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87화 (187/255)

의무병의 환생 187화

사교회.

셰인에게 있어선 '술 먹고 춤을 추는 곳' 정도로 여겨지는 곳이지만, 귀족들에게 있어선 기회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제 영지에서만 보내는 귀족들이 쉬이 갈 수 없는 곳이나, 제 작위로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급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으니까.

요컨대 이 현장에선 각 귀족이 가진 수완과 인맥에 따라 단순 유희가 될지, 혹은 제 권력의 기반을 다지는 기회가 될지가 결정된다 할 수 있었다.

'그거야 테올린에게도 들었다만……. 설마 이 정도로 규모가 클 줄은 몰랐네.'

저택이 아닌 궁전.

그 주변을 둘러친 성벽 안의 정원과, 그 곳곳에 가득 채워져 있는 수천 단위의 귀족들.

복장은 물론 분위기도 전부 제각각이지만,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꾸미고 왔다는 걸 다분히 느껴지고 있었다.

마냥 사치스럽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값비싼 보석과 장인이 만든 드레스 등등…….

그 모든 것은 천 마디의 말과 수천 장의 서류보다도, 그들이 가진 권위와 재산을 증명하기 쉬운 수단이었으니까.

"친애하는 변경의 지도자들이여."

그렇다면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과연 얼마나 큰 권위를 가지고 있을까?

곧 셰인을 포함한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성의 상부에 배치된 테라스로 향해졌다.

풍성한 털이 달린 망토를 두른 근엄한 인상의 남성.

망토 곳곳에 박힌 금박과 다채로운 색의 보석은, 각자 최선을 다해 몸을 치장한 귀족들의 이목조차 사로잡을 정도였다.

가레스 체펠리.

황실의 지원 아래 변경의 귀족들을 모으고, 그들의 규합에 힘을 쓰는 남자다.

"각자의 중요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먼 땅까지 온 그대들의 방문을 내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네. 내 그대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의 성의를 베풀었으니, 모쪼록 마음껏 즐기고 가주시게나."

목소리는 우렁차되 연설은 짧게 끝낸다.

정치적인 교류로 이어진다 해도 주목적은 유희에서 비롯된 것.

그 여흥에 지나친 설명이 해가 되는 걸 생각하면, 가레스는 누구보다도 유희란 개념을 잘 이해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뭐, 실제로도 대충 준비하진 않은 것 같고.'

연회의 무대가 되는 성 내부의 인테리어는 물론, 정원에 배치되어있는 식사들까지.

과거 아이헨발트에서 장교로서 왕가의 연회에 초청된 적이 있었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것은 그때 마련되었던 것보다도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변경귀족 몇 명이 관리하는 영지만 합쳐도 작은 나라 정도는 되니 당연할까?

새삼 제국 땅이 얼마나 큰지가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 둘러보기만 하네~ 눈치 볼 거 없이 먹어도 되는데 말이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연회장을 누빌 무렵, 옆에 선 자가 셰인에게 툭 말을 던졌다.

마치 촌놈 마냥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는 게 한심스러워 보였던 건지.

살짝 눈살을 찌푸린 셰인이, 이 사교회에 자신을 데리고 온 장본인을 째려보았다.

"눈치를 아예 안 볼 수는 없지. 일단은 귀족으로서 온 건데."

"오우, 오빠에게 귀족의 예의범절을 여럿 배웠나 보네~ 우리 동생 참 기특해라!"

누가 보면 아직도 10살 꼬맹인 줄 알겠다.

그 알맹이는 그녀보다도 두 배는 나이를 먹은 사람이건만.

"그런데 오빠가 이건 안 가르쳐줬나봐? 자고로 귀족이 된 자라면 만찬을 앞두고 남의 눈치만을 보면 안 되는 법인데."

"……무슨 의미야?"

"그야 대륙 곳곳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자리는 흔하지 않으니까."

정원과 건물 내부.

그 테이블의 곳곳에 올라온 건 순수하게 가레스 후작이 준비한 게 아닌, 각 영지의 상징이 되는 음식의 레시피를 받아 만든 것이었다.

