억제하고, 최대한 혈관에 흐르도록 유도를 이어가니 쇄골 부근에서 격한 자극이 일어났다.

-드드득.

마치 막혀 있던 게 뚫린 것처럼.

그 감각이 이내 최고조에 올랐을 때, 셰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드디어…….'

원하던 경지에 이룩하였다.

그것을 자각한 셰인이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눌러, 강제로 열은 혈도를 틀어막았다.

자극을 받은 혈도가 닫히며 마나의 흐름은 안정적으로…….

하지만 그 이전과는 큰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5써클.'

4써클이었던 제 경지가 5써클로 상승하였다.

심층부를 누비기 직전에 4써클로 상승했으니 사실상 1년 반 만에 이루어낸 셈.

'터무니없는 성장이로군.'

대개 5써클이 범인은 평생 도달하기도 어려운 경지임을 생각하면, 20세에 5써클에 도달한 건 시대에 하나 뿐인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훈련법이 혁신적이라 한들 이렇게나 성장속도가 증폭되다니.

'이 훈련법이 알려진다면 학계는 완전히 뒤집혀지겠지.'

물론 신성력이 없다면 자폭기나 다름없는 만큼 보편화엔 무리가 있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현재엔 자신만이 넘볼 수 있는 수련법이라는 것.

이를 잘 다스린다면 남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성장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론상 3년. 아니, 좀 더 무리하면 1년 내로도 6써클까지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6써클.

인간의 한계라 평해지는 경지이자, 전생의 마지막에 도달했던 경지.

그만한 경지를 고작 21살의 나이에 달성한다는 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해.'

셰인은 그런 비약적인 성장조차 차마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목표로 하는 자는, 그저 남들보다 빠른 성장 정도로는 이겨낼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훨씬 강해져 있겠지. 나와 달리 그 아이는 계속 검에만 집중을 할 테니까.'

조급함마저 느껴졌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그녀와의 겨룸에 한해선 혈도개방을 봉인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그녀와의 싸움은 카일이 아닌 셰인으로서 치르는 것.

그러니 그 싸움에선 전성기의 전력은 물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리를 강행하는 것도 피해야만 한다.

'노린다면 한계를 넘어서는 게 아닌, 한계의 역량을 늘려야 한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몇 써클에 오르건, 그녀 역시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자질을 빌어 더욱 높은 경지를 이룩할 테니까.

그래,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선 단순히 경지를 올리는 것만으론 부족할 것이다.

'그래, 부족한 힘을 커버하려면……. 역시 기술이겠지.'

셰인이 슬며시 제 손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전쟁터에 몰리는 강자들, 그 파도가 거세질수록 느끼는 타고난 재능의 한계, 그리고 책임…….

기술을 익히고 연마한다는 건 그런 삶을 보내온 셰인에겐 익숙한 일이었고, 그건 새로운 기술을 고안하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일단 돌이켜봐야겠지. 지금의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셰인은 이 순간을 빌려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보았다.

전생과 현생.

그 두 개의 삶을 겪으며 익혀온 모든 것과 그 시작점을.

* * *

'태생은 고아에 한량.'

슬럼가를 전전긍긍하던 삶을 살아온 그는,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바라고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에서는 자신과 같은 쓰레기라도 출세의 길이 열려있으니.

'그땐 대충 굴러다니는 무기들을 휘두르고 던지는 게 전부였지.'

빈말 없이 당시엔 손에 쥐는 건 닥치는 대로 던지고 다녔다.

그 덕에 개싸움과 더불어 투척 기술 하나는 무척이나 뛰어났던 편.

하지만 그것도 전쟁이 가속화되자 한계에 달했고, 끝내 윗선의 미움을 산 나머지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작전에 참여해 죽기 직전까지 밀렸다.

'그 이후에는 스승님에게 구해진 후 돌격대에서 좌천되어 의사로 전향했었고…….'

적을 죽이기 위한 싸움에서 아군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그만큼 전투법 역시 방어 위주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그의 전투방식 역시 호신술로 굳혀지게 되었다.

다만 호신술이라 해도 막싸움을 했을 적과는 비교도 안 되는 노력이 들어갔다.

무기 하나 없이 전장을 누비고, 아군과 자신을 모두 살려낸다는 건 그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취지로 익힌 호신술로, 애초에 제국의 검을 이기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겠지.'

코웃음이 친 셰인이, 곧 제 기억을 전생에서 현생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신생아였을 적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나마 집중하여 마나회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그 후 라인하르트 가문에 신세를 지며 절개술의 내구도를 높이는 '무검술'을 익혔다.

그 후 블레이즈에서는 전생에 해본 적도 없는 다양한 기술들을 익히고, 약학에서 파생된 생활의약품과 생필품의 제조, 그리고 한 반란군이 장착하던 기계팔에서 착안한 의료공학…….

'그러고 보면 드레이크 씨에게 의수를 만들어주기도 했었지.'

드레이크 나저러.

당시 신세를 졌던 항해선의 선장에게, 셰인은 제 나름의 지식을 살려 조잡한 의수를 만들어준 적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활용 없이 지식만을 살려, 태생의 한계로 고통을 받던 소녀의 재능을 개화시켜 준 적이 있었다.

'코델리아, 그 애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영지에 복귀했다면 일라이와도 만났겠지.

그런 식으로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리니, 당시 함께 있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레온은 아마 제국으로 복귀했을 테고 베르디는……. 잘 모르겠네. 제국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그녀가 가진 힘은 상당히 이질적이니까.

하지만 분명 괜찮으리라.

그 당시 함께 있었던 성직자들은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당시 주근깨라고 불렀던 소녀를 포함해서…….

'아니, 주근깨가 아니라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곰곰이 생각하던 셰인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걔는 만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제 마음을 포기하고자 했던 때와 달리, 지금은 그 마음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그래, 그 마음을 밝히면 분명 상처를 입겠지.

"……수행에 집중이나 하자."

이내 찝찝함을 털어낸 셰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제 손에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니 무엇을 기점으로 수행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으면 일단 초심으로.'

그 일념이 담긴 돌멩이가 그의 손끝을 타고, 이윽고 멀리 있는 과녁을 향해 던져졌다.

그리고…….

* * *

"오빠도 참 열심히 하네~"

훈련장의 휴식처.

그곳의 난간에 기대고 있는 가면의 여인, 루미네가 셰인을 보며 자그마한 웃음소리를 흘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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