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병의 환생 190화
'정체불명의 세력이 사교회를 습격했다.
당장 알아야 할 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누가 저질렀는지, 어떤 세력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저질렀는지는 문제를 수습한 후 따져 봐도 될 문제.
하물며 지금 이 사교회에 참여한 이들은 아무런 경계도 하지 못한 채로,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이 가한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아름다운 음악과 만찬이 가득한 현장이 수라장으로 바뀌는 건 수 분 남짓.
폭발과 비명이 사라진 현장에 남은 건, 오직 싸늘한 주검과 피비린내뿐이었다.
"하, 참나……."
그리고 지금은 그 현장이 펼쳐진 후 30분도 넘게 지난 상황.
그 시간 동안 최대한 눈에 보이는 습격자들을 닥치는 대로 제압했지만, 다시 성으로 복귀했을 때엔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난 서포터인데 왜 이렇게 혼자 하는 일이 많은 건지……."
물론 이 성에도 호위병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내부의 혼란을 진압하는 정도로 염두에 둔 이들이었다.
전쟁터에서 활약하는 이들과 비교하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병력.
하물며 습격자들이 다루는 무기가 마나유저에게도 치명적인 만큼, 제대로 된 싸움이 될 리는 만무할 터다.
'필사적으로 저항을 한다 해도 제거한 건 소수뿐인가.'
그 소수에 해당하는 이들의 무기를 들어 올린 셰인이 내부의 구조를 살펴보았다.
소총이라기엔 너무 짧고, 리볼버와 같은 권총이라기엔 부품이 너무 많다.
거기에 더해 원통형의 총구 밑바닥에 붙어있는 드럼형태의 부품.
그것을 뜯어내 내부를 확인하니, 총알이 다수 들어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총의 상부나 개머리판이 아닌, 외부에 탄창을 달고 교체해서 쓰는 건가.'
해적들이 쓰던 기관총을 휴대용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위력과 사거리는 그만큼 떨어지겠지만, 연사가 가능한 만큼 넓은 범위에 포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물건이다.
그리고 난사의 무서운 점은 강체술이나 마나실드 등, 마나유저의 방어술을 효율적으로 분쇄시킬 수 있다는 것.
'마나는 무의식에도 반응하는 힘이야. 동시다발적으로 타격이 오면 실드가 그만큼 크게 흐트러질 수밖에 없어.'
자신도 엄폐물까지 이용하며 교전에 임해야 했을 정도인데, 5써클에 조차 도달하지 못한 귀족이나 병사들이라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겠는가?
"기관단총이라……. 꽤나 위험한 무기를 들고 왔군."
그 순간 배후에서 들려온 목소리.
셰인이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자, 군복을 걸친 가면남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황도군의 기사 잭.
그 정체를 파악한 셰인이 침을 삼키며 그에게 물었다.
"……이 무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제국에서 유통이 금지되었을 뿐, 총기 자체는 이미 황실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블레이즈에서부터 꼬박꼬박 보고를 받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중 기관단총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건 고작 몇 달 채 안 된 일.
그럼에도 지금의 습격자들은 이 신형 무기를 '양산'까지 한 것도 모자라, 그걸 단원들 전원에게 무장시키기는 데까지 성공한 상태였다.
"세력 전체가 이런 무기로 무장한다는 건……. 지금 습격을 벌인 세력이 결코 어쭙잖은 이들이 아니라는 거겠지."
-빠드득.
이어지는 말에 이를 가는 셰인.
이후 뭐라 말을 하려던 그가, 제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등을 돌려 뛰어가기 시작했다.
잭은 그 뒤를 무덤덤하게 뒤따르기만 할 뿐. 그를 감시하는 것이 제 임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네는 이제부터 어찌 할 생각인가? 이 현장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반대편의 출구로 향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만……. 설마 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하는 것인가?"
"가세 안 할 거면 닥치고 있어."
"태도에 꽤 날이 서있구나."
"그럼 내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녀석을 대견하다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냐?"
아무리 감시자라지만 이 사태의 피해자들은 엄연히 제국의 지도자들.
황도군이 움직일 명분으론 충분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감시임무에 충실한단 이유로 제 뒤만을 지키고 있었다.
좋게 볼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너무 그렇게 나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나 역시 내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는 편이 좋다 생각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신중히 행동하는 것을 좋다 여기는 것 뿐이지."
성 내부를 누비는 잭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뛰어가는 내내 보이는 건 폭발물에 의해 붕괴된 벽과 천장, 그리고 사방에 가득한 시체들 뿐.
그를 훑어보던 가면 안쪽의 눈이 차차 가느다랗게 뜨여졌다.
"그래, 자네가 이후에 무얼 하건 신중히 하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하네. 지금 이곳을 습격한 건 일개 반란군이 아닌 '연합'이니까."
그건 셰인도 짐작하는 바였다.