즉 이 사교회에서 제공되는 음식들을 먹는 건 제 고향 외의 지역의, 그 문화를 체험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대부분의 시간을 제 영지에서만 보내는 귀족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좀 더 많이 먹겠답시고 먹던 걸 토하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지금은 양식을 소중히 여기라는 교단의 가르침 때문에 폐기된 문화지만."

"아, 그러냐?"

교단이 제국을 지배하기 전엔 그런 문화가 있었다는 건가.

수백 년 전이었다 한들, 위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야만인이 따로 없을 정도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교단도 아주 개새끼는 아니라는 건가.'

피식, 웃음을 터트린 셰인이 뷔페식을 즐기는 에버그린을 스윽 돌아보았다.

"그건 그렇고……. 그거 슬슬 벗어도 되지 않아?"

베일의 밑에서 입을 감춘 마스크를 슬쩍 내리고, 거기에 포크를 가져가며 식사를 하는 모습.

누가 보더라도 불편하다는 게 다분히 보였지만, 정작 에버그린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메인 디쉬는 에피타이저 후에 먹어야 하는 법이지."

"메인디쉬?"

"그런 게 있어~"

그리 말하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에버그린.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그녀의 사정이니 일단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오우, 이거 블러드메리의 안주인님이 아니십니까?"

그렇게 곁에 선 채 얼마쯤 어울렸을까?

몇몇 귀족들이 에버그린이 있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오기 시작했다.

눈가를 감춘 가면을 쓰는 귀족들.

에버그린과는 다른 방식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지만, 사교회에서는 별로 문제가 된다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굴의 일부를 감추어 특정 부위의 개성을 돋보이는 것 역시, 코디네이트의 일종으로 취급되고 있으니까.

"어머나~ 헬리안투스 자작님이시로군요. 이전 사교회에서도 분명 마주한 적이 있었죠?"

"하하, 그 때엔 안주인님의 충고가 큰 도움이 되었죠. 그건 그렇고, 이번 사교회에도 백작님은 참여하지 않으신 겁니까?"

"가주님께선 꽤나 바쁘셔서 말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영지의 부흥에 힘을 쓰고 있지요."

"확실히 백작가로 승격되신 분다운 성실함이군요. 그 때문에 안주인님도 꽤나 고생하시는 듯하지만……."

"그 또한 그와 맺어진 제가 감내해야 할 일이겠죠."

에버그린과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나누는 귀족 일동.

셰인은 그 옆에 선 채 테이블에 있는 음식들 단백질 위주로 골라 담을 뿐이었다.

주변 귀족들이 조금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에버그린은 그럴 때마다 말을 건네어 새로운 화제를 툭툭 꺼내었다.

그 대화가 정말로 매끄럽고 빈틈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지금의 대화에 자신이 나설 필요조차 없다고 말을 하는 것처럼.

'나, 가주 대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던 거 아니었나?'

아무리 그녀가 실세라 한들 표면상의 파트너가 필요하다 여겼건만, 정작 그녀는 자신을 찾아오는 귀족들을 혼자서 능숙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영지의 관리, 사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

그런 그들에게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견문을 쌓은 현자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부인께선 참으로 아는 것이 많으시군요~"

"다 남편에게 배운 거죠."

그러면서도 제 재량을 남편의 것으로 탈바꿈시키기까지.

당장의 분위기를 본다면, 이 현장에 있는 누구도 그녀가 백작가를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라는 걸 모르는 듯하였다.

'귀족들 중에도 그녀의 실체를 아는 자는 소수라는 건가.'

확실히 셰인 역시 그녀에게 직접 전해 듣기 전까진, 그 정체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간추리자면 소위 '뒷세계'라 불리는 음지의 권력자.

그 음지에 속한 사람들을 교묘히 부려 정보를 습득하고, 그렇게 얻은 정보들을 통해 양지에서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법과 윤리에 구애되지 않고 원하는 바를 거머쥔다는 점에선 강도나 반란군 등의 악당보다 질이 나쁜 존재.

"에버그린 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렇게 경계해야 할 여자가 과연 이 사교회에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홀로 궁리를 할 무렵, 누군가가 그녀의 앞에 선 채 조용히 고개를 조아려왔다.

