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의무병의 환생-191화 (191/255)

의무병의 환생 191화

창고와 이어져 있는 지하수로.

빗물이나 방류된 오물 등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장소는, 영지 전체에 걸쳐 깔려져 있는 만큼 지상으로 이어지는 무수한 출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형이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게도 그곳에 들어선 셰인에겐 자신이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줄 길잡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많이도 죽었군.'

사방에 깔린 시체와 피.

현장만 봐선 필사적이고 치열하게 사투를 벌인 듯하지만, 그래봐야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군대일 뿐이다.

블레이즈처럼 제대로 전시를 대비하지도 않은 군대.

그들이 열세에 몰리는 건 예견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제대로 방비나 되어있으면 서포터인 내가 이렇게 뛰어다니지도 않았겠지.'

그에 억울함을 느끼는 가운데, 문득 셰인의 머릿속에 한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에버그린 블러드메리.

자신을 이 사교회에 데리고 온 여자.

'그 녀석, 설마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날 데리고 온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반란세력들이 연합까지 이루며 후작령을 습격하고, 귀족들을 떼로 몰살지어 죽여 대는 현장.

정보에 능한 그녀가 그런 소식을 사전에 들었다면, 힘을 길러두라는 애매한 말만을 남기진 않았을 것이다.

'불온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이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다는 건가.'

하지만 분명 괜찮으리라.

양지 뿐 아니라 뒷세계에도 영향력을 미친 그녀가, 제 한 몸 지킬 수단조차 마련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래, 지금은 그 녀석에게 신경 끄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그렇게 불안한 생각을 지우며 나아가길 수 분.

이내 셰인의 발걸음이 어느 한 통로지점에서 뚝 멈춰지고 말았다.

이제까지 지나온 길보다 더한 참극으로 물들어진 통로.

바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는 것만으로 숨통이 턱 막힐 지경이다.

'…이미 늦었나.'

이내 그 시체들을 따라 들어선 곳에서 보인 것은 쓰러져 있는 한 남자. 아니, 시체.

목 위쪽이 난잡하게 뜯겨나가 있으며, 그 앞부분에는 뚝뚝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그를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미친 곳에 보이는 익숙한 얼굴.

'가레스 체펠리.'

그런 이름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거구의 남자에게 쥐어져 있다.

마치 곰과 같은 몸집을 자랑하는 후드를 쓴 남자의 손에.

"호오,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를 지키고자 하는 병력도 결코 녹록치 않았을 터.

습격자들 역시 그들을 상대하며 많은 희생을 치렀으며, 그 희생 끝에 이곳까지 도달해 추적에 성공한 건 단 두 사람 뿐이었다.

"여기까지 많은 병력을 두었건만, 설마 그들을 모두 뚫고 이 자리까지 찾아올 줄이야."

가레스의 머리를 쥐고 있는 검은 후드의 거한과, 그에게서 머리를 받으며 주머니를 펼치고 있는 남자.

셰인이 그중 자신과 비슷한 키를 가진 남자 쪽을 응시하며 물었다.

"……네가 대가리냐?"

"대가리?"

"이 사단을 벌인 놈들의 우두머리냐고 물었어."

자신과 같은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입고 있는 것은 제국 격식의 제복과 비슷하되, 제국을 상징하는 붉은 색이 아닌 흑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그 어깨에 매어져있는 끝이 구부러진 십자문양의 휘장…….

그 형태가 묘하게 낯이 익어 보인다.

"우두머리라……. 그 칭호는 꽤 불쾌하구나."

그 기시감에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곧 청년이 제 머리에 쓴 군모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나의 이름은 이스칸다르 라이히."

처음 내뱉은 것은 이름.

그 뒤를 따르는 건 그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어.

"이 제국을 전복시키고 난 후 펼쳐질,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총통이 될 몸이다."

"……총통?"

총통 라이히.

그것이 남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이었다.

감히 황실이라는 지도계층이 존재하는 마당에, 공화정 국가에서나 쓸 법한 칭호를 권위적인 태도로 입에 담은 것이다.

'성이 라이히라고?'

하지만 셰인은 그 이름과 칭호를 비웃지 않았다.

우스꽝스럽기보단 익숙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그 반응을 살피던 라이히가 비릿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 라이히라는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겠지?"

세간에서는 유명한 이름이다.

혁명군 푸른 화살, 신제국주의집단, 교단을 부정하는 각종 사교도와 이단세력 등등…….

제국 곳곳에서 날뛰며 민심을 불온히 만드는 세력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 꼽히는 '제3제국'의 수장이었으니까.