이전에 교전을 했을 때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장은 일치했지만, 그 외의 심볼이나 작전 체계 등에 대해선 각 집단마다 큰 차이를 보였었다.
단순히 본대에서 따로 움직이는 게 아닌, 서로가 다른 세력에 속해 있었던 것 마냥.
"하지만 반란군이라는 것들은 대개 성향과 이상이 제각각인 법…….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제국의 전복을 꿈꾸고 있다 한들,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마찰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지."
누군가는 이단의 문화를 지향하기에, 누군가는 제국의 독재 체제에 반감을, 혹은 교단에 대한 불신을 가져서…….
그렇게 따로 놀아야 할 이들이, 지금 이 순간만은 서로 합을 맞추며 일대를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임시로나마 동맹을 맺어야 할 이유를 찾았다는 것이다.
"단순 귀족의 사살이나 납치만을 목적으로 이런 대대적인 습격을 벌이는 건 수지에 맞지 않는 일이겠지."
귀족들의 경우 사망, 혹은 사고로 인한 부재가 일어날 경우 서열이 낮은 후계자에게 그 신분과 업무를 전가할 수 있다.
호출에 응하는 귀족들이 각기 다른 가문에 속해 있는 사교회의 특성상, 그들을 전멸시킨다 해도 사회 자체가 입을 타격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리해야 한다면 그 대리인을 세우기까지의 공백이 가장 크고, 그 허점을 노려 뒤이은 작전을 수행하기 용이한 목표를 선정할 터.
"가레스 체펠리……. 그가 없어지면 변경귀족들의 규합은 크게 약화되겠지."
변경 귀족의 유일한 후작인 만큼 그를 대체할 대리인을 찾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즉, 그로 인해 변경에 한해선 반란군들이 날뛰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것이 현 반란군이 노리는 목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말은 그게 전부야?"
거기까지 추측을 마쳤을 무렵, 셰인이 자리에 멈춰선 채로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도달한 곳은 성의 지하로 향하는 입구.
그 곳곳엔 다수의 병사들과 반란군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대부분은 시체…….
하지만 그 중에도 살아 있는 사람은 존재하고 있다.
셰인이 그들에게 바로 응급처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잭이 그를 지켜보며 조용히 되물었다.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가?"
"……아까 네가 말했지. 블레이즈에서 온 보고를 모두 듣고 있었다고."
그의 손이 맞닿은 곳의 상처가 빠르게 봉해지고, 막혀있던 숨이 서서히 트여진다.
응급처치를 넘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행하는 수술.
거기에 추가로 신성력까지 더해지니, 치명상을 입은 환자들의 용태가 서서히 안전권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상한 치료에 동반된 감정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그 무기의 위험성을 알고도 세간에 그 존재를 미리 알리지도 않았어. 그 무기에 대해 알리지 않아도, 대중이 대응할 필요도 없이 자기들이 알아서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을 테니까."
"……자네의 말은, 이 사태에 대한 방비를 하지 못한 황실에게 잘못이 있다는 건가?"
"그럼 아니야!?"
처치를 이어가던 셰인이 욱한 심정에 윽박을 질렀다.
그래, 제국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일단 덮어두기만 하면 알아서 잠잠해질 거라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효율적인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셰인이 하는 것과 같은 응급처치에 불과한 것이다.
언젠가 있을 치명적인 상황에 유예를 두는 작업일 뿐.
그 유예를 언제까지고 뒤로 미룰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애초에 잘못이 있다는 걸 알아도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일을 해결할 능력은커녕, 왜 일어났는지조차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인 마당에……."
억압에 짓눌리되, 감시가 닿지 않는 곳에선 독기를 벼려가는 건 당연한 수순.
세간에서는 그들의 파괴행적에 동조하지 못하고 그들을 악으로 규정하겠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게 허락되는 건 어디까지나 '무지한 민중'뿐.
그런 이들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건, 지금과 같은 습격을 벌이는 이들을 외면해야 할 악이 아닌 언제든 찾아올 '적'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평화란 그래야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완벽하게' 이뤄야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은 결과가 이 꼴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대비랍시고 한 건 민중의 눈만을 멀게 하고 제 권위를 유지하는 것 뿐.
그로 인해 총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너희들 제국은, 언젠가 이런 일이 터지리란 걸 염두에 두고 있어야만 했어."
그러지 않으니 셰인은 반란자들처럼 전쟁을 갈망하지 않되, 평화를 추구하는 이 제국에 동조하질 못하는 것이다.
변화가 없는 현실이야말로 이상향이라 여기는 그들의 생각은, 말 그대로 이상론에 불과할 뿐이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너희 제국이라……."
그 의견을 잠자코 새겨들은 잭이 제 고개를 숙여갔다.
입이 열린 것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
"이전부터 느꼈던 거다만, 자네는 마치 스스로가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도 되는 양 말을 하는군."