사교회를 돕는 도우미에 해당하는 웨이터.

"벌써 시간이 되었나."

곧 에버그린이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고는 셰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난 이만 실례할게. 이후에 약속이 하나 잡혀 있거든."

"뭐? 혼자 간다고?"

"후후, 왜 그러실까? 설마 누나가 없다고 무서워진 거야?"

"그런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마~ 지금 네 신분으론 여기서 꿇릴 일은 없으니까."

마치 윙크라도 하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여전히 베일을 쓰고 있기에 그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을 홀로 내버려 두고 떠나버리는 에버그린.

셰인이 그 빈자리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혼자서 다 해먹는군."

데려온 이유가 없는 것 같진 않지만,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헤어지는 걸 보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건 아닌 듯하였다.

힘을 길러오란 것도 그냥 평범하게 대비만을 위한 걸지도 모르지.

일단은 호출이 있기 전까지 사교회에 녹아들어보자, 생각한 셰인이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문득 어느 한 곳이 시끄러운 게 눈에 들어왔다.

성의 입구 부근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

그 주변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귀족 여인들.

"어머나, 황실의 기사분이 이런 외진 곳까진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건가요?"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 차라도 한 잔……."

무수한 구애를 받는 남자의 모습이 상당히 눈에 익었다.

가면을 쓰고, 제국의 제식 군복 겸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

"미안하게 됐네. 나는 지금 내 친우의 곁을 지켜야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이니."

"누가 네 친구냐."

이내 여성들을 돌려보낸 황도군의 기사, 잭을 마주한 셰인이 제 표정을 우그러트렸다.

잭이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이런, 친구라고 생각한 건 나뿐이었나? 같이 몇 번 얼굴을 터놓고 식사를 하기도 했으니 친해진 줄 알았다만."

"내가 너 좋다고 같이 겸상한 줄 아냐?"

그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쩌다 식사를 몇 번 한 것뿐.

애초에 감시역인데다, 개인적으로도 이 남자는 셰인의 입장에선 좋게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사교회랍시고 한창 즐기는 것만 봐도 말 다했지.'

황실의 기사가 이리도 방탕해서야 되겠는가? 괜스레 불쾌감을 느낀 셰인이 그의 술잔을 빼앗고 허공에 집어 던졌다.

잔은 그대로 근처를 지나는 웨이터의 쟁반에 안착.

웨이터가 잠시 쟁반을 내려다보았지만, 잔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축제를 즐기는 건 좋지만 근무 중에 술은 마시지 마라."

"하하, 자네는 여전히 친절하군.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도 나의 건강을 생각하여 술을 멀리하라 충고를 해주다니."

"걱정하는 거 아니야."

술이 건강에 나쁜 건 맞지만.

"그냥 날 감시하는 녀석이 어중간한 녀석인 것도 굴욕이라 그런 거지."

동시에 자신이 부끄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런 성실한 모습을 본 잭이 어깨를 으쓱이곤 등을 돌렸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도 임무에 충실하도록 하지. 그대의 뒤는 내 잘 지켜볼 테니 안심하고 파티를 즐기도록 하게."

퍽이나 잘하겠네.

셰인이 그에게서 관심을 거두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미네였나, 그 녀석은 에버그린을 따라간 것 같고…….'

에버그린 쪽에서 붙여두었던 감시자.

이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그녀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에버그린이 물러난 후엔 그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어차피 에버그린 쪽의 사람이고, 잭과는 달리 그다지 안면을 트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좋았다만…….

'그 녀석도 여러모로 껄끄러운 면이 있단 말이지.'

분위기도 묘하게 낯이 익는 감이 있었고.

"저, 저기."

턱을 괴며 홀로 상념에 잠긴 가운데, 누군가가 셰인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스윽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벌벌 떠는 여인.

드레스는 주변과 비교하면 굉장히 수수하지만, 머리를 묶은 보석의 머리핀이 굉장히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아마도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

그만큼 이 사교회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단 의미이리라.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미리네 남작가의 차녀, 리리아 라고 합니다. 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 춤을 춰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런 여인이 행해온 제안에 셰인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주변의 악단들이 연주를 하며 사교회의 분위기를 살리는 상태.