그들의 목적은 제국이 설립된 500년 전과 200년 전 전쟁 이후의 통일을 마친 제국의 뒤를 이어, 자신들이 제국을 지배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

즉, 다른 반란군들의 목적인 혁명이 아닌, 제국 자체를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침략세력에 가까운 집단이다.

"아, 뭐……. 알고 있지."

하지만 그건 이 시대가 아닌 전생에서 들었던 것이다.

군부 독재 국가 도이챌런트.

과거 제국에 대항했던 연합국에 소속되어 있던 나라로, 왕가인 아이헨발트와 달리 군대가 모든 정치와 행정의 방향을 결정했던 곳이다.

국가의 힘은 오롯이 군사력에서 비롯되며, 압도적인 힘에 의한 통제야말로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극단적인 사고로 움직이는 국가.

그런 나라와 연합을 이뤘을 정도로, 당시 제국의 광적인 진군이란 그렇게나 심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셰인이 이 순간 떠올린 건, 연합군 수뇌부의 참모 중 한 명이 바로 그 나라의 수장인 '드리테스 라이히 총통'이었단 것이다.

'이것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대가 이끄는 부대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오?'

부상자와 의사들을 미끼로 삼아 제국의 주요 부대를 친다는.

그런 정신 나간 헛소리를 작전이랍시고 강요했던 녀석.

'이딴 개짓거릴 한 놈이 누구인가 했더니, 설마 그 빌어먹을 대머리 꼰대 놈의 핏줄이 이 시대까지 남아 있을 줄이야.'

그에 불쾌감마저 느껴지는 가운데, 라이히가 셰인의 얼굴을 살피며 턱을 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자네는 꽤나 낯이 익은 얼굴이로군. 그 금발의 머리와 눈매는……. 그렇군, 6년 전에 재판을 치렀던 셰인 골드리안인가?"

재판이야 유명하긴 하지만, 외모만을 보고 그 점을 파악했다는 건 자신을 직접 마주해본 바가 있단 것이다.

재판이라 말을 한 걸로 봐선 10대 초중반 시절에.

"하, 참나. 제국 감시망이 참 개판이긴 한가보네. 미래의 침략자 꿈나무도 재판 관람을 허락해주고."

"당시에 벌어졌던 건 그만큼 중대한 사태였으니 말이다. 나 또한 그 현장에 발을 들이는 데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했지."

다름 아닌 황실 다음으로 큰 권력을 가진 가문의, 그 후계자를 상대로 이단행위를 벌인 것이다.

그런 짓을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저질렀다는데, 잠재적 반란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자가 안 가고 배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대가 행한 일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말이야."

마치 자신을 동류로 보는 것 같은 말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참극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마냥.

"그래, 셰인 골드리안. 그대 역시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몸이지. 형량을 치렀다 한들 여전히 제국의 체재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라도 우리와 함께 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만……."

곧 라이히가 셰인을 향해 손을 뻗으려다, 그 손끝을 머뭇거리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바란 건 아무래도 나뿐이었던 모양이로군."

"잘 알고 있네."

셰인이 제 주먹을 들어올려 그 끝을 라이히에게 겨누었다.

"계기가 나한테 있다며 죄책감 같은 걸 유발할 생각인가 본데, 그런 건 쥐뿔도 안 먹힌다는 걸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그딴 개소리를 주절댈수록, 내가 너희들을 쳐죽여야 할 이유가 늘어나는 것뿐이니까."

반란군에 전쟁 추종자, 거기에 과거의 악연에 세태와 야합하지 못한 미련한 사상까지.

그 무엇에도 동조할 수 없는 셰인에게 있어, 제 앞에 있는 자는 결코 상종할 수 없는 머저리들일 뿐이다.

"……아쉽구나, 서로 함께할 수 없다는 게."

그리고 동행하지 못하는 실력자란 방해물에 불과할 뿐.

그 점을 실감한 라이히가 이내 자리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가레스의 머리가 들어있는 주머니만을 손에 쥔 채로.

"하지만 이미 목적을 달성한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지."

그래, 반란세력의 수장이 제국의 핵심 권위자의 목을 직접 따고 돌아왔다……. 그 하나의 진실은 분명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리라.

오직 그것만을 위해, 그는 수장의 몸으로써 제 목숨을 걸며 이 자리까지 행차했던 것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뫼비우스!"

-쿠웅!

막 달려들려는 순간 난입하는 거구의 사내.

그 직후 후드에 감싸인 묵직한 팔이 휘둘러지며, 셰인이 휘두른 발차기와 충돌을 일으켰다.

반동에 밀려나는 것은 셰인.

그대로 밀어낼 기세로 힘을 주었음에도, 그 반동에 도리어 이 쪽이 피해를 입어 밀려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자식…….'