"……."
말없이 그에게서 관심을 돌리며 환자의 치료를 이어가는 셰인. 그 손짓엔 상대에 대한 기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상대는 그저 황실의 대변인일 뿐. 그에게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지금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을 또 다른 반란분자로 여기며 처벌을 가할지도 모를 일이지.
"……공교롭게도 나는 황실의 대변인일 뿐, 자네를 포함한 그 누가 불만을 토로해도 결과적으론 황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네."
"하, 그래서 너희들은 이 상황에 대해선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하지만 그런 나 또한 황실의 일원이기 이전엔 한 명의 인간이지."
"……."
"입장을 밝히지 못할지언정, 자네의 의견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아가 없진 않아."
할 말을 잃은 셰인을 앞둔 잭이, 제 가면에 손을 얹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래, 자네의 말대로야. 수백 년 전부터 이어온 체재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런 문제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거겠지."
가면이 벗겨지며 변조된 목소리가 본래의 것으로 돌아온다.
이내 드러난 것은 더없이 씁쓸한 표정.
그 얼굴을 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는 듯했지만, 그 기시감은 무척이나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끝내 그 기억을 되새기는 걸 외면한 셰인이 환자들의 치료를 마치고, 이후 그들이 마지막까지 지키고 서있던 입구를 응시하였다.
성의 지하로 통하는 입구.
이곳에 한가득 쓰러져 있는 병사들과 반란군들을 보아, 지금 자신이 응시하는 곳이 이 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탈출구'라도 되는 듯 보였다.
그래, 탈출했다면 이곳으로 향했을 터.
그리고 이곳을 습격한 이들이 노리는 게 정말로 가레스라면, 그 누구보다도 앞서 그를 구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저기에 생존자들이 있다!"
그를 향해 발을 내딛으려는 것도 잠시.
"인질은 충분히 확보했다. 보이는 건 전부 다 쏴죽여!"
배후에서부터 들이닥친 복면의 습격자들. 그들의 손에도 역시 기관단총이 쥐어져 있다.
쓰러트리는 건 어렵지 않고, 그저 무시하고 지하로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쭙잖게 싸우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도 위험해질 터.
"응급처치가 끝났다면 먼저 나아가도록 해라."
그 직후 잭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제 허리춤에 채운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너……."
"자네가 어떤 인물인지는 1달 간 충분히 봐왔다네."
셰인을 돌아보는 잭.
그 입가에 그려진 희미한 미소에선 자신을 향한 신뢰가 엿보이고 있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다면, 자네는 내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이제껏 내 앞에서 보여 온 태도를 고수하겠지."
무척이나 올곧고.
이런 그릇된 나라에게도 기회라는 걸 주고자 하는 모습을.
"……."
셰인이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응시하였다.
단순한 변덕이 아닌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내린 결정.
그 결정에는 감시자의 사명을 부여받은, 황실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것 역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 속내가 어떤지 알 수 없으니, 그렇기에 셰인은 그 자리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죽지 마라."
그저 그런 말만을 남기고 지하의 입구로 뛰쳐나갈 뿐.
반란군과 대치하는 잭이, 곧 제 검의 손잡이에 힘을 실어 넣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조만간 다시 보도록 하지. 과거에서 온 존재여."
-콰아아!!!
마나의 격류가 터져 나오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거센 물리력의 파동에 의해 일어나는 아지랑이.
그에 경계심을 느낀 이들이 잭을 향해 총을 쏴갈겼지만, 그 모든 것은 그의 몸에 닿지 않고 옆으로 빗겨나갈 뿐이었다.
몇몇 총알이 피부를 스치고 갔지만 그 또한 빠르게 아물어들 뿐.
그건 그가 검을 뽑아든 순간 동반된 빛에 의한 현상이었다.
"뭐, 무슨……."
"그러고 보면 초대면에 내 소개를 하는 것을 잊었구나."
당황하는 반란군들을 마주한 잭이, 이윽고 제 손에 쥔 검을 완전히 뽑아들었다.
그 손에 쥔 것은 그 자체로 의지를 가진 검.
그리고 그 의지는 사용자 본인이 가진 의지에 반응하고, 그에 공감하며 자아내는 유대를 힘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힘이 거세고 빛이 선명할수록, 그 자가 가진 의지 역시 그만큼 투철하다는 것.
"나의 이름은 알랙산드로스 테라스."
그러한 의지를 가진 남자가 이윽고 제 진명을 드러내고, 제 손에 쥔 제국의 상징을 치켜세우며 당당히 선포하였다.
"영광과 염원을 찾아 전장에 발을 들인, 그대들의 묘비에 이름을 새겨줄 자라네."
평화가 종식되고.
이윽고 찾아올 암흑의 시대를 이끌어갈 각오를 증명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