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사교회의 주된 여흥이라지만, 공교롭게도 셰인은 그 장단에 맞춰줄 수가 없는 몸이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군요."

스윽.

셰인이 제 손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상대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연모하시는 분께선 질투가 꽤 많거든요."

볼품없는 십자반지.

길거리에서 흔히 산 물건이지만, 자세히 감정하지 않는다면 유리의 반사광 덕에 그럴싸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 반지를 본 여인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그, 그럼 전 이만……."

임자가 있는 자에게 구애하는 것만큼 추한 일도 없는 법.

그렇게 물러나는 여인을 본 셰인이 제 손에 끼워진 반지를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임자도 뭣도 없는 몸이다만.'

잘생긴 것도 죄라면 죄겠지.

아버지께서 너무나도 큰 재산을 물려주셨다, 생각한 셰인이 코웃음을 치며 성벽지대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지 우려가 되니 정찰이라도 해보기 위해서.

* * *

"그래서 결국 그냥 돌아오셨다는 건가요?"

"좀 더 강단 있게 밀어붙여 보는 것도 좋다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미 마음에 두신 분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셰인에게 고백을 했던 여인, 리리아의 곁에 선 친우들이 그녀에게 아쉬움을 토로하며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해도 기억은 남아서일까?

셰인의 곁을 벗어난 후에도, 리리아의 얼굴은 여전히 벌겋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생기셨던 건가요?"

"네, 뭔가 늠름하시기도 하고, 눈빛이 날카로우시면서도 부드럽다고 할까……."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이 참, 그런 것도 모르시나요? 자상하면서도 듬직한 면이 있다는 거잖아요~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켜줄 만한 스윗함이 있다고 할까?"

꺄아~ 소리를 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귀족 여인들.

리리아가 그런 친구들과 화기애애 대화를 하다, 이내 주변을 둘러보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하지만 저희들이 그런 멋진 분과 맺어지긴 쉽지 않겠죠."

"……네, 그게 현실이죠."

귀족이라고 하여 모두가 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런 사교회에는 귀족이라는 상위계층만이 모이는 장소.

남작가나 자작가와 같은 하위귀족 출신들은 자신들의 특별함을 돋보일 수 없고, 그렇기에 백작 이상의 고위귀족과 맺어지는 것도 특별한 인연이 없는 한 쉬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분은 분명 명망 있는 혈통을 이어받았겠죠.'

그러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리라, 그런 현실에 대한 씁쓸함을 곱씹어가는 것도 잠시.

-쨍그랑!

근처에서 들려오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

길을 지나는 중 누군가가 손에 쥔 유리잔을 떨어트린 것이다.

시녀복을 입고 있는 한 여인. 그를 보고 있던 귀족들이 표정을 구겨대었다.

"뭐하는 거야 대체?"

"추하게 생긴 주제에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추한 얼굴.

도저히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시녀는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사죄를 토로할 뿐이었다.

이후 깨진 컵을 정리하며 흘린 액체를 정리해가는 가운데,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리리아의 친구들이 대상의 얼굴을 조목조목 따져보기 시작하였다.

"턱이 꽤 삐뚤어져 있네요."

"아, 저 시종 아까 마주해봤었어요. 턱만 비틀어진 게 아니라 이빨도 꽤 흉하게 돋아났더라고요. 특히 이 송곳니 부분이 입술 밖으로 툭 튀어나와서……."

"아휴, 그거 참 망측해라~ 저는 그런 식으로 이빨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미관의 가장 중요한 부분 할애하는 턱, 그리고 치열의 손상.

저주로만 분류되지 않을 뿐, 귀족사회에 있어 무척이나 치명적이란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평가에 진저리를 치는 가운데에도, 리리아는 시종이 떠나가는 자리를 응시하기만 할 뿐.

"리리아,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신 건가요?"

"아, 그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리리아가 두 사람에게 언젠가 자신이 들어본 바가 있던 일을 공유해주었다.

"얼마 전에 조금 소문을 들었거든요. 그게, 블러드메리라고 아시죠? 거기의 안주인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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