얕잡아볼 놈이 아니다.

경계심을 느끼며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그 여유를 빌 듯 라이히가 미소를 머금은 입으로 마저 말을 이어갔다.

"뫼비우스, 이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정말로 많은 전사들이 목숨을 잃었건만, 그 숭고한 피로 만들어진 길을 더 이상 자네와 함께 걸을 수가 없게 되었구나."

"…그 또한 당신을 섬기는 순간부터 각오한 바입니다, 각하."

후드를 쓴 거한의 남자.

뫼비우스가 그의 앞에 자리를 잡으며 제 몸에 힘을 실어 넣었다.

"뫼비우스, 내 너의 주군으로서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리마."

라이히가 그에게 등을 돌리며 외쳤다.

"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여라."

명령은 그것으로 끝.

이내 라이히가 수로의 반대편으로 나선 순간, 셰인이 그 때에 맞춰 제 몸을 측면으로 날려 보내었다.

'사각으로 돌아 이 떡대를 밀어내고 붙잡는다.'

그 그럴싸한 계획이 뭉개진 건 제 앞을 손바닥이 가로막은 순간.

-콰앙!!

터무니없는 속도로.

그 안에 밀집된 마나가 기폭되고, 그 충격에 밀려난 셰인의 몸이 곧장 잔상으로 뒤바뀌었다.

바닥에 고인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이내 충돌한 벽에서부터 먼지가 격하게 터져 나온다.

그 연막 속의 그림자를 응시하는 뫼비우스가 조용히 읊조렸다.

"미안하군. 그대에게 악의는 없다만, 나 역시 지켜야 할 게 있는 몸이니……."

-쩌억!

먼지를 갈라내며 날아든 무언가가 머리를 강타한다.

"내가 할 말이야."

거구가 크게 기울어지는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하얀 잔상.

그 존재를 바로 보기도 전, 하체에서부터 큰 위협감이 치솟아 올랐다.

-투쾅! 캉!

사지 곳곳에서 일어나는 물리력의 폭발.

일방적인 연타에 위기감을 느낀 순간, 뫼비우스의 몸 곳곳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콰드득!!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

그와 함께 위쪽으로 뻗어진 손이 들어 올려 지기 전, 셰인이 손날을 휘둘러 그의 어깨를 강타하여 행동을 무마시켰다.

-카앙!!!

요란한 금속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불똥이 튀어 오른다.

도저히 사람의 어깨에서 나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소음.

"……이젠 이 레퍼토리도 좀 질리네."

삐그극.

어깨의 관절음을 들은 셰인이 이를 갈며 뫼비우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니들 반란군은 개나 소나 기계몸을 쓰냐?"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시겠지."

-쿠웅!

그대로 밀어내기에 휘둘린 셰인이 몸을 물리고, 제 앞을 가로막은 존재를 응시하였다.

일방적으로 구타를 가했음에도 데미지를 입은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저 단순히 신체의 절반을 기계로 대체해서만이 아니다.

나머지 신체 역시도 자신보다 훨씬 강해서이지.

"…강하군."

하지만 그저 일방적으로 맞아줄 수도 없는 노릇.

이윽고 진심으로 전투를 준비하는 뫼비우스가 몸에 둘러진 후드를 벗어, 제 본 모습을 셰인의 앞에 드러내었다.

"평범한 인간치고는."

창백한 피부에 도드라진 혈관. 몸 곳곳에 부착되어있는 괴이한 형태의 관이, 그의 얼굴에 붙어있는 호흡기와 이어지며 무언가를 불어넣고 있다.

호흡을 통해 약물을 기화시켜 만들어내는 가스를…….

그로부터 강화된 육체는, 그의 오른팔을 포함한 신체 곳곳에 끼워진 기계의 조작 역시도 감당케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리테스 그 꼰대새끼도 몇 번이고 아이헨발트에 저 지랄을 해달라고 요청했었지.'

인륜을 져버린 수술이란 이렇게나 인간을 추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윤리나 시술의 위험성이 아닌, 그런 일을 감당하면서까지 제 앞을 가로막는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힘만 본다면 일라이급….'

변경 굴지의 단두대.

현재 상승한 5써클은 물론이고, 전성기의 자신조차 정면승부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 평가한 괴물 같은 여자.

하지만 상대의 전력은 그저 근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마나의 써클과 신체개조를 통한 전력의 상승, 그리고 전략…….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내놓은 전력의 수치를 가늠하자면, 셰인이 알고 있는 한 인물에 근접한다 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어쩌면 볼레로급일지도 모르겠는데.'

200년 간 전쟁을 준비해 온 혈통의 추종자.

그자의 전력이 전성기의 영웅을 뛰어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곤